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스프링 캠프 (21) – vs 프라잉피쉬스 (10) 집단 멘붕!
구심은 깊은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앙? 이게 스트라이크야? 아니면 볼이야?
분명히 들어온 것 같기는 한데? 포구 위치를 보면 전혀 엉뚱한 데로 가 있고.
그렇다고 볼이라고 외치자니, 왠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고.
어어어···. 어떻게 하지?
“심판님?”
“어엉?”
“콜은?”
“스··· 스트···”
“스트라이크요?”
고든이 인상을 쓰며 구심에게 물음을 던졌다.
“보···”
“엥? 볼이라구요?”
“험!”
구심은 잠시 고개를 들고 먼 하늘을 보았다.
아아···. 살면서 이런 시련을 겪기도 하는구나.
참, 세상은 넓고 지랄 같은 공도 많다.
그래도 명색이 구심인데, 최고의 구심이 되려고 하는데.
어찌 세상은 나를 이렇게 힘들게 시험한단 말이냐!
구심은 갑자기 센티해지는 마음에 눈물이 찔끔 흘렸다.
“그러니까 뭐냐구요!”
다 고든의 목소리에 서리가 끼어있었다.
요놈 봐라?
“쓰뚜라잌!”
“엥?”
다 고든이 있는 대로 불만을 표시했지만 심판은 나 몰라라 딴청을 피우며 빨리 시합을 재개하자고 만호를 들볶았다.
두열은 홈 베이스에서 벌어지는 촌극을 보며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우캬캬. 심판이 헛갈려 하는 너클이라니! 이게 웬일이다냐!”
두열은 공을 받으면서도 영혼을 분리시켜 탈춤을 추고 있었다.
‘얼씨구나! 운수대통이로다~! 우쭈! 우쯔! 우쭈! 우쯔!’
반면에 다 고든은 독기를 품은 이무기가 되고 있었고, 만호는 믿기 힘든 공은 잡은 제 손만 바라보고 있었으며, 구심은 죄 없는 눈을 비비며 이번에는 정확한 판정을 내리리라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던져진 제2구.
아아···. 세 명은 또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머! 여기 옷이 참 이쁘네요.
어서 오세요 손님. 한 번 보여드릴까요?
아니에요. 다른 데 구경 좀 하고 잠시 후에 다시 올게요.
꼭 오세요, 손님~.
룰루~, 어머~! 이건 또 왜 이렇게 이뻐?
그녀는 오늘 하루 동대문 상가를 방문하여 들리지 않는 가게가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방문하였다.
정작 손에 든 건 하나도 없는 가벼운 몸이었지만, 발걸음만은 모두 내 물건인 것처럼 발랄하였다.
퐁!
다시 만호의 품 속으로 공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세 사람은 이게 공인지 쇼핑을 하러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던 처자인지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너 도대체 언제 물건 살래?
“이번에는 볼 맞죠?”
“아니지. 스트라잌이지.”
숨겨 두었던 돗자리를 펴고 곱게 빗었던 머리를 정성스럽게 밀어내고 품 속에 품었던 목탁을 꺼내 들었다.
탁탁탁탁타···.
아제아제바라아제···.
하늘이시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흑···. 이제 이것도 못해 먹겠네.
어무이~!
하지만 그는 세계 최고에 오를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심판이었다.
잠시 멘붕이 오긴 했지만, 그 짧은 명상의 시간에서 발랄하던 공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오! 제게 이런 깨우침을!’
구심은 하늘을 향해 성가를 부르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쑤뚜~! 라이꾸!”
“아! 또요? 볼이라니까요!”
“니가 심판이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왜? 연습 경기에서 퇴장 당하고 싶어?”
“에엣?”
천사 같던 구심의 마음이 들떠 악마과 천사, 불교와 기독교를 넘나드는 야누스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왜? 열 받아? 니가 심판 하던가?’
그의 속 마음이었다.
“아아···.”
이 소리는 불쌍한 다 고든의 음성이었다.
하지만 마운드에선 억양이 다른 이 소리를 두열이 같이 내뱉고 있었다.
