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 풀문 12
저택의 뒷뜰, 주위의 주황빛 가로등의 불빛과 하늘에서 내려져오고 있는 부서진 달빛이 마치 뒷뜰보다는 운동장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의 정중앙에 이실란나는 서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를 기다리며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치없게도 곧 그녀의 곁에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부터 나타난 폴른은 그녀의 귀 옆에다 속삭이듯이 말했다.
" 너답지 않아. 이실란나. "
" 뭐가 말이야? "
" 쓸데없는 싸움은 하지 않을꺼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 눈때문이라도 말이지. "
폴른은 그녀의 두눈을 직시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과는 전혀 다른 색깔이 그녀의 눈속에서 바다와도 같이 물결치고 있었다. 그것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봤자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 지금의 그는 피할 수 없어. 도망친다고 한들 버드뿐이겠지. 난 그와의 격돌을 피할 수 없어. "
" 그렇다면 애초에 버드를 그와 붙이고 너는 아까 그 요원과 싸우는 편이 더 낫지 않나? "
이실란나는 폴른을 바라봤다.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 그렇게 됬을까? "
폴른도 그녀의 의도를 알았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곧 고개를 돌려 하늘에 떠오른 부서진 달을 바라보고 말했다.
" 그건 그렇고 달늑대의 과학력도 엄청나게 진보했군. 복제인간이라니, 리히타르젠도 성공하지 못했지 않나? "
" 에리온느가 있어서겠지. "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즉답했다.
" 그렇다면 내 덕분이군. "
갑작스러운 폴른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말에 이실란나는 그에게 경멸을 담은 시선으로 그를 노려봤다.
" 너에게 정상적인 대화를 원하는건 아니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넌 외도야. "
폴른은 다시 한번 이실란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로등의 불빛과 달빛을 받아 그늘진 그의 얼굴이 어둠속으로 가려졌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이 보이는듯 했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정상적인 표정이 아니라는 것.
" 내가 조금 늦었군. "
이실란나가 폴른에게 무엇인가를 더 말할려고 했지만 때마침 유안이 도착했다. 도착한 유안은 이실란나와 붉은안개,폴른을 발견했다. 딱히 놀랄일도 아니였다. 그는 그 둘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폴른은 금방 이실란나에게로 돌아갔고 유안과 이실란나는 곧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했다.
유안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말했다.
" 마지막으로 묻겠다. 이실란나. 투항해라. "
이실란나는 두 손을 들어올려 자세를 잡았다. 대답은 없었다. 충분히 그녀의 전투태세로 대신되었기 때문이였다. 유안도 역시 얕은 숨을 내쉬고는 자세를 잡았다. 곧 둘은 금세 격돌했다.
버드와 리안나와의 싸움과는 전혀 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 힘과 힘의 격돌, 짧은 시간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주먹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이 내지른 주먹은 그 공간을 갈랐고 갈려진 공간의 공기들은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곧 그 둘의 주먹은 부딪혔고 더욱 큰 원이 그들로부터 퍼져나갔다. 주먹이 닿는 순간 이실란나는 생각외란 표정을 지었고 곧 둘은 거리를 벌렸다. 유안이 먼저 그녀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 그때보다는 제어에 능숙해진 모양이군. 하지만 어림없다. "
자신의 할말만을 마친 유안은 금세 다시 이실란나에게 돌진했다. 그의 주먹이 이실란나를 향해 날았다. 하지만 이실란나는 그것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아까전과 같이 주먹과 주먹을 부딪힐 생각으로, 오히려 유안의 주먹을 깨부술 생각으로 그녀 역시 주먹을 내질렀다.
쿠우우우오오아앙!
엄청난 굉음이 주위로 울려퍼졌다. 마치 수류탄이 터진 것과 같은 소리가 주위로 울려퍼졌다. 이미 주위의 가로등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오직 달빛만이 비추는 뒷뜰에서 서 있는 것은 유안 풀문뿐이였다. 이실란나의 주먹과 팔은 그의 주먹과 부딪히고 얼마지나지 않아 멋지게 부서져 터졌다. 팔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였다. 군데 군데 마치 팔안에서 아주 작은 폭탄이 터진다면 저렇게 됬을거라고 상상이 될 정도의 상처였다.
" 큭! "
이실란나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유안은 거의 없는 달빛속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조금 흐트러진 안경을 다잡아썼다. 순간 달빛을 받아 안경알이 빛났다. 그것은 마치 전투를 종료한다는 선고와도 같이 보였다. 유안은 두 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이실란나, 너는 너가 알고 싶어 하던것을 알아냈나? "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이실란나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은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네. 그 모든 것을 알아냈죠. "
망설임없이 말하는 이실란나의 모습을 바라본 유안은 조금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은 망설일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곧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그녀에게 질문했다.
"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짓을 한거지? "
어떤 때를 말하는 걸까. 정확하게 그것을 말하진 않았지만 이실란나는 알아들었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당신은 모르는게 너무 많아요. 유안 풀문. 답은 뻔하지 않나요. 당신의 아버지 역시 그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
"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
"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어요. 주지도 않을 꺼구요. "
" 그렇다면......억지로 들을 수 밖에 없겠군. "
유안은 다시 한번 팔을 들어올려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한쪽 팔이 불능이 된 이실란나를 제압하는 것을 어렵지 않을꺼라고 판단했던 유안은 금세 이실란나에게로 돌진했다.
