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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거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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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작품등록일 :
2021.02.13 22:03
최근연재일 :
2021.07.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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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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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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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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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 2부 9화 정략결혼

DUMMY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 대주교님의 눈에는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것이 보이지 않으시는지?」


- 비둘기라고?


- 정말이다. 흰 비둘기다.


- 성령의 현현인가?


- 그렇다! 성령께서 자이더르의 당주와 함께 하신다!


별궁 정원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바람잡이도 섞여있었으리라.


정말로 연못 위로 하얀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와 이내 칼스의 어깨에 내려앉았다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칼스 녀석, 제법이군요. 부르크하르트 가문이 한 방 먹었습니다.」


통쾌한 듯 로쉐가 크게 웃었다.


「대주교님 보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기적이오.」


칼스가 자신의 머리에서 대주교의 손을 쳐낸 뒤 속옷 차림으로 물에서 올라와 말했다.


「성령이 내게 세례를 주셨으니 어찌 인간이 내리는 침례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인들이 달려와 칼스의 물기를 닦아주고 다시 화려한 의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금실로 십자가를 수놓은 머리띠를 씌웠다.


영락없는 대관식이자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이었다.


「이, 이런 불경한!」


경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와 침례를 받자 하늘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왔다는 구절이 있다.


둠 브링거 정교회는 이 사건을 ‘성령 세례 사건’이라 부르며 대단히 중요한 절기로 여겼다. 칼스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여기 성령의 비둘기를 본 수많은 목격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기적승인을 요청코자 합니다.」


아르테벨테 대주교는 뜻밖의 봉변에 이를 갈았다.


다른 사람이 이런 짓을 벌였다면 응당 파문이나 마녀재판감이다. 하지만 상대는 공화국과 교회재정에 막대한 지분을 소유한 자이더르 상업 조합의 차기 당주.


게다가 대주교일행은 니므롯과 파사 제국, 남쪽 타시스 대륙에서 온 용병들이 지키는 조합의 여름 별궁 한복판에 와있다.


성인식에 초대받은 각국의 사절들은 또 어떤가. 그들의 시선은 곧 북방의 강소국인 둠 브링거를 바라보는 주변 열강들의 눈이나 다름없었다.


「저 흰 비둘기가 어디서 날아온 건지 설명하지 못하면 성령의 기적이라 볼 수밖에 없잖아.」


「글쎄, 나 같은 이교도 눈에는 그저 잘 훈련된 전서구 한 쌍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군.」


궁드르디가 팔짱을 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언제 나타났는지 알라릭이 곁에서 거들었다. 노련한 중년의 전사는 사건의 맥락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아르테벨테 대주교님, 이곳은 성인식 장소인 동시에 두 가문의 결합을 위한 거룩한 현장 아닙니까?」


대등하게 대주교와 같은 높이의 단에 오른 칼스가 속삭였다.


「제가 이단이라고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설마 귀여운 조카딸을 과부로 만들지는 않으시겠지요?」


‘방심했군. 완패야. 성병 걸린 애송이 놈에게 이 무슨 꼴인가.’


아르테벨테 대주교는 쓴웃음을 지었다.


초대받은 국내외 귀빈들과 세도가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려 있었다. 대주교는 이단 심문관의 자격으로 절대적인 생사여탈권을 갖는다. 하지만 찬란했던 로마누스제국 시절 황제나 신의 대리인인 오늘날의 대주교나 권력의 생리는 매한가지다.


민심, 여론, 인기. 그것이 곧 왕명이고 신의 뜻이다. 거스를 수가 없는 것이다. 대세는 이미 칼스에게로 기울었다.


