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Prologue – 승부조작 : 최고의 약물 & 01. 만년 9승 투수 (1)
00. Prologue – 승부조작 : 최고의 약물
눈알이 뻑뻑하다. 눈가에서 느껴졌어야 할 촉촉함은 끈적한 본드와 같았고 그 위로 모래 한 바가지를 들이부은 것처럼 꺼끌꺼끌한 느낌은 눈꺼풀이 움직일 때마다 서걱거리며 가시질 않았다.
탁탁.
“주사 꾸욱~.”
“크윽······.”
다시 팔뚝으로 느껴지는 이질감. 차가운 얼음 송곳으로 뜨거워진 팔뚝을 난폭하게 찌르고 벌어진 틈 사이로 지렁이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지렁이는 제 몸을 불리며 기다란 선이 되어 꿈틀꿈틀 온몸을 기어 다닌다.
“아아······.”
“야이 새끼야. 그만 눠. 애 죽일 셈이야?”
“아~ 걱정을 마세요.”
“지금 애 상태가.”
“아따, 걱정도 팔자시네. 이 정도로 안 죽거든요?”
“그래도.”
“안 죽는다구요. 안 죽어요. 이 정도로 죽었을 거면 지금까지 실험한 애들 다 관 속에서 향 냄새 맡고 있었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차분히 계세요? 아셨어요?”
주사기를 들고 있던 남자는 주사기 속의 약물이 묶여 있던 남자의 몸 속으로 모두 사라지자 그제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그러고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동료의 어깨를 안심하라는 듯 툭툭 두드린다.
“진짜야. 안 죽어. 지금까지 맞았던 놈들 중에 이것보다 다섯 배는 더 맞은 놈들도 있다니까. 걱정하지마.”
“그래도 내일 시합 뛸 놈인데, 저 상태로 가능하겠어?”
“아따 시키. 걱정이 진짜 어마어마하구마이~. 걱정 붙들어 매시라니까요~.”
양 입꼬리가 귀로 승천한 주사기 남자는 뽕이라도 맞은 표정으로 기분 좋은 음성이다.
“나도 맞아 봤는데, 이거 진짜 끝내줘. 죽긴 죽지. 뿅가서 죽지. 키키.”
“내일 시합인데 정말 괜찮겠냐고.”
“아씨 진짜, 전생에 걱정에 파묻혀 죽었다 태어난 놈이냐? 괜찮다니까? 나도 그렇고, 저거 맞은 놈들도 다음 날이면, 좀 나른하긴 했지만, 어째든 다 팔팔하게 제 할 일 다 하고 다녔어.”
“우리 같은 놈들이랑 운동 선수랑 같아?”
“새캬. 나도 저거 맞고 다음 날 ‘탁탁탁’ 알지? 그거 열 번도 더 했어. 오히려 거기는 힘빨이 더 좋던데용~? 킥킥, 내가 만든 약이지만 이거 정말 끝내주는 거야. 흐흐흐. 이거 시장에 깔리기 시작하면 우리 이제, 이 짓거리 안 하고도 평생 먹고 살걸? 형만 믿어.”
그 말을 듣고서야, 옆 남자의 안색이 약간은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이름은 정했어?”
“뭐? 아하! 이거? 당연히 정했지~.”
“뭔데?”
“탑.”
“웬 탑?”
“전 세계에 팔아 젖힐, 대한민국에서 제조한 세계 최고의 약. 알지? 최고. 탑. 이름에 걸맞게 YC에 먼저 팔아볼까? 캬캬.”
눈알의 초점이 잡히질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떠드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커다란 확성기로 말을 하는 것처럼 굉음이 되어 계속해서 귓가를 울렸다.
“크으······.”
“새끼 좋은가 보네. 그러길래 새꺄 말로 할 때 알아먹으셨어야죠. 왜 나까지 이 사서 고생을 하게 만드세요. 이 씨 발라 먹을 님아~.”
“으으······.”
“됐구요~.”
뚜벅뚜벅. 짝!
한껏 웃던 주사기 남자가 돌변을 하여 의자에 묶여진 남자의 귀싸대기를 날린다. 그리고 귓불을 당겨 조용히 읊조린다.
