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선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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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늑대 본사에 위치한 회의실.
그곳에는 이미 바이나볼크의 요원들이 모여 있었다.
각자 준비된 책상에 앉아 있는 게 마치 강의실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맨 앞 줄에 유미와 알렉스가 앉아 있었고 유미의 뒤쪽에 이태오, 그 뒤에는 백설하가 앉았고 알렉스의 뒤에 한예주가 앉아 있었다.
" 집합시간이 다 됐는데, 안 온 사람이 좀 보이네. "
태오가 강의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IB와 에반 그리고 세실이 보이지 않았다.
" 못 들었어? "
태오의 말에 그의 뒤에 있던 설하가 슬그머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방음처리하며 작게 속삭였다.
설하의 태도에 태오 역시 조심스럽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
" 에반 지금 자택에서 근신중이야. "
" 근신? 무슨 일 있었던거야? "
" 그 어제 새벽에 병원에 불법침입 했다나봐. "
" 그 에반이? "
" 나도 소문으로 들은거라 잘 몰라. "
" 그래....? "
에반은 말끝을 흐리며 앞 자리에 있는 유미를 흘겨봤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자, 최대한 목을 뒤로 빼서는 어떻게든 얼굴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 지금 뭐하는거야? "
이번에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예주가 태오를 보고는 깬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태오는 어쩔줄 몰라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예주는 자신의 무릎 위를 팡팡 치면서 말했다.
" 자 이쪽으로 와서 앉아. "
예주의 제안에 태오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녀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그리고 유미의 얼굴을 살폈다.
바로 옆이 아닌 대각선의 시야였기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대략적인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그늘져 있다. 아마 소문은 사실 일거라고 태오는 직감했다.
태오는 금방 다시 앉고 있던 예주의 다리 위에서 내려와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이내 소꿉친구 3인방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는 말했다.
" 저 분위기를 보아서 사실인 거 같은데...? "
" 난 중립기어를 박겠어. "
" 에반이 설마... "
예주는 생각에 빠지며 말끝을 흐렸다. 소문이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예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에반은 생각했다.
' 오히려 쌤통이야. 감히 유미의 볼을 내리치다니...그것도 남자의 힘으로 힘껏....!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
하지만 예주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태오는 알고 있었다. 그는 예주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 그래 무슨 일이야 있겠어? 에반은 그 랑의 부대원이었잖아. 단 한번의 임무도 실패하지 않았던 엘리트였으니까. 괜찮을거야. "
" 그렇겠지? "
한예주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태오는 알고 있었다. 예주가 에반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나아가 강한 전우애로 무장한 동료가 되길 바란다는 것도.
그래서 에반에게 쓴 소리 한번 하지 못했다. 사실 그럴려고 했지만 매번 제지당했다.
"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세요? "
세명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알렉스가 고개만을 뒤로 돌린 채로 말했다.
설하는 모르는 채하며 의자에 쭉 기대어서는 딴 곳을 쳐다봤고 한예주는 갑작스럽게 들린 알렉스의 목소리에 조금 당황한 모양이었다.
가장 냉정했던 태오가 알렉스에게 손으로 이리로 오라며 흔들었다.
순간 알렉스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그 의미를 생각하다가 금방 이해한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태오는 알렉스의 가까이에 다가가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까 쟤는 왜 저렇게 기운이 없어? "
" 유미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가끔씩 저러는 날이 있긴 해요. "
" 그래? 혹시 너 에반에 대한 소문은 들었어? "
" 네? 에반 형에 대한 소문이요? "
태오는 최대한 유미에게 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소문에 대한 것을 알렉스에게 말했다. 알렉스의 표정이 무거워졌고 주먹 쥔 검지손가락을 살포시 깨물고는 말했다.
" 가능성이 없진 않네요. 저도 스승님을 못 뵙거든요. 어떻게 사정해서 병실의 앞까지는 갈 수 있었는데 그 이상은 안 들여 보내주더라구요. 형과 스승님의 관계를 생각하면... "
" 어? 형과 스승님의 관계? 무슨 관계? "
알렉스는 여전히 경직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 판단하는데 생각이 필요한 모양인지 한참을 뜸들이다 말했다.
" 둘은 서로 좋아하셨거든요. 거의 내연관계라고나 할까요. "
그 말을 들은 알렉스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 뭐? 내연관계? 에반과 엠마 요원이?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내연관계는 분명 좋은 의미가 아니었지 싶은데....그렇다면 에반에게는 사귀는 사람이 없으니까 에반이...내연남이 되나? 아니 그것보다 알렉스의 표정을 봐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
태오는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것은 옆에 있던 예주도 설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둘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오는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리고는 알렉스에게 말했다.
" 알렉스. 혹시 내연관계의 뜻을 알고 있냐? "
" 네.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닌가요? "
" 역시나. "
태오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에 비해 예주와 설하는 꽤나 많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오는 둘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시 알렉스에게 말했다.
" 잘 들어. "
태오는 내연관계의 의미를 알렉스에게 알려주었고 그걸 들은 알렉스는 금방 얼굴이 붉어저서는 말했다.
"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인 줄은... "
알렉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알렉스의 애처로운 모습에 태오는 오히려 알렉스의 어깨를 살포시 두드리고는 말했다.
