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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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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작품등록일 :
2021.02.13 22:03
최근연재일 :
2021.07.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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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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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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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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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회 - (번외편) 상처I

DUMMY

2부 번외편. 상처I


「베로니카 괜찮나?」


「괜찮습니다. 스승님.」


갱도의 깊이는 지하 3,000피트를 넘어서고 있었다. 온도가 50도까지 치솟았다. 슈타이너가 빙결계 마법으로 주변 공기를 식히며 나가지 않았다면 모두 반나절이 못 되어 탈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법은 만능이 아니다.


모든 우주의 열에너지 총량은 동일하다. 한쪽이 차가워지면 뜨거워지는 곳이 있는 법.


열에너지를 흡수해 주변 공기를 식히는 동안 슈타이너의 망토 뒤에는 80도 이상의 열풍이 불었다. 때문에 프레데릭슨이 앞장서고 그 다음은 베로니카, 슈타이너가 맨 뒤에서 갱도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소문은 들었지만 드워프는 정말 터무니없는 족속들이군요.」


프레데릭슨이 간간히 횃불을 갱도 벽에 갖다 대면서 말했다. 금이 가고 부서진 석영맥(石英脈)이 곳곳에 눈에 들어왔다. 단단한 석영에 금을 내서 쪼개기 쉽게 만들기 위해 고열을 가한 흔적들이었다. 아마 석영에 열을 가하면 나오는 비소 연기 때문에 숱한 인부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혹독하기 그지없는 환경임에도 핑갈의 동굴에서 발견된 거대한 지하채굴장은 드워프들의 솜씨답게 질서정연하고 통제강박적인 비례와 균형을 갖춘 계단, 기둥, 아치, 벽돌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드워프들은 여기서 금맥을 캐려한 걸까요?」


「주목적은 그게 아니었을 걸세. 물론 겸사겸사 찾으면 마다않았겠지만.」


볼 브레이커스 단장인 위대한 슈타이너가 수도를 비우고 직접 북방 한계선인 일루리샤트의 외딴 화산 동굴을 찾은 것은 로마누스 제국인들이 세웠던 델루스(현재는 델프트라는 지명으로 바뀐)라는 옛 도시에 있는 옛 지진계 때문이었다.


***


「지진계의 구슬이 떨어졌다더군.」


「고문헌에 등장하는 그 기계 말씀이십니까?」


슈타이너는 드래곤 거세학교 고서적 창고에서 이실딘 막대를 발견한 이후로 브뤼헤 교감과는 [성 패트릭 전설]관련한 방대한 자료를 함께 수집하고 연구해왔다. 비록 자료의 절반 이상이 위작이거나 사료로써 가치가 없는 쓰레기였지만 교차검증과 증언 등을 토대로 델루스에 있는 옛 지진계 전설은 신빙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던 터였다.


「최근 일루리샤트 지역에 화산활동 징후가 포착되고 몇 차례 큰 지진이 감지 됐네. 피오르드 협곡에서 산더미만한 유빙이 바다로 무너져 내리면서 엄청난 크기의 해일이 발생했던 걸로 조사단이 결론 내렸을 정도의 대지진이었어.」


「극지방이기에 망정이지 사람 사는 지역이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군요.」


「진앙지로 추정되는 일어난 곳이 어디와 가까운지 아는가?」


「설마 그 드워프들의?」


「그 설마일세. 핑갈의 동굴. 화산지대 끄트머리 수백 년 째 아무도 얼씬 거리지 않는 그 폐광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거 같네. 에피메테우스의 전설이 사실인지 자네가 비공식 일정으로 다녀와 주었으면 하네.」


「겨우 전설의 사실 여부나 판단하려고 저를 보내시는 건 아니시지 않습니까.」


주변을 둘러보던 브뤼헤 교감이 늘 그랬듯 저급 양피지에 잉크를 쏟았다. 잉크는 스스로 글자모양으로 흘러 양피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 (전설이 사실이라면 생명나무의 뿌리와 궁극의 금속인 이실딘이 거기 있을 걸세. 그리고 어쩌면 거기서 성 패트릭이 연주했다던 열두 번째 칸텔레의 현을 찾아서 완성할 수 있을 거야. 서두르게. 정말로 에피메테우스가 그곳에 존재하고 지진으로 인해 봉인에서 풀려난다면 그 괴물을 자네 말고 누가 막는단 말인가.)