“제안, 받아들이지 않은 건 너야. 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우리 사이에 이렇게까진 하지 않으려고 한 거, 너도 잘 알잖아? 키워주고, 먹여줘서 이 정도까지 만들어줬으면, 길 가던 인절미들도 말귀를 알아들었겠다. 이게 마지막 기회니까, 평생 약쟁이로 살기 싫음 하라는 대로 해. 알았어?”
“끄으으······.”
돌아오는 건 의식을 저 편으로 날려버린 한 남자의 공허한 신음 소리뿐이었다.
01. 만년 9승 투수 (1)
화창한 토요일 오후.
하늘에서 터지는 폭죽의 폭발음도 사직 구장을 찾은 관중들의 환호성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그 정도로 좀비화 된 그들의 음성은 열성적이고 한편으론 광적이었다.
[야구를 사랑하시는 전국의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정규 시즌의 마지막 경기를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될 캐스터 양용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해설 허구용입니다.]
캐스터와 해설자의 목소리가 팬들의 환호성을 배경 삼아 TV에 전파되었고, 더그아웃에선 몸을 푼 선수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하나둘 운동장을 향해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입장하는 선수들에게 열성을 넘어서 광신도가 된 갈매기 좀비들이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니들 오늘 지면 뒤진다! 알았나?”
선수들은 그들의 엄포에 머리카락은 모자를 일으킬 정도로 바짝 곤두섰고, 커다란 육체도 교육대 신병이라도 된 것처럼 움찔거리고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야, 임마야! 니가 왜 선발인대?”
운동장에 한 걸음을 내디디었을 뿐이건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한 선수를 향해 쏟아지는 욕설과 한숨은 지독할 정도였다. 입김만으로도 질식을 시킬 정도로 고약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안 그래도 움츠러든 그 선수의 어깨는 더욱 좁아지고 있었다.
“야! 이 시키야. 니 벌써 9승 했잖아? 미칬나?”
어깨가 좁아져 머리만해지던 마두열이 정말 미쳤는지 한순간 ‘흥’하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정신이 반쯤 나갔다 판단한 동료 포수는 장비를 매다 말고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으며 흥분했을 투수를 진정시켰다.
“괜찮지?”
하지만 그의 노력은 허무하게 아스러졌다.
“야이 개자슥들아. 둘이 사귀나? 그리고 니! 그래, 니! 오늘 지면 니 진짜 나한테 뒤진데이. 알았나? 이이~, 개자슥이 대답은 안 하고 뭘 꼬나 보는데?”
“그만 해라. 니가 보라매?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니 때문에 지면 니가 책임질 끼가?”
“아! 미치겠다. 감독도 미친 거 아이가? 왜 쟤를 내보내는대?”
[아..., 이게 웬일인가요? 오늘 경기가 정규 시즌의 마지막 경기인데다 포스트 시즌까지 걸려 있어서 예고와는 다르게 에이스 김종현 선수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었는데요.]
[그렇습니다. 로테이션상 5선발인 마두열 선수가 나올 차례인 것은 맞습니다만, 부상 소식이 있었고 감독도 1선발인 김종현 선수로 대체될 수 있음을 사전에 발표했기 때문에 당연히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김종현 선수의 선발을 예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로테이션 그대로 마두열 선수가 나오는군요.]
[상대 팀인 대전 호크스 측에서도 김종현 선수를 대비해 선수 배치를 한 것 같은데, 많이 난감할 것 같습니다.]
[하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김종현 선수는 올해 19승을 달성한 팀 에이스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투수입니다. 당연히 김종현 선수보다는 5선발인 마두열 선수가 상대하기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더군다나 김종현 선수는 20승, 그리고 마두열 선수는 10승에 도전할 수 있는 경기가 된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내년 메이저리그 입성이 확실시 되는 김종현 선수는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이 기회를 살리려 최선을 다할 겁니다.]
[확실히 19승과 20승은, 어감 자체가 꽤 다르네요.]
[그렇습니다. 아마도 김종현 선수가 나왔다면 그 투지가 다른 때와는 남달라서 더욱 상대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만년 9승 투수’라는 멍에를 가진 마두열 선수의 투지가 더 무서울 것 같은데요?]
[마두열 선수에게는 미안한 말입니다만, 괜히 ‘아홉투수’라는 별명이 생긴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마두열 선수는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자마자 시즌 9승을 올려 차세대 에이스로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어땠습니까? 올해를 포함한 여섯 번의 시즌에서 단 한 해도 안 쉬고 매해 9승만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8승도 없어요. 죄다 9승입니다.]
