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부의 현자님 5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것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하나 모든 것이 나의 공격을 다 막아냈고 마치 나를 가지고 놀듯이, 나의 체력이 고갈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정의의 실현이다. 그리고 나는 내 뒤에 나를 믿고 주문을 영창하고 있는 세계정부의 현자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
이 세기말같은 세계에서 거짓말과도 같이 약자들을 위해서 안전한 곳이 아닌 매우 위험한 지역까지 돌아가며 세계정부도 달늑대도 하지 못하는 빈약층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그녀를 위해서....아니 그녀가 가진 이상을 위해서라면 나는 내 한 목숨,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끝이 나지 않는다. 공격은 하나같이 모두 결정적인 부분에서 모두 막혔고 그들은 쉴 새도 없이 끝없이 몰려왔다. 뒤를 볼 겨를도 없었다. 나는 그저 숨을 허덕이며 끝없이 몰려오는 그들을 향해서 검을 휘두르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숨이 가빠져 온다. 검을 휘두르고 있는 팔이 점점 느려지고 검에 실린 힘 조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노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저 멀리 검은 안개속에서 제일 처음 보였던 부서진 얼굴은 나에게 보란듯이 말했다.
" 역시 대단하군요. 하긴 달늑대에서 키워지고 있는데 이정도도 못하면 말이 되질 않죠? 안 그래요? 에반 작센? "
나의 이름을 알고 있던 모양이다. 이상할 것은 없다. 그녀가 처리한 달늑대의 요원은 십수명이다. 그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을 고문하여 그녀가 원하는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나의 침착한 모습에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면의 군세는 멈출 줄은 몰랐다. 나는 느리고 무겁지만 계속해서 팔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런 가면의 군세속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저기 멀리 건물의 한쪽 구석 켠에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는 자가 있었다. 늑대의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는 그 자의 모습은 마치 이 모든 상황을 관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위험해 보였다.
나에게는 마치 그 남자가 예상치도 못한 특수상황을 상정하고 있다는 듯이 준비하고 있는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가면들을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점점 더 팔이 무거워진다. 이대로 라면 나는 분명 저들의 손에 죽게 될 거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내가 이 길을 선택했고 내가 이 상황을 선택했고 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뿐이다.
깡!
마지막 일격으로 나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팔이 떨린다. 그저 고개를 들고 눈 앞에 적을 쳐다보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대로 끝인가 싶을때
" 고생했어요. 에반. 이제 나에게 맡겨요. "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구원자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나에게는 매우 따뜻했다. 아니 따듯했다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라 내 뒤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엄청난 불길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이미 세계정부의 현자가 영창을 끝내고는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좋았다. 나를 믿고 있다는 모습, 나는 그녀의 믿음에 보답했다. 그 보답을 알아주는 그녀의 그 모습이 나는 너무나도 기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불길은 순식간에 주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불길이 주위에 있던 모든 부서진 얼굴들을 잡아 삼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뱀처럼 유연한 행동거지로 적들을 삼켜버렸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주위에 있던 부서진 얼굴들은 곧 처음에 나타났던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뱀의 형상을 하고 있던 불길은 적들을 모두 처리하자 금방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그저 입을 벌리고 놀란채로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정도 규모의 마법을 그저 수십초의 영창만으로 발동시켰다는 것과 마법을 구사하고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그저 강력하다는 이유뿐만이 아니였다. 강력했기에 그녀가 가진, 그녀가 행하고 있는 이상론에 빠져버린 걸지도 모른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는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 대단하군요. 어느쪽이든 훌륭하게 성장했어요. "
하지만 부서진 얼굴이 말하는 것은 미묘했다. 그녀가 말하는 어느쪽이라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그 말은 즉슨 나와 현자, 둘다를 지칭하는 것이니까.
" 당신같은 정신이상자와는 할 이야기따윈 없어. "
그럼에도 그녀는 부서진 얼굴을 향해 말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에는 엄청난 크기의 화염구가 그 부서진 얼굴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개가 아닌 수십구의 화염구가 부서진 얼굴을 향해 발사되었다.
쾅하는 소리가 수십몇번도 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귀를 막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소음과도 같았다. 나는 귀를 막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귀를 막고서는 기다렸다. 그것이 끝나기만을.
그리고 귀에서 손을 떼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불이 다 타오르고 난 후의 연기만이 피어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는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서진 얼굴의 유해라던가, 애초에 마력중독자이기 때문에 유체가 남을 수 는 없었지만 그래도 놀라울 정도의 마법이었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그녀가 서 있었다. 다시 한번 그녀의 모습에 시야를 빼앗겼다. 그녀의 늘름하고 자신에 가득찬 표정 그리고 나에게 향하는 미소가 그렇게나 이쁠 수 없었다.
" 괜찮아요? 에반? "
그 목소리에 나는 당장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압도적인 모습에 나는....떨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곧 대답했다.
" 저...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시 세계정부의 현자님이라고 불릴만.... "
하지만 나의 대답은 이어지지 못했다.
