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와일드카드 결정 2차전 (1)
“야! 일마들아! 정신 안 차리나? 이게 몇 년만의 가을 야군지 아나?”
“얌마야. 그마해라. 너는 왜 야구장에만 오면 이리 미치는 건데?”
“내가 뭐? 절마들이 대충대충 하니끼니 그란 거지.”
“응원이나 해라.”
“그랄까? 응? 저! 저 시끼 봐라! 내가 이러니 이렇게 안 흥분 할 수 있나? 야~이~ 쉐뀌야! 똑바로 좀 해라! 니 어제 술 처먹고 카드 칬나? 눈 봐라. 씨~뻘게 가지고, 그런 정신 상태로 공이 보이나?”
“스윙! 스트라잌 아웃!”
“봐라, 봐라. 내 저럴 줄 알았다. 야~이~ 개자슥아. 어? 뭘 꼬나보는데?”
“아~, 진짜 내가 니 땜시 챙피해 죽겠다.”
이제 1회 말이 막 끝났을 뿐인데 관중들의 성화는 산 정상에서 시뻘겋게 나부끼고 있었다.
단 한 명의 관중만 저렇게 나부댄다면 정말 나댄다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저런 행위를 막는 사람이 극소수고 대부분은 다 저렇게 악을 쓰고, 욕은 대화를 꾸며주는 하나의 감탄사로 쓰일 뿐이다.
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어제 경기도 초반에는 경기를 잘 끌어가다 4회부터 제1선발인 김종현 선배가 난타를 당하는 바람에 답답한 경기를 진행하며 관중들의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었다.
4회에 1점을 뺏긴 종현 선배는 1사 1루의 위기에서 자진 교체를 요청을 하였고,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최고의 선수이기에 감독님은 선배를 설득하여 선발의 자존심인 5회까지는 투구를 이어가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공에 힘을 전달하는 중지가 까지며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투수의 바람대로 부랴부랴 선수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단기전 승부에선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상책이며 절대 봐주는 것이 없다.
승부에서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생사가 오가는 칼질에서 군자의 모습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되레 상대를 우습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될 수도 있기에, 프로의 세계에선 단시간 내 최선을 다해 상대의 목줄을 끊어주는 것이 예의라면 예의다.
“아, 클났네.”
“왜?”
“이거 잘못하면 형님까지 몸 풀어야겠는데요?”
“내가?”
“저 불펜 가래요.”
“누가? 감독님이?”
“투수 코치님이 그러셨는데, 감독님이 지시하셨겠죠.”
“너 어제도 올라갔잖아? 저번 주에 4일이나 등판했고.”
“그러니까요. 어깨가 뻐근해 죽겠는데, 휴···.”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 드려. 그러다 고장 나면 어쩌려고 그래? 올해만 야구할 거야?”
“코치님 째려보네. 고마워요, 형. 아프면 얘기할게요.”
모든 프로 구단들이 시즌 막바지에 이르면 이렇게 투수 난에 허덕인다.
뒤쪽에 처진 팀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중상위권 팀들은 오히려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아무리 엔트리가 늘어난다고 해도 이길 시합에 내보낼 투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날도 4회에 선발이 무너지자,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한 중계 투수가 허겁지겁 올라갔지만, 어깨도 예열되지 않은 투수가 삐걱거리는 머신으로 얼마나 좋은 공을 던지겠나? 당연히 폭투가 연속으로 이어졌고, 4회에만 무려 3명의 투수를 끌어다 쓰며 겨우 2실점으로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계와 로테이션에서 먼 선발 투수까지 등판시키며 꾸역꾸역 막아봤지만 결국 2실점을 더 내어주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다행히 8회에 2점을 쫓아가 희망의 불씨를 놓았고, 9회에는 무사 1, 2루 상황을 만들어, ‘빳따’ 하면 부산, 부산 하면 공격 야구의 선봉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승리를 가져올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히트-앤드-런 작전이 걸린 상태에서 제대로 된 땅볼 하나라도 날렸다면 1사에 주자는 2, 3루가 되는 상황이었고, 이후로 우익수 쪽으로 떨어지는 플라이볼이 나온다면 3루 주자는 당연히 테그-업으로 점수를 낼 수 있었고, 깊숙한 타구였다면 발이 빠른 2루 주자도 3루로 테그-업을 해서 기회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대포였던 타순은 공갈포로 변모를 하였고, 인필드 플라이만 두 번, 마지막에 가서야 외야로 날아가는 플라이를 날릴 수 있었다.
기차 간 후에 손 흔들어 봐야 뭐 하겠나? 주자는 3루를 찍지도 못했고, 3루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투아웃이었던 것을.
그렇게 무사의 찬스에서 치욕스런 삼자범퇴를 당했고, 선수들은 창피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성난 관중들은 페트병 등을 던지며 치솟은 화를 달래었다. 난입을 안 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특히 타자들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발기가 처진 방망이(배트!)만큼이나 그들의 어깨도 처질 대로 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풀리지 않은 몸을 이끌고 구원자로 나서, 상대의 공격을 어렵사리 막아내었던 투수들의 허탈감에 비할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가 오늘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후! 두열아.”
“네, 코치님.”
