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 7
소년은 창문에 걸터앉은채 마치 바다속 깊은 심연과도 같은 푸른 빛의 눈으로 나를 주시했다.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할말을 잃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이 소년이 창문을 넘어올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봤던 그는 그 누구보다도 진중하고 샛길은 가지않는 그런 사람이였기 때문이였다.
" 말을 못하는건 아니죠? "
소년은 창문에서 사뿐하게 내려왔다. 마치 바닥이 트램펄린으로 되어있는 마냥, 소년은 솜과 같이 착지했고 금새 그 반동으로 나의 침대 옆까지 다가왔다. 그제서야 나의 입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손을 올려 소년의 머리에 올려놓고는
" 안녕. "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소년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사실의 인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하지만 알았다는 듯이 소년은 오히려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침대에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 아저씨. 엄청 쎈 사람이죠? "
갑작스러운 질문, 아니 질문은 갑작스럽지 않았다. 질문의 내용이 평범하지 않았을 뿐이였다. 나는 소년의 머리에 올려놓은 손을 다시 내려놓고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왜 그렇게 생각하니? "
" 왜냐하면요. 아저씨는 저랑 같이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
" 응? "
" 평범한 사람이라면 제 주위에 오지 못해요. 마력중독을 일으킨데요. 아버지가 가르쳐줬어요. 저는 아직 능력의 사용이 미숙하다면서 그래서 사람도 많이 못 만나요. 그래서 아저씨랑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소년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소년은 귀족이다. 그 뛰어난 능력이 없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의 사귐에는 제약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소년의 얼굴에는 슬픈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당연한것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소년의 집안에 대대로 이어지는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소년의 감정에는 결함이 있을게 분명했다.
" 그래. 아저씨는...아니 잠깐만. 아저씨가 아니지. 형이라고 불러라. "
" 네? 형이요? "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내 모습이 그렇게 늙게 보이나, 물론 수술의 영향은 조금은 피폐해진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저씨로 보일만한 나이는 아닌데...
" 그래. 임마. 형이라고 불러. "
" 좋아요. 형은 어디서 왔어요? "
나는 창문 밖의 하늘에 떠 있는 조각날 달을 가리켰다. 소년의 시선이 나의 손을 따라 창문의 끝에 있는 달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타이밍에 맞추어 다시 한번 소년의 머리위에 다른 손을 올려놓고는 말했다.
" 저기에서 왔어. "
" 저건 부서진 달이잖아요? 저를 놀리시는거에요? 저긴 대기권 밖이라구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요? "
세상에,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듯 보이는 소년의 지식에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어린 소년에게 어물쩡 넘어가려고 했는데 다른 변명거리를 생각하는 수 밖에 없었다.
" 달은 저기에만 있는게 아니잖아. 그렇지? "
" 달늑대 요원이신거에요? 대단하시네요. 달늑대요원이 이곳에 함부로 못올텐데. "
" 하하하. 나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
" 그래도 저때문에 사셨네요. 형이 떨어진 곳에 제가 없었으면 형은 거기서 조용하게 죽었을지도 몰라요. "
소년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소년의 말이 맞다. 그곳에 소년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됬을까? 너무나도 깊게 생각한 탓일까? 생각이 말로 새어버리고 말았다.
" 아니면 영원히 똑같은 죽음을 반복했을지도 모르지... "
" 네? "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 수준이였지만 소년의 귀에는 뭔가가 들린 모양이였다. 소년의 표정은 내가 지금 뭘 잘못들은게 아닌가하는 표정이였다. 나는 소년의 머리에 올린 손으로 소년의 머리를 박박 문지르면서 말했다.
" 아니야. 고마워.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네덕분이야. 루드비히. "
" 고마워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에요. 아버지가 항상 가르쳐주신걸 했을 뿐인걸요...."
