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스간 5
그들이 도착한 동굴에는 밖과는 다르게 안에는 마력안개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안개가 없어진 시야를 확인한 하채원은 곧바로 선두에 서기 시작했고 동굴의 안으로 진입했다.
동굴의 저 끝에서부터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동굴의 벽면에는 투명한 돌, 마치 보석과도 같은 것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동굴끝으로부터 오는 빛이 그 보석들에 반사되어 주위를 더욱 환하게 만들었다.
어느정도 안으로 들어가자 크게 트인 장소가 나타났다. 안에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고 습기를 가득 머금은 석회재질의 깎인 모암들이 여러가지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곧 물이 흐르고 있는 자리 옆으로 이동한 하채원과 쿄우는 곧바로 권준혁을 평평한 자리에 눕혔다.
그를 바닥에 내려놓자 그는 외마디의 신음소리를 냈다. 그의 눈은 떠 있었지만, 그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곧바로 그런 상태를 확인한 하채원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의 뺨을 살살 치며 말했다.
" 야. 권준혁. 대답해봐. 대답해. "
하지만 권준혁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뺨을 맞자 다시 신음소리를 낼 뿐이였다. 하채원은 그런 권준혁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곧바로 패닉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쿄우는 오히려 담담했다. 그를 구하기 위해, 그를 엎고 여기까지 왔지만 그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당연했다. 마력안개를 직접 자신의 몸에 노출시키고 마력중독의 초기현상까지 가, 몸이 망가져 있는 상태인데 당장 돌아가서 치료를 받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적의 공격을 받아 바다에 빠져 여기까지 오게 됬으니 말이다. 그가 바다에서 죽지 않은 것이 용한 편이다.
쿄우는 그런 둘을 바라보면서 주위를 바라봤다. 어째서 이곳에는 마력안개가 없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본들 뭐 하나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그는 이 마력안개가 어째서 생기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몰랐다. 그저 아포칼립스가 일어난 자리에는 어김없이 안개가 생긴다는 교과서적인 것만 알 뿐이였다.
그는 생각했다. 분명 그는 들었을터다. 어째서 자연적인 아포칼립스가 일어나는지를. 그리고 자신의 친구인 정조준에게 앞으로는 몇년간은 평화롭다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무인도에 생긴 마력안개는 적어도 하늘에서 떨어진 추락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인간이 스스로 아포칼립스를 일으킨 것이 된다. 그것도 달늑대의 영토내에서. 무인도이긴 하지만 달늑대는 끔찍할 만큼 법규와 규칙 그리고 조직을 준수하는 국가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아포칼립스를 일으킬정도의 마력중독 현상을 겪고 있다면 오히려 자살을 하라고 권할정도다.
단지 그것뿐이다. 쿄우는 곧 사인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사인검의 끝이 가리키는 곳은 다름이 아닌 누워있는 권준혁이였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정신을 잃은채 신음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권준혁과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며 간호를 하고 있는 하채원의 뒷모습이였다.
쿄우가 점점 권준혁에게로 다가가자 그의 발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빈 사인검의 검집도 함께 흔들리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이 모든 소리를 듣고는 불안한 예측이라도 한듯 하채원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눈이 소리를 듣자마자 동공수축을 시작했고 동굴을 비추고 있던 빛은 순간 쿄우에게 역광을 비추었다.
검을 들고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는 쿄우의 모습은 살벌함 그 자체였다. 그런 모습이였지만 쿄우는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 채원. 그 자리에서 비켜. 그를 이대로 방치해두면 아포칼립스를 일으킨다. 그전에..."
" 죽인다고? "
고개를 돌리지 않은채로 그녀가 말했다. 조금은 상기되어 있는 목소리,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대답에 쿄우는 숨을 내쉬었다.
" 그래. 어쩔 수 없다는 걸. 너도 알고 있잖아. "
" 뭐가 어쩔 수 없는데? 아직 혁이는 마력중독을 일으키지 않았어. 그냥 잠깐 정신을 잃은 상태일뿐이야. "
" 그를 구하려다가 우리 모두 죽는 수가 있어. 힘들겠지만 채원. 너가 결단을 내려야해. "
철컥.
순식간에 하채원은 자신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권총집에서 총을 꺼내 쿄우는 겨냥했다. 그를 바라보지 않은 채로, 여전히 권준혁의 앞에서는 앉아있는 채로 팔만으로 그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눴다.
" 혁이를 포기할 수 없어. "
" 채원. "
그 둘 사이를 흐르는 분위기가 동굴의 저 아래로 지하수와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적을 눈앞에둔 군인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처럼, 적들을 눈앞에 두고 서로 대치하는 모습과 같은 모습이였다.
쿄우의 표정도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쿄우는 이미 한번 그녀에게 기회를 줬다. 그라도 한들 권준혁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이미 처참하다. 그를 동반한채 임무에 나설수도 없고 그를 이곳에 방치를 해두어도 그는 죽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적진이다.
이 동굴이 어디까지 연결되어있고 몇개의 출입구가 있는지는 확실하진 않았지만 밖으로 나간다면 적들에게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1군단장이였던 버드의 정찰만으로도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실제로 안으로 들어온 쿄우는 이 임무가 달늑대에서 책정한 것보다 더 위험한 임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댓가로써 지금 이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다시 그들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그들은 여전히 대치하고 있었다. 쿄우는 눈앞에 있는 하채원의 총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 생각을 바꾸지 않을거야? 난 지금 너라도 살리려고 하는거야. "
" 난 내 목숨보다 혁이의 목숨이 더 중요해. "
더 이상 이야기를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쿄우는 곧바로 행동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이미 하채원의 총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탕!
