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시즌 제06시리즈 – vs 창원 (2) 웃으며 겨자 먹기.
4회 초. 6번 타자부터 이어진 하위 타선을 맞아 행운의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두열의 강속구는 속도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무기였다.
너클볼에 초점을 맞추고 임한 시합이었는데 투수가 그것을 틀어버렸으니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직은 준비가 안 되었던지 두열은 잔루를 남기며 이닝을 종료시켰다.
투구수는 열두 개.
4회 말의 공격에서 부산은 오랜만에 힘을 집중하며 3점의 점수를 내었다.
스코어는 2 : 3. 한 점의 리드를 가지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점수 차였지만 두열은 한층 가벼워진 어깨로 마운드를 오르고 있었다.
‘4회까지 투구수가 76개라···. 손가락 상태도 안 좋고. 맞춰 잡아야 하나?’
오랜만에 투구수 관리에 실패한 두열이었다.
이번 5회까지는 무리 없이 방어를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이닝을 끌고 가려면 맞춰 잡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수 차는 단 1점 차.
어쩌지?
선택의 신이 항상 따라다니며 사람을 약 올리는 듯하다.
오죽하면 개그맨 이위제의 ‘그래! 결정했냐?’라는 프로그램이 다 나오고, ‘선택 장애’, ‘결정 장애’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런 면에서 두열은 약간 심플한 타입이었다.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입에 달며 약간은 무데뽀(일본어)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그였다.
‘불펜 상황이 나쁜 건 아니니까 최소한 6회까지는 막아 보자.’
두열은 맞춰 잡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5회의 첫 번째 타자로 들어서는 1번 상욱을 맞이하였다.
‘이제 너클을 버렸다는 걸 대충 눈치 챘을 거야. 그렇다면 초구는 간을 보자.’
투구수가 많아 헛되이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라락~ 후웅!
“스트라이크!”
‘역시 빠지는 공에도 손이 나오는구나. 좋아 그렇다면.’
‘아깝다! 별거 없는 슬라이더였는데···. 직구랑 구분하기는 더럽게 어렵네.’
이전 시합과 같이 무서운 두열이었다면 스윙을 참으며 강판을 기다렸을 창원의 타자들이 작전을 바꿨다.
오늘의 두열은 무섭지가 않았다. 그가 던진 공은 충분히 공략할 만했다.
며칠을 푹 쉰 불펜 투수가 나오기 전에 선발을 공략하는 게 유리한 상황이 된 것이다.
[아! 제2구는 체인지업인가요?]
[네, 서클 체인지업이었네요. 구속이 워낙 좋은 투수다 보니 타자들이 공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확실히 수 싸움을 하는 게 재밌어.
너클도 좋은 무기지만, 이런 내 능력을 감퇴시킬 필욘 없지.
자, 다음은 무엇으로 던질까?
만호의 사인을 한참 받던 두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원하던 구종과 코스가 나온 것이다.
[투수 공 던집니다. 오오! 스윙 스트라잌 아웃입니다. 인코스에 꽉 찬 높은 속구에 타자가 아웃을 당합니다. 마두열 선수 다시 컨디션이 좋아진 걸까요?]
[그게 좀 이상합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분명히 3회까지는 너클볼을 베이스로 해서 다른 구종을 섞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4회부터는 너클을 버린 것처럼 볼 배합을 하고 있습니다.]
[아, 오늘은 너클볼 움직임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아,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럽지? 누가 또 내 욕 하나?’
두열은 간지러운 귀를 손가락으로 후볐다가 다시 그 손가락에 침을 묻혔다.
원래 손가락에 이물질을 묻히면 반칙이었지만, 다시 닦아내면 모르는 척 해주는 게 관례였다.
‘뭔 맛이야? 아! 귀 팠지? 에이···.’
[화면에 잡힌 마두열 선수의 표정을 보면 아무래도 오늘 구질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삼진을 잡고도 인상을 쓰는 걸 보면···.]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해설자들 졸았냐? 개미핥기처럼 지 귀 파먹고 맛 없어서 저런 거잖아! 에이, 해설 수준하고는. 회전수가 전보다 안 나오는 거 보면 몰라? 손가락에 이상 있는 거잖아! 감독은 뭐해? 선수 안 바꿔 주고?
L 너클마 : 응? 네가 왠일이냐? 두열이 형 걱정을 다 해주고? 설마, 저번에 두열이 형이 네 얘기해서 이제 변한 거야? 사랑하는 사이가 된 거야? 응? 응?
L 국9마(국민9승마두열) : 꺼져!
L 너클마 : 그 말도 두열 형이 자주 쓰는 말인데···. 그리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이리 와. 내 옆에 따뜻한 자리 내어 줄게. 같이 응원하자. 응?
L 국9마(국민9승마두열) : 변태냐? 꺼져!
[2번 타자 지성훈 선수가 한참 동안 코치와 이야기를 주고 받다 타석에 들어섭니다.]
‘그러니까 서클 체인지업을 노리란 말이지?’
‘아니, 창원은 코치가 도대체 몇 명이야? 선수 한 명당 코치 한 명은 돼 보이네···. 그런데 무슨 말을 했을까? 너클은 오지 않을 테니 직구를 노리라고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서클? 흐음···. 그렇다면.’
잠시 생각에 잠겼던 두열의 손끝에서 공이 붕 떴다.
평소보다 높아 보이는 공의 위치.
타자는 그것을 보는 순간 그 공이 커브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른 구종에 비해 무브먼트가 좋지 않아 두열이 자주 던지지 않는 구종.
처음부터 노린 공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공략을 할 수 있는 공이었다.