" 현자라고 하기에는 마법이 너무 파괴적인 것이 아닌가요? 파괴적인 불속성 마법을 사용하다니, 현자에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걸요? "
부서진 얼굴이 어느샌가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 나는 그 목소리에 다시 한번 뒤를 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수의 화염구가 작열한 자리, 엄청난 수의 구덩이가 몇번이나 박혔을지도 모르는 구덩이가 반복되어져 그곳이 한때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는 알 수 없을정도로 훼손된 그 자리의 공중에 그 부서진 얼굴이 떠 있었다.
마치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현자는 생각외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였다. 하지만 곧 이를 악 물고는 다시 한번 무영창의 화염구를 공중에 만들어내고는 말했다.
" 고약하네요. 당신 정말 마력중독자가 맞는건가요? "
" 당신 생각보다 이 세계는 넓어요. 엠마 김. "
순간 그녀는 부서진 얼굴의 말에 말을 잇지 못했다.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당황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부서진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서진 얼굴이 달늑대 요원을 수십을 살해한 범죄자이기도 했지만 부서진 얼굴이 죽인 자가 달늑대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가면을 쓰고 있어, 그 정체를 알 수 없었기도 했지만 그 행방조차, 그 자가 행해왔던 모든것을 알 수 없었다. 세계정부, 오히려 세계정부가 생기기전의 나라의 중요인사들을 죽여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모른다. 그녀의 이름이 세계정부에서도 극비리에 붙여져 있을지도 말이다.
" 당신도 참 잘 성장했어요. 이대로라면 확실하게 세계는 당신으로 인해서 구원당하게 될 거니까요. "
갑자기 부서진 얼굴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나도 그랬지만 그녀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이 많았던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나에게 치유마법을 구사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체력이 회복되었다.
떨리고 있던 팔이 멈추었고 헐덕이던 숨조차 안정을 되찾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와 부서진 얼굴과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나는 그 범죄자에게 순식간에 다가갈 수 있는 이동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에도 나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지만 저 멀리 건물의 저편에 늑대가면을 쓰고 있는 또다른 부서진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망설이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부서진 얼굴에게 다가갔다. 부서진 얼굴은 갑작스러운 나의 접근을 예상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부서진 얼굴을 죽일 수 있다. 검을 치켜들고 정확하게 이 범죄자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나의 검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눈 앞에 있는 적을 베어 넘겼다.
말을 할 새도 없었다. 나의 눈에는 그저 반으로 갈라진 채 가면이 두 조각난 부서진 얼굴의 모습이 만이 보였다. 부서진 얼굴은 반으로 갈라진 채, 그대로 마력의 잔해가 되어 사라졌다.
긴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나는 순간 깊은 숨을 몰아 쉬며 뒤돌아 서서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해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그녀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만족감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서도 그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불안감이 적중하고 말았다. 저 멀리 한쪽 구석 켠에 있었던 늑대가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확하게 내가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코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젠장.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그녀의 앞에 나타난 늑대 가면을 그녀에게서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어떻게서든 달렸다. 마치 위험상황에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는 것 같았다.
내가 느끼기에도 믿을 수 없는 속도와 힘으로 순식간에 그녀와 늑대가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는 그 늑대가면을 향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검은 어느샌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애초에 그런 것 따윈 어떻든 상관없었다.
나의 주먹이 휘둘러지자 늑대가면은 그것을 감지한 듯 했다. 그 순간 늑대가면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 가면은 정교했다. 눈부분이 가면의 안쪽까지 보이는 정도였고 그 눈이 보였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이 인상적이였다. 나는 주먹을 내지르면서도 그 눈에 시선을 빼앗겼다. 모르겠다. 그 눈이 빛났다. 그리고 내 주먹은 멈추질 않았고 곧 가면에 적중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가면은 부서졌다.
이미 주먹을 내지린 후라 나는 적을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그녀를 살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뭔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당황하자 나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당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늑대 가면을 바라봤다. 나의 공격에 가면을 부서져 있었다. 그녀의 당황하는 표정과 함께 나 역시, 부서진 가면을 보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늑대 가면은 하악부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그래서 가면 안쪽의 얼굴의 하악부부분이 보일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그것을 보자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 어? "
순간적으로 입에서부터 소리가 나왔다. 그녀가 당황하고 있었지만 나의 표정을 보고는 더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챈 것인지 아닌지 몰랐지만 늑대가면은 곧바로 눈앞에 있던 그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속닥였다.
무엇을 말했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늑대가면은 사라졌다.
나는 알고 있다. 항상 바라봐 왔기 때문에, 밑에서 그의 모습을 항상 바라봐 왔기 때문에, 그 각도에 있는 그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 자세하게 알고 있다.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처럼 되고 싶었다. 정의의 화신, 달늑대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 유안 풀문을 말이다. 늑대가면의 하악부는 마치 그와 비슷하게 생겼었다.
순간 착각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리가 없다. 아니 혼란스럽다. 내 눈에 보인 것이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에게 치유마법이 걸린 이후부터는 완벽한 상태였다. 환상같은게 보일 리가 없었다.
늑대가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의 시선은 그가 사라진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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