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시즌 제21시리즈 – vs 서울 (4) 또 다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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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 A.
두열의 다리가 내려찍기를 하는 태권도 선수처럼 공간을 찼다.
마치 메이저에서 이름을 날린 박호박 선수의 초창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다리가 기울어지는 몸을 따라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그리고 쿵 소리를 내며 땅에 족적을 남겼다.
먼지가 피어올랐고, 그 충격에 투수의 몸 자체가 반동으로 튕기는 듯했다.
보통 발이 땅을 찍으면 허리가 돌며 다음 동작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두열의 몸은 아직도 앞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위치에 이르러서야 회전을 시작하였다.
멀리뛰기를 하는 선수처럼 발판을 한참 벗어났다.
반칙이 아니냐고 항의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투수는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허리가 돌아가고 충격이 가해진 허벅지는 부풀어올라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 힘을 고스란히 모았다.
그리고 끊어지려는 팔꿈치를 애써 외면하며 활처럼 공을 쏘았다.
후아아앙!
공이 날아가는 소리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타자는 투수가 공을 놓기 전부터 땅바닥을 박찼다.
스트라이드가 거의 없는 그도 두열의 기백을 느꼈다.
이번 공은 무조건 강속구였다.
투수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고, 공 안에 자신을 담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적장이 전장에서 군사를 물리고 일대일 한판 승부를 펼치자고 하였다.
여기서 피하면 장수 자리는 개나 줘야 할 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를 한 명의 어엿한 장수로 인정해 줬으니,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 줘야 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약쟁이라 욕을 하는데, 그는 날 떳떳한 한 명의 타자로 대우해 주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그렇다면!
제약의 앞발이 땅을 쿵 찍었다.
그의 발에서도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는 두열과는 다르게 상체를 뒤로 누였다.
허리는 돌아가는데 상체는 반대로 비스듬하게 눕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그의 오른팔이 나올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좋은 스윙을 하려면 오른 팔꿈치가 허리에 붙으며 자연스럽게 왼팔을 따라 나가야 했다.
그런데 상체가 뒤로 누워 공간이 부족해 보인 것이다.
하지만 허리가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살짝 생긴 그 틈으로 오른 팔꿈치가 자리를 잡았다.
투수가 던진 공이 벌써 앞으로 날아왔다.
타자는 마지막 용을 쓰며 배트를 뿌렸다.
공은 그런 타자의 배트 한참 밑을 통과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타자는 한 점 의심 없이 스윙을 마쳤다.
마치 그 공은 가라앉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그 공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쾅!
‘쳤···’
와자작!
스윙을 마친 타자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팔로우 스윙을 끝까지 가져갔다.
공은 좋은 각도를 유지하며 하늘을 갈랐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이상했다.
‘배트가 부러져?’
중심에 맞은 공은 배트를 부러트릴 수 없다는 게 중의였다.
분명히 공을 중심에 맞췄다.
그래서 공도 홈런이 되기 좋은 각도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손목에서 통증이 느껴지며 배트 목 부분이 부러져 버렸다.
타자는 재빨리 일어서며 1루를 향해 전력 질주를 하였다.
손에 들린 배트 손잡이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뛰는 데만 집중을 하였다.
사람들의 욕을 먹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했다.
불명예스런 과거를 씻기 위해선 단 한순간도 꾀를 부릴 수 없었다.
죄의 대가는 받았지만, 그 원죄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미친 듯이 달리고 달렸다.
발목에 묶인 죄를 떨쳐내려 달리는 것 같았다.
두열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어쩌면 타자와 같은 약쟁이였다.
밝혀진 것은 없으나, 남이 가지지 못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
가지게 된 동기는 자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능력으로 능력이 없는 자들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떳떳한 일은 아니라고 느끼는 그였다.
항상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이 능력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냥 그저 그런.
강속구를 가진 한 명의 투수로 남을 확률이 높았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런데 저 사람은 그 모든 걸 버렸다.
현명하지 못하나, 떳떳해 보인다.
달리는 제약을 보며 그의 속에서 꺼림칙한 마음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때 또 다른 마음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은 두열, 그 본연의 얼굴이었다.
‘무괴아심이라···. 모든 걸 버린다.’
무괴아심(無愧我心).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한다는 뜻.
그 의미와 같이 모든 기능을 버리겠다고 마음을 먹는 두열이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내 힘으로 올라서겠다.
그의 다짐이 죽어라 뛰고 있는 제약과 같아 보였다.
진짜 내 힘으로!
정상에 서고 싶다.
하지만!
<마두열 선수의 의지가 거부되었습니다.>
<버프 능력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뭐? 왜!’
<이 능력은 온전히 네 거거든.>
‘뭐?’
목소리가 여성의 것에서 남성의 것으로···.
마치 나의 목소리인 것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그리고 본연의 얼굴이었던 고개의 그림자에서 또 다른 얼굴이 그려졌다.
그림자였지만, 내 자신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거 내 거라고.>
‘뭐? 내 거라고?’
<그래. 네가 나고. 그리고 이 기능은 내가 만들었으니까, 네 것이기도 해.>
“아웃!”
정신분열을 일으켰던 두열의 귓속을 구심의 외침이 뚫어 놓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그였다.
좋은 타구로 보였던 공은 배트가 부러지며 힘을 얻지 못했고, 중견수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1루를 돌던 제약이 고개를 숙이며 아쉬워했다.
“야이~ 새끼야! 꼴 좋다!”
“그래! 이 약쟁이 새끼. 니가 잘 치면 반칙이지!”
