65. 시즌 제17시리즈 – vs 광주 (8) 보여줄 수도 없고
치열한 유혈 사태가 벌어졌던 이날의 승부는 부산에게 돌아갔다.
양팀 통틀어 아홉 명의 선수와 감독들이 퇴장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광주는 당연히 승리를 점쳤다.
많은 이닝이 남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넘어올 만했고, 부산은 주력들이 대거 퇴장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두열도 당연히 그 퇴장 대열에 합류를 한 상태였다.
부산은 무서운 타자 군단이었지만 2진 선수들까지 그 폭이 확대된 팀은 아니었다.
반면 광주는 1, 2진의 경계가 무색할 정도로 모든 선수들이 고른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부산보다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벌어졌던 점수 차가 너무도 컸던 것일까?
아니면 선수들의 퇴장에 분기탱천한 다른 선수들이 괴력을 발휘한 것일까?
부산은 매섭게 쫓아오는 광주를 뿌리치며 결국 14 : 12라는 점수로 짜릿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내가 때리는 거 봤냐?”
부상을 당한 선수는 많았지만 큰 부상자는 하나도 없었다.
남자들은 가끔 이렇게 육체적인 대화를 나눈 후에 의기투합을 하기도 한다.
마치 내가 영화에 나온 전사나 된 것처럼.
내가 어떻게 때렸네.
내가 어떻게 피했네.
다들 나의 상대가 안 된다는 둥.
별스런 추임새와 미사여구를 곁들이며 자신들의 알통을 뽐내는 종족이다.
“행임이 쥑있다 아입니까?”
사랑 받는 후배들은 기회가 왔음을 깨닫고 그런 선배들에게 아부 공세를 퍼부었다.
선배들의 코는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고, 후배들의 입김은 선배들의 귓속에 솜사탕을 채워 넣었다.
부산은 이런 좋은 분위기에서 조촐한 파티를 마쳤다.
이렇게 푸닥거리가 있은 후엔 팀에서도 단합을 위해 간단한 파티를 열곤 했다.
선수들은 파티가 파한 후 각자의 숙소에서 2차를 즐겼다.
헌데, 두열은 부상을 핑계로 슬그머니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그의 눈엔 찬란히 빛나는 무언가가 계속 아른거리고 있었다.
【선수 정보】 ★x07 ☆x14
– 포심 패스트볼 : S+ (2401 point↑ 132~165km/h) <★12p>
– 회전수 : S+ (2401 point↑ –11~3117RPM) <★14p>
“흐흐흐흐.”
반짝이는 이펙트 빼고는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 ‘S+’ 징표에 웃음을 그치지 못하는 두열이었다.
사실 별을 투자한 것치곤 너무 늦게 상승을 하였다.
평소라면 사막에 뿌린 물처럼 검은 별을 삼켰어야 했는데, 고작 1이 올랐다.
확실히 ‘S+’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더딘 성장을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런 만큼 특별해 보이는 반짝임에 기대가 이는 그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공을 던져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공을 받아줄 사람도, 공을 던질 몸도 아니었다.
“아! 맞다! 상자!”
‘S+’에 신경이 팔려 ‘무작위 랜덤 박스’를 까맣게 잊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맨 밑에서 자신을 빨리 열어달라는 박스의 흔들거림에 잊었던 선물을 기억해 냈다.
오늘의 승부는 5전 4승 1패.
상자가 무려 4개나 되었다.
“흐흐흐. 뭐가 나오려나.”
두열은 방 불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상자를 노려보았다.
전에는 등급이 있었고, 상자에 대한 설명도 대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오늘의 상자는 별다른 설명이 뜨지 않았다.
말 그대로 랜덤 상자인 것이었다.
두열은 콩닥거리는 심정으로 상자 하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두근두근.
<‘무작위 랜덤 박스’ 오픈!>
<무작위 랜덤 박스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전과 같은 떠들썩한 회전음이 끊임없이 들렸다.
일본 빠찡고 기계에서 들리던 소리와 비슷한 음이었다.
그리고 곧 결과가 나왔다.
<유니크 골드 ‘◆ (S) 날카로운 손톱’을 획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
두열은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액티브 스킬을, 혹은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고 바랐는데, 나온 것은 S급 버프였다.
