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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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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작품등록일 :
2021.02.13 22:03
최근연재일 :
2021.07.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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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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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회 - 2부 13화 결투 전야(前夜) PART.2

DUMMY

13. 결투 전야(前夜) PART.2


외레순드 해상조합.


조차지 구석 해군항만시설을 99년 간 임대한 이들은 공화국의 수도 누크에서 활동하는 4대 조합 중 가장 이질적인 존재다.


북반구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는 드래곤 가공수출업과 금융업의 최강자 자이더르 상업조합.


고급 필사본과 모직물, 철제 무구 대량생산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뤠이벡 상업조합.


영세상공인들이 모여 염색과 방직, 비밀리에 연금술에도 손을 뻗고 있는 작지만 단단한 포즈냐뉴 상업조합.


모두 둠 브링거 공화국 출신들이 만든 조합이지만 외레순드 해상조합은 남쪽 대륙에서 온 순수 외국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지.」


궁드르디가 알라릭을 만난 곳은 키비악(Kiviak : 바다표범의 내장을 뺀 뒤 뇌조나 바다쇠오리 수백 마리를 넣어 썩혀 먹는 발효식품)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항만 끄트머리 외레순드 해상조합 조차지의 한 술집이었다.


알라릭은 포트와인에 잡화꿀을 섞어 만든 뱅쇼를 마시며 동료들과 대화중이었다.


「누크에서는 더럽게 비싸네. 고향에선 발에 차이는 게 하몽인데.」


궁드르디가 크랜베리 곁들인 하몽 술안주를 내놓자 알라릭이 자리를 권했다.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고?」


「여기 술값이 제일 싸더라고. 저 악취 때문에.」


생각 깊은 척 말했지만 사실 주변 여관과 술집을 한나절 뒤져 마지막에야 찾아온 곳이 여기었다.


「드시겠수?」


「칫솔 없어. 사양할게.」


쇠오리 똥구멍부터 내장을 짜먹던 알라릭의 동료들이 키비악을 권했으나 궁드르디는 점잖게 거절했다.


「외레순드 조합의 뱃사람들은 우리 못잖은 전사야. 자연에 맞서려면 이런 걸 먹을 줄 알아야지. 토비아스, 뱅거, 에리크, 우서베르그. 여긴 일루리사트에서 온 궁드르디 씨.」


「반갑수.」


알라릭이 동료들을 소개하자 토비아스라는 이름의 남자가 키비악 내장에서 흘러내리는 국물을 손에 묻힌 채 궁드르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궁드르디가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자 토비아스가 우악스럽게 잡는 바람에 국물이 손가락에 묻었다. 냄새를 맡아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궁드르디가 알라릭에게 말했다.


「얘기 좀 할까? 괜찮은 거래가 하나 생겨서 말야.」


***


도크 근처에 정박한 어부들이 정어리기름으로 불을 지피고 그물을 손질했다. 불길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알라릭이 고갤 저었다.


「죽지 않음 다행이군.」


「그러니까 가르쳐 달라고.」


「우리 반달족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말을 타.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냐.」


「나도 소는 많이 타봤어.」


「초보는 말 위에서 랜스를 들고 있기도 힘들어.」


「말을 타는 게 아니야.」


「그럼?」


「드래곤이지.」


알라릭이 헛웃음을 지었다.


「묏자리나 알려줘. 고향 가는 길에 술 한 잔 부어주지.」


「농담 아냐. 그리고 당신 나한테 빚졌어. 도와달라고.」


「물론 빚은 갚아야 하지만.」


가죽부대에 채운 물로 입을 행구면서 알라릭이 물었다.


「시합이 겨우 일주일 남았는데 뭘 가르쳐달란 건가?」


「내 파트너에게 자우스트 기술을 가르쳐줘. 당신들 대륙 최고 기마병이잖아.」


「음? 자네가 아니라?」


「난 뒤에 타기만 할 거야.」


알라릭이 고갤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이군. 파트너 실력은?」


「에피메테우스 사냥 때 그녀가 있었으면 당신 대장도 안 죽었을 걸.」


알라릭이 정어리기름 태우는 불길을 멍하니 응시하다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


「그녀? 설마 자이더르 조합 별궁에서 본?!」


「그 설마야.」


그랬군. 그 여자라면.