***


「스승님, 정말 이런 곳에 에피메테우스가 결박되어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나, 프릭?」


슈타이너가 베로니카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프레데릭슨에게 물었다.


「저 같은 일개 시종장이 뭘 알겠습니까.」


「이 친구야, 내가 정말 자네 출신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침묵이 흘렀다. 정말 무뚝뚝한 친구다. 아니면 베로니카를 의식해서거나. 그녀가 어렸을 때 일이니 프레데릭슨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좋아. 아무튼 자네가 별 말 없이 따라오는 걸로 봐서 우리가 삽질하고 있는 건 아니군 그래.」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손을 뻗어 앞쪽으로 냉기를 불어넣던 슈타이너가 팔을 내렸다. 열기를 뒤로 내뿜던 망토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틀림없어. 여기 지하에 에피메테우스가 봉인되어 있네. 그리고 녀석이 잘 결박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우리의 임무. 프레데릭슨, 이제 자네는 여기서 다시 위로 올라가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예비 인원 한 명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게 좋겠지.」


「하지만.」


맨 뒤에 서 있던 슈타이너가 맨 앞으로 가며 말했다.


「베로니카가 걱정돼서라면 안심하게.」


「그렇지 않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슈타이너 경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여기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어딘가?」


「일루리샤트 주의 고트하브라는 곳입니다. 걸어서 이틀. 말을 타고 숲을 가로지르면 한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인지 슈타이너가 입맛을 다셨다.


「하몽이 유명하다는 고장이 여기 근처군. 저녁에는 출발할 수 있도록 올라가서 뒷정리 좀 해주게. 내일 아침에는 호밀빵에 하몽을 두껍게 썰어 원 없이 먹고 싶군 그래. 누크에서 파는 건 죄다 소금에 너무 절여서 말이지.」


「그럼 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유사시에는 어떻게 할까요?」


「뇌조(雷鳥)를 터뜨릴 테니 대기하게. 구조가 필요한 비상상황은 1번, 절망적인 상황이라 그대라도 도주해야 하면 2번일세.」


「슈타이너 경, 제 사전에 2번은 없습니다.」


「프릭, 작전이 실패하면 누군가 수도에 보고를 해야 돼.」


베로니카의 말에도 프레데릭슨은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아가씨, 저는 힐데가르트 가문 사람이지 관리가 아닙니다. 제 임무는 아가씨를 보호하는 겁니다. 파발꾼의 책임은 없습니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지.」


짜증이 난 어투로 베로니카가가 전형적인 부잣집 막내딸처럼 떽떽거렸다.


「스승님이 계시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올라가서 텐트랑 주변 정리하고 바로 이동할 수 있게 해줘. 내 담요 땅바닥에 두고 와서 이슬에 젖었을 거야. 다 말려 놓고. 진드기 끓지 않게 관솔불에 소독하는 것도 잊지 마. 어서 가라고!」


***


얼마나 지났을까.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가는 두 남녀의 발소리만 한참 동안 넓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슈타이너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따랐던 행복한 시간들이 떠오를 뿐.


「슐츠, 지도에 동굴 입구 말고도 환기구 겸 비상출구로 보이는 곳이 여럿 나와 있었어요.」


슐츠. 둘만 있을 때 그녀가 슈타이너를 부르는 애칭이다.


「...」


슈타이너는 말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프릭이 눈치 챘을 거예요.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아요.」


구스타프 프레데릭슨.


출신, 가족, 경력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다. 평범한 시종장이 아니다. 비굴하지 않은 신중함, 예의를 갖추면서도 상대를 위축시키는 당당함, 드래곤 거세 활동 중 지근거리에서 베로니카를 호위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드러낸 수준 높은 검술까지.


‘왕실 검법을 쓰는군. 정체가 뭐냐.’


