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시즌 시작 (3) – 개막전. vs 창원 티라노스 (3)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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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5. A.
9회 말. 첫 타자.
점수는 0 : 0. 볼카운트는 투 스트라이크 노 볼.
‘저놈도 이제 부담스러울 거야. 아직 나까지 세 명의 타자가 남아 있어. 할 수 있어!’
타자들은 아직 포기를 하지 않았다.
부산의 타자들도 몸이 덜 풀렸는지 9회 초까지 안타 수만 많을 뿐, 아직 단 한 점의 점수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회에 점수를 내지 못해도 10회로 연장이 될 것이기에 투수의 부담감이 더 클 것이라 생각을 하는 그들이었다.
‘퍼펙트? 좋지! 근데 말이야!’
두열의 공이 포수를 향했다.
그는 퍼펙트 따위는 신경도 쓰지를 않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문장가는 문장을 남기고 명필가는 명필을 남기며 선수는 기록을 남긴다.
당연히 두열도 기록에 신경을 써야 정상이었다.
메이저리그로 가고자 한다면 이렇게 임팩트 있는 기록은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너클볼러가 퍼펙트를 한다고?
파리가 풍긴 방귀에 질식할 소리를 하고 앉았네?
기록이란 게 이루고 나니 기록이 되는 거지.
처음부터 기록을 세우려고 시합을 하라고?
왜? 기네스북 도전자가 되려고?
이러지 마.
나는 올해 한국을 집어삼키고 메이저리그에 가서 10년을 넘게 호령을 하고 싶은 사람이야.
아니, 이치료처럼 마흔 다섯을 넘길 때까지 이 너클볼로 거대한 스크래치를 남기고 싶은 사람이야.
그런데 이런 기록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감정을 흔들리라고?
그건 작년까지 많이 했잖아!
내겐 10승의 기록이 이것보다 더 넘기 힘든 산이었어.
감정의 기복은 이제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기록에 침착하면 이룰 수 있는 것도 큰 벽이 될 것이 명확하다.
차라리 머리를 비우고 임한다.
내가 가는 길이 기록이고, 그것이 쌓여 곧 거대한 성벽이 된다.
그게 내가 남길 기록이다.
두열이 던진 강속구는 헐크에게 던졌던 것과 같이 고개를 까닥이며 창원의 목을 물려고 하였다.
그런데!
훙! 휘리릭~ 틱!
“젠장!”
“달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타자의 배트를 지나쳤던 강속구가 만호의 글러브를 맞고 튕겨나간 것이다.
타자는 미치듯이 달리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은 만호도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의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인지 공이 너무 멀리까지 도망가 버렸다.
타자가 1루에 도달을 한 후에야 공을 더듬는 만호였다.
“아아악! 강만호 개자슥아! 니가 그러고도 마누라가?”
“나가 뒤지라! 이 자슥아!”
“아하하! 부산 꼴 좋다! 그러길래 누가 설레발 떨라고 했냐?”
“누가 설레발을 쳤다는 긴데?”
“아까 누가 그러드만, 퍼펙트가 어떻고 저떻고.”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봤냐? ㅋㅋㅋ
[아··· 안타깝습니다. 개막전에서의 퍼펙트 게임은 아직 단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아깝게 됐습니다.]
[개막전 퍼펙트는 고사하고 우리 리그에선 아직 퍼펙트 게임이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두열 선수가 퍼펙트을 못한 게 다행이지 않나 싶습니다.]
[네? 마두열 선수에게 너무 가혹한 말씀이 아니신지···.]
[마두열 선수는 작년까지 징크스를 가지고 있던 선수입니다. 그런데 그 벽을 겨우 넘었죠. 거기에 올해 처음으로 에이스의 짐을 짊어졌습니다.]
[그것과 상관이 있나요?]
[아무렴요. 상관이 있다 뿐입니까?]
[그게 무엇일까요?]
[이제 처음으로 에이스가 됐는데 처음부터 대기록을 세워 보십시오. 주위와 자기 자신 자체가 아마도 엄청난 무게로 기대를 하게 만들 겁니다.]
[아무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게임, 또 그 다음 게임, 연속된 시합에서 첫 시합만큼의 임팩트를 보여 주지 못한다면 주위의 평이 어떻겠습니까?]
[아아···.]
[주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실망을 할 공산이 큽니다. 부담이 많이 되겠죠. 마두열 선수는 아직 서른도 안 된 젊은 선수입니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곧 징크스처럼 발동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후···.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킥킥. 기분 더럽네?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
공은 벌써 빠졌고, 그렇게 만든 사람이 만호 형인데, 내가 누구에게 화풀이를 하겠어···.
