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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거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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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밀르
작품등록일 :
2021.02.13 22:03
최근연재일 :
2021.07.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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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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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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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 2부 10화 웨딩 크래셔

DUMMY

9.웨딩 크래셔


신부의 등장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각종 악기가 연주되는 가운데 조합서기가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신성한 결혼식에 앞서 자이더르 조합 당주인 테르예 크비슬링과 힐데가르트 가문 베로니카양의 합법적 보호대행인 구스타프 프레데릭슨이 협상서를 낭독하겠습니다.」


‘프레데릭슨? 저 자도 여기에? 내가 베로니카와 약혼한 걸 뻔히 알면서?’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궁드르디가 노기등등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꼴을 지켜봤다. 미리 준비한 단 위에 양가 대표가 올라 협상서를 낭독했다.


「자이더르 상업조합 당주 테르예 크비슬링은 힐데가르트 가문과의 거룩한 결합을 준비하며 다음 조항에 동의한다.」


첫째, 이 결혼은 합법적인 문트 혼인(Munteche : 합법적인 결혼 동맹을 가리키는 독일어로 정략결혼의 대명사)이다. 성모와 교회의 보호를 받으며 프레델레흐(Fridelehe : 교회와 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닌 첩이나 정부(情夫)형태의 관계)가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


둘째, 자이더르 상업조합은 힐데가르트 가문의 옛 봉토였던 에르텔바흐 지방의 농지 3800헥타르를 양도형식으로 전달한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세금은...

.

.

.


테르예 당주가 복음서만큼 길고 지루한 협상서를 낭독했다. 대부분 결혼을 통해 파생된 양가의 경제, 정치적 권리와 의무, 혼인파기 시 책임과 재산분할에 대한 복잡한 법률적 내용이었다. 하인들이 협상서 사본을 대주교와 고위관료, 공증인들에게 돌렸고 뤠이벡 상업조합의 차기당주자격으로 로쉐도 사본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런! 필사를 성 게오르그 수도원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 : 수도원에서 사본을 만드는 필사실)에서 했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사본만 봐도 그걸 알아?」


궁드르디가 묻자 로쉐가 양피지에 새겨진 자이더르 상업조합의 짙푸른 리본패턴 문장을 가리키며 탄식했다.


「이 푸른색은 청금석을 갈아 만든 염료로 낸 겁니다. 금가루보다 비싼 고가염료라 재정이 탄탄한 성 게오르그 수도원이 아니면 못 씁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게 돈이군.’


궁드르디는 소박하지만 신랑, 신부의 애정이 넘치던 고향 일루리샤트의 결혼풍속이 떠올랐다. 당연히 문트결혼의 성사조건은 양가의 경제적 실익과 정치적 명분일치. 당사자들의 의사나 애정 따위는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신랑 칼스의 얼굴은 누크 제일의 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오만한 성취감이 흘러넘쳤다. 궁드르디는 속이 뒤틀렸다.


「제 인생 최대 판단착오입니다. 부르크하르트 가문이 이리도 쉽게 정략결혼에 넘어가다니.」


로쉐가 평소답지 않게 자책하며 아름다운 금발 고수머리를 쥐어뜯었다.


「이 결혼으로 손해가 큰가봐, 로쉐?」


「그 정도가 아니라 조합의 존망이 걸렸습니다.」


「뭐?!」


눈이 휘둥그레져 궁드르디가 되물었다.


「베로니카양의 어머니는 부르크하르트 가문 선대당주의 장녀입니다. 즉, 베로니카양은 현 대주교의 조카딸이지요.」


「그럼 어찌 되는데?」


「공화국의 입법을 담당하는 원로원 '백인회의'라는 기구가 있습니다.」


로쉐가 눈짓으로 건너편 하객들 중 상석의 몇을 가리켰다. 로마누스 제국시절 토가의상을 입고 있는 늙은이들이었다.


「백인회의는 크게 자이더르 상업조합의 후원을 받는 '구 왕당파'와 포즈나뉴 상업조합을 중심으로 규합한 '공화파'가 박빙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힘의 균형추를 소수의 귀족출신 의원과 신흥 부동산업자 그리고 비상임위원회인 '5인회'와 '주교회단'이 조절합니다.」


궁드르디도 정치이야기는 고향 술집에서 칸텔레 연주 알바를 하며 귀동냥했던지라 대강의 정세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군. 그럼 이 결혼으로 뤠이벡이 지지하는 공화파 입지가 줄어드는 거지?」


「뤠이벡은 정치적으로는 중립입니다만 자본의 흐름은 늘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말씀드리죠.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궁드르디 경을 거세학교에 데려온 것도 공화파 원로원 종신 의원인 슈타이너 경의 정치적 계산이 고려된 겁니다.」


「나 이용당한 거네. 인생 쉽게 풀린다더니.」


'아무도 믿지 마. 당신 주변은 철저히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냉혈한들뿐이야.'


