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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거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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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작품등록일 :
2021.02.13 22:03
최근연재일 :
2021.07.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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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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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회 - 2부 14화 전쟁의 냄새

DUMMY

14. 전쟁의 냄새


「아레나? 칼레브 아레나에서 경기를 하자고?!」


오컴 교장의 인중에 도끼자국 주름이 깊게 파였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점입가경이었다.


「관람료도 받아야 합니다. 인당 일 데나리온. 수익은 재정부와 드래곤 자원청이 반씩 나눠 갖는 걸로.」


칼레브 아레나.


토목의 달인이었던 로마누스인들은 식민지 어디든 세 가지를 꼭 지었다. 목욕탕, 수도교, 그리고 아레나 경기장.


수도 누크 인구의 절반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아레나는 그들의 신전이 있던 타루스 라는 누크 주변 휴양도시에 있었다.


왕국 시절에는 귀족들의 마상 토너먼트나 연극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육제 기간 공설 바자회장 내지는 성령 강림절 이후 밀 수확철에 도매시장으로 종종 쓰는 정도였다. 타루스 옆이 누크로 흘러가는 롬강의 상류였기 때문이다.


「무슨 자랑 났다고 왕당파에게 우리 아랫도리를 먼저 보여주자는 건가?」


「오컴 공.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떠보는 투로 슈타이너가 말을 이었다.


「이번 결투로 거세학교 폐지론은 자취를 감출 겁니다.」


「무슨 헛소리요, 슈타이너 경?」


언성을 높이는 재정담당관에게 슈타이너가 어깰 으쓱하며 대꾸했다.


「전시행정의 달인이신 울리히 경이 그걸 모르시겠소?」


「뭐라고?!」


「회의 중에 뭣들 하는 거요?」


울리히가 참지 못하고 일어서자 교감인 브뤼헤 경이 두 사람을 꾸짖으며 교통정리를 했다.


「슈타이너 경, 나 역시 자네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자세히 읊어보시게.」


「스승님, 헤라클레스와 아테네 여신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으십니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술 한 동이만 가져다주십시오. 이 주제로 우린 밤새 토론할 수 있습니다. 왜냐? 싸움 구경은 재밌으니까요.」


「재미라.」


슈발리에 학과장 스벤 경이 감을 잡았는지 고갤 끄덕였다. 슈타이너가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께서는 이 결투가 백해무익이라 하셨는데 왜 그렇습니까?」


「당연한 거 아니오! 누가 이겨도 피해를 보는 건 우리 드래곤 거세학교요! 칼스가 이기면? 명백히 경의 도제인 그 촌놈과 차석자인 클레어를 꺾은 것이니 그가 수석이 되는 게 자명하지. 내 말 틀렸소?」


「맞습니다.」


「그럼 여론도 칼스에게로 기울겠지. 울리히 경, 수석 졸업한 볼 브레이커스의 정치적 특권이 뭐요?」


「임기 1년의 원로원 백인회의 비상임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슈타이너 당신이 더 잘 알 거 아닌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학과장들을 둘러보며 물 한 잔을 마신 뒤 교장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땐 거세학교 폐지 법안이 조기 통과될 거요. 꽤나 시끄럽게 말이지.」


기세등등해진 울리히가 교장을 거들었다.


「만약 궁드르디 그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기적 같은 확률로 이겨도 문제입니다. 그 또한 학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개망신이 아닙니까?」


울리히가 학과장들을 스윽 돌아보며 묻자 아무도 답이 없었다. 암묵적 동의였다.


「변방에서 온 촌놈이 4년 간 심혈을 기울여 교육한 거세학교 최고의 인재를 쓰러뜨렸다? 왕당파들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구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거세학교 폐지론을 들고 나올 게요!」


‘고양이 쥐 생각하기는. 그게 네 놈이 열 낼 일은 아니지.’


애초에 지금 교장과 재정담당관은 왕당파에서 공화파 일색인 거세학교 교직원을 견제하기 위해 박아 놓은 앞잡이들이다.