둠 브링거 왕국 칼레브 왕조는 천 년 전, 북쪽대륙 변방인 이곳에 흘러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절부터 장원을 가진 강력한 지방 영주로 성장하기까지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검술을 개발했다.


왕실 검법의 기본 동작은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암살 위협을 받을 때 방어와 동시에 반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히 말에서 내릴 때 무방비 상태에서 적의 기습에 대응하기 효율적으로 짜여졌다.


상대가 나의 패를 미리 알고 있다면 실전에서는 곧 사망이다. 왕실 검법은 극소수의 왕실 경호요원들에게만 전수되었다. 슈타이너도 운 좋게 드래곤 거세학교단장 자격으로 왕을 지근거리에서 호위할 때를 대비해 몇 가지 필수 동작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세 기사도]라거나 그들과 관계있는 인물이었을지도.'


슈타이너는 [세 기사도 Trois Chivalry]로 불리는 왕과 여왕 그리고 극비리에 전해지는 왕실의 보물을 지키는 비밀경호원들의 존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프레데릭슨을 왕이나 최소 왕가의 핵심인물을 보좌했던 비밀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프레데릭슨이 베로니카를 향해 고지식할 정도로 낭만적인 기사도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심증은 더욱 굳어졌다.


'아마 프레데릭슨의 손길을 벗어날 순 없겠지.'


고갤 숙인 채 상념에 잠겨 걷는 슈타이너 곁으로 베로니카가 다가와 팔짱을 낀 채 속삭였다.


「슐츠, 달아나요 우리.」


「...」


볼 브레이커스의 단장은 결혼을 할 수 없다.


왕정 당시에는 가문 대 가문이 결합하는 정식 혼인 즉, 문트(Muntehe)가 가능했다. 그러나 점점 가문과 길드 간 유착과 부패, 볼 브레이커스의 각종 이권 남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공화정은 볼 브레이커스 단장에게 막강한 권한과 명예를 주는 대신 독신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공화국 볼 브레이커스 1대 단장이 된 슈타이너는 신 앞에서 포피를 베는 의식을 통해 독신으로 살 것을 맹세했다. 이를 어길 경우, 모든 직위와 권한 및 시민권을 박탈당한다.


물론 슈타이너에게 세속의 명예나 권력은 중요치 않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공학적인 복잡한 셈법과 자신이 속한 포즈나뉴 조합 그리고 공화파, 넓게는 공화국의 안녕을 위해 단장 역할을 감당할 사람이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겁고도 화려한 그의 십자가. 슈타이너는 대체 불가의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는 밤에 잘 잔다네

이처럼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졌기에 그는

네 명의 왕이 그들의 통치를 마치는 것을 지켜보았네.



슈타이너는 가끔 외스타슈 데샹의 시를 읊조리며 재능을 숨긴 채 그저 하급 관리로서 고요하고 길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상상 속에서 어스름한 저녁 창가에 앉아 다음 날 아침 내릴 비를 대비해 양초를 창틀에 바르고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따스한 토끼고기 스튜를 내밀며 입을 맞추는 아내는 베로니카였다.


주책이지! 위대한 영웅의 머릿속을 맴도는 망상이여.


불경스럽지만 인류의 죄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갔던 신의 아들도 아주 잠깐은 이런 소박한 인생을 상상하시지 않았을까?


「슐츠, 우리 지옥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걸까요?」


「아니 베키, 어떤 식으로든 결국 빛을 향해 승천하게 되겠지. 그게 너의 운명이야.」


슈타이너는 사랑하는 연인과 백년해로한 뒤 이노샹 공공 묘지에 묻히는 평범한 삶을 수도 없이 꿈꿨다. 하지만 죽어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슈타이너는 그 위대함 때문에 홀로 광장의 동상으로 우뚝 서 있어야 할 운명이다.


「누군가 이 짐을 대신 짊어져준다면 좋겠지만.」


「나 칼스와 결혼해요.」


「칼스?!」


슈타이너가 멈춰 섰다.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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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회 - 2부 24화 잘못된 해석 21.04.25 6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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