새로운 이 버프까지 슬롯에는 세 개의 버프 능력이 있었지만, 쓸 수 있는 건 단 하나뿐.
두열은 침까지 질질 흘리며 허탈감을 맛봐야 했다.
“아니지. 아직 세 개나 남았잖아. 그래, 뭔가 좋은 거를 하나 주지 않겠어?”
두열은 다시 심기일전하여 하나의 상자를 더 까 보았다.
그런데···.
<’유니크 실버 박스’ 1개 획득! 축하드립니다.>
“축하···?”
써먹지도 못할 버프가 나오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얻은 것은 실버 박스.
골드 박스보다도 낮은 등급.
이걸 계속 까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그만큼 기대감이 컸고, 그에 대한 실망감이 큰 탓이었다.
“아니야. 나올 거야. 다른 선수들에겐 이런 기회도 없잖아. 기쁜 마음으로···.”
애써 자기 위안을 하며 실버 박스를 열었다.
그리고 박스에선 검은 별 3개가 나왔다.
“그렇지. 차라리 쓸 수 있는 별을 줘. 흐흐, 드디어 열 개다.”
검은 별은 모으기 힘든 존재였다.
퀘스트가 많은 날에는 검은 별 한 개 분량까지 모으기도 했지만, 퀘스트가 적거나 실패를 하는 날엔 빈손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그리고 기대가 무너진 만큼 작은 기쁨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된 그였다.
한편으론 실망할 자신을 속이기 위한 기만행위이기도 하였다.
“자! 마저 까자. 가지고 있어 봐야 속이나 상할 거.”
두열은 이제 마음을 비우고 나머지 상자 두 개를 모두 클릭하였다.
어차피 좋은 게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라도 편하자는 심산으로 두 개의 상자를 한번에 터치한 것이었다.
또로로로.
이번에도 현란한 음악 속에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전야제는 휘황찬란한데 정작 본게임은 시시할 것을 알기에 피식 웃음이 흘렀다.
<유니크 골드 ‘◆ (S) 불타는 집념’을 획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헐. 같은 걸 주면 어쩌자는 거야?”
이제는 하다 하다 같은 버프를 준다.
괜히 짜증나네?
엇?
촤르륵~ 펑! 빰빠라밤~
<무등급 ‘◈ 매직 박스’을 획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 이거 뭐지?”
지금까지 들렸던 어떤 배경음보다 들썩이는 음악이 충만했지만, 두열은 처음 보는 스킬에 멍한 눈이 되어 찬찬히 설명을 읽어 보고 있었다.
‘◈ 매직 박스’는 자신의 스킬을 섞을 수 있는 마법 도구입니다.
불필요하거나 사용이 많지 않은 스킬들을 향상시켜 사용해 보세요.
설명이 길었지만, 핵심은 쓰지 않는 스킬들을 이 박스에 넣고 돌리면 새로운 기술이 튀어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그래, 이거지!”
지금까지 실의에 빠져 있던 두열이 신이 났는지 침대 위로 올라가 콩콩이를 타기 시작했다.
정보창에 보이는, 장식처럼 여겨지던 스킬들이 이제 제 쓸모가 생긴 것이었다.
재활용.
신규 자원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지 않거나 쓸모가 없어진 것들을 새로운 자원으로 재탄생 시켜내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두열에겐 그 가치가 더 큰 선물이었다.
【선수 정보】 ★x10 ☆x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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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프 능력 ◆
– 사용중 (L) 정교한 손놀림 : 제구력, 무브먼트 능력이 3% 상승합니다.
– 대기중 (S) 불타는 집념 : 집중력 능력이 4% 상승합니다.
– 대기중 (S) 날카로운 손톱 : 회전수 능력이 4% 상승합니다.
– 대기중 (S) 불타는 집념 : 집중력 능력이 4% 상승합니다.
☞ 버프 능력은 하나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버프 교체 시 일주일 동안 재교체가 되지 않습니다.
– 대기중 (∞) ◈ 매직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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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웃음을 흘리는 두열의 눈이 스킬 ‘불타는 집념’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매직 박스’에 넣었다.
<같은 등급의 스킬을 조합하면 낮은 확률로 같은 등급의 좋은 수치를 가진 스킬로 업그레이드 되거나 한 등급 상승이 됩니다.>
<베이스는 ‘◆ (S) 불타는 집념’입니다. 재료로 쓰일 스킬을 하나 더 넣어 주세요.>
어? 베이스?