알라릭이 고갤 끄덕였다.


「난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아. 그녀라면 해 볼 만하군.」


'이 기회에 거치적 거리는 감시꾼들도 떼어놓고 말이지.'


알라릭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궁드르디 덕에 행커의 혀고기는 뤠이벡 상업조합에 좋은 가격으로 팔았다. 그리고 방금 외레순드 해상조합과 행커의 심장도 거래를 마쳤다.


덕분에 더 이상 누크에 머물 명분이 없어져 고심하고 있던 차였다.


'누크에 계속 머물면서 주변 정보를 수집해라. 올 겨울이 오면 머지않아 수도에서 비둘기똥 오십 세켈가격이 삼십 데나리온이 될 때가 올 것이다. 너는 그때 다시 외레순드 조합을 찾아가라.'


알라릭은 위대한 게이세이크의 유언대로 누크에 남아 둠 브링거를 둘러싼 각국의 동향을 살필 생각이었다. 하지만 훈네릭이 붙여놓은 감시자들을 떼어놓을 명분이 없었다.


별 이유도 없이 혼자 수도에 머물겠다고 하면? 대번 의심을 하겠지. 그렇다고 주둔지인 브로켄 산맥으로 돌아간다면? 그 땐 숙적인 훈네릭이 그를 죽일 것이다. 왕은 둘일 수 없으니까.


하지만 취업이 되어 누크에 머물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알라릭은 가족이 없다. 새로운 곳에 취업이 되고 숙식만 해결되면 그곳이 고향이다. 퇴역군인에겐 축하받을 일이다. 그러니 진로가 결정되어 수도에 남겠다고 하면 동료들도 딱히 누크에 머무는 걸 막지 않을 것이다.


토비아스를 비롯한 동료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어디까지나 혹시 모를 알라릭의 판매수익 횡령을 감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행커의 심장을 팔 때 약간의 문제가 생겼었다.


***


「알라릭. 왜 행커의 심장을 두 개 다 외레순드 조합에만 팔려 하시는 겁니까?」


훈네릭의 측근이자 감시자 중 가장 의심이 많은 토비아스가 따졌다.


「위대한 게이세리크의 유훈이 있었다.」


「하지만 시세를 알아 보셨습니까? 낮에 만난 뤠이벡 조합 측은 정확히 30% 더 높은 가격에 매입을 희망했습니다.」


독자들은 행커의 혀와 심장이 드래곤 가공 부산물 중에서도 최고가에 속하는 상품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중에도 최상급 행커의 심장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행커의 혀가 같은 무게의 금값이면 심장의 경우 그 열 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러니 시세에 30%나 비싸게 부르는 곳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하면 의심을 사는 게 당연한 일.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유훈이니 그렇지.」


‘알라릭 이 놈, 외레순드 조합 녀석들에게 얼마를 커미션으로 받은 거지?’


알라릭이 본색을 드러냈다고 생각한 토비아스가 다소 무례한 어조로 따졌다.


「증명할 수 있습니까?」


「뭐라고?」


일촉즉발.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알라릭은 언제든 칼을 뽑을 수 있는 자세로 토비아스 앞에 섰다. 토비아스가 머릴 굴렸다.


‘좁은 실내. 알라릭은 단검을 주무기로 하는 매복전의 고수. 장검이 주무기인 내가 불리하다.’


비록 용명이 만신전에 오른 게이세리크나 훈네릭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알라릭 또한 ‘살수(殺手)’라는 별명이 붙은 기습과 매복전의 고수.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1 대 4인 상황. 지금 붙으면 서로 치명상이다. 다행히 알라릭은 무모하지 않아. 속내를 떠봐야겠다.’