충고가 떠올라 궁드르디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알라릭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자릴 떴겠지. 평생 전장에서 살아온 남자라 이런 가식과 형식 뿐인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거다.


궁드르디는 처음으로 자신이 혼자라고 느꼈다.


***


「주님의 은총으로, 둠 브링거 공화국 원로원 종신의원 테르예 크비스링의 장남이자 신앙의 수호자, 자이더르 상업조합의 수석서기보좌이자, 팔츠작센 반도의 대지주, 생 이노샹 기사단 명예단장이자, 공화국령 쉬르트세이섬의 지배자, 명예로운 드래곤 거세학교 시니어이신...」


지루하리만치 긴 신랑소개가 이어졌다. 클레어는 입술에 묻은 바움쿠헨 부스러기를 닦고 궁드르디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파트너가 로쉐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문득 자신이 이곳에서 완벽한 이방인임을 깨달았다.


‘저 궁드르디 조차 귀족행세를 하고 있잖아. 십중팔구 장물로 산 가짜 족보일 테지만.’


그에 비하면 나는 대체 뭔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직업을 가진 아버지, 강간당해 나를 낳은 어머니. 클레어는 내세울만한 배경과 뿌리가 사무치게 부러웠다.


사실 이 시대의 귀족 혈통이라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중시조가 아르미니우스(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3개 군단을 전멸시킨 게르만족 민족영웅)이고 시조가 헤라클레스로 귀결되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조상이 귀족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름 앞에 칼스처럼 저토록 수많은 수식이 붙는다.


그것은 편견과 무시의 해일을 막는 성벽이고 방파제다. 반면 뿌리 없는 인생은 늘 밟히고 차인다. 클레어는 평생 지주나 부자들 다리나 긁어주다 생을 마치고 싶진 않았다.


‘둠 브링거 공화국의 명예로운 볼 브레이커스. 내 이름에 이 한 줄을 반드시 새기고 말겠어.’


요란한 신랑소개가 끝나자 하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베로니카의 숙부인 대주교 아르테벨테 부르크하르트Ⅱ세가 결혼반지를 들고 신부의 침대로 나아갔다. 다이아몬드의 크기만 백 캐럿이 넘는 보물이었다.


‘아름다워.’


베로니카를 볼 때마다 클레어의 마음은 복잡했다. 자신이 박색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타고난 미모에 명문가의 후원을 받는 베로니카의 화려함을 늘 마주하다보니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정말 아름답군요. 공화국 최고의 미녀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오.


- 니므롯 황제와 혼담이 오갔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 말도 안 되지요. 정략결혼이라 해도 이교도 아내라니. 대주교 집안 체면이 있지.


정략결혼이라는 말에 클레어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칼스에게는 아깝지. 안 됐어.’


칼스는 인성과 인물 모두 베로니카에 한참 못 미쳤다. 폭언과 주먹질을 견디다 못해 하인들이 석 달이 멀다하고 도망쳤다. 몸값을 치를 테니 차라리 갤리선 노예로 팔아달라고 청하는 자도 있었다.


남자치고 작은 키는 화려한 패션으로 극복한 탓에 누크의 유행을 선도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 분명 옷 입는 감각은 탁월했다 - 웬만한 남자보다 훤칠한 클레어 입장에선 도저히 이성으로 보이지 않았다.


- 그런데 칼스의 턱은 뭐가 저렇게 많이 났죠?


- 임질 때문이라던데.


- 사실이라면 부르거(Burger : 성(城)에 사는 사람. 즉, 시민)들이 가만있겠나? 부정한 남자는 성 밖에서 내쫓는 게 원칙인데.


- 자이더르 가문 본거지는 항구 조차지에 있으니 별 문제가 없지. 그리고 돈이면 뭔들 뭣하겠나.


칼스는 평소 같으면 자신의 콤플렉스인 곪은 턱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나 가리개를 했을 것이다. 침례식을 때문에 부득이 분으로 최대한 자국을 가린 채 사람들 앞에 선 것이다.


‘저건 임질이 아냐. 단순 모낭염이지.’


