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스프링 캠프 (12) – vs 프라잉피쉬스 (1) 작용과 반작용.
지금 몸을 풀기 시작하는 투수는 일본을 거쳐 미국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대만의 국보급 투수였다.
작년 부상으로 중반에 시즌 아웃을 당했던 그였다.
올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예정에 없던 연습 시합에 선발로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의외의 등판이었다.
“어? 쟤가 올라오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벌써 다 나았나?”
“공 들고 나오는 거 보니까 맞는 갑다.”
“아니. 쟤네는 무슨 연습 시합에 그것도 스프링 캠프에서 투 탑을 올린대요? 우리 팀은 형이 올라가는데?”
두열이 진운을 째려 보았다.
“아··· 맞다. 울 형님도 이제 에이스구낭. 어헝헝. 형 급이랑 맞네요.”
“꺼져.”
오늘의 상대는 마이애미 프라잉피쉬스였다.
몇 년 전부터 미국으로 스프링 캠프를 온 한국 팀들은 간간히 메이저리그 팀들과 연습 시합을 벌이곤 했다.
물론 상대가 거의 마이너리그 선수들로 배정이 되어 있다든지 선발에서 밀려난 2진급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든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의 팀들이 메이저리그 팀들과 어울릴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했다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우리를 포장하여 과장 광고를 하고 싶은 것인지 우리가 진짜 그만한 급으로 오른 것인지에 대해선 결론을 내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거들떠도 안 보던 우리와 연습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는 의미를 둘 만한 일이 분명하였다.
이 시합이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큰 돈을 들여 시합을 요청한 기 단장의 배팅이 첫 번째요.
그리고 마이애미의 주축 선수로 성장할 한 명의 선수에 간곡한 부탁이 없었다면 성사가 되지 않았을 시합이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경기를, 큰 돈을 받았다고 해서 립서비스처럼 거저 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계약 내용에는 한 명의 선발과 네 명의 주전이라는 단서가 붙었었지만, 마이애미는 거의 모든 주전을 벤치에 앉혀놓은 상태였다.
한 해의 시작인데,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형님, 파이팅!”
“닥쳐.”
두열은 옆에서 계속 귀찮게 하는 진운을 밀어내고 연습 마운드로 올라오는 만호를 맞았다.
“형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너 그거 던질 거라면서?”
“아무래도 던질 수 있을 때 많이 던져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 나 정말 못 잡겠던데.”
“그러니까 형님도 연습을 하셔야죠.”
“알지. 알긴 아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그리고 이것도 문제고.”
“아직도 글러브를 못 정한 거에요?”
“이거 솔직히 너무 커. 손에 익지가 않아서 글러브질이 잘 안 되는 걸 어떡하냐?”
“끄응. 문제네.”
너클볼 전용 글러브라는 게 있다.
너클볼은 움직임이 너무 지저분해서 이 글러브를 끼고도 잘 잡지 못하는 포수가 대다수다.
크기는 정규 포수 글러브에 비해 대략 1.3배 정도 큰 크기로 보였다.
크기가 큰 이유는 당연히 움직임을 예측하기 힘든 공을 넓은 범위에서 잡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크기가 큰 만큼 무거운 게 약점이었다.
무거운 무게 때문에 포수는 평소에 펼쳤던 글러브질 즉, 미트질 같은 컨트롤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가 되었다.
이것 외에도 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송구 동작에서 리듬이 깨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글러브 무게 조금 바뀐 것 갖고 너무 소란을 떤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평생 자신이 쓰던 무기에 손이 익을 대로 익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새로운 무기를 들고 싸우라고 한다면 버벅거릴 수밖에 없는 이치였다.
검법을 시연하던 검사에게 도를 쥐어주고 검법을 펼치라고 하면 정말 멋진 검법을 시연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균형점이 미묘하게 변해서 송구의 정확도까지 떨어지는 게 문제라니까?”
“아니면 그냥 형님 미트로 해 보는 것도 방법이죠. 메이저리그 보니까 그런 포수도 있는 것 같던데요?”
