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스프링 캠프 (4) – 투구 테스트 (3) 진운편
“좋아, 진운의 새로운 폼을 먼저 볼까?”
선발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는 진운에게 있어서 투구 폼은 그 어떤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대두가 되었었다.
전처럼 힘으로 던지는 투구는 불펜 투수들이 가져야 할 폼이지, 장시간 많은 공을 던져야 하는 선발 투수 입장에서는 절대 피해야 할 폼이 작년 진운의 폼이었다.
결국 겨울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예전의 폼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폼을 변경하였다.
처음에는 진운이도 익숙하지 않은 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공을 계속 던질수록 어깨와 팔꿈치 부담이 줄어드는 게 확연히 느껴지자, 이후로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폼에 적응을 하려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선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투수로 발돋움을 하게 된 것이다.
널 보여 줘라. 진운.
“자! 뜸 그만 들이고 이제 던져 봐라.”
김원본 코치님의 성화에 마운드에 오른 진운은 잠시 긴장한 표정을 보였지만, 냉정한 두열과 눈이 마주친 이후로는 침착성을 되찾았다.
두열은 작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를 당했지만, 많은 것을 얻었었다.
마음.
사람의 ‘마음’은 수치로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멘탈이라는 것이 사람의 단단한 심장을 대변하는 것 같지만, 두열이 느낀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멘탈이 육체적인 뇌의 마음이었다면.
‘마음’은 정신적인 영혼의 마음이었다.
둘은 하나 같았지만, 전혀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뇌가 죽어 버리면 영혼이 울부짖어도 몸은 반응을 안 하였고.
뇌가 반응을 하여도 영혼의 정신이 죽어 버리면 몸 또한 죽은 것과 진배없었다.
이는 곧.
육체와 바탕은 신이요.
그 안에 정신과 마음을 담는 것이 기였으며.
또 다른 색을 가진 영적 정신과 마음의 정수가 정이었다.
이것이 그때 깨달은 두열의 ‘정기신(精氣神)’의 개념이었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모두가 모여 화합을 이루었을 때 진정한 ‘나’가 태어난다고 믿게 된 두열이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두열은 두 후배와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그것을 전달하였다.
진운은 원래 두열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당연히 두열의 사이비 같은 사상을 광신도가 되어 믿어 버렸다.
믿삽니다~! 두열님이시여~!
워워, 이건 아니거든. 꺼지라.
스왕~ 펑!
“오오 공 좋은데? 처음부터 전력 투구야?”
“아닙니다.”
“그래? 지금 공 좋았는데? 이 코치 지금 얼마 나왔어?”
“140km/h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라 보여?”
“흐흐, 계속 보시죠.”
곧이어 제2구 던져졌다.
“잠깐만. 내가 타석에서 직접 봐야겠어.”
수석 코치님이 직접 타석으로 이동을 하셨다.
그러자 진운도 마음을 다잡고 전력 투구를 하기 시작했다.
팡!
“우와~, 지금은 몇 키로?”
“145입니다.”
“150은 넘게 보이는데? 어이, 두열!”
“네.”
부름을 받은 두열이 야생마처럼 뛰어갔다.
“네. 말씀하십시오.”
“릴리즈 포인트도 화면에서 본 거랑은 다른 거 같다?”
역시 눈썰미가 좋으신 분이었다.
폼을 변경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릴리즈 포인트였다.
거의 모든 투수들은 이 릴리즈 포인트, 그러니까 공을 놓은 지점을 되도록 앞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리고 코치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이유는, 공을 놓는 포인트가 앞으로 갈수록 투수와 포수의 간격이 좁아진다는 것에 기인한다.
‘에이, 릴리즈 포인트를 앞으로 가져와 봐야 몇 센티미터도 차이가 안 날 텐데 너무 오바 하는 거 아냐?’ 하고 일반인들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투수에게 1km/h라는 ‘시간당 거리’는, 악마에게 영혼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은 무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투수가 시간당 1km의 거리를 더 빨리 내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 된다.
그럼 릴리즈 포인트가 앞으로 오면 올수록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당연히 공을 놓는 포인트와 타자와의 거리는 줄어든다.
