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만년 9승 투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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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만년 9승 투수 (3)
두열이 보크 후 멍한 표정을 짓자 만호는 다시 마운드를 향하려 하였다.
하지만 심판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올라가면 너네 경고. 열 받으면 퇴장.’이란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심판의 월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관중은 폭도로 변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 사이 3루 주자는 보크 판정에 의해 홈 베이스를 통과하였고 다른 주자들도 원 베이스씩 진루를 하였다. 주심은 쉴 틈을 주지 않고 늘어지는 게임의 속개를 종용하였다.
‘정신차리자. 어차피 만루에서 한 점도 안 주고 넘어간다는 건 도둑놈 심보잖아. 그래, 줄 점수 준 거야.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차리자. 두열아. 이거 다시 오지 않을 기회 같다. 제발 정신 차리자. 넌 할 수 있어.’
두열은 바닥으로 흐트러지던 집중력을 다시 긁어모았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
“괜찮아요. 오지 마요.”
두열은 마운드에 오르려던 만호를, 자리를 지키라며 손짓으로 말렸다.
아직도 약간은 멍한 표정이었지만 그도 지금이 얼마나 위태하고 중요한 순간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하였다.
‘안 올라가도 되려나? 눈빛이 좀 이상한데? 여기서 무너지면 이제 떨어질 곳도 없을 텐데···.’
만호의 생각처럼 두열은 멍청하지 않았다.
약 기운 때문인지 눈에 헛것이 계속 보였지만, 그것에 신경을 뺏겼다간 더그아웃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코치진들에게 자리를 빼앗기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함성이 아닌 악을 지르는 부산 갈매기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경기 후 욕이 아닌 몰매를 맞기 십상이었다.
부산 사나이들은 지는 것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더 싫어했으므로.
[아~ 이게 웬일입니까? 이 중요한 순간에 보크라니요. 아무래도 앞서 벌어진 유격수의 실책에 동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허구용 해설께선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징크스라는 게 쉽게 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순간이 되자 그것이 발목을 잡는 것일 테죠. 쓰으. 지금이라도 어서 투수를 바꿔야 할 텐데, 감독이 무슨 생각인지를 모르겠군요.]
[하지만 4회까지는 안타 한 개만을 내주며 호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직 투구수가 60개를 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7회는 물론 8회까지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요. 양용훈 캐스터께서 너무 좋게 봐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감독이라면 지금에라도 당장 투수를 교체할 것입니다. 물론 결과가 나봐야 알겠습니다만, 오늘의 경기가 포스트시즌을 결정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지금의 교체 시기는 일 년을 놓고 선택을 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입니다. 그러니까···.]
[아~! 말씀 드리는 가운데, 투수 다시 셋업 포지션에 들어갔습니다. 던졌습니다!]
파방!
“쑤투~라잌”
[오오. 오늘의 최고 구속인 154km가 찍혔습니다. 타자도 갑자기 빠른 공이 들어오자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바깥쪽 낮은 코스에 꽉 찬 패스트볼로 코너웤도 완벽한데요. 해설자 입장에서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잠깐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만, 공은 여전히 좋지 않습니까?]
[···.]
1 대 3.
1사 주자 2, 3루.
타자는 3번 타자 김태근.
눈이 좋고 스트라이드가 거의 없어 대응 능력 또한 뛰어나다. 특히 빠른 공의 대처 능력이 매우 우수하다. 때문에 강속구 투수에게 강점을 가진 타자.
첫 공은 탐색을 위해 지켜보았겠지만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릴 수 없으니 이제는 공격적으로 공략을 할 거다. 즉, 빠른 공을 다시 던지면 무서운 그의 배트가 공기를 가를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에게는 치명적인 타자가 바로 그와 같은 타자이다.
또 주자들은 발이 빠르기 때문에 작은 거라도 한 방이 터지면 동점에서 역전까지 가능한 상황.
그렇다고 피해갈 수도 없다.
그의 뒤에는 시꺼먼 눈을 부릅뜨고 있는 월린이 마운드를 노려보고 있다.
그들은 올해, 둘 다 3할 2푼이 넘는 고타율을 선보였다.
그리고 득점권 타율도 무시무시하다.
무서운 상대들이지만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는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도망가는 피칭을 해 봤자 마운드에서 쫓겨나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으면 빼든 칼이라도 휘둘러 봐야지.
하지만, 여전히 눈 앞이 몽롱하다. 사물이 흐릿하고 먼저 보였던 박스들이 움직이는 선수들을 따라 다녀 정신까지 산만하다.
그러나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
더군다나 오늘은 왠지 공끝이 제대로 긁히는 느낌까지 든다.
무조건 낮게 간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약한 땅볼에 의해 홈으로 덤벼드는 3루 선행 주자를 먼저 잡고, 운이 좋으면 1루로 향하는 발 느린 타자 주자를 잡는 더블 플레이.
그렇다면 가장 선호하고 믿을 수 있는 투심 패스트볼.
포심과 대비해 종으로 더 떨어트리고, 배트 안쪽에 걸릴 수 있도록 역회전을 더 가미한다. 체인지업을 던질 수도 있겠지만 포심으로 보일 수 있게 조금이라도 더 빠른 투심이 그에게 가장 적합한 먹이다.
그래, 너로 낙점한다.