왕당파들은 궁극적으로는 거세 학교를 폐쇄하고 자신들의 가장 큰 고객이자 물주인 니므롯 제국에 더 많은 드래곤 가공 산업 이권을 넘겨주길 원하고 있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시장개방과 해외자본유입을 통한 산업의 고도화와 경제 활성화. 하지만 두려운 것은 민심이다.


왕당파는 거세학교 폐쇄가 설익은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의 역풍을 맞지 않고 조용히 진행되길 바랐다. 그래서 시끄럽게 결투니 뭐니하는 과정으로 칼스의 존재와 그가 비상임위원이 되어 법안 표결에 참여하는 등의 상황이 여론에 오르게 되는 일을 극도로 꺼렸다. 피와 땀으로 지켜온 공화정의 가치를 부정하는 매국노들 같으니!


슈타이너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호기롭게 한 술 더 떴다.


「이번 결투는 시민들에게 볼 브레이커스들의 실력을 선보일 최고의 볼거리입니다.」


「볼거리라.」


브뤼헤 경이 눈을 감고 고갤 끄덕였다. 말수 적은 기욤 교수도 오랜만에 한 마디 거들었다.


「일리 있소. 이제 우직함만으로는 안 됩니다. 쇼맨십도 필요하지요.」


「괜히 로마누스인들이 1년 내내 아레나에 사자와 호랑이를 풀어놓고 포로로 잡은 반달족과 외레순드인들을 싸움 붙였겠습니까?」


힘을 얻은 슈타이너가 다시 한 번 호소하자 대부분의 학과장들이 고갤 끄덕였다.


「괴룡 에피메테우스를 잡은 영웅 궁드르디와 거세학교 수석 칼스의 대결.최고의 흥행요소입니다. 제대로 된 볼거리를 제공한다면 세금낭비니 학교폐지니 하는 여론도 자취를 감출 겁니다.」


무엇보다 슈타이너의 주장이라 더 설득력 있었다.


오늘의 슈타이너를 있게 한 것은 불세출의 실력도 있지만 뛰어난 자기연출과 대중 친화적 행보 때문이었다.


광장, 극장, 시장, 항구에서 그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용담을 대중에게 알렸다. 사비를 털어 연대기 작가와 필경사들을 매수하고 모험담의 출판을 장려했다.


볼 브레이커스단의 수장으로서 매년 상당한 수입을 거두면서도 집세내기도 빠듯하게 살아가는 데는 그의 막대한 개인홍보비용지출도 한 몫 하고 있었다.


「서사라는 것은 한 번 흥행을 시작하면 제방 무너지듯 사방팔방에서 다양한 판본이 쏟아지는 법. 그리고 소비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지요.」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슈타이너가 겪은 일화들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옛 영웅 신화처럼 수많은 음유시인의 노래와 연극으로 소비되었다.


대중은 슈타이너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하늘을 찌르는 그의 인기와 친근함은 드래곤 거세학교 존립에 강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래도 두브라바 브릿지에서 죄인처럼 숨어서 시합을 치르게 하실 겁니까?」


- 칼레브 아레나가 좋소. 찬성입니다.


- 저도 찬성.


- 슈타이너 경의 수제자가 뭔가 보여주길 기대하겠소. 저도 찬성.


슈타이너가 교장과 울리히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한 술 더 뜨는 제안을 추가했다.


「이런 멋진 대결에 겨우 남들처럼 말을 타고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은 드래곤 거세학교 대표들입니다. 마땅히 드래곤을 타고 싸워야지요. 마상창술이 아닌 용상창술로 대결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


로쉐가 궁드르디 일행을 위해 제공한 연습장은 누크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황무지에 은밀히 숨겨져 있었다.


롬강 상류에서 갈라져 나오는 레무스 강이 이곳을 지났다. 이곳은 사방 수천 헥타르에서 짠물이 나오고 유황냄새가 나는, 말 그대로 버려진 땅이었다.