그럼, 먼저 놓은 녀석 위로 재료로 쓰이는 기능이 입혀지는 건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안되지.
두열은 넣었던 스킬을 다시 빼내고 다시 ‘날카로운 손톱’을 넣었다.
집중력도 좋은 스킬이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스텟보다 자기 자신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두열이었다.
아무리 스텟이 높아도 실제 마음이 흔들리면 스텟이 요동을 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물론 마음이 흔들리면 제구라든지 회전수 같은 스텟들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마음이 단단할 땐 스텟보다 더 높은 구위를 보였던 것도 사실.
그래서 두열은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평소를 대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회전수를 베이스로 삼았다.
<재료는 ‘◆ (S) 불타는 집념’입니다. 믹스 버튼을 누르면 되돌릴 수 없으니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두열은 두근대는 심정으로 믹스 버튼을 눌렀다.
두 스킬이 박스 안에서 회전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회전 목마가 돌아가는 것처럼 천천히 두 개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영화에서나 보던 블랙홀처럼 주위의 기운들을 잡아먹는 듯한 기분이 일 정도로 맹렬하게 회전을 하였다.
그리고!
펑!
<유니크 골드 ‘◆ (S) 날카로운 손톱 Ⅱ’를 획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대기중 (S) 날카로운 손톱 Ⅱ : 회전수 능력이 4% + 집중력 1% 상승합니다.
읔. 이런 건가···.
분명히 좋은 능력이었다.
‘S’ 등급임에도 ‘L’ 등급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인 상승 수치는 낮았지만 특정 능력이 강하게 설계 되었기에 더 좋을 때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을 원해서 섞은 게 아니었다.
특히 제구력 수치가 낮은 나로서는 이 능력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다시 섞는 걸 선택하였다.
이번엔 제발!
두열은 다시 베이스가 될 스킬과 재료가 될 스킬을 박스 안에 넣었다.
<베이스는 ‘◆ (S) 날카로운 손톱 Ⅱ’입니다.>
<재료는 ‘◆ (S) 불타는 집념’입니다.>
잠시간의 회전 시간이 듣기 싫은 교수의 강의 시간과도 같이 길게 느껴졌다.
학점을 잘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골랐던 강의였는데.
교수님의 음성은 심리학자의 마취 마법과도 같았고, 시간은 차원이 다른 세계의 시계처럼 천천히 흘렀다.
‘내가 미쳤지. 비싼 등록금 내고 이런 강의를 듣고 있으니···.’
누굴 원망하랴, 다 자신의 선택인 것을.
그랬던 지루함처럼 지금의 시간도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감정은 달랐다.
남들 다 쉬는 겨울 시즌에 공부를 해보겠다고 학점 은행제에 등록을 하고 겨울 시즌 강의를 들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때는 공부에 대한 열망이 강했지만, 기본 지식이 달려 지루하게만 느껴졌다면.
지금은 기다리는 게 지루한 게 아니고 무엇이 나올까 너무 궁금하다 보니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지루할 정도로 기대했던 마음이 강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펑!
<레전드 ‘◆ (L) 날카로운 손톱 Ⅱ’를 획득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콩글레츄~ 레이션~ 콩글레츄~ 레이션~!>
<쿵! 짝! 쿵~짝! 쿵 짜라 쿵! 짝!>
【선수 정보】 ★x10 ☆x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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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프 능력 ◆
– 사용중 (L) 정교한 손놀림 : 제구력, 무브먼트 능력이 3% 상승합니다.
– 대기중 (L) 날카로운 손톱 Ⅱ : 회전수 능력이 5% + 집중력 2% 상승합니다.
☞ 버프 능력은 하나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버프 교체 시 일주일 동안 재교체가 되지 않습니다.
– 대기중 (∞) ◈ 매직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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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억! 대박!”
소란스럽고 휘황찬란한 음악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눈을 현혹시키는 강한 이펙트의 폭죽이 연달아 터졌다.
하지만 두열은 새로운 기술에만 눈이 꽂혀 있었다.
“오~ 예!”
쿵. 짝! 쿵. 짝! 쿵짜라~ 쿵.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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