[투수, 잠시 타자와 대기석에서 마운드를 노려보던 루사니오 선수를 쳐다보다 공을 던집니다. 오오! 스트라잌. 무슨 공이었죠? 직구로 보였는데, 마치 마구처럼 타자 바로 앞에서 급격히 공이 낮아지고 타자 쪽으로 방향까지 틀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서클 체인지업으로 보이는데요. 마두열 선수가 무슨 생각으로 평상시에는 즐겨 던지지 않던 공을 저렇게 던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중압감 때문에 저 공을 던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 느린 화면이 나오는데요. 음? 투심 패스트볼 아닌가요?]
[글쎄요. 손가락 모양이 잘 보이질 않아서···.]
역시 공이 긁힌다.
평소보다 예리하고 난폭하게 그리고, 속도를 높인 상태에서 제구까지 가능하다.
이런 날은 흔하지 않지. 그리고 박스 안에 보이는 저 수치.
【선수 정보】
『타자』
▼ 1. 기본 정보
– 선수 등급 : B+ (1833 point↑)
– 선수 포텐셜 : A0 (2012 point↑)
– 이름 : 김태근
– 키 : 185cm
– 몸무게 : 110kg
– 소속 : 대전 호크스
– 포지션 : 1루수, 3루수, 지명타자
– 투/타 : 우투우타
▲ 2. 스텟
– 스텟 등급 : B– (1608 point↓)
▲ 3. 특수 정보
▼ 4. 특이 사항
1.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반대로 심리 위축이 잘 되는 유형입니다. 하지만 흐름을 타면 누구보다 무서운 타입이기도 합니다.
2. 뚜렷한 콜드 존은 없으나 몸 쪽 낮은 공과 바깥 쪽 낮은 공의 타율이 약간 떨어집니다. 공이 가운데로 몰리면 여지없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3. 153km/h 이하의 직구는 변화구보다 컨택트 능력이 뛰어납니다.
☞ 상세 내용 및 도움말을 확인하시려면 각 항목을 상상 클릭하세요.
얼마 없는 정보지만 왠지 저것을 참고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알고 있던 내용과 동일한 부분이 많아 더욱 믿음이 간다.
그래, 저기 보이는 ‘누구보다 흐름을 타면 무서운 타입’.
하지만 점수를 꼭 내야 하는 기로에서 3번 타자라는 중압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저 표정. 심리 위축이 잘 되는 유형.
거기에 벌써 투 스트라이크. 그래, 그의 내심이 보이는 것 같다.
긴장한 거야? 그래, 그래 보이는데?
정말 약에 취한 것인가?
후후. 평소였다면 긴장했을 나는 어디 가고, 이 상황이 몹시 즐겁기만 하다.
[아, 위기에 상황임에도 마두열 선수의 표정이 엄청 밝습니다. 표정만 보면 벌써 이닝을 종료한 것만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투수들은 항상 침착해야 하는데, 마운드에서 저런···.]
[던집니다. 헛스윙! 헛스윙 스트라익 아웃! 위기의 순간을 넘기는 마두열 선수의 표정이 밝습니다. 아! 김태근 선수, 화가 많이 난 것 같습니다. 방망이로 땅을 내리치며 화를 내고 있는데요? 반면에 마두열 선수는 환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마두열 선수, 오늘 정말 일 한 번 내나요?]
[아직 많은 이닝이 남아 있어···.]
[이제 투 아웃입니다. 환한 투수의 웃음과는 대비되게 타석에 들어서는 루사니오 선수의 표정이 김태근 선수처럼 어둡기만 합니다.]
표정만 보면 두열의 상태는 딱 뽕 맞은 사람과 같았다.
눈은 반쯤 풀렸고, 침을 흘리지 않는다 뿐이지 계속 실실 웃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관중들은 그 모습을 보며 이 상황에 웃냐며 욕이라도 한 바가지 끼얹고 싶었지만, 그래도 팀의 어깨로 믿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전보다는 얌전하게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몽롱함 속에서도 무언가 빛을 발하는 듯한 그의 눈빛.
배짱이 좋은 투수였지만, 9승 후엔 항상 위축을 일삼던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마치 게임 속 도살자가 되어 양민을 학살하고 다니는 버그 캐릭터가 빙의된 듯 보였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중심 타선 앞에서 저런 표정과 자신감이라니.
[초구 던졌습니다.]
파아악!
“스뚜라잌!”
월린 루사니오.
그는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켓츠에서 몇 년을 주전으로, 그것도 풀타임으로 소화했던, 어마어마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한국에 올 당시, 아직도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자가 왜 국내에 오냐며 많은 관계자와 팬들은 궁금증을 자아낼 뿐이었고, 혹시 몸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항간에선 ‘폼이 완전히 떨어져 한국으로 도피를 하는 것이다.’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기본 실력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는 여전히 유능한 선수였다.
그리고 올해 그가 올린 성적은, 역시나 그의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수준을 내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선 그의 표정은 어두웠고, 반대로 나의 표정은.
히죽.
▼ 4. 특이 사항
1. 전체적으로 좋은 눈을 가지고 있으나 동체 시력이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A급 이상의 선수가 될 수 있음에도 결정적인 순간 눈을 깜빡이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타격과 수비에서 크나큰 마이너스 요소가 발생하였습니다.
2. 포수 출신임에도 ‘충격’, ‘충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공을 무서워하는 성향과 예측을 하는 능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3. 투 스트라이크 이후로는 교타자적인 성향을 보이려고 하지만, 게스 히터에 가까운 타입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판단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닙니다.
메이저리거였지만, KBO에 온 이상, 너도 그냥 한 명의 KBO리거.
그리고 한 줄기 정보.
킥킥. 넌 이제, 내 밥이야.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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