으이잉~.
“두열아! 미안!”
“정말?”
“···.”
“우와, 우리 형, 말도 못 하는 거 보니 정말 미안한가 보네?”
만호는 계속 말이 없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내야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이 시합에서 보여준 게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왜들 이래요? 오늘 시합만 하고 게임 안 할 거에요? 올해 우리 목표 이루려면 초장부터 이러면 안돼요.”
“두열이 말이 맞다. 모두 힘 내자! 다음에 하면 되지 뭐? 안 글나?”
“맞구먼유~.”
두열이 애써 웃으며 방긋 웃자 그제야 기운을 차리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웃는 척을 하며 실제로는 두열보다 더 힘이 빠진 그들이었다.
“전 사실···.”
두열이 잠시 말을 끌었다.
“만호 형이 너클볼을 놓칠 줄 알았는데, 직구를 놓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우캬캬캬캬캬.”
“큭!”
두열은 혼자서 신나 웃어 젖혔지만 만호는 울상이 되었고, 몇을 빼놓고는 선수들도 웃지를 못했다.
“에이, 남자들이 왜 이러실까? 형님들!”
“응. 말해.”
“저 올해 꼭 20승 이상 할 겁니다.”
두열은 다짐을 하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저 도와주세요. 기록? 좋죠. 하지만 너클볼러의 공이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만호 형도 그만 미안해 하시고 저에게 기운을 주세요. 아셨죠?”
그제야 선수들이 굳은 다짐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기운이 없어야 하는 투수가 이렇게 파이팅을 외치는데 그 동료들이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문제였다.
“오케이! 다시 시작하자!”
“모두 정신 차려!”
“그래! 모두 모여!”
작은 스크럼을 이룬 부산의 내야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자신들의 자리로 이동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에는 승리에 대한 염원을 담겨 있었다.
퍼펙트는 깨졌지만 아직 승리는 남아 있었다.
다음 이닝에 두열이 올라오기 위해선 더 이상의 실책은 없어야 했다.
선수들은 노히트노런을 노리자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부정을 타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탁!
[아···. 안타입니다. 노히트노런까지 깨지고 마는군요. 마두열 선수 너무 아깝겠는데요? 아아··· 감독이 나옵니다.]
“킥킥킥.”
감독이 마운드를 향하고 있는 가운데 두열은 미친 사람처럼 육성으로 킥킥거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욕을 해댔을 관중이지만 오늘만은 입을 다물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투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건 지금까지 입에 욕을 달고 살던 인터넷 워리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몇은 예외였다.
– 국9마(국민9승마두열) : 봤지? 저건 안돼. 징크스 깼다고? 글쎄? 이제 또 새로운 징크스의 시작인 건가? ㅋㅋㅋ
L 창원갈매기 : 지금까진 너 싫어 했는데, 오늘 보니까 성견지명이 장난 아니구나? 대단한데?
L 가을야구 : 선경지명이겠지. ㅄㅇ.
L 사랑해요국거팍 : 선견지명 아님?
모두의 예상대로 선발은 교체가 되었고, 두열은 처진 어깨를 숨기며 더그아웃을 향하고 있었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지만.
사람이란 게 그렇게 쉽게 욕망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두열은 애써 얼굴을 피었다.
아직 시합이 끝난 게 아닌데, 선발이 승리 여건을 만들지 못하고 내려왔다고 인상을 쓴다면 팀의 분위기가 엉망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반겨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기가 죽었다.
두열은 잠시 다음 투수가 몸을 푸는 동안 샤워실로 달려가 가볍게 몸을 씻어 내었다.
그리고 그 사이 흘리는 눈물은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고.
아니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더그아웃에서 미안해 하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몰랐던 기대가 무너져.
갑자기 눈물이 흘렀고.
팀을 위해 자리를 피해 이렇게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하지만 곧 수도꼭지를 잠근 그의 눈에는 어떤 물방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 괜찮아. 다시 하면 되잖아! 그래! 너 두열이야! 마두열!”
샤워를 마친 두열이 축 늘어진 아래 세 쪽을 덜렁거리며 기마 자세를 잡았다.
“마두열! 화이링~! 아잣! 빠샤!”
덜렁덜렁~.
- 작가의말
원하시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아쉽지요?
저도···.
그래서 오늘은 2회 연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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