“니네 엄마도 같이 약 하지?”
관중들이 키득거리는 비아냥으로 제약의 심장을 쿡쿡 찔렀다.
그는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욕해도 가족들의 욕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관중들에겐 그런 자비심이 없었다.
자신의 실수로 가족이 욕을 먹는 것 같아 울컥했다.
그래서 고개를 바짝 숙이고 마운드를 가로질러 3루측 더그아웃을 향했다.
그런 그의 옆에 두열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둘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제약이 좋은 승부였다고 방긋 웃어 줬다.
두열도 미소를 보이려 했지만, 입가에 맺히지가 않았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인사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두열의 반응이 싱겁자 제약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도를 높였다.
아직도 그를 향한 욕설은 끊임이 없었다.
팀 동료는 둘째 치고 적으로 만난 선수들이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지나치자 두열의 고개가 하늘을 향해 들려졌다.
‘내 것이라고? 이 말도 안 되는 능력이?’
<쟤 특이사항 잘 봐.>
▼ 4. 특이 사항
4. 약물의 장점들이 모두 흡수되었습니다. 이 흡수로 인해 체질이 바뀌고 전체적인 능력이 상승하였습니다.
<저래도 모두 버린 건가?>
‘하지만 그는 자신의 힘으로···’
<그래, 마음은 그렇겠지. 하지만 몸은 벌써 많은 걸 받아들였어. 그건 반칙일까? 아닐까?>
‘그래도 나는···’
<흥. 내가 너라니까? 내가 모를까? 그래 너 아니, 우리 본연의 힘으로 당당히 높이 서고 싶겠지. 그런데 그거 알아?>
‘···.’
<약물 먹는 애들이 한둘일까? 검사에 접촉 안 되는 약물이 한둘일까? 그런데 그런 걸 취한 애들이 모두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린 달나라에 가서 하라고 해. 아무리 약물을 처먹고 지랄을 해도 안 될 놈들은 안 돼. 즉, 기본 바탕이 되야 할 수 있는 거야.>
‘그래도 난!’
<그래, 그래. 뭔 말인지 알아. 그런데 너, 벌써 흡수된 능력치들은 어떻게 할래? 없앨 수 있어?>
두열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스텟은 둘째 치고 버프 자체가 슬롯에서 꺼내지지도 않았다.
우연치 않게, 원치 않는 상황에서 힘을 얻었고.
그것으로 능력을 만개시켰다.
지금의 마음이라면 이런 능력이 없어도 충분히 메이저를 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억울했다.
차라리 처음으로 되돌려 놓고 싶었다.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제약을 보자 그 마음이 흔들렸다.
내 힘으로 하고 싶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괜히 현실 회피 하지마. 요즘 정신 좀 차린 것 같더니 왜 또 지랄이야?>
그림자의 내가 욕설을 퍼부었다.
나약하고 원리 원칙에 집착을 한다 손가락질을 했다.
<좋은 부모님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도 복이고, 잘 사는 애인 생겨서 남 부럽지 않게 돈 쓰는 것도 제 복이다. 50조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하루에 130억 원을 번다는 만수루는 지 능력으로 살아가는 거냐?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많은 사람 중에 자신 본연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데? 만약 네가 네 새로운 능력을 나쁜 것으로 치부한다면 세상의 반 이상은 너와 같은 생각을 해야 할 걸?>
‘흥! 개소리. 궤변이 튼실하구나.’
<궤변? 흥! 그럼 무공 때문에 능력 생기고, 보약 먹고 능력 생기고, 평생 노력했다고 이미지 시뮬레이션 생기고 하는 건 정상이냐?>
‘아니, 그건 아니지.’
<아! 너 정말 답답해 죽겠다. 아우 된장할 놈.>
‘그래도 난 정정당당하게···’
<정정당당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그나저나 너 누구냐?’
<병신아, 내가 너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가 여기에서 중지되었다.
두열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왠지 거울을 보고 서로가 삿대질을 하며 욕을 하는 기분이었다.
좀 더 차분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비집고 옛 기억이 떠올랐다.
졸업 후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함께 했던 기억.
그날 우리는 초능력자라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었다.
- 작가의말
근래 문제가 된 실제 상황을 비추어 죄에 대한 생각을 글에 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줄로 추가하려던 글이 본래의 스토리에서 한참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스토리 라인이 전체적으로 또 틀어져 버렸습니다.
아쉽게도 써 놨던 글이 모조리 작살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단호한 결단을 만들고 싶었으나.
제 자신이 가진 성정 때문인지 답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사이다를 원하는 독자님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오나, 글을 쓰는 제 자체가 아직도 기준을 못 잡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죄’라는 생각에서.
‘큰 구름이 작은 구름을 가려도.
작은 구름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밝았던 빛이 더 밝은 빛에 묻혀 암흑처럼 보여도.
그 작은 밝음이 어둠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죄라는 것이 크고 작음을 떠나, 한 번 지어진 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들이 마음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를 경멸하고 항상 반성케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반성을 하여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저이다 보니, 주인공인 두열도 비슷한 성향을 가져 버린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악독하게 이용을 해 먹을 줄 아는 단호함을 그리고 싶은데.
그러자니 마음 속에서 옳지 않은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듭니다.
그래서 고민 중입니다.
양심에는 떳떳하면서.
가지게 된 능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말입니다.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으니, 차후 글에서 조금씩 풀어가려 합니다.
자꾸 반복되는 심리적 문제로 글이 늘어지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되도록 빨리 마음을 정하고 본연의 야구 이야기로 글을 끌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응원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오늘의 고민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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