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시즌 제17시리즈 – vs 광주 (7) 오매,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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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데굴.
“윽.”
두열과 부딪혀 땅을 세 바퀴나 구른 성진이었다.
그도 두열과의 승부에서 과도한 집중을 했던 나머지 평소보다 더 거칠게 주루 플레이를 펼쳤다.
“으윽···.”
헬멧은 어디론가 날아갔고, 구를 때 속도가 빨라던지 옷마저 찢어진 상황.
하지만 성진은 체술에 특화된 선수답게 누래진 옷을 털며 가뿐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두열은 아직도 바닥에 누워 허벅지를 붙잡고 있었다.
직진을 하던 성진은 낙법을 펼치며 충격을 흡수하였지만, 두열은 옆에서 가해진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가장 강하게 부딪힌 허벅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 마두열 선수 부상인가요?]
“야이~ 개시키야! 너 일부러 그랬지?”
– 마동원 : 음. 지금은 내가 봐도 일부러 그런 거 같은데?
L 강속두열 : 우리 두열이 형이 너무 잘 던지니까 저런 것 같아요.
“세입 아닙니까?”
하지만 타자는 1루심에게 세입을 주장하였다.
명백하게 드러난 판정에 시비를 걸자 1루심도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러나 두열에게 달려와 그를 일으키려던 대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니, 지금 뭐라 했나?”
“네?”
성진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대용은 체급 자체가 달랐다.
죽기살기로 싸운다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싸울 분위기가 아닐 때에는 기세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세입이냐고 했는데요?”
“미칬나? 여기 우리 두열이 니 땜시 쓰러진 거 안 보이나?”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허슬 플레이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어? 허슬? 이게 허슬이가? 내가 보기엔 더틴데?”
“뭐요?”
“’뭐요?’라고 했나?”
“네. 왜요?”
쓰러진 두열에게 코치와 팀 닥터와 달려왔고, 다른 내야수들도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살기가 너풀거리는 대용과 성진의 대립에 시선이 옮겨졌다.
“왜요? 때리시게요?”
“뭐어?”
“아니, 웃기지 않습니까?”
“웃겨? 뭐가?”
“선수들이 플레이 하다 보면 부딪힐 수도 있는 거고, 저도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야, 임마야. 그래도 그건 아니지.”
“뭐가요?”
“두열이가 일부러 베이스 반을 열어줬다 아이가? 그럼, 니는 그쪽 밟고 가야지, 왜 두열이한테 육탄 공격을 해서 부딪치는데?”
“두열이도 베이스는 열어줬지만 몸은 제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다 피합니까? 당연히 부딪힐 수밖에 없던 상황 아닙니까?”
성진의 말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속도를 줄인다고 줄였지만 가속도 때문에 두열의 몸이 주자 쪽으로 기울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체술에 능한 성진이었기에 피하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방향을 급하게 바꾸며 감속을 해야 했다.
“’알고도 죽는 해수병(기침이 심하게 나는 병)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게 뭔 말인데?”
“결과가 안 좋을 걸 뻔히 알았지만, 저는 승부에 집중을 해야 했습니다. 동료가 부상 당하는 걸 원치는 않았지만, 저는 하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 상대 선수를 배려하기 위해 일부러 죽으라는 말입니까?”
그의 말이 아예 틀리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대용은 화가 났다.
“일마야. 그럼 아웃이냐를 묻기 전에 두열이한테 괜찮냐고 묻는 게 예의 아이가?”
“후···. 그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승부가 먼저였습니다.”
“진짜가?”
“아웃 선언은 그 당시가 지나면 번복되기 힘든 거 알지 않습니까?”
“그래에?”
대용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는 성진이 못마땅하였다.
그의 말이 모두 틀리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는데, 마음이 틀리다 화를 내었다.
그래서인지 피가 머리로 쏠리고 시야가 좁아짐을 느꼈다.
화가 솟은 것이다.