투수가 던진 공은 초속과 종속이 있다.
초속이 높을수록 종속이 빨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와 마찬가지로 거리가 가까우면 종속이 빨라지는 효과가 생긴다.
거리가 멀수록 당연히 속도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투수들은 악을 쓰고 릴리즈 포인트를 앞으로, 앞으로 끌고 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운은 반대의 경우였다.
예전보다 릴리즈 포인트가 뒤에 형성되었다.
앞에서 밝힌 바와는 정반대의 약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두열은 자신감을 보인다.
“물론 릴리즈 포인트가 뒤로 가서 종속에는 약점이 생겼습니다.”
“다른 장점이 있다?”
그랬다. 예전보다 공을 놓는 릴리즈 포인트는 약간 뒤로 이동이 되었지만, 오버핸드 때보다 릴리즈 포인트가 오히려 높아지는 효과가 생겼다.
‘엥? 릴리즈 포인트는 앞으로 올수록 좋은 거라며?’
라고 물으신다면.
높이의 릴리즈 포인트를 또 생각해야 한다.
공을 놓는 높이의 릴리즈 포인트는, 타자에게 시각적인 압박감을 전해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투수들이 서 있는 마운드는 타자의 타석보다 10인치 이내, 즉 25.4cm 정도가 높다.
‘에이, 별거 아니네?’라고 묻지 마라.
160cm의 키를 가진 사람이 185.4cm의 장신 앞에 서면 어떻겠는가?
화살도 같은 높이에서 쏘는 것보다 성벽 위에서 쏘는 화살이 더 무서운 법이다.
키도 크고 높이도 높은 곳에서 팔까지 긴 투수가 공을 던진다고 생각해 봐라.
정말 높은 높이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는 타자 머리보다 높은 위치에서 공을 놓는다.
2m 이상에서 던져진 공.
‘우와~ 그럼 머리 위에서 던져진 공이 배 쪽으로 들어오는 거에요?’
옳다. 바로 그것이다.
위에서 낙차가 큰 공이 나를 겨냥하고 던져진다.
어떤가?
‘무서워요.’
그랗취~! 바로 그것이다.
“음, 그러니까 속도의 손해를 좀 보더라도 높이 있는 투구 폼이 진운에게는 더 어울린다?”
“진운이의 주무기는 스플리터와 포크볼입니다.”
“후후후, 그러니까 위에서 오는 공이 더 낮게 제구가 되면 타자가 정신을 못 차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진운이가 상대 머리 높이를 노리고 포크볼을 던지면 타자는 놀라겠지만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합니다. 정통파 투수들의 포크볼이 무서운 이유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직구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인데, 스플리터와 포크볼은 거기에 한술을 더 뜰 테니···. 허허허, 자네를 코치로 써야겠는데?”
“움훼훼훼,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그래. 다른 공도 좀 볼까?”
이어지는 진운의 공을 보고 수석 코치님은 갈수록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팀에서 저 친구 보직을 놓고 고민중인 거 알고 있지?”
“네.”
“자네가 보기엔 어디가 좋겠나?”
코치가 선수들에게 이렇게 직접적인 의견을 묻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두열이 했던 행위와 답변들에 믿음을 표시하는 그였다.
“전의 폼이었다면, 단기적으로 힘을 끌어 쓸 수 있는 중계를 추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부드러운 폼이 되었으니 선발이 어울릴 것이다?”
“네.”
코치님이 또 이상 야릇한 눈빛을 보내신다.
어? 정말 이러시면 아니 되와요.
“좋군. 좋아. 이번 스프링 캠프에서 테스트를 해 보고 답을 내놓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자네가 감사할 게 뭐 있나? 다 저 녀석 복이고, 감사하려면 코치인 우리가 자네한테 해야지.”
코치님은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으로 내 어깨를 턱턱 내리치셨다.
아! 믿어주고 신뢰하는 것은 좋은데 아파 죽겠다.
그리고 열심히 공을 던졌던 진운이,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것이 너무도 기뻤다.
또 그가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다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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