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스프링 캠프 (9) – 한 따까리 (3)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법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기헌은 두열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기헌을 끌다시피 공원으로 데리고 나온 두열은 말을 하지 않았다.
퍽!
한 대.
퍽!
두 대.
퍽!
세 대.
딱 세 번의 주먹질로 윤기헌을 자리에 주저앉혔다.
사실 처음 주먹 한 방으로, 기헌은 전신의 힘을 놓은 상태였다.
복부를 갈라놓은 주먹은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다음 주먹이 다시 옆구리를 가격했다.
쓰러지려는 몸을 한 손으로 받쳐 들고 나머지 한 방마저 배에다 꽂아 넣었다.
기헌은 전기충격기에 공격을 당한 사람처럼 숨도 못 쉬고 경직이 되어 바닥에 몸을 누였다.
“선배. 선배가 원하던 게 이런 겁니까?”
“끄으으.”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신음뿐이었다.
“제가 지금 한 행동, 잘못하고 있다는 것, 잘 압니다.”
두열이 쓰러져 땅과 몸을 꽈배기처럼 비비적거리며 하나도 만들고 있는 기헌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꼽추처럼 몸을 웅크리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의 등어리를 두 번 팡팡 내리쳤다.
“쿨럭.”
“이제 숨 쉴 만하시죠?”
“크윽. 너 이 새···.”
고통을 당한 기헌의 입에선 아직도 욕설이 튀어나왔다.
다만 전보다 작았고, 그 안에 담겼던 살기도 사라진 상태였다.
후배에게 억울하게 맞은 선배로서 무의식 중에 내뱉은 푸념 같은 욕설이었다.
“선배는 욕하시면 안돼요.”
“뭐...?”
“다른 선배님들이나 제 후배들도 절 욕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제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요. 하지만 선배는 절 욕하시면 안됩니다.”
“뭔 개소리를···.”
두열이 기헌 앞에 무릎을 꿇어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이 천천히 기헌의 양 볼로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사랑하는 두 남자가 사랑 싸움 후에 화해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정말 친한 친구가 다툼 후에 서로에게 용서를 비는 장면으로도 비쳐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열의 이런 작은 움직임에도 기헌은 움찔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두열의 손이 기헌의 멱살을 잡아 제 얼굴 앞으로 이동을 시켰다.
눈과 눈의 거리가 10cm도 차이 나지 않게 가까워졌다.
두열은 기헌을 무심하게 바라봤고, 기헌은 움츠러든 어깨를 펴지 못했다.
“선배가 하신 행동을 생각하셔야죠.”
“내··· 내가 뭐?”
“선배는 윗 선배들께 안하무인격으로 행동을 하시면서 당하실 때는 기분이 나쁘신가 봅니다.”
기헌도 자기가 한 행동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변명을 할 수 없었다.
“정민 선배 어떤 분이신지 알지 않습니까?”
“···.”
“선배 이적하고 자리 못 잡으실 때 가장 앞장 서서 다독거려 주시고 다른 후배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자리도 여러 번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알아! 나도 알아.”
“차라리 처음부터 저한테 주먹질을 하셨다면 지금처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
두열이 한숨을 푹 내쉰 후 자신도 지헌처럼 바닥에 철푸덕 몸을 기댔다.
“기헌 선배 작년이나 올해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 잘 압니다. 강한 성격 때문에 동료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고, 후배들마저 선배를 피하니 기분이 나쁘고 괘씸하게 생각하시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선배 입버릇처럼, 위아래는 지키셔야죠.”
“손 한 번”
“손 한 번 쳐낸 걸 너무 심하게 확대 해석 한다고요? 그건 아니죠. 꼭 주먹질이 오가야 폭력이 아닙니다. 한 번 쳐내는 손길이 어떤 느낌이었느냐, 한 번 내뱉은 욕질이 상대의 심정을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한 번 던진 눈길이 어떤 모욕감을 심어줬느냐. 이런 거 생각 안 해 보셨어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저 올해 우승하고 싶습니다.”
뜬금없이 뭔 말이지?
“우승하려면 팀의 사기가 높아야 합니다. 팀웤이 전보다 좋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일치단결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걸 깨트리려고 하네요.”
“나 말이냐?”
기헌도 이제 자포자기 상태가 된 듯했다.
숨이 쉴 만해지니 맞기 전보다 숨 쉬기가 더 편한 느낌이었다.
겨울 내내 술집과 도박장 등 가지 말라는 곳만 찾아서 다녔다.