궁드르디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운(漕運)에는 쓸모가 있을지언정 농지나 초지의 가치는 전혀 없는 이 일대를 인색하기로 유명한 뤠이벡 상업조합이 구매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여기만한 곳도 없더군요.」


궁드르디의 속마음을 읽은 것일까. 모래평지를 한 시간 째 가로질러 달리던 로쉐가 뒤따라오는 궁드르디와 클레어 그리고 트레이너로 고용된 알라릭을 돌아보며 말했다.


수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자 물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무지를 붉게 물들인 퉁퉁마디와 갯개미취, 갯방풍 등 염생식물이 자라는 수풀이 광활하게 펼쳐진 것이 보였다.


태양을 등지고 멀리 강과 바다가 합류하는 모래톱 위에 세워진 목책과 요새의 실루엣이 보였다.


가문이나 길드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용병으로 보이는 자들의 머리가 가끔 망루 개구부 사이로 슬쩍 비칠 뿐이었다.


‘니자리 족(族) 용병들인가. 이거 위험한데.’


니자리 족.


이들은 니므롯 제국을 세운 라멕 족속과 먼 사촌지간인 민족이다. 독특한 신비주의 신앙과 집단생활을 하며 암살을 주업으로 자들인지라 산전수전 다 겪은 알라릭도 마주치기 꺼리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대체 왜 여기에?


「수도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니.」


리피피를 타고 새벽 내내 달려 반쯤 꾸벅꾸벅 졸던 클레어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냄새는?」


궁드르디가 킁킁거렸다.


낯설지 않은 냄새가 성채 안 공방 굴뚝에서 새어 나왔다. 궁드르디는 고향에서 올 해 첫 돼지 불까기를 하던 날 아버지 프롬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올 해는 유독 수놈이 많이 태어났어요. 귀찮게.


- ‘돼지 코’라 하지 않니. 이놈들이 냄새를 아는 거다.


- 무슨 냄새요?


- 전쟁 냄새. 봄이면 산맥 너머에서 남풍이 분다. 거기에 도시 냄새가 타고 넘어 와. 제련소에서 태우는 숯 냄새, 모루에 쳐대는 금속 냄새, 병기창에서 만든 염초 화약 냄새.


「전쟁의 냄새군.」


혹시 있을 산적의 매복을 경계하며 뒤에서 호위하던 알라릭이 투구 바이저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재수 없을 징조라며 프롬이 아들 궁드르디에게 말했던 그 ‘냄새’가 이곳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


「외부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열어라!」


로쉐의 외침에 용병들이 내리닫이 쇠살문을 끌어 올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뜻밖의 장관이 펼쳐졌다.


황무지 모래톱에 세워진 요새는 뤠이벡 조합이 운영하는 거대한 비밀 군수물자 제조창이었다.


망루입구 쪽부터 목책을 따라 수십만 개의 화살대가 뒤틀리지 않게 건조대에 걸려 있었다. 각 단계마다 건조, 가공, 화살촉 조립, 깃털 붙이기 작업이 분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성능 테스트를 위해 고용된 외레순드의 궁사들도 보였다.


슉, 슝!


말근육 같이 팽팽한 삼두근을 불끈거리며 외레순드의 흑인병사들이 활을 쏘았다. 화살은 가뿐히 목책을 넘어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엄청난 장력이군.」


어지간한 알라릭도 그들의 완력에 놀라 중얼거렸다. 로쉐가 미소를 지었다.


「외레순드의 궁사들은 보통 활의 두 배가 넘는 장력을 다루도록 훈련 받습니다. 일반 화살의 두 배가 넘는 비거리와 철판도 뚫는 관통력은 그들이 세계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하게 된 비결이지요. 여기에 우리 뤠이벡 조합이 날개를 달아 줄 예정입니다. 니코스, 활을 줘.」


로쉐가 작업 총감독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손짓하자 니코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방금 검수를 끝낸 롱보우를 가져왔다.