결국 대용은 글러브를 내팽개치고 성진의 멱살을 잡으려 하였다.
“저 괜찮아요!”
모든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뛰어나가려고 준비를 하였다.
만약 대용이 성진을 잡는다면 이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나가야 했다.
그게 팀의 룰이다.
그런데 그때 두열이 일어서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대용도 화를 삭이며 두열에게 시선을 던졌다.
헌데!
‘엉?’
자리에서 겨우 일어섰던 두열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드··· 드디어···.’
쓰러졌던 두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표정이 되었다.
드디어 변화를 알리는 알림음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드디어! 'S+'가!’
<뿜빠라뿜빠 뿜빠바~ 뿜~ 치키~ 뿜~ 치키~ 뿜! 뿜! 치키! 치키!>
요란해도 너무 요란했다.
이상한 표정을 짓던 두열이 갑자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아무리 공수교대 중이고 부상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시합 중에 선발 투수가 이렇게 오만방자하고 경박스럽게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쯔쯔쯔. 결국 미쳤군.
L 부산갈매기 : 왜? 안 다치니까 화 나냐? 별것도 아닌 것 같고 시비야.
L 진성광주 : 저게 별것도 아닌 거냐? 미쳤맨?
L 시벨타이거 : 아 시벨 열 받네.
두열도 춤을 추고 싶어서 춘 게 아니었다.
음악이 워낙 요란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에 맞춰 율동을 펼쳤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게임에서도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데, 아무리 성진의 허슬 플레이로 부상을 당했다지만, 이건 논외의 문제였다.
그래서였을까?
금방까지 대용에게 눌리던 성진의 까칠한 음성이 들렸다.
“너 뭐하냐?”
하지만 정신 나간 두열은 성진의 말에 대꾸도 않고 계속 춤을 출 뿐이었다.
부산의 관중들은 좋다고 응원을 하였지만, 광주 팬들은 이 행동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마치 부상을 당했던 투수가 일부러 상대를 같잖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더그아웃을 나서려던 광주 선수들도 그건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만 하지?”
하지만 두열은 묵묵부답. 덩실덩실.
“저 쌍놈의 새끼가!”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1루 베이스는 광주의 홈 더그아웃과 가까운 곳.
2회에서 삼진을 당했던 2루수 안춘분이 챙겼던 글러브를 땅으로 내팽개치며 그라운드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하나가 뛰니 둘이 뛰었고, 곧 셋이 되었다.
“저 새끼 죽여!”
게임도 안 풀리는데 이기는 놈이 자신들을 도발하였다.
그리고 두열은 아직도 열심히 춤을 추는 중이었다.
‘아무리 다쳤다지만 이렇게까지 빈정대? 멈추라니까 오히려 한술을 더 떠?’
시작은 불쾌함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산을 하였다.
점수 차는 좀 됐지만, 아직도 시합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의 분위기를 살려 크게 몸싸움이라도 펼친다면 넘어갔던 분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감독도 이 분위기에 편승을 하였다.
감독까지 뛰쳐나가니 선수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벌써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 뛰어나갔지만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몇몇도 그를 따라 낮은 더그아웃 펜스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었다.
불펜에서도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 이게 왠일입니까?]
[이건 마두열 선수가 잘못한 겁니다. 아무리 기분이 나쁘다지만, 정도를 지켰어야 합니다. 시합에서 이기고 있으면 얌전히 행동을 했어야 했는데, 도발의 수준이 너무 높았어요.]
[맞습니다. 심판의 재량에 따라 퇴장까지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진성광주 : 저 새끼 죽여버려!
인터넷에서도 난리가 났다.
대부분의 광주 팬들을 두열을 죽이라고 손가락을 놀렸다.
구장을 찾았던 팬들은 각자 들었던 무언가를 던질 정도로 흥분을 하였다.
펍과 같은 술집에서도, 식당에서도 그와 같은 반응은 멈춰지지 않았다.