하지만 순간 그는 잠깐 당황에 휩쌓였다. 첫번째로는 움직일리가 없는 상처투성이인 팔이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되어 있다는 점, 두번째로는 그녀의 코앞에 가서야 눈치챈 그녀의 푸른 두눈중 한쪽이 붉은색이 되어있다는 점이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공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돌진해버린 몸을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유안은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어둠속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아니다. 그것은 분명 이실란나의 손이였다. 그녀의 손이 유안의 주먹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손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손이긴 했다. 무엇인가가 자꾸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오버랩되듯이. 그것은 바로 짐승의 팔이였다. 긴 발톱을 가지고 있고 강한 비늘이 있으며 환상종중 가장 최상위에 있는 드래곤의 것이였다.
유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의심은 금방 사라졌다. 확실하게 이실란나의 팔이 드래곤의 것으로 부분변화가 되었기 때문이였다. 여지껏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유안은 침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혼란에 빠지지는 않았다. 단지 그 상황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좀처럼 믿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였다.
유안은 금방 자신의 잡힌 팔을 중심삼아 몸을 돌려 그녀에게 돌려차기를 먹였다. 그의 다리가 곡선을 그리며 그녀의 머리에 적중했다. 아니 그것 역시 또 다른 팔에 의해 막혔다. 그리고 그 팔 역시 다른 팔과 같이 변형되어 있었다. 그때서야 이실란나는 조금 숙이고 있던 얼굴을 천천히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바뀐 것은 팔뿐만이 아니였다. 그녀의 양쪽 관자놀이로부터는 붉은 두개의 뿔이 솟아올라 있었고 그녀의 등뒤로는 뿔과 같은 색깔의 날개가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 위로는 꼬리가 나 있었다.
유안의 공격을 막아 손과 다리를 잡고 있던 이실란나는 곧 그를 힘으로 위로 날려 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마냥 쉽게 뜨진 않았지만 약간이나마 잠시나마 떴고 그 순간에 유안의 돌려차기와는 다른 올려차기를 박아넣었다. 정확하게 명치를 가격한 그 공격은 유안에게 짧은 신음을 내게 했고 유안은 하늘을 난 뒤 바닥으로 멋지게 추락했다.
쓰러진 유안은 금세 콜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외로 큰 데미지를 받은 것 같지 않았던 모양이였는지 그는 입주위를 닦아내며 자신의 옷가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 악마가 다 되었군. "
그의 감상평에는 틀린 것은 없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흔히 표현되는 악마의 모습과 다를게 없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유안은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런 것에 비해 공격은 생각외로 형편없군. "
유안과 이실란나는 금세 다시 격돌했다. 그들의 주먹이 그들의 발차기가 마치 주위의 공간을 찢을듯이 파동을 만들어냈다. 전등이 부서진 가로등이 이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더 형체를 알 수 없도록 부서져갔다. 뒷뜰에 있는 식물들 역시 조각나기 시작했고 둘의 싸움은 인간으로써는 마법사로써는 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유안의 발차기가 다시 한번 이실란나에게 적중했다. 하지만 가드를 한 이실란나는 그저 밀려나갔지만 데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였다. 가드한 비늘위로 물리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상황이 정말 많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였는지 곧 그녀의 얼굴 바로 옆으로 마치 SD캐릭터화 시킨 듯한 모습의 미니커쳐 폴른이 나타났다.
" 이건 위험해. 저기 있는 유안 풀문은 오리지널보다 더 괴물이다. "
하지만 이실란나는 그런 폴른의 말을 흘려버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였다. 폴른은 곧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속삭였다.
" 날 완전해방해라. 이실란나. "
이실란나는 곧 한손을 폴른에게 가까이 가져다댔다. 폴른은 오오하며 드디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실란나의 손의 엄지와 중지가 곧 원을 그리더니 강력한 딱콩이 폴른의 이마에 적중했고 폴른 저 멀리 날라갔다.
" 꿈도 꾸지마. "
다시 한번 유안은 이실란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 하지만 확실히 달라진게 있군. 추락신에게 지지않는 정신력, 그리고 전투스타일도 조금 변한 것 같군. 아까같은 발차기를 누구에게 배웠지? "
꽤나 여유로워보이는 유안은 보이는 것과 같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실란나에게 질문했다. 그런 그의 모습으로 볼때 그는 아직도 그녀의 투항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실란나는 아직도 여유만만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 당신의 딸인 오리하에게 배웠다구요. "
하지만 유안은 금세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그의 표정은 그게 누구냐고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실란나도 갑작스러운 유안의 그런 태도에 자신도 잠깐 당황했고 당황이 끝나자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 뭐? 내 딸이라고? 난 결혼을 한적이... "
유안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이 표정을 우리는 본적이 있다. 이 저택에 와서는 수없이 많이 봤다. 그렇다고 그는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 마치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는 기여코 생각해냈다.
" 아...그래. 쿄우와 조준과 같은 팀을 이루고 있었던 오리하 풀문이 내 양녀였었지. "
그는 스스로 떠올려내며 말했다. 스스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였는지 두 눈을 감고는 꽤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실란나는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 무슨일이 있었던거죠? 대장. "
확실히 그녀도 그를 그렇게 부르던 때가 있었다. 유안은 그런 이실란나를 바라보고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 이곳에 오고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라서 말이지. 하지만 착각하지 않는게 좋아. 이실란나. 너가 투항하지 않는 이상 난 널 힘으로 제압할 수 밖에 없다. "
유안은 두 주먹을 다시 쥐고는 말했다. 그녀는 이내 자신이 들어올린 두 주먹을 내려놓았다. 곧 그녀의 악마와 같은 모습도 붉은 안개가 되어 사라지고 인간의 형체로 돌아왔다.
" 투항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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