「주의 이름으로, 칼스 크비슬링의 성령세례를 인정한다.」


귀빈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 칼스, 칼스, 칼스, 칼스!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이더르 상업조합의 완승. 부드럽게 웃으며 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칼스의 모습은 개선장군을 넘어서 선지자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누추한 곳을 찾아 제 침례식 겸 성인식을 축하해 주신 귀빈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제 인생과 공화국에 참으로 복된 날입니다.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분들께 답례품으로 스타디온 금화 두 냥 상당의 [실피움((Silpium) 뇌유(腦油)]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장내가 뜻밖의 선물에 술렁거렸다.


- 실피움 기름이라고?


- 돈 주고도 못 산다는 그 드래곤의 뇌유를?!


실피움은 원래 로마누스 제국인들이 열광했던 최고급 향신료다.


남용으로 수백 전 멸종한 식물이라 파피루스 도감과 당시 주조된 동전에서만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 답례품은 그 향신료의 이름에서 유래한 드래곤의 뇌에서 추출한 기름이었다. 실피움은 산악지대 절벽에 서식하는 드래곤이라 사냥이 까다롭고 사육도 불가능해 수저 한 스푼의 기름가격이 무려 스타디온 금화 반 닢에 달했다.


깊고 진한 향기가 한 방울만 떨어 뜨려도 수백 미터에 진동할 정도라 원액을 수천배 희석해 향수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의 최고급 기름이었다.


- 칼스! 칼스! 칼스!


- 공화국의 자랑, 자이더르의 영광!


- 테르예는 천천! 칼스는 만만일세!


「이거 아무래도 내가 사자새끼를 키운 거 같구먼.」


「사자에게 어찌 개와 같은 자식이 나겠습니까? 당주님.」


귀빈들을 사로잡는 아들의 모습에 당주인 테르예 크비슬링이 기꺼운 듯 웃었다.


그리고 장성한 자녀의 호기로운 모습을 보며 노쇠했으나 여전히 간교한 장사꾼의 우두머리는 잠시 감상에 빠져들었다.


삼백 년 전, 로마누스 제국의 잔존 세력을 몰아내고 음녀의 자궁에 서식하는 드래곤들의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볼 브레이커스가 창설되던 시절. 둠 브링거는 가난한 소국 아니 부족 국가에 불과했다.


지방호족들의 연합체인 초기 왕국의 고리는 느슨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건국왕 칼레브 1세를 신화 속 영웅처럼 떠받들지만 아마도 당시 왕권은 푸딩위에 올려 놓은 체리처럼 언제 누구에게 빼앗길지 모를 위태로운 것이었을 테지.


그에 비하면 오늘 내 아들의 성인식은 어떠한가. 우리의 부와 권세는 왕국 시절 둠 브링거가 아니라 동쪽의 대평원과 삼각주를 다스렸던 옛 제국의 역대 황제들에 견줄 만하지 아니한가.


「이제 우리 자이더르의 시대다.」


반세기 만에 북쪽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상업조합을 일으킨 테르예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기에게 손짓을 했다. 바야흐로 수확의 밤. 때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아쉽게도 테르예 본인은 수치스러운 지병이 깊어 그 영화를 끝까지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들 칼스에게 반석 위에 올려놓은 가문의 번영을 물려준 시조로서 둠 브링거 왕국의 칼레브 1세 못지 않은 존영이 영원토록 기억되리라.


「자리를 빛내주신 귀빈 여러분, 기쁜 소식을 하나 더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성인식에 이어 갑작스럽지만 자이더르의 차기 당주 칼스 크비슬링의 약혼을 발표하겠습니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누구보다 당황한 것은 로쉐였다. 에피메테우스에게 물려가도 태연할 것 같던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뭐야 로쉐, 똥 마려? 저기 자작나무 숲에 가서 싸. 자작나무 나뭇잎으로 똥꼬를 때리면 치질에도 좋지.」


궁드르디가 썰렁한 농담을 던졌지만 로쉐는 넋이 나가 중얼거릴 뿐이었다.


「정략결혼이라니. 한 방 먹었군. 대체 누구지?」


- 신부가 누구지? 레이붹 상업 조합도 알고 있었으려나?