활은 길이가 무려 2미터에 가까워 아담한 체구인 로쉐보다도 컸다.


「활대는 드래곤의 갈비뼈로, 시위는 텔레마코스 종 드래곤의 아킬레스건을 가공해 만들었습니다. 장력이 고래힘줄보다도 강력하죠.」


로쉐가 궁드르디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며 말했다. 어찌나 팽팽한지 시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리피피가 기분 나쁜 듯 거친 콧김을 푹푹 내쉬었다.


「미안, 이 녀석이 동족의 주검을 알아봤나 봅니다.」


로쉐가 멋쩍게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텔레마코스 종만이라도 사육해서 대량생산하고 싶은데 야생 드래곤이 아니면 이상하게도 이런 강한 근육을 얻을 수 없더군요.」


「당주님, 여길 좀.」


요새 밖에 대기하고 있던 인부들이 표적판에 붙여놨던 판금갑옷과 미늘조각을 이어붙인 찰갑을 가져왔다.


「이 정도면 이백 야드까지 유효사격이 가능합니다.」


「수고했다. 기술표준으로 채택해 삼교대 증산해라. 납기일을 못 맞추면 네 목을 베겠다.」


사무적이고 싸늘한 말투였다. 하지만 판금갑옷의 엄심갑을 뚫어버린 보드킨 화살촉(송곳모양의 화살)을 바라보는 로쉐의 표정은 만족스러워보였다.


「미늘갑옷은 빗맞았나.」


관통된 판금갑옷과 달리 화살이 꽂히지 않은 미늘갑옷을 보며 궁드르디가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로쉐가 손짓을 하자 갑옷을 회수하러 갔던 인부가 현장에서 주워온 화살을 로쉐에게 건넸다.


화살촉의 앞부분이 충격으로 뭉툭해져 있었다.


「이 판금갑옷은 기존 외레순드 해군이 입던 겁니다. 그들은 최고의 궁수들이지만 남쪽 대륙의 단조기술은 아직 우리에 미치지 못하죠.」


이번에는 미늘갑옷의 화살 맞은 부분을 가리키며 로쉐가 말했다.


「수출용으로 개발한 미늘갑옷입니다. 보다시피 찰갑이 화살을 맞아 살짝 휘었지만 이 정도로는 전장에서 격렬히 움직이는 목표물에 치명상을 내지 못합니다.」


로쉐가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며 흐뭇한 듯 말을 이었다.


「최근 도입한 냉단법(冷鍛法 : 철을 달구지 않고 두들겨 성형하는 단조법)이라는 기술 덕이죠. 니므롯의 다메섹 강철(鋼)을 따라잡을 일도 멀지 않았습니다.」


「로쉐, 그나저나 이런 얘기할 때마다 너 엄청 흥분하는 거 알아?」


궁드르디는 수도원에서 양피지에 필사하며 카롤링거 소문자체를 찬양하거나 시테 섬을 향할 때 마차 안에서 성 패트릭 대성당의 육분볼트, 늑골궁륭 따위 건축 이야기를 하며 침을 튀어대던 로쉐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로쉐는 낯빛을 고치고 정색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는 뼛속까지 장사꾼입니다. 돈 벌 생각하니 흐뭇할 뿐이죠.」


가식적일만큼 해맑게 웃어 보이며 로쉐가 손벽을 치고는 식당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견학은 이 정도로 하고 훈련에 앞서 아침식사를 모시겠습니다. 식당에 꿀 섞은 과자와 오트밀, 말린 무화과를 준비했습니다. 아참, 일루리사트의 하몽을 넣은 호밀빵도요.」


「일루리사트의 하몽이라고?!」


한동안 맛보지 못한 고향음식 때문에 향수병 증상을 보이던 궁드르디가 환성을 지르며 리피피에서 내렸다.


그러자 궁드르디가 안장에서 내리기 무섭게 리피피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앞발을 들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악!」


「클레어! 괜찮아?」


순식간이었다.


