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쿄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니 내 기준으로,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오리하가 사라졌다. 그녀뿐만이 아니였다. 준도 이실란나도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단순하게 그저 보이지 않게 됬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존재, 그 자체가 사라졌다. 그 누구도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있긴 했다. 나와 함께 이 세상으로 돌아왔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온전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기록에서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모든게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마지막 전투에서 갑자기 빛과 함께 파티회장으로 이동이 되질 않나, 갑자기 새하얀 배경뿐인 세상에 문만이 떡하니 있는 곳으로 변하지 않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그저 듣기만 하며 지켜보고만 있자, 평화롭게 변한 세계로 어느샌가 돌아와 있었다.
유안 대장은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린 풀문도 살아있었던 모양인지 그녀와 함께 달늑대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안에게 양해를 구하던 버드도 이제는 옛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만큼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오직 나만이 아직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있었다.
그런 나를 배려해서 유안 대장은 나에게 장기휴가를 떠밀듯이 줬다. 나는 몇일을 숙소에서 나오지 못했다. 오리하가 사라진 그날, 바로 모든 기록들을 찾아서 기록열람실로 가 모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적부터의 달늑대 유치원시절부터 이후 교육과정에 있는 모든 곳의 기록을 말이다. 학예회때의 사진도 수학여행때의 사진도 졸업앨범의 사진까지 모든 것을 다, 확인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없다. 오리하도. 준도.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눈으로는 믿을 수 없을만큼 사진 속 그들의 빈자리는 메워져 있었다. 다른 사람으로 메워진게 아니다, 옆의 사람이 그 자리에 쭉 땡겨져 그들의 자리를 메워버린 것이다. 아주 깔끔하고 정교하게 그들은 사라졌다. 그래서 한동안 집을 나오지 못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그들은 기억하는 것이 오직 나뿐인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지냈다. 이 세계가 거짓같이 느껴졌고 모든것에 의심을 품는 위험한 상태까지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이전 세계의 흔적이 아직도 이곳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됬다.
똑똑.
현관문의 바깥에서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대에 기댄채 창문에서 내리쬐는 빛을 등지고 있던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전신거울이 있었고 내 모습이 그대로 그곳에 비춰졌다.
끔찍하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이 진했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 뼈와 살가죽이 앙상하게 보일정도로 말랐다. 내가 봐도 한심한 모습에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사람이 찾아왔으니 바로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내가 살고 있던 구본사의 숙소는 이전에는 파괴되어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아주 멀쩡하다. 구본사는 파괴된 적이 없었고 여전히 사용중이였다. 바뀐게 너무 많아서 그것을 일일이 기록한 메모장을 들고 다녀야할 정도였다.
현관문을 열자 그곳에는 쿠로네가 있었다. 아 쿠로네는 분명 외곽지역으로 차출됬었으니까...
" 오빠? 꼴이 왜그래? "
그녀는 나의 모습을 보자 바로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바로 현관문의 경계를 넘어 신발을 벗고 가지런히 놓은채 집안으로 들어오고는 나를 데리고는 곧바로 식탁에 앉혔다.
" 밥은 먹으면서 생활하는거야? 휴가라고 본사에서 우리집안으로 연락이 왔는데 왜 안왔어? 휴가를 받는 날이면 항상 처음에는 본가에 들렸잖아. "
그녀는 말을 하면서 바로 냉장고를 열어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곧 휴대폰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 어휴.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수 밖에 없겠네. "
그녀는 곧 배달을 주문했고 휴대폰을 식탁위에 내려놓고는 의자에 앉은채 나를 바라봤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느낀 이전 세계의 흔적이 바로 그녀다. 항상 내가 침울할때면 그녀는 나에게 찾아온다.
" 왜그래? 무슨일 있었어? "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전히 걱정하는 얼굴에 내가 뭔가를 말해주길 바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녀는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혹시라는게 있으니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 오리하가 사라졌어. "
" 오리하? 풀네임이 뭐야? "
" 오리하 풀문. "
" 풀문이라면 풀문집안의 양녀겠네. 양녀가 어디 한둘이여야지. 그런데 오빠가 풀문가의 양녀랑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어? "
역시.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 아니야. 오랜만에 받은 장기휴가라서 그저 조용히 있고 싶었어. "
나의 대답에도 그녀는 의심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몇초간을 나를 쳐다보다가 그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알았어. 휴가는 아직 2일 남았잖아. 내일 본가에 들리자. 가족들 전부다 걱정하고 있어. "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 이상태로 집안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도 집안사람들중에는 그녀가 유일하다.
아니...분명 백부님은 이전 전쟁에서 참가했었다고 했었지. 줄리어스 풀문을 따라 쇠퇴해가던 우리 가문을 어느정도까지 끌어올렸다고 했었어. 그라면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아는게 있을거야.
" 쿠로네. 백부님은 본가에 계시지? "
" 응? 아 계셔. "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쿠로네는 살짝 놀라며 대답했지만 이내 바로 말했다.
" 혹시 아저씨가 있다고 안갈 생각을 하는건 아니겠지? "
" 그럴리가. 내가 언제 아저씨가 있다고 안간적이 있었어? "
"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지금 모습을 보면 영 의심이 가. "
" 거기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네. "
똑똑.