- 로쉐 표정을 봐. 금시초문인거 같은데.


- 이 정도 거사를 소리 소문 없이 진행하다니 자이더르도 보안이 상당하군.


- 신부는 어느 파벌이지? 뤠이벡, 외레순드, 잔존 왕당파? 아니면 포즈냐뉴?


- 아무튼 테르예 당주가 승인한 이 약혼은 원로원 정국에 커다란 변수가 되겠지요.


‘물건이나 팔고 가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수확이군. 오길 잘 했어.’


알라릭과 반달족 세작들은 분주히 귀빈들 사이를 오가며 대화를 엿들었다. 동시에 공화국 정계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약혼식 상대가 어느 파벌에 속하느냐에 따라 공화국의 운명과 국제정세가 요동칠 것이다.’


알라릭은 위대한 마루두크의 후예이자 붉은 수수밭의 게이세리크가 남긴 유언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렸다.


‘올 겨울이 오면 머지않아 수도에서 비둘기똥 오십 세켈 가격이 삼십 데나리온이 될 때가 올 것이다. 너는 그때 다시 외레순드 조합을 찾아가라.’


이 약혼식도 어떤 식으로든 주군이 말했던 예언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위대한 자이더르의 조합의 차기 당주, 칼스 크비슬링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약혼자를 소개합니다!」


조합서기가 하인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하인들이 열주 옆에 설치된 도르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 아 저것은!


귀부인들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별궁 연못의 유리천장 덮개가 열리더니 사슬에 매달린 거대한 침대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침대 프레임이 모두 순금을 입혔고 네 귀퉁이마다 드래곤이 날아오르는 형상의 조각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침대가 내려오자 톱니바퀴에 맞물려 바닥에 층층이 겹쳐져 있던 대리석 박석이 연못전체를 덮기 시작했다.


연못이 사리지고 침대가 부드럽게 박석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하늘에서 미리 준비한 장미꽃잎 수백만 개가 흩뿌려 내리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박수와 탄성이 쏟아졌다.


‘대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여자이기에.’


기둥구석에서 바움쿠엔을 먹고 있던 클레어도 약혼식 주인공이 궁금해 단상 가까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침대 안은 실크로 가려져 가냘픈 신부의 실루엣만 어스름하게 보였다. 분위기에 취한 귀빈들 사이로 하인들이 태우기 시작한 용연향과 실피움 기름 향기가 회랑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응? 저 사람은?」


귀빈 사이를 서성거리던 알라릭의 눈에 낯익은 사내가 들어왔다.


‘맞아. 에피메테우스와의 전투 때 슈타이너와 함께 있었지. 저 남자가 여긴 왜?’


프레데릭슨이었다.


무장했을 때와 달리 수수한 튜닉차림을 한 채 무리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알라릭은 대번에 그를 알아봤다. 수라를 누벼온 전사들만이 느끼는 아우라 때문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사내는 자신과 대등하게 겨룰만한 몇 안 되는 진짜 전사였다.


「이 자리에 칼스 크비슬링과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대주교님 그리고 귀빈 여러분이 공증이 되십니다. 이제 신랑의 허벅지를 침소에 얹는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순결한 신부를 위해 성모의 축복이 함께 하길!」


조합서기의 선언과 함께 하인들이 천장에 걸린 밧줄을 당겼다. 그러자 침대를 가리고 있던 실크 가림막이 걷혔다.


「이럴 수가!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말도 안 돼. 그녀가 칼스의 아내?」


로쉐가 먹던 슈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뜩이나 큰 클로에의 눈동자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건 궁드르디였다.


「뭐야! 이런 미친! 개새!」


분노 섞인 육두문자와 함께 궁드르드의 눈빛이 무저갱의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베로니카 폰 힐데가르트. 볼 브레이커스 1급 드래곤 마취사.


궁드르디의 약혼녀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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