[캐스터인 제가 다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그래도 혹시······.]
[풋. 오죽하면 팬들이 9승을 하면 로테이션에서 빼라는 요청을 팀에 왜 했겠습니까?]
[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마운드에선 마지막 연습구를 던진 마두열이 남다른 표정으로 입장하는 타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플레이 볼!”
[자! 심판의 콜과 함께 1회 초가 시작됩니다.]
6년을 함께 한 포수 강만호는, 공을 되돌려 받은 마두열의 표정이 다른 날과는 사뭇 다르게 흐리멍덩하면서도 요상한 독기를 품고 있자, 그가 꼭 승리를 챙겨 그간의 오명을 모두 벗고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거듭나길 바라고 바랐다.
포수의 바람을 들었던 것일까?
“오늘. 꼭! 이긴다.”
9승을 이루고 예년과 같이 연속된 패배로 꺾일 것 같았던 그의 각오도 여느 날과는 다르게 완전히 딴판이 되어 있었다.
마치 새로운 탑을 세울 것처럼.
******
음침한 분위기가 가득한 한 건물의 지하실.
그곳엔 그런 분위기와는 상반된 최신식 장비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화면, 한쪽엔 서버룸처럼 꾸며진 장비실의 컴퓨터가 연신 기계음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을 마주하는 화려한 테이블.
그곳에는 침착한 표정과 미려한 외모를 가진 한 남자와 고릴라처럼 덩치가 크고 붉으락푸르락한 표정을 가진 한 남자가 폭신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면을 통해 마두열이 선발 투수가 되어 마운드에 오르자, 재벌 집 아들 같던 곱상 남이 긴장한 표정으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잘되겠지?”
꽈드득. 꽈드득.
“걱정은 그만 하시고 누룽지나 좀 드셔.”
“아휴,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아씨!”
남자의 낮은 으르렁거림은 사자의 하울링처럼 넓은 지하 공간을 울리게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곧 촐싹대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시작한다. 시작한다. 우리 두열이 뽜이링~!”
“미친 새끼.”
한 차례 욕설로 스트레스를 푼 남자는 친구의 촐싹대는 행동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본론으로 대화의 길을 틀었다.
“오늘 경기, 회장님께서 직접 오더를 내리신 건이야. 그리고 눈에 보이는 계약만 스무 장에 수주권 걸린 경기고.”
“근데?”
“이 경기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회장님께서······.”
“와~, 우리 나사장 겁 많데이~.”
“이익.”
“걱정 말라고. 아무리 큰 건이 뒤집어진다고, 행임이 우릴 어떻게 하실까 봐?”
“후······. 미치겠네.”
“미치지 마라.”
“이 자식이 정말!”
화가 난 남자가 제 덩치보다 두 배는 될 법한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아이고~ 숨 막히라~. 내 죽는데이~.”
“까대지마.”
곱상한 남성의 입에서 나올 만한 표현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자태에 빛깔이 고운 하얀 생크림 케이크에서 구린 낫또의 향기가 나는 격이랄까?
역겨운 냄새가 귀를 들쑤시자, 지금껏 엄살을 피우며 죽는 척만 하던 덩치도 얼굴을 구겼다.
“이 시바 님의 새끼가. 오냐오냐 해줬더니, 내가 만만해 보이나?”
주인들이 으르렁거리자 그 뒤를 지키던 부하들도 서로 편을 가르며 제 형님들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덩치의 음성이 다시 다소곳하게 변하였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책임질게. 책임지면 될 거 아이가?”
“후······.”
책임을 진다는 남자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곱상한 남자도 멱살을 놓으며 다시 의자로 몸을 기대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덩치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던져진 주사위야. 책임은 내가 질게. 그니까 결과나 지켜보자고. 애들아~ 뒤에서 폼 잡고 뭐하는데? 주잡들 그만 떨고 술이나 가온나.”
- 작가의말
1. 고구마 줄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승부 조작’과 관련된 내용은 초반부에만 등장을 하고, 이후로는 야구 스토리에 집중을 할 예정입니다.
2. 연재 요일과 시간은 월~금요일 21시를 기준으로 할 예정입니다. 다만, 금번 달에는 토, 일 휴재 없이 일일 연재로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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