「알라릭. 죄송하지만 나는 훈네릭의 대리인으로서 당신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정중했지만 일종의 경고였다.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 역시 증명할 수 없어 답답하네만, 분명 게이세리크께서 죽기 전 내게 말씀하셨네.


‘행커 사냥이 끝나거든 그 심장을 가지고 둠 브링거의 수도 누크로 가라. 지체하지 말고 그것들을 외레순드 상인조합에 팔아라. 가격은 흥정하지 말고 부르는 대로 팔도록 해라.’


이렇게 말일세.」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알라릭이 계속해 말을 이었다.


「나도 의심 많은 성격인 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래서 게이세리크께 물었지. 꼭 외레순드 조합이여야 하냐고. 그리고 이 말은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정신을 집중해 남긴 게이세리크 님의 유훈이 확실하다네.


‘자이더르나 뤠이벡이나 포즈냐뉴 조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반드시 외레순드로 가도록 해라.’」


토비아스도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혹시나 돌아갔을 때 떨어질지 모를 훈네릭의 징계가 두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온 뱅거, 에리크, 우서베르그는 한 때 게이세리크의 직속 부관을 지냈던 자들이었다.


딱히 훈네릭이나 알라릭의 알력싸움에서 누구 편을 들거나 정치색을 드러낼 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의 무미건조한 보고 여하에 따라 자칫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가져온 행커의 심장이 두 개니 하나는 뤠이벡 하나는 외레순드에 파는 걸로.」


알라릭은 잠시 머뭇거렸다. 게이세리크가 그토록 신신당부했는데. 하지만 타협 없이 이 상황을 뚫고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망설이는 그에게 눈치 빠른 토비아스가 쐐기를 박았다.


「물론 나는 알리릭님이 진실을 말하는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위한 안전장치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이십 년 이상 함께한 전우의 충고요.」


알라릭은 잠시 서글퍼졌다. 전장과 정치는 다르다. 생즉필사 필사즉생의 정신이 통하질 않는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 검은색과 흰색 사이 중간지대를 어제의 전우와 끝없이 타협하고 계산하며 살아 나가야 한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장수의 숙명이다.


「수락하겠네.」


토비아스가 두 손으로 알라릭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진심이 느껴지는 악수였다.


「다시 한 배를 타게 됐군요. 저는 레이붹 상업조합에 계약서를 쓰고 오겠습니다. 저녁에 외레순드 조차지 술집에서 뵙지요. 거기 키비악이 유명한 가게가 있다더이다.」


‘게이세리크 님, 죄송합니다. 이 약속만큼은 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유훈은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알라릭은 그 땐 미처 깨닫지 못했다.


게이세리크의 유훈을 어기고 행커의 심장을 뤠이벡과 거래한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의 씨앗이 될지를.


***


「당장 계약하지. 대신 날 정식으로 고용해주게. 용병이든 검술선생이든. 돈은 안 받아.」


「지금? 여긴 공증인도 없는데?」


「거세학교 학생이면 자네도 [녹색벨벳사위]잖아? 이 나라에서는 자네의 신분이 좋은 보증이 되지.」


궁드르디는 잘 몰랐지만 [녹색벨벳 신분증]은 상당히 유용한 물건이다.


공화국이 인정하는 고위공직자 혹은 그 예비후보자만 소유할 수 있어서 대출이나 상거래 시 높은 신용을 보장해주었다. 궁드르디도 엄연히 국가가 인정한 예비 고위공직자이기 때문에 그의 보증은 효과가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직접 서류를 써주지.」


「촉박하니 바로 내일부터라도 시작하세. 그리고 괜찮은 숙소를 좀 알아봐줬으면 해.」


「숙소?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눈에 안 띄고 저렴한 곳. 치외법권이라 조차지가 좋긴 한데 너무 비싸서 말이지.」


궁드르디가 잠시 턱을 괴고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포즈냐뉴 조합 조차지 쪽에 묵을 만한 저렴한 곳을 하나 알고 있어.」


「소개해 주겠나?」


「방주인에게 물어보지. 나랑 꽤 친하거든.」


***


슈타이너는 자신의 솥뚜껑만한 손바닥에 놓인 스물다섯 개의 동전을 일일이 세어 보았다.