성격은 더럽지만 문란한 녀석은 아니다. 적어도 클레어가 아는 칼스는 그랬다. 과도한 승부욕 때문에 전 과목 수석을 목표로 각성효과가 있는 순록오줌이나 광대버섯을 먹으며 밤을 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턱이 곪은 건 피로누적과 더러운 칼로 면도를 한 탓일 게다. 클레어도 녹슨 도끼로 다리털을 밀었다가 파상풍으로 정강이를 절단할 뻔해서 잘 알았다.


「신랑 칼스 크비슬링은 신부 베로니카 폰 힐데가르트를 아내로 맞이하여 평생토록 성부를 사랑하듯 아끼고 사랑하겠느뇨?」


「예!」


결혼식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형식적이나마 당사자들의 의지로 인한 결합임을 알리기 위해 주례는 두 사람에게 번갈아가며 물었다.


「안 됐어.」


「그치? 정말 안 됐어.」


클레어가 혼잣말을 했다가 뜻밖의 답변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궁드르디가 곁에 다가와 서있었다.


‘생긴 건 네가 더 훨씬 났구나. 일루리샤트 촌놈.’


클레어가 궁드르디의 긴 속눈썹을 흘긋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궁드르디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클레어. 넌 내 파트너지?」


「응?」


궁드르디가 몸을 돌려 클레어 앞에 서더니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항상 나와 함께 해줄 거냐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항상 함께 해줄 거지?」


「네.」


클레어 대신 대주교의 질문에 멀리서 베로니카가 답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왔다.


「어서 대답해, 클레어.」


「그러니까, 네 말 뜻이 뭔지...」


클레어는 자신도 모르게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궁드르디는 조급한 표정으로 결혼식 주례석상 쪽과 클레어를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우린 차기 볼 브레이커스 파트너잖아. 알다시피 네가 없으면 난 볼 브레이커스가 되기 어려워.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그런 거였나. 깜짝 놀랐잖아.’


「휴,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뭐가?」


「아니 됐어.」


분위기 탓이다 식장이 로맨틱해 순간 휩쓸릴 뻔했어.


찰나였지만 클레어는 궁드르디의 진지한 눈빛과 자신이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그만 엉뚱한 상상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유일하게 속마음을 터놓는 여동생 아가타도 안 된다. 자다가 담요를 발로 걷어찰 것 같은 부끄러운 망상이었다.


「대답 안 할 거야?」


「뭘?」


「항상 나와 함께해줄 거냐고? 어떤 어렵고 황당한 상황이라도?」


「어떤 어려운 상황도...」


「그래, 우린 파트너잖아.」


「그래야지. 난 볼 브레이커스가 될 테니까.」


「맹세해?」


「맹세한다.」


그러자 갑자기 궁드르디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


「진심으로 당신께 경의를 표합니다. 클레어 아우프 데르 마우어 양.」


궁드르디가 귀족흉내를 낸답시고 한껏 정중하게 극존칭을 써가며 무릎을 꿇더니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클레어는 그 모습이 너무 어색하고 엉뚱해 보여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래.」


「정말이지?」


「몇 번 말해야 알아들을 거냐. 파트너.」


「고마워!」


궁드르디가 두 손을 내밀어 클레어의 손을 꽉 잡고 흔들었다. 클레어는 궁드르디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았다. 정말로 말로만 듣던 육손이다. 사형수의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던 아버지에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육손을 가진 놈들은 둘 중 하나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고귀한 혈통, 아니면 기형아.'


- <침대 위 세레나데>를 불러라!


- 신랑은 침상에 발을 얹어라!


마침내 결혼식의 하이라이트인 ‘침대의식’이 시작될 참이었다.


하객들이 결혼식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행가 <침대 위의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자거리부터 귀족저택까지 폭넓게 애용되는 이 노래는 가사에 노골적인 성적 메타포가 담겨있었다.


.

.


(1절)

그 성의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무엇인가?

- 정중한 요청?

- 매혹적인 눈빛?

- (여자들만) 어여쁜 이여,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어요.


(후렴)

열쇠는 바로 큰 발 위에 사는 남자.

그것은 달콤하고도 상스럽다네.


(2절)

순결로 만들어진 밀랍을 녹일 불꽃은 어디에 있을까?

- (여자들만) 왜 빵이 좋다고 말하지 못해, 왜 멋진 옷이 좋다고 말하지 않아?

- 제단위에 흐르는 간과 콩팥, 살진 송아지도 백 마리

- 귀족 앞에 놓인 오백 마리 어린 양

- 배고픈 농민들을 위해 거세한 닭 천 마리를 준비하세


(후렴) 불꽃은 바로 큰 발 위에 사는 남자.