쿠로네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자 현관문에서 다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쿠로네가 이내 손을 뻣어 제지했고 자기가 가겠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 누구세요? "
" 어? 뭐야? 왠 여자목소리? "
현관문너머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처음듣는 목소리가 아니였다. 하지만 쿠로네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듯해보였다. 그녀는 곧 현관문을 열고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 1군단장님? 여기에는 무슨일로? "
알지만은 탐탁치 않은 모습이였다. 아마 그가 찾아온 목적이 대충 어떤 것인지 예상이라도 하는듯 그녀는 이내 밖과 현관문의 경계에서 그를 막아섰다.
" 오. 누구인가 했더니. 미츠루기 요원이네. 츠루기노미의 집에 왜...아니 뭐 가족이니까 가능한가. 어쨌든간에 그에게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
" 개인적인 용건이라면 나중으로 미뤄주시면 고맙겠는데요. "
쿠로네의 말에 버드는 예상했다는듯이 보이지도 않는 실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 회사일입니다. 꽤나 보안등급이 높은 내용이기 때문에, 미츠루기 요원이 잠깐 바깥으로 나와주셨으면 합니다만, 가까운 커피샾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어떨까요? "
" 회사일이라는 증..."
쿠로네는 갑작스럽게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자 곧바로 맞받아치기 위해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곧 들어올린 버드의 손에는 달늑대 수장의 싸인이 그려져 있는 서류가 들려있었다. 쿠로네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자 그럼 나가주실까요? "
버드는 곧 손을 펼쳐 현관문의 바깥으로 그녀를 안내하며 말했다.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버드의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복도의 끝으로 사라졌다.
" 하하. 권력이 최고야. "
쿠로네는 보내버리고는 이내 흡족해하는 버드는 집안으로 들어오고는 현관문을 살포시 닫았다. 그리고는 나의 모습을 확인하자 곧 소스라치게 놀라며
" 꼴이 말이 아니네. "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는 담백한 반응을 보여주고는 곧 쿠로네가 앉았던 내가 앉은 자리의 반대편에 앉았다.
" 내가 찾아온 이유는 말 그대로 간단해. 아쌰 썬소로우를 기억하고 있겠지? "
" 당연하지....그리고 그녀는... "
가장 먼저 본사를 뛰쳐나가 적에게 달려간 그녀는 아마 죽었을거다. 본사로 마력중독자들이 도착했었으니, 그들이 그녀를 죽이지 않고 본사로 왔다는것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니까 말이다.
" 그녀는 죽지 않았어. "
" 뭐? "
" 그녀는 최근에 실종이 된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어. 뭐 그녀가 직접 죽었는지는 나는 직접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아마 이 세계의 기록에 남아있을정도면 적어도 이전 세계에서는 죽지 않았다는거다. 그리고 지금 달에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어. "
" 무슨 말이야. 마력안개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잖아. 북미대륙도 각국가들이 영토로 편입할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걸 TV만 봐도 알 수 있어. "
" 문제는 마력안개가 아니야. "
" 그럼 뭐란 말이지. 인류를 위협하는 적이 사라졌는데 무슨 문제가 더 생겼다는거야. "
" 아우스간이라고 들어본적이 있어? "
" 아우스간? "
" 사이비종교인데, 예전부터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 이전 세계에서는 마력안개가 너무나도 큰 문제였기 때문에 그것에 가려 크게 부각받지 못했고 그들자체의 이념도 결국 이세계는 마력안개에 다 먹혀버릴테니까 우리들 스스로가 아포칼립스를 일으켜 마력중독자가 되어 마력중독의 위협이 없는 세계에서 살자는 미친녀석들이야. "
" 단지 사이비종교의 해체라면 굳이 나에게 찾아올 필요가 없....잠깐...거기에 아샤가 있다는 말이냐? "
"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단지 아우스간의...그 뭐라고 말해야되나. 교주? 어쨌든, 그 교주를 본 사람들의 진술들이 겹치는 부분이 하나가 있어. "
" 아샤의 인상착의는 아니겠고. 그렇다면 마검인가. "
" 그래. 두개의 강력한 냉기는 내뿜는 마검을 가지고 있다라는 진술이야. 하지만 단지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일뿐이고, 그 검을 착용하고 있지는 않았다라는게 더 중요한 점이지. "
" 그래서 그걸 나보고 조사하라고? "
" 정답. "
버드는 이내 검지와 엄지를 펼친 양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식탁위에 놓은 서류를 나에게 쭉 밀어넘기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일은 휴가가 끝난 다음에 시작하면 돼. "
그리고는 곧바로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현관문의 열었다. 나갈려고 발걸음을 한발짝 움직이자 그는 갑자기 멈춰섰고 뒤돌아보지 않은채로 말했다.
" 미안했다. "
갑자기 영문도 모를 소리를 하고는 문을 닫고는 나가버렸다. 식탁위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빠졌다. 아니 이미 체력은 바닥을 기고있어 그대로 고개를 식탁위에 박은채 그대로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