“어깨 좀 어떠냐?”
“어깨요? 흐음···.”
역시나 후배의 말대로 나 역시 마운드에 투입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았다.
“좀 뻐근하긴 합니다만, 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우리도 너를 올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혹시라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는 해둬. 후반에 올라갈 수 있으니까, 알았지?”
“알겠습니다.”
“미안하다.”
사실 코치님이 미안하다 말할 일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팀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최고의 리그라는 메이저리그마저도 플레이오프에 들어서면 총력전을 펼쳤다.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고 특별 관리를 받는 에이스도 2, 3일 안에 선발 등판을 하는 광경이 종종 목격되니, 어쩌면 투수들의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수의 몸은 선수 본인이 챙겨야 한다.
아무리 주위에서 챙겨주고 신경을 써준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관리함만 못하다.
“그런데 코치님.”
그런 의미에서 뒤돌아서던 코치님 발걸음을 붙잡았다.
“지금 상황이면··· 만약 우리가 오늘 경기에 이길 경우, 제가 준플레이오프에 선발로 나서는 상황이 올까요?”
“흠, 아무래도···. 우선 오늘 경기에만 집중하자. 응?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현재 팀 투수 상황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모든 투수들이 체력 저하와 자잘한 부상 등으로 고통스런 날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믿을맨’이었던 투수가 컨디션 난조로 난타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악재가 겹쳐 1선발이던 종현 선배와 3선발인 에일리는 작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진 상황.
그렇다면 남은 선발진은 오늘 공을 던지고 있는 2선발 쟈쉬 랜드불암, 5선발인 나밖에 남지 않는다. 물론 내 자리였던 4선발 자리를 시즌 막바지에 승계한 태웅이가 있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 큰 경기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로 남는다.
대충 결론을 내려보자면, 오늘 나나 태웅이가 짧은 1회를 구원 등판할 수 있다.
혹시라도 중계진이 와르르 무너진다면 둘 중 하나가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만약, 이 경우가 된다면 아마도 내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중요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큰 무대에서 어린 태웅이에게 그 무게를 짊어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우리 코칭스태프가 참 인간적이다.
에휴~. 이러나저러나 결국 오늘 경기에 이겼을 때에나 일어날 일들이니, 최선을 다할밖에.
******
[아! 이거 오늘 부산의 컨디션이 너무 저조해 보입니다. 벌써 4회말인데, 이제는 뭔가 보여줘야 할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부산 오우거즈의 경우, 와일드카드 티켓을 거머쥘 때만 해도 그 상승세가 더 이상 찌를 데가 없을 정도로 최고조를 이뤘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죠?]
[네. 그런데 막상 토너먼트에 들어서자마자 기세는 온데간데 없고, 저렇게 무력한 모습만 계속 보이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도 않고, 납득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6회라는 긴 시간이 남아있으니 원래의 부산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4회 초까지는 그래도 랜드불암 선수가 역투를 펼치며 다시 투수진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2실점을 하기는 했지만 수비들의 실책이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부산은 투수보다 타자들이 심각한 문제로 보입니다.]
[아! 또 아웃입니다.]
[저것 보세요. 1번 타자라 함은 어떻게든 진루를 해서 그 뒤 타자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그런데 1번 타자라는 선수가 공도 지켜보지 않고 초구에, 그것도 스트라이크 존에서 한참 벗어나는 공을 컨텍해서 땅볼 아웃이 된다는 게, 정말 말이 되지 않습니다.]
4회말 공격.
투수진도 문제지만, 정말 타자진들의 자세가 크게 잘못되어 보인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지금에라도 당장 선수들을 모아 꾸지람을 낼지도 모를 정도다.
그만큼 타자들은 본분을 잊고 귀신이 눈에 씌운 것마냥 동태눈이 되어 공이 바깥으로 세 개도 넘게 빠지는데, 그 볼들에 헛스윙을 남발하고 있으니 정말 할 말이 없다.
왕년에 4번 타자였던 내가 배트를 휘둘러도 저것보단 낫겠다.
“스윙~, 스트라잌 아웃!”
“아니 이게 왜 스트라이크입니까?”
“뭐야? 그럼 이게 스트라이크지, 금방 자네가 헛스윙한 공이 스트라이크인가?”
“뭐요?”
“뭐?”
“아 진짜 드러워서 못해먹겠네.”
“뭐? 더러워?”
“됐수다. 젠장, 한국 심판들이 다 그렇지 뭐.”
“뭐? 퇴! 퇴장~!”
“왜! 왜, 퇴장이에요? 할 말도 못해요?”
저, 저···. 잘한다.
결국 사단을 내고 말았다.
하···. 확실히 뭔가 씌웠다.
꽉 찬 공도 아니고 넉넉하게 들어온 공인데, 꼭 어필을 해도 저런 공에 어필을 한다.
아···. 미치겠네. 그냥 들어오기라도 하지. 저기에서 왜 대거리질이란 말인가.
아직 시합 초반인데 어떻게 해서든 참았어야지 퇴장까지 당했다.
진짜 눈 앞이 깜깜해진다.
어? 어라?
“당신도 퇴장!”
우와, 감독님 대박!
저분이 흥분하는 양반이 아닌데···.
망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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