「그 반달족 친구는 잔돈 밖에 없다 하던가?」


「죄송합니다. 안주 먹고 거슬러온 돈이라.」


스승은 중지를 갈퀴처럼 이용해 손바닥 위로 끌어올리는 식으로 동전을 세며 말했다.


「외레순드 조합 조차지 술집이군. 키비악 냄새가 동전에 배었어. 하아, 왼팔이 없으니 돈 세는 것도 불편해. 뭐야, 이거 이십 사 캉탈이잖나?」


「이십 오 캉탈 맞습니다. 몇 번 확인했어요.」


「아, 밑에 하나 깔렸군. 좋아. 그 친구 며칠 묵을 거지?」


「결투 직전까지입니다.」


「조식은 없네. 일 데나리온 더 내면 귀리죽은 나눠 줄 순 있네.」


「그렇군요. 역시 나라의 큰 그릇이십니다.」


빈정거리는 궁드르디를 슈타이너가 현관으로 안내하며 신을 벗으라는 시늉을 했다.


「자네가 싼 똥 처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게. 이쪽으로.」


염동력으로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살금살금 이층으로 올라가며 슈타이너가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주인댁 방문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 네 번째 계단 조심해. 디딤판이 뒤틀려서 밟을 때 시끄러워.」


「슈타이너 경! 고해성사는 꼬박꼬박 하고 계시지요?! 경전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반쯤 열린 주인댁 방에서 여주인 칼망 할멈의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슈타이너가 잽싸게 말허리를 끊고 여주인의 다음 레퍼토리를 가로챘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고린도전서 7장 9절)’ 부인, 저는 절제할 수 있답니다. 보다시피 여자가 아니라 제 제자와 함께 있고요.」


부인의 한 숨 소리가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명성에 기댄 신용도 한계가 있는 법이에요. 슈타이너 경, 고난주간에는 경건히 보내고 싶군요. 그리고 제발 그 삐걱거리는 침대 스프링 좀 고치십시오.」


안주인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방문을 닫았다. 헐거워진 경첩 쇳소리가 그녀의 야유처럼 들렸다.


「이런. 에피메테우스도 내 발걸음 소리는 눈치 못 챘었는데.」


「그러니까, 침대 위에서 스프링이 고장 날 정도로 '그걸' 하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스승님.」


「자네까지 이거 왜 이래. 마법실험을 할 때 가끔 시끄러운 것 뿐. 부인이 오해한 거야. 들어오시게.」


***


스승의 방은 평범했다. ‘마법사들은 원래 뒤가 구린 지하실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로쉐의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햇살 잘 드는 항구 방향으로 소박한 책상이 놓여 있었고 야전 침대보다 조금 나은 낡은 침대가 난로 옆에 있었다. 가구는 그게 다였다. 대신 수많은 장서가 천장 높이로 뒤죽박죽 쌓여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번 결투, 반드시 이기게.」


「당연하죠. 베로니카는 제 약혼녀입니다.」


「뭐 그것도 그거지만. 공화국의 명운이 달린 싸움일세.」


「이 사랑싸움에요?」


슈타이너가 팔을 조금 들었다. 그러자 염력으로 창가의 커튼이 모두 닫혔다.


「자네도 이제 알 때가 됐지. 주변에서 별 말 않던가? 내가 자넬 수도에 데려온 이유에 대해?」


「원로원 비상임위원회에 대해 이야기 하더군요.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궁드르디는 자이더르 상업조합 여름 별궁에서 로쉐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줌세. 드래곤 거세학교 수석 졸업자는 임기 1년인 원로원 비상임위원회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네. 속칭 ‘5인회의’라고 불리지. 한 잔 하겠나?」


「물로 주십쇼.」


슈타이너가 자리를 권하고 유리잔을 두 개 가져와 각각 절반씩 따랐다. 자세히 보면 궁드리디에게 건네는 잔에 물이 더 적었다.