‘아아~ 미치겠네. 저기 왜들 저래.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두열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정말 말로는 표현을 할 수 없는 공이었다.
단 한 단계의 차이였는데, 그 미세한 차이가 이런 큰 간격을 벌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한 단계와 버프의 궁합은 정말!
따봉~!
그러면서도 S급의 너클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그릴지 진짜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별이 모이는 대로 너클에 팍팍 꽂아 넣기로 다짐을 하였다.
커브?
오~ 좋은 구종이지.
근데 너 너클이랑 놀아 봤냐?
안 놀아 봤어?
안 놀아 봤으면 말을 말어.
얜 정말 미친 놈이야.
우캬캬캬.
그리고 걔가 내 친구거든~.
드디어 두열을 포함하며 네 명의 주요 인원이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정신은 나갔지만 투수는 공을 던졌고 포수는 공을 받았으며 타자는 침을 흘리면서도 배트를 휘둘렀고 구심은 매직아이를 하며 염불을 외고 있었다.
“스트라잌!”
투수는 얼이 나가 너클볼을 던졌다.
구심은 공도 제대로 보지 않고 콜을 외쳤다.
포수는 좋아서 미트 속에서 공을 찾았다.
타자는 침을 흘리면서도 함박 웃음을 보였고, 본능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포수 뭐해! 야이, 섀끼야! 뭐 하냐고!”
타자 주자가 1루에 도착을 할 동안 포수는 두리번거리며 왜 자기를 욕하냐고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더그아웃과 내야 선수들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뭐라고~ 뭐라고 욕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정신을 차려 뒤를 돌아 보았더니.
어? 공이 왜 두 개지?
만호는 서둘러 글러브 안에 있을 공을 찾아 보았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헉!”
만호는 이제야 번쩍 정신이 들어 공을 주어 들었다.
그리고 2루로 향할 발 빠른 고든을 잡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벌써 2루에 반쯤을 갔어야 할 고든이 1루에서 멍을 때리고 있었다.
“타임! 타임!”
황당하게도 1루심이 타임을 외쳤다.
그가 보기엔 투수, 포수, 1루의 고든, 더구나 경기를 지배해야 할 구심까지 모두 제 정신이 아니라 판단을 한 것이다.
******
어수선한 장내가 겨우 정리되었다.
구심은 선배였던 1루심에게 따귀까지 맞았다.
메이저리그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하지만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리라고 충격을 준 요법이었다.
확실히 세상을 오래 산 선배가 내린 처방은 효험이 있었다.
“너 괜찮겠어? 연습 시합인데 양해 구하고 내가 볼까?”
“아··· 아닙니다! 제가 잘 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믿어도 됩니까?”
“밉삽니다~!”
정상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은 대화였지만 우선 경기는 속개가 되었다.
9회 초 무사에 주자는 1루.
타석에는 2번 타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타자는 분위기로 보건대, 투수나 포수가 실수를 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였다.
우선은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면서 투수가 폭투를 하던지 포수가 공을 흘리던지 하는 기회를 얻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공격이었다.
누상의 주자를 2루로 보내야 했다.
연습 경기라 연장은 없으니 최소 동점으로라도 만들어서 체면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투 스트라이크까지는 타격 의지를 버렸다.
뒤에서 봐도 치기 힘든 공이었다.
차라리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모아놓고 다른 구종에 배트를 쓰는 것이 적당했다.
그리고 투수의 공이 들어왔다.
쓰아악! 꾸아앙!
‘오잉?’
“스뚜라이꾸!”
2번 타자의 예상을 뒤집고 강속구가 들어왔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두열은 다음 타자의 수를 알아채었다.
더군다나 아직도 희미한 정신 상태를 보이는 만호와 심판을 깨워야 했다.
그리고 7회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너클을 버려야 했다.
1루에는 발 빠른 고든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의 점수는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스뚜~ 스뚜~ 쓰뚜라이쿠 아웃!”
공 세 개를 전부다 속구로 던졌다.
2번 타자도 두 개 정도는 기다린다고 했지만, 3구에 들어온 강속구는 예측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스윙을 하지 못했다.
이건 마치 땅바닥을 가로지르는 제비와 같은 공이었다.