그것은 달콤하고도 상스럽다네.


장딴지를 침대에 올려놓아라.

장딴지를 침대에 올려놓아라.


문트 결혼은 첫날밤을 상징하는 ‘침대 의식’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신랑이나 혹은 신랑대리인이 종교지도자와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신부가 누워있는 침대 이불속에 다리를 집어넣는다. 결혼식을 통해 교회에 영적부부가 됐음을 인정받은 두 남녀가 육체적 관계까지 이르러 온전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고도로 양식화된 풍습이었다.


- 오늘 의상의 백미는 칼스가 과연 어떤 양말을 신고 있냐는 것이죠.


- 하지만 오늘은 뤠이벡 조합이 선보인 드래곤 가죽 푸르푸앵이 워낙 인상적이었어요.


- 글쎄요, 칼스도 비장의 카드를 갖고 있지 않을까요?


둠 브링거 공화국은 엄숙한 사회분위기 탓에 발을 드러낼 기회가 좀처럼 없다. 이 와중에 합법적으로 남녀의 다리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결혼식 ‘침대 의식’이다.


부유한 귀족과 은행가, 최상급상인의 결혼식에서 선보이는 사치스런 양말과 스타킹은 보기 드문 구경거리였다. 부자들은 침실의 은밀한 만남 가운데 연인과 정부에게 결혼식에서 본 최신유행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이 ‘침대 의식’에는 의상조합과 방직조합, 디자인 장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궁드르디, 거긴 들어가면 안 돼. 결혼 당사자들 동선이야.」


「그러니까 내가 가야지.」


궁드르디가 하객들을 밀치며 결연히 단상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클레어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남겼다.


「약속 지켜, 파트너. 너만 믿고 간다.」


- 오오! 금실로 짠 원단에 양각한 드래곤을 호마노로 새겼군.


- 저런 정교한 세공술은 북쪽 대륙에선 희귀하죠.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드래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군요.


- 뤠이벡이 이번만큼은 이길 줄 알았는데. 의상도 원로원 백인회의도 모두 완패군.


클레어는 하객들이 수군대는 사이에서 로쉐의 표정을 살폈다. 원래도 창백한 얼굴인데 핏기조차 없었다.


침상으로 걸어가던 칼스가 클레어 쪽을 바라보더니 만면에 오만방자한 미소를 흘렸다. 아마 클레어와 로쉐 모두에게 보내는 승자의 여유, 조소 같았다.


그렇게 칼스가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침대에 발을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 어? 저 놈 누구야!


- 아까 드래곤 푸르푸앵 청년?!


- 신랑대리인인가?


그때까지 아무도 궁드르디를 제지하지 않았다. 옷이 날개인지라 모두가 화려한 드래곤 푸르푸앵을 차려입은 궁드르디의 돌발행동이 사전에 계획된 깜짝 이벤트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혹자는 칼스를 대신할 신랑대리인일지 모른다고 여겼다. 신랑이 아닌 잘생긴 들러리가 침상에 대신 발을 올리는 일이 부유층과 귀족의 정략 결혼식에는 흔했기 때문이다.


「그대는 누군가? 베로니카, 아는 사람이냐?」


베로니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행사장에 난입한 궁드르디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아르테벨테 대주교와 하객들 앞에서 궁드르디가 당당히 외쳤다.


「나는 일루리샤트의 고귀한 혈통을 지닌 귀족이자 위대한 슈타이너의 후계자 궁드르디 판 투르니에 2세다.


나는 공증인이자 볼 브레이커스 단장인 안더레흐트 데 슈바르츠 슈타이너경과 클레어의 보호대행인인 프레데릭슨의 보증으로 에피메테우스를 사냥하기 직전 그녀와 약혼했다. 이제 그의 남편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또한 신부를 강탈하고 욕보이려한 음탕하고 파렴치한 도적 칼스 크비슬링에게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한다!」


궁드르디는 베로니카 앞에서 신을 벗었다. 누렇게 된 광목천 양말이 드러났다. 언제 빨았는지 기억도 안 났다. 궁드르디는 맨다리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침상이불에 다리를 쑥 들이 밀었다.


- 오오! 주여! 맙소사!


하객들이 비명과 탄식을 외쳤다. 심신이 약한 귀부인 중에는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클레어는 그 누구보다 강한 여자라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할 수 없었다. 그때 클레어는 깨달았다.


일생일대 최악의 파트너를 만났다는 것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휘말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저 뻔뻔한 남자는 어쩌면 인생 최악의 남자인 아버지 프란츠를 간단히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주일에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할 각오로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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