“그래. 우선 오늘 시합엔 그냥 내 걸로 받아 보고, 정 안되겠으면 다음 연습부터는 이걸로 하자. 오케이?”
“오케이.”
“자, 그럼 지랄 같은 공 한 번 받아 볼까?”
만호 형은 내 신무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나의 마니또이자 짝꿍이었다.
그가 아니면 나의 안방을 책임져 줄 사람은 없었다.
물론 다른 포수들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지만, 만호 형만큼 믿음이 가는 포수는 없는 게 사실이었다.
집 안이 편해야 나가서도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는 법이다.
형님이 저렇게 안방에 떡하니 자리를 잡아 주셔야 마음이 편한 나였다.
포수는 모든 능력이 다 중요하지만, 투수인 내 입장에선 나를 가장 안정시켜 주는 포수가 가장 좋은 포수였다.
그런데 표정 좀 푸시지.
안정이 되려다가도 불안해지네.
킥킥. 아니지. 내 공의 움직임이 좋아서 그런 건가?
에헤헤. 나 좀 짱인 듯!
“던져!”
“네.”
겨울 내내 다듬었던 신무기.
다른 선수들이 보는 곳에선 사용을 자제하였던 너클볼을 드디어 꺼내 들었다.
에헴! 한 번 던져 볼까?
******
팀명, 마이애미 프라잉피쉬스.
미국 MLB 동부지구 네셔널리그 소속.
팀의 상징은 날치. 날개가 잠자리처럼 보이는 물고기.
최휘습 해설 위원이 한때 둥지를 틀었던 구단.
작년 좋은 성적을 내다가 신세대 에이스 ‘호세 에르난데스’의 불의의 사망으로 팀 성적이 곤두박질친 팀.
동료를 잃었던 슬픔과 아쉬움이 남았던 시즌을 이겨내기 위해 올해는 일찌감치 스프링캠프를 차린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바로 옆에 캠프를 차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합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더군다나 단판 승부가 아니라 3연전이었다.
“와, 구경하는 사람도 꽤 되네.”
그랬다.
아직 시즌이 한참 남은 시점.
야구를 하나의 축제로 여기는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때 이른 오늘의 경기가 꽤나 좋은 볼거리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에 어울리게 많은 관광객과 팬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들. 그리고 야구 관계자들도 사이사이에 껴서 올해 마이애미 프라잉피쉬스라는 팀의 향방을 가늠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나에게도 기회였다.
내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은 나로서는, ‘나’라는 투수를 알릴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한국에도 스카우터들이 곧잘 방문을 하지만, 난 사실 그들의 타깃은 아니었다.
그리고 올해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하더라도, 단 1년의 성적만을 놓고 포스팅 비용을 듬뿍 지불할 팀은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단장님께서 너의 미래를 열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셨다지만, 선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말씀대로 나를 쉽게 그리고 싸게 풀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대는 메이저리그 팀이다.
더구나 선발급 선수도 대폭 끼어있는 상황.
기자들이 좋은 기사를 하나만 써 준다면 이곳에서도 인지도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기자들은 대부분 한두 명의 스카우터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다.
오늘 좋은 성적과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면, 그들 중 한 명 정도는 나를 주의 깊게 관찰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합시다!”
“자, 한 번 나가 보실까?”
1루 파울 라인을 지나 마운드에 오른다.
이곳에 오를 땐 항상 긴장이 된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괴롭히는 친구들이 두려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던 성민이의 어깨처럼 내 어깨도 떨린다.
직장 상사에 혼날 게 두려워서 회사에 가기 싫어하던 친구처럼 나 역시 난타를 당해 울먹이며 내려오지는 않을까?
어느 날 문득 집, 회사를 반복하며 기계적으로 살게 된 어르신들처럼 기계적으로 무감각하게 공을 던지는 사람으로 남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불안감을 잔뜩 안은 채 오르는 길.
바로 지금 내가 올려다 보는 아주 작은 둔덕.