멍하니 서 있다 심판에게 쫓겨난 2번을 대신해 3번이 들어섰다.
하지만 3번도 곧 멍하니 서 있다 심판한테 쫓겨났다.
그리고 투 아웃, 그림 같은 상황에서 오늘의 무법자 헐크가 등장했다.
‘야비한 놈! 내가 왔다! 우하하하하!’
‘아~, 분위기 좋았는데 저놈이 물 다 흐리네.’
‘어때? 무섭지?’
헐크가 큰 소리를 낼 만했다.
오늘 두열에게 정상적인 안타를 뽑은 건 그와 스택튼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1홈런까지 기록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두열의 천적인 그의 등장이었다.
‘오늘 3타수 2안타, 그중 하나는 홈런. 더 이상 안타를 내줘선 안 된다. 코스가 좋으면 발 빠른 고든이 홈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다.’
‘난 어떤 투수의 공도 저 담장 너머로 날려 버릴 수가 있지. 하지만 이전 타석에 때린 공을 아직 잘 모르겠어. 좋아. 나도 욕심을 버리겠다. 안타 하나로 동점을 만들어 주마.’
‘멍청한 놈, 컨트럴이 안돼서 제대로 떠오르지 못한 공을 요행으로 엎어서 쳐 놓고 제대로 때렸다고 생각하는구만? 엎어 친 것도 모르는 놈한테 내가 질 수야 없지.’
둘은 잠시 불똥이 튀는 눈싸움으로 서로의 기선을 제압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대치가 길어지자 구심이 빨리 시작하라는 신호를 던졌다.
그에 맞춰 두열의 다리가 번쩍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투구 동작.
전보다 리듬이 좋은 미끄러지는 듯한 심플한 동작이었다.
고든은 상황을 봐서 뛰어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두열의 공은 귀를 찢어 놓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슈아앙! 빠바방!
헐크는 방망이를 내어놓지 못했다.
바깥쪽 11시 방향에 꽉 찬 스트라이크였다.
처음의 출발은 이전 타석에서 안타를 친 구질과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리듬으로 스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 공이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목을 활짝 편 코브라가 고개를 드는 것처럼 공이 솟아오른 것이다.
“스트라이크!”
“후!”
아이스 마법에 걸린 기사처럼 꼼짝할 수 없던 헐크의 입 속에서 단발마의 한숨이 터졌다.
스윙을 멈춘 게 아니었다.
기가 질릴 정도로 강력한 공에 스윙이 멈춰진 것이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왜? 제대로 된 공을 보니까, 짜릿해?’
투수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날름거리는 코브라의 혓바닥처럼, 저 야비한 놈의 혓바닥이 귓불을 핥았다.
소름이 돋았다.
그의 공에 소름이 돋았고, 그의 눈빛에 소름이 돋았으며, 그의 들리지 않는 음성에 소름이 돋았다.
헐크는 정신을 차리려고 타석을 벗어났다.
분명히 전 타석까지는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상대는 강속구를 던질 줄 알지만 가벼운 공이 분명했다.
그래서 너클볼을 장착한 도망자로 인식했다.
자신의 공을 믿지 못해, 더 강해 보이는 무기를 들고 희희낙락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지금의 공을 보니 그렇게 치부할 수가 없었다.
저놈은 사갈이다.
맹독을 지니고 있으며 이빨도 날카롭다.
한 번이라도 물리면 온몸이 썩고 살이 듬뿍 패어 나가는 독사였다.
진정한 베이스는 속구였던가?
“타자 타석으로!”
젠장!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좋아! 네가 사갈이라면 난 땅꾼이 되어 주마.
네놈을 잡아 독주를 담그리라!
헐크의 다짐이 두열에게도 전달되었다.
드디어 헐크는 찢어지지 않던 팬티까지 홀랑 찢어 버리며 각성을 하였다.
‘크오오!’
저놈! 지가 독물처럼 녹색인 건 모르는가?
좋아! 물어 주마! 바지는 가려라!
누구 독이 더 독한지 한 번 보자!
어우, 거기는 좀 가려라!
두열의 공이 다시 공간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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