소년은 나의 감사에 조금은 멋쩍어하며 검지로 자신의 뺨을 살살 긁으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말의 끝에 다다르자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다시 한번 아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 형. "
" 왜? "
"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있죠? "
정말 이녀석이 정말 꼬맹이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년의 눈이 나에게 진실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마 그뿐일꺼라고 생각한다. 나의 정체가 궁금한게 아니다, 아마 자신이 먼저 소개하지 않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거다.
" 잘 들어. 루드비히. 형은 말이야.. "
" 네. "
" 미래에서 왔어. "
" 네? "
이번에는 뭔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뭐랄까 어이없는 표정이긴 했지만 거기에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이 섞여있었다. 물론 나도 개소리를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다. 이 어린 소년에게 미래에서 왔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게 먹힐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 평범한 소년들은 이런 소재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이 소년에게는 소용없는 짓이였다.
" 미.래.에.서 왔다구. "
다시 한번 또박또박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같은 표정을 하며 일관하고 있을 뿐이였다. 하지만 나 역시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같은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소년에게 다시 말했다.
" 못믿는 눈치구나. 그럼 앞으로 일어날일을 가르쳐줄께. 어때? "
" 정말이죠...? "
소년은 아직까지도 믿지 못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 그럼. 사실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내말이 맞으면 너에겐 좋은 것이고, 틀렸다해도 나쁠게 없잖아? 안그래? "
" 뭐...그건 그렇지만..."
좋아. 소년이 점점 넘어오고 있어.
" 14살이 되면, 한 소년이 이 저택으로 찾아오게 될꺼야.. 두눈에는 황금빛의 마력을 가득 품은 소년이 말이야. "
" 이름은요? "
" 그거까지는 가르쳐줄 수 없지. "
" 그런게 어디있어요?! "
내가 가르쳐준 사실이 꽤나 흥미로웠던 모양인지,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자 소년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소년은 그저 나랑 이렇게 대화하는 것조차 즐거워하고 있다. 같은 나이대의 친구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기쁜 모양이다.
끼이이익...
그 순간, 방문이 다시 열렸다. 들어온 것은 딱 봐도 누군의 청소년인지 알 수 있을 듯한 외모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소년이였다. 오렌지빛의 짧은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는 소년은 누구와 같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 소년은 루드비히를 발견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어? 루드비히, 너 왜 여기에 있냐? 너 수업중이잖아. "
" 아 메피형. 나 여기있는거 말하면 안돼. 알겠지? "
" 뭐 물론 나야 니편이긴 한데, 세르게이 선생님한테서는 못 숨겨준다. 알아서 피해. "
" 물론......."
루드비히는 순간 숨을 턱 막히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대답도 딱 끊어서 하지 못했다. 그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방으로 들어온 소년의 뒤, 열린 문에서 마치 그리즐리 베어를 연상케하는 한 남자가 얼굴에는 오만상 주름이 가득 차있는 모습으로 선채 루드비히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 도련님. "
곰은 방문의 너머에서부터 오는 빛을 받아 역광을 띈 얼굴로 루드비히에게 말했다. 하지만 루드비히는 그 순간 민첩한 움직으로 방으로 들어왔던 창문을 열어 순식간에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척.
곰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루드비히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고 곧 곰이 루드비히를 마치 고양이의 뒷목을 잡고 들어올리는듯 마냥 들고는 천천히 방문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내 옆을 지나가며 미소를 지으며 그는 말했다.
" 이거 환자가 있는 방에서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하게 되었네. 기회가 되면 내 나중에 거하게 한잔 사겠네. "
곰은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메피 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곰이 나가자 방문을 닫고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쟁반위에 있는 것은 약과 물이였다.