「자네가 들고 있는 잔이 공화파, 내 잔이 왕당파라 치세. 현재 공화국 원로원 구성은 공화파 세력이 45. 왕당파가 50이야.」


슈타이너가 염동술로 주전자를 공중에 띄우더니 궁드르디의 잔에 물을 조금 더 채웠다.


「나머지 카드가 비상임위원회 회원인 '5인회의'야. 이들이 공화파 정책입법의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네.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 투표에서 동수가 나올 때 의장이 가부결정권을 갖는 것)라고 하지? 최근까지는 5인회의 전원이 친공화파 성향이었기 때문에 공화파인 의장의 의결권에 큰 문제가 없었네만 이제 그 균형이 깨지게 생겼어.」


「칼스가 그 자리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절 데려오신 거고요.」


「공화주의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렇네.」


슈타이너가 홍차 티백을 유리잔에 담궜다. 붉은 찻물이 잉크처럼 물에 퍼져 나갔다.


「최근 비상임위원인 군나르 서기가 임기 시작 한 달 만에 사망했네. 그는 드래곤 거세학교 존립과 드래곤 사냥 쿼터제 등 기존체계에 호의적이었어.」


「암살인가요?」


슈타이너가 고갤 끄덕였다.


「물증은 없어. 문제는 다음 달 긴급 상임위가 소집되면 승계 1순위가 칼스란 걸세.」


「기막힌 타이밍에 제가 태클을 건 셈이군요.」


「목소리 낮추게.」


궁드르디는 스승이 가리키는 방문 쪽을 바라봤다. 문아래로 스며드는 달빛이 누군가의 발그림자에 살짝 가려졌다. 갑자기 슈타이너가 엉뚱한 화제로 언성을 높였다.


「자네 말이야, 젊은 처자나 주목하라고 내가 거세학교에 추천했었나!」


문밖을 보더니 갑자기 정색하는 슈타이너의 반응에 궁드르디가 눈치 빠르게 장단을 맞춰주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도서 11:9).」


「오! 신께서 절 용서하시길.」


능청스레 받아치는 궁드르디에게 엄지를 치켜 주며 슈타이너가 말을 이었다.


「벌로 이번 한 주 낮 동안 금식하고 회개기도문을 필사하게. 저녁식사는 한 끼 물과 무교병만 들도록.」


「알겠습니다.」


문 밖에서 엿듣던 발그림자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슈타이너가 고갤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바쁘더라도 주일에는 로쉐가 머무는 성 게오르규 수도원에 가주게나.」


「진짜 경전 필사하라고요?」


「거기서 로쉐가 누굴 만나 무슨 얘길 나누는지 좀 알아봐 주게.」


「로쉐를요?」


난롯가 화톳불에 스승의 얼굴 반쪽이 붉게 빛났다. 나사 풀린 중년 아저씨 같던 스승의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날 믿나, 궁드르디 경?」


「잘 모르겠습니다.」


「이해하네. 믿어 주게. 난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고 뭔가 있어, 그 친구.」


뜻밖의 말에 궁드르디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항상 거의 맞춘 퍼즐이 그 친구 때문에 완성되지 않는 느낌이야.」


「뭐, 어찌됐든 저는 지금 그와 한 배를 탄 거 같은데요.」


난롯가에 놓인 부지깽이를 들고 마상 창술 흉내를 내며 궁드르디가 말했다.


「자우스트 훈련에 쓸 장비와 장소 인력 모두 이번에 로쉐가 비밀리에 지원해 주기로 했거든요.」


눈을 감고 슈타이너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잘 됏군. 하지만 동행은 길지 않을 걸세. 이쪽도 로쉐를 이용하는 게 좋겠지. 잘 관찰해 주게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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