" 그럴 수 있어. 아직 어리니까 말이야. 그건 그렇고 둘의 사이가 그렇게 가까웠어? 에반이 범법을 저지를 만큼? "
" 꽤나 긴 시간을 함께 여행했어요. 알고 계시죠? 저의 스승님이 세계정부의 현자라고 불렸던 사실을요. "
" 알지. "
" 함께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구했어요. 갑작스럽게 달늑대 요원과 같이 다니는 걸 본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에반형 인성도 꽤나 훌륭한 편이잖아요? 아마 세계정부에서 달늑대의 이미지가 에반형덕분에 꽤나 좋아졌을 걸요. "
" 흠. 그렇군. "
새롭게 얻은 정보에 태오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샌가 그들의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예주와 설하가 다가와서는 이내 4명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 어...저기 예주씨랑 설하씨도 관심만만인가봐요? "
" 어 뭐야뭐야. 에반의 사랑이야기? "
" 좀 더 말 해봐바. "
" 그냥 이 둘은 사랑이야기가 잘 알 들리니 가까이 온 것뿐이야. 그렇군. 소문이 사실일 확률이 높다 이거지. "
태오는 둘의 머리를 꾹 눌러 저지했고 유미쪽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
" 거기다 유미가 저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소문에 신빙성이 붙는군. "
"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
" 혹시 여기 오기전에 유미랑 이야기는 해봤어? 너네 둘 친하잖아. "
" 짧지는 않지만 얼굴을 본지는 좀 됐죠. 그리고 아침부터 저런 분위기를 풀풀 뿜어대고 있어서 말 걸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분명 틱틱 댈게 분명해서.... "
태오는 예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생각보다 안 친한 모양이네? "
알렉스는 오히려 크게 한숨을 쉬었다.
" 에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친해질 수 없을 걸요? 쿄우씨랑도 거리를 두는 앤데... .아...여성 요원들에게는 호의적이긴 하더라구요. "
" 너도 소문의 진상이 궁금하지 않아? 유미한테 가서 물어봐봐. "
" 아 싫어요. 분명 화낼게 분명하다구요. "
태오의 제안에 알렉스는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지만...
" 하지만...확실히 저도 궁금하니까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
알렉스의 말에 셋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숨 죽은 듯이 알렉스의 모습을 지켜봤다.
알렉스는 유미에게 천천히 다가가서는 말했다.
" 유미. "
" 오늘 기분 나쁘니까 말 걸지 마라. "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바로 차여버렸다. 그 모습을 본 태오는 유미의 태도에 놀라고 있었지만 나머지 둘은 다시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혹시 에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
" 그게 무슨 소리야. "
에반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유미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알렉스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생각했다.
' 지뢰 밟았네. '
그리고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소문이지 뭐. 난 저기 태오씨가 부르니까 잠깐 갔다 올... "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유미가 그런 알렉스의 팔을 휘어잡았다.
" 무슨 소리냐고. "
알렉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태오일행을 쳐다봤다.
태오도 지뢰밟았다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나머지 둘은 알렉스를 향해서 응원의 파이팅을 보내주었다.
알렉스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태오를 바라보고는 지원을 요청했다.
태오는 곧 다리를 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둘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 크흠. 유미. 소문에 대해서는 내가 말해줄께. "
유미는 태오와 알렉스를 번갈아 보며 둘을 노려봤다. 벌써 뭔가를 알아차린 듯 더욱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 그래. 일단 그 소문이 뭔지부터 듣겠어. "
" 아 그건 말이지. "
태오는 자기가 들었던 소문을 그대로 유미에게 전했다. 소문에 대한 것을 듣자 유미는 이내 자신의 손이 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과 동시에
" 아아악. 유미 아파. 그만 미안해. 내가 미안하니까 팔 좀 놓아줘. "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는 고통스러워하는 알렉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유미는 알렉스의 팔을 바로 놓았고 그 둘을 노려보며 말했다.
" 그 소문이 뭐? 어쨌다고? "
" 어쨌다는게 아니고. 그냥 소문이라는거지. 너는 알고 있는 게 싶어서 물어본 것뿐이다. "
" 둘은 그 소문을 듣고 무슨 생각했는데, 에반에게 실망이라도 했어? "
유미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마냥 폭발할 것처럼 스스로 지레짐작해서는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사춘기소녀처럼.
" 그럴 리가 있겠어. 내가 에반형이랑 다닌 시간이 얼만데,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야. "
알렉스는 최대한 유미의 기분을 상하지 않는 말투로 대답했다.
"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에반도 없고 하니 누군들 그런 생각이 안 들겠어. "
그 둘의 진정성을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미는 자포자기한듯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 맞아. "
" 어? "
" 진짜? "
" 어머어머. "
" 오... "
알렉스는 생각외의 유미의 발언에 놀란 모양이었다. 에반이 진짜 그런 일을 했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태오도 마찬가지로 보였고 그 둘에 비해서 예주와 설하는 꽤나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가 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출입구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세실리아스가 손에 서류를 들고 나타났고 다들 자신의 자리에 가서는 착석했다.
하지만 태오는 착석하자마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세실리아스의 뒤에 따라 들어오는 또다른 요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오는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히려 새로 나타난 그는 태오를 바라보고는 나지막한 미소를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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