" 약 드세요. "
이 소년 역시 뭔가 이상했다. 아니 청소년기...아니, 사춘기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소년이 건넨 약과 물을 먹고는 빈 물컵을 다시 소년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 고마워. "
"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은 한것뿐인데요. "
소년의 말에서 지긋지긋함이 전해져왔다. 소년은 쟁반을 탁자위에 올려놓고는 천천히 창문쪽으로 이동했다. 창문을 열고 저 멀리 곰에게 끌려가는 루드비히의 모습을 확인한 다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 당신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나요? "
이번에도 역시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깐 할말을 잃었다. 이번에는 질문의 내용에 당황한게 아니였다. 메피 리스인 소년이 이런 질문을 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까도 그렇고 이들의 어린시절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소년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다싶이 질문의 내용에는 즉답할 수 있다.
" 물론이지. "
" 그게 뭐죠? "
나는 두눈을 똑바로 뜨고는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떨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뭔가 고민하는게 있는듯, 불만족스러운것이 있는듯, 해답을 원하는 눈빛이였다. 아니 소년은 한결같은 모습을 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원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꼭 지켜야만 해. "
" 사랑하는...사람인가요? "
소년은 조금 머뭇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아직은 이성에 대한 사랑은 경험하지 못한듯 이해를 못한 모습이였다. 하지만 나의 진지한 모습에 나름의 납득은 한 모양이였다.
" 덤으로 친구녀석도 구하고 말이야. "
" 그 친구분은 덤이라고 생각되었다고 화낼거 같은데요? "
" 아니, 그녀석이라면 무조건 내 의견에 찬성해줄꺼야. 녀석도 나랑 크게 다르지 않을테니까. "
나의 말에 바로 맞장구를 쳐준 소년은 창문가에 기대고는 안경을 벗었다. 안경닦이로 천천히 안경을 닦으며 소년은 다시 말했다.
" 저는 이 나라의 귀족들을 치료하는게 일이에요. 해야만 하는 일.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죠. 보셨겠지만 저의 누나도 저도 해야할 일은 같아요. "
" 그게 싫은거야? "
" 아뇨. 생명을 구하는것에는 이의는 없어요. 하지만 "
" 하지만? "
"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요. 귀족뿐만이 아니라, 평민들까지도요. 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찾아가 그들을 치료해주고 싶어요. "
어쩜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14세의 소년이 말하기에는 조금 높은 이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어디 쉬울일인가.
"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거 아니겠어? "
나의 말에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지 않을 모습으로 보이진 않았다. 깊은 고민에 빠진듯 지금 당장 대답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필요하기에 유보하는걸로 보였다. 소년의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예상했다. 소년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달늑대에 가. "
" 예? "
소년의 표정이 갑자기 벙쪘다. 갑작스러운 나의 추천에 소년은 순간 들고 있던 안경을 떨어뜨렸다. 다행히도 안경을 깨지지 않았고 소년은 떨어뜨린 안경을 집고 쓰고는 말했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줄리어스 풀문이라면 너의 그 능력을 너가 원하는 곳에 사용하게 해줄 수 있을거야. "
" 저보고 국적을 바꾸라는거에요? "
" 그저 한가지 방법이야. "
" 하긴...집을 나가봤자 세계정부 군인들에게 다시 잡혀들어올께 뻔하니까요. "
소년은 금방 인정했다. 그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해했다. 다만 소년의 말대로 세계정부를 배신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 너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결정을 내리면 되는거야. 넌 아직 시간이 많아. 소년. "
소년은 얕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갈증이 풀린듯한 표정을 보고는 나 역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소년은 곧 탁자위에 놓인 쟁반을 다시 들고는 방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 고맙습니다. 덕분에 조금은 괜찮아진거 같습니다. "
" 천만에. "
소년이 방을 빠져나갔다.
갑작스러운 폭풍이 불어닥친것같은 경험이였다. 이번이 두번째가 아닌것 같은 현실과도 같이 느껴졌다.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 눈을 떴을때와 지금의 날짜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오늘 밤, 그 정체불명의 사내가 이 저택에 있을 것이다. 그와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죽을일은 없겠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몸에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아 그대로 방을 걸어나갔다. 몸도 평소대로 잘 움직였다.
아직 날이 환할때, 화장실을 찾아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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