그곳이 바로 마운드다.
의미를 찾으려면 다시 올라야지.
잡념을 털고 작은 산을 힘겹게 오른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한 뼘의 높이에 더 높게 선 순간.
가지게 된 마음은 단 하나뿐.
오늘도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
내 친구, 내 지인, 그리고 보통 사람들처럼.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나에겐 그 장소가 마운드다.
“세 개!”
심판은 한국 심판과 미국 심판이 게임마다 번갈아 가며 진행을 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미국의 심판이었다.
우리가 1루 더그아웃의 말 공격. 홈 그라운드처럼 경기를 이끌어 가기로 했다.
반면 심판은 미국측 인물로 구성이 되어 있어, 누구의 홈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혼돈의 전장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되었다.
아무리 중립성을 띠고 있고, 한국 심판들보다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보다는 자국의 팀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신입들에게는 불리한 판정을 많이 주는 메이저리그 심판이 아니던가?
예측된 리스크는 처음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괜히 공 잘 던지고 흥분을 했다간 자멸의 길로 스스로 걷게 된다.
처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불리한 판정을 감안한 상태에서 대결을 펼쳐야 한다.
“플레이 볼!”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어떤 성격을 가졌든 대부분 싸늘해지고 차분해진다.
금방 전까지 동료들과 히히덕거리며 어깨를 들썩였지만, 이곳에 오른 순간 팀의 항해를 책임져야 하는 조타수가 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좋은 조타수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배를 움직여야 한다.
단 1도의 각도에도 차질을 빚어선 안 된다.
항시 집중하고 전심전력으로 내 일에 집중을 한다.
“두열이 너무 집중하는 거 아냐?”
“그러게, 좀 날카로워 보이지?”
“초구는 예정되어 있던 공으로 가는 거 아녔어? 왜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드디어 두열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초구가 나올 땐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다.
관중에 많은 야구장에서도 이때는 조용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람이 적은 이곳은 정말 침묵을 느낄 정도로 소음이 없었다.
두열에게 눈이 몰린다.
무대 위에서 모두의 시선을 뺏은 주연이 되어 율동에 들었다.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킥킹과 스트라이드가 뒤를 이었다.
예전보다 더 먼 보폭을 보여 주었다.
제 키보다 몇 십 센티미터는 더 앞으로 나간다.
마치 제자리 멀리 뛰기를 하는 것 같다.
왼발이 땅을 딛는다.
이어 왼팔이 구부러지면서 왼 가슴을 뒤로 밀어낸다.
허리의 탄력을 받은 가슴은 직각으로 고속 회전을 하고.
그 위에 얹혀졌던 오른 어깨가 그라인더가 되어 공기를 자른다.
다시 어깨는 팔꿈치는 데려온다.
다른 관절은 순차적으로 제 할 일을 한 일꾼의 모습을 보였지만.
팔꿈치만큼은 해적들에게 끌려온, 머리채를 잡힌 노예와 같았다.
나아가기 싫은데, 온몸에 억지로 끌려온 노예처럼 계속 뒤에 남기를 희망한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앞으로 나가기 싫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하지만, 어깨가 그를 향해 ‘썅간나. 반동분자!’라는 욕설을 내뱉는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더 이상 버텼다간 모든 인대가 끊어지고 고통의 죽음을 맛봐야 할 순간이 온다.
모든 걸 체념하고 반동을 이용하여 탈출을 노린다.
팔꿈치는 그렇게 몸을 벗어나 공간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위에 놓여있던 공이 주인의 의지를 담아 공간으로 던져진다.
두열의 투구 동작에서, 평상시와는 다른 한 가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손가락 두 개가 V자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슈웅~ 너풀너풀. 퐁!
“스트라이크!”
“뭐야? 너클볼이야?”
1번 타자인 다 고든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흔하지 않은 너클볼이 들어온 것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는데, 상대는 장난이 아니었다.
쿵짝! 쿵짝! 인생은 장난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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