그래서 성훈은 타이밍을 늦추며 떨어지는 공에 방망이를 갖다 대었다.
[안타! 안타입니다. 유격수 옆을 스치는 깔끔한 안타입니다.]
‘칫! 역시 초구 커브는 무린가? 으휴, 이것도 연습 좀 해야겠어. 아이, 피해가고 싶은 선배가 또 나오네···. 아니지. 메이저 가면 저 선배 같은 선수는 수두룩할 거 아냐?’
‘저 자식은 나만 보면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하는 거야? 혹시 내가 무서워서? 흐흐흐. 그런가?’
‘저 형님 1회에는 홈런을 치고 3회에는 2루타를 쳐서 전보다는 스윙이 커질 공산이 커. 커브는 던질 타이밍이 아니고, 오호 그렇지! 역시 만호 형님.’
두열은 만호의 사인을 보며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1루로 견제를 하였지만, 다시 투구 폼을 잡으며 전의 사인대로 공을 던졌다.
‘저 자식은 내가 좋아하는 코스로···. 어?’
후웅~!
“스트라잌!”
‘젠장, 이놈의 서클 체인지업은 어째 직구랑 구분이 안 가네.’
만호는 두열의 상태가 짐작되었다.
평소라면 머리가 좋은 두열에게 선택 권한을 주었겠지만, 오늘처럼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엔 무리수를 잘 두는 게 두열이었다.
그래서 만호가 사인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왔고, 두열도 그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까다로운 타자인 상범에게는 완전히 벗어나는 공을 줘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초구는 그가 좋아하던 몸 쪽 서클 체인지업.
작년이었다면 구속 차이 때문에 상범이 속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올해의 두열은 그 차이를 거의 없앴다.
아무리 동체 시력이 좋은 타자라지만 코 앞에서 감속이 되는 구질까지 대응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눈에 가까운 공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멀리.’
두열도 만호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심전심이라고 만호와는 통하는 게 많은 그였다.
[아! 두 번째 공에도 헛스윙을 합니다.]
‘칫! 이번에는 투심이냐? 코스도 좋고. 저놈이 이렇게 컨트롤이 좋은 녀석은 아니었는데?’
상범이 타석을 벗어나며 심판에게 물었다.
“구심님 혹시 코스에 들어왔나요?”
“아니, 아슬하게 걸치려다가 빠졌어.”
“감사합니다.”
‘역시, 오늘 구질은 그닥인데, 제구는 되는 모양이야? 빠져나가는 게 좀 밋밋했지만 코스가 좋았어. 자식! 승부할 맛 나는데?’
두열을 칭찬하던 상범과는 달리.
‘휴···. 클 날 뻔했네. 공 두 개를 뺀다는 게 존으로 들어갈 뻔했네.’
‘야! 마두열! 정신 차려. 이번에 또 안타 맞을 뻔했잖아!’
만호가 두열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수신호를 보냈고, 두열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3구가 날아올랐다.
역시 바깥쪽 코스. 이전과 비슷한 구속과 구질로 보였다.
‘이놈아! 내가 한두 번 속아? 서클이지?’
휘롱롱~ 탁!
[안타! 안타입니다. 3루수 다이빙을 하며 캐치! 아! 아깝습니다. 공을 흘리고 맙니다.]
굉장히 잘 맞은 타구였지만 3루수의 그림 같은 수비에 단타로 그치고 말았다.
글러브로 공을 막지 않았다면 발이 빠른 1번 타자가 홈까지 치고 들어올 수 있는 절묘한 코스의 타구였다.
‘어우~ 열 받아. 스트라이크도 아니었는데, 그걸 밀어 치네. 무슨 오락실에서 봤던 0.499 캐릭터도 아니고, 뭘 저렇게 잘 쳐?’
두열의 투덜거림처럼 상범이 치기는 기똥차게 잘 쳤다.
순간적으로 발목 높이까지 하락하는 공을 다운 스윙으로 바꾸며 결대로 밀어 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꼭 스프링캠프에서 만났던 헐크처럼 두열에 대한 대항마로 자리매김하는 느낌이었다.
겨우 역전을 시켜놨는데, 바로 위기에 맞은 두열이었다.
5회 1사, 주자는 1, 2루.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샤비였다.
이에 만호가 마운드를 향하였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어떻게? 쟤 거를까?”
“에이, 안 되죠. 우리 세계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못 먹어도 고죠.”
“그래도···”
“다음 타자는 만만해요?”
“하긴···.”
“형님, 오늘 제 공이 좀 구리지만 그래도 저 믿어주셔야죠. 형이 안 믿으면 누가 절 믿어줘요?”
“알았어, 임마! 주둥이는 왜 툭 내밀고 난리야?”
더 자세한 대화를 나누고 싶던 만호였지만 구심의 눈총에 마운드를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호에 뒤통수에 두열이 소릴 질렀다.
“암 것도 걱정을 마세요~! 나만 믿어부러~!”
상대팀도 다 들을 수 있는 음성.
이건 하나의 도발이었다.
“저 자식이 미쳤나?”
창원의 선수들 모두가 희번득거리는 눈빛으로 두열을 노려 보는 순간.
“왓?”
타석에 든 4번 샤비만이 뭔 말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만호는.
“너 멋지대.”
“오우~ 땡큐~.”
기분이 좋은 샤비는 하얀 이를 들어내며 두열에게 감사의 손짓을 하였다.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코미디냐? 좋단다.
‘킥킥킥. 순진한 턱수염 흑형 한 번 잡아 볼까~?’
- 작가의말
이번 시리즈를 쓰며, 다음 글에 대한 아이디어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이 ‘야구의 탑’이 언제 끝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글은 무조건 성인물입니다···.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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