부산에서 술을 마시다 이 장면을 보고 화가 난 광주 팬은 부산 팬들과 뒤엉켜 싸움까지 벌이고 있었다.
‘아니야. 이렇게 싸울 정도는 아니야. 처음에 실수를 한 건 나였어. 싸우면 안 되지.’
확실히 무도를 아는 성진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난 파도처럼 그라운드를 향하는 선수들을 말리려 하였다.
그런데 춘분을 말리던 성진이 누군가의 눈먼 주먹에 뒤통수를 맞았다.
아프진 않았지만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다시 춘분을 말리는데 이번에는 누가 로우킥을 날렸다.
역시 아프지는 않았지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무공을 익힌 무도인이었다.
‘무도가가 일반인에게···’
퍽!
뒤통수를 다시 맞은 성진의 고개가 서서히 뒤로 돌려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눈을 감고 주먹을 횡횡횡횡 휘두르는 진운이가 있었다.
성진은 기분이 나빴지만 일반인이, 그것도 눈도 감은 채 주먹을 휘두르는 진운을 보고 ‘허허’ 웃으며 고개를 까딱까딱 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옆에 태웅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엉겁결에 두 방을 또 맞았다.
결국 눈깔이 돌아갔다.
“우허엉!”
성진의 사자후가 그라운드를 갈랐다.
그리고 추풍낙엽처럼 진운과 태웅이 저 멀리로 날아갔다.
후배들이 날아가자 부산의 싸움꾼들도 눈알이 돌아갔다.
성진과 체급이 비슷한 손아설과 전준호가 싸움에 가세했다.
“이놈들! 비겁하게 2대1이라니!”
멀리 서 있던 왕만이 불도저처럼 사이에 있던 사람들을 뭉개며 성진을 지원하려 하였다.
하지만 부산에도 그와 같은 자는 많았다.
대용이 나서며 왕만을 저지했다.
“형은 비키죠?”
천하장사들처럼 덩치가 큰 왕만과 대용이 두 손을 꽉 붙잡은 채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덩치는 한 살 많은 대용이 더 컸으나 왕만의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약간 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대용도 타고난 장사!
“우허어! 이놈! 니가 비키라.”
그의 기합에서 ‘힘이여! 솟아라!’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대용이 있는 힘을 다해 왕만을 눌렀다.
그리고 그들 싸움에 또 여럿의 덩치들이 참전을 하였다.
[아! 이거 선수들이 다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너무 격렬한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벤치 클리어링을 해도 정도껏 서로 다치지 않게 싸우는 게 보통인데, 오늘은 양측 선수들 모두 격렬하게···]
– 진성광주 : 이야, 성진이 날아다니네.
L 시벨타이거 : 진짜 장난 아님. 무공을 쓴다고 해도 믿을 만함.
심판들은 어서 이 소란이 지나길 기원했다.
말려도 보고 사이에 끼어 호소도 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원 펀치뿐이었다.
눈들이 퍼래진 심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계속해서 중지를 요청했지만, 한 번 붙은 싸움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 감독은 숫자가 부족한 서로의 머리칼을 붙들고 있었다.
결국 구장을 지키던 경호 요원과 진행 요원들까지 투입이 되는 사태가 벌어진 후에야 양 팀을 떨어트릴 수 있었다.
싸움이 벌어진 후 두 팀의 사이를 벌리는 데만 십 분여가 소요되었다.
만호의 보호를 받은 두열도 몇 명의 상대를 맞아 현란한 스텝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의 두 눈두덩이는 벌써 새파래질 정도로 시퍼래진 상태.
스텝만 요란했다.
그리고 부기도 금세 차올라 왕눈이가 된 두열.
“다 댐벼~ 이씨~.”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쯔쯔쯔. 그 눈으로 보이긴 하냐? 맞지나 마라.
- 작가의말
우리말 속담 <참조 : 네이버 국어 사전>
‘알고도 죽는 해수병(한의학 : 기침이 심한 병)이라’
결과가 안 좋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겪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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