하지만 한 해 동안 쌓인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미친 듯이 공을 던졌다.
그런데 공을 던지면 던질수록 공끝이 말라갔다.
열심히 논을 일구는데 비가 오지 않아 농작물이 말라비틀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쓰렸다.
그래도 던졌다.
언젠간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던지고 또 던졌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시큰거리는 어깨와 갈갈이 찢어진 가슴뿐이었다.
친한 친구라도 만나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개차반 같이 했던 행동들 때문에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가족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그래도 가족에겐 가장 큰 기둥이니, 집안의 기둥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순 없다고 생각했다.
망가진 어깨를 감추고 스프링 캠프에 합류를 하였다.
나보다는 가족이 우선이고, 나보다는 팀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그래서 보복구를 던지고 난 뒤에도, 그 공을 맞은 선배에게는 죄송했지만, 더 뻔뻔하고 더럽게 행동을 했다.
그래야 팀의 사기가 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를 희생하며 산다고 생각을 했다.
언젠가 돌아오는 게 있겠지.
언젠가 내가 한 희생이, 보상으로 돌아오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추위의 멸시뿐이었다.
아무리 다른 팀이라지만 몇 다리 건너면 거의 직속의 선배들인데, 위아래도 모르는 놈이 싸가지 없이 행동을 한다고 비판을 받았다.
아니다. 난 팀을 위해 한 행동이다.
선후배 사이가 아무리 중요해도 팀과 팀으로 만날 땐 팀의 승리와 기세가 우선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오는 비난을 묵묵히 감내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같은 팀의 동료들마저 그런 눈빛을 보냈다.
조롱하는 눈빛.
‘저따위 게 같은 팀이라니.’ 하는 생각들이 귓가를 울렸다.
관중과 팬, 다른 팀이나 야구 관계자들이 퍼붓는 욕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동료들의 그런 눈빛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너무 슬펐고, 쩍쩍 갈라졌던 내 땅을 향해 오줌을 내갈기는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우리’ 안의 ‘나’는 사라졌다.
몇 년을 고생을 하여 어렵게 아홉 고비를 넘긴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매년 고생을 하면서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었다.
동료가 된 후 그가 하는 행실을 보고 정말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 녀석은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동료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범생이처럼 싹싹하고 때로는 간사할 정도로 몸을 숙이며 손을 비비고, 또 어떤 때는 누구보다 무서운 사람이 되어 분위기를 끌어가는 친구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한 팀에서 6년간 몸을 담았으니 한 명의 선배로 대우를 받는 느낌이었다.
친해지고 싶었지만, 날이 갈수록 쏟아지는 비난에 성격이 조금씩 이상해졌다.
그래서 그를 포함한 동료들과 담을 쳤다.
우리였는데 이제는 담을 사이에 둔 남이 된 것이다.
우승의 문턱은커녕 그 앞 대문에서 팀의 가을 야구가 좌절됐었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도 빛이 났다.
패배자가 빛나기란 쉬운 일이 아닌 법이다.
그런데도 유독이 그만은 빛을 내고 있었다.
나도 그와 같이 빛을 내고 싶었다.
이 바닥에 그보다 십 년을 넘게 뒹굴고 있었고, 흘린 땀도 그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다.
그를 좋아하던 마음에서 ‘시샘’이란 녀석이 싹을 틔웠다.
아주 작은 불꽃이었는데, 그 녀석이 겨울을 보내며 활화산처럼 몸통을 불렸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제는 원망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하면 왜 욕을 먹어야 하는가?
왜 쟤는 빛을 내는가?
나도 할 만큼 했는데.
나도 빛나고 싶은데.
다시···.
다시 우리가 되고 싶은데···.
“흑.”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던 기헌 선배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으허허헉.”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그가 우니, 나도 모르게, 나도 울고 있었다.
그가 보낸 시간이, 내가 보낸 시간만큼이나 서럽게 느껴졌다.
“크흑.”
“우아아아!”
두 명의 남자가 끌어안고 오열을 터트렸다.
- 작가의말
본문의 ‘추위’는 ‘주위’의 오타가 맞습니다. 글을 쓰고 최소 세 번 이상 오타 등의 정리를 하는데 해당 단어가 보이더군요.
그런데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멸시를 당하는 시선을 느껴지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마음이 손상 당하고 추워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 ‘추위의 멸시’는 얼마나 마음을 시리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타였던 해당 단어를 그냥 채용했습니다.
이에 의미를 담아 사용하였음을 사전에 말씀드립니다.
곧 21시 정기 연재가 연속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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