궁드르디가 내리자마자 리피피가 클레어를 안장에서 떨어뜨렸다. 골반을 다쳤는지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며 클레어가 화를 냈다.


「멍청이! 먼저 내리면 어떡해!」


「미안. 고향음식에 순간 흥분해서.」


이상한 일이었다.


리피피는 오직 궁드르디의 말만 들었다. 고집 센 망아지 같은 이 젊은 수컷 텔레마코스드래곤은 궁드르디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궁드르디가 타고 있을 때만 다른 사람이 합승이 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등자는 궁드르디만 착용할 수 있었다.


사실 야생 드래곤을 길들였다는 것 자체가 금시초문인 일이다. 드래곤 거세학교 의학학과장 와트 박사도 놀라 학계에 보고하겠다는 것을 슈타이너가 말렸을 정도다.


클레어가 리피피 위에 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궁드르디가 고삐를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없어져.」


「무슨 소리야? 이제 와서.」


다른 부유한 거세학교 학생들과 달리 클레어는 말은커녕 노새도 타본 적이 없었다.


학습능력이나 신체능력은 압도적이지만 이주일 뒤에 있을 칼스와의 자우스트 대결에서 절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클레어가 튜닉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며 알라릭이 한숨을 쉬었다.


「기초무예가 출중하다한들, 동물위에서의 움직임은 전혀 달라. 자우스트 기술을 두 주 안에 속성교육하기란 쉽지 않소. 하물며 탈것이 드래곤이라면.」


「그걸 해내라고 궁드르디 경이 당신을 고용한 거 아닙니까?」


알라릭의 푸념에 대꾸하던 로쉐에게 총감독 니코스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잠시 나 좀 봅시다.」


로쉐가 알라릭에게 공방 모퉁이로 따라오라고 고갯짓을 한 뒤 궁드르디와 클레어에게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먼저 식사하십시오. 저는 알리릭 씨와 할 말이 있어서.」


***


두 사람을 떼어놓은 로쉐가 알라릭을 건물 모퉁이로 인도했다.


방수용 타르를 끓이는 곳이었다. 로쉐가 인부들을 물러가게 했다. 그러자 니코스가 알라릭 옆에 나무상자를 하나 놓았다.


「뭐지?」


로쉐가 말없이 눈짓으로 열어보라는 시늉을 했다.


「이것은?!」


상자에는 창백하게 핏기가 가신 채 입을 벌리고 있는 토비아스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당신 쫓기고 있었지요?」


「그는 내 형제였소.」


참담한 표정으로 알라릭이 말하자 로쉐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럼 이것으로 당신은 확실한 부족의 배신자가 된 셈이군.」


한숨을 쉬며 상자를 덮는 알라릭에게 로쉐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한 식경 전 퉁퉁마디 수풀에 매복해 있던 자들을 우리 용병들이 발견해 모두 죽였소.」


‘뱅거, 에리크, 우서베르그였겠지.’


알라릭의 가슴이 미어졌다. 지난 밤, 은퇴 후 새 출발을 선언한 자신을 진심으로 축복해주던 형제들이 아닌가!


그런 그들이 자신을 추격했다? 그 짧은 사이에 훈네릭의 새 지령이 내려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들 외에도 훈네릭은 이미 누크에 알게 모르게 세작을 이중삼중으로 심어놓았다는 말이 된다.


「내키지 않지만 니자리 족 암살자들을 고용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요. 여길 발견한 자들을 살려둘 순 없지.」


「나도 죽일 셈인가?」


「천만에. 나는 장사꾼이오.」


로쉐가 타르가 끓어오르는 솥 옆에 있는 철문 손잡이를 열며 웃었다.


「이 안에 당신에게만 보여줄 놀라운 게 있지.」


알라릭은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덫에 걸려들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굴뚝에서 검은연기를 쉼 없이 내뿜는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전쟁의 냄새가 그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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