그녀가 쏜 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그때부터 그들의 격투는 시작됬다. 쿄우는 곧바로 그 사격을 한끗차로 피했다. 발사된 탄환이 일직선을 그리며 쿄우의 뺨을 스치고 그의 뒤에 있던 석회암에 부딪혀 박히며 석회가루를 쏟아냈다.
쿄우는 곧바로 움직여 하채원을 속박하려고 했다. 그의 검이 직선과 나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내질러졌다. 쿄우는 그녀에게 최선의 공격을 했다. 하채원은 4군단의 요원이였다. 사격에 능한 전투요원들로 이루어진 4군단은 근접전투는 평균정도는 되어도 뛰어나진 못했다. 적어도 여지껏 쿄우가 봐왔던 4군단의 요원들은 그랬다. 그래서 그 수준으로 최선의 공격을 가했다. 그녀가 죽지 않고 크게 상처를 입지 않을정도의 공격.
하지만 하채원은 손쉽게 쿄우의 공격을 피했다. 쿄우는 방심을 한 것이다. 갑작스럽고 그리고 능숙한 그녀의 몸놀림에 그는 잠깐 당황하고 말았다. 그녀의 몸이 사인검을 피하며 하늘을 향해 원을 그리며 뒤로 돌았다. 도는 순간 발로 쿄우의 얼굴을 정확하게 가격했고 그 공격은 유효타였다.
얼굴을 맞은 쿄우는 순간 뒤로 몇걸음 물러나며 맞은 부위를 얼굴로 가렸다. 그의 뺨이 찢어져 있었고 그의 입에서부터 피가 흘러나왔다. 쿄우는 곧 입에 머금고 있던 피를 뱉어내고는 말했다.
" 4군단답지 않은 전투능력이잖아. 채원. "
하채원은 다시 총을 쿄우에게 겨눴다.
" 원래는 혁이랑 같이 2군단에 있었어. 너도 알겠지만 2군단은 맨손격투술을 선호하니까 나같이 총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사람들한테는 띠겁게 굴어서 4군단으로 전입했어. 그뿐이야. "
쿄우는 그녀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하긴. 2군단 특유의 분위기가 있긴 하지. "
쿄우는 곧바로 검을 다시 다잡았다. 그녀의 실력이 이렇게나 뛰어나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더 이상의 방심은 없다. 쿄우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하채원도 느꼈던 모양인지 총을 쥐고 있던 손을 더욱 힘을 주어 잡았다.
쿄우는 바닥을 박차고는 하채원에게로 돌격해나갔다. 이번에는 예외는 없다. 확실하게 상대를 찍어누르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쿄우의 검, 사인검이 쉴새없이 하채원을 향해 그 이빨을 들이밀며 밀어붙였다.
아까와는 다른 맹공에 하채원에게는 더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그저 한합이라도 어떻게 흘리고 싶었지만 그럴수 있는 공격이 아니였다. 피할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단 하나의 공격이라도 맞는 순간 그것은 유효타를 넘어선 치명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하채원은 자신이 그렇게나 지키고 싶어하는 것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철과 철의 충돌음이 동굴로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소리는 동굴의 끝을 타고 더욱 깊은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소리가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떤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소리가 너무나도 울린 탓에 갔던 소리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쿄우와 하채원에게서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리 없었다. 쿄우도 하채원의 실력을 어느정도 알았으니 더 이상 봐주면서 할 수 없었고 하채원 역시 쿄우의 공격을 막는 것에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였다.
깡.
하채원의 총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는 지하수에 빠져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쿄우는 곧바로 하채원을 향해서 검을 겨누었다.
" 끝났어. 포기해. "
하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쿄우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고 자신의 뒤에 있는 권준혁에게 가는 길을 절대 내주지 않았다. 곧 그녀의 두눈이 백색의 빛을 내뿜으며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채원!!!!!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
쿄우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마력을 한계 이상으로 짜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아포칼립스였다. 물론 바로 아포칼립스를 일으키진 않을거다. 순간적으로 마력운용을 급하게 할때도 저런 현상이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무리한다면 결과는 아포칼립스로 이어지게 된다.
"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군. "
하지만 곧 동굴의 저편 또다른 굴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목소리를 들어서는 아마 아까 바다에서 들었던 목소리중 하나였다.
" 네. 무인도 지하에 전역으로 연결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
" 왜 우리가 아직 이 동굴을 찾지 못한것이지? "
" 최근 하급신도들이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아마 이곳에서 실종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여기. 이 벽에 박혀있는 보석이 마력을 빨아들이는 걸로 보입니다. "
저 멀리서 보이는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쿄우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곧 그들이 있는 탁 트인 장소로 진입하자 그들은 동굴의 웅장한 모습에 감탄을 자아내며 말했다.
" 너의 말이 맞는 것 같군. 이곳에 있으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마력이 빨리는 기분이야. 그래도 좋은 발견을 했군. 저기...쥐새끼같은 달늑대요원들이 이곳에 있었군. "
쿄우는 이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바로 벽뒤로 숨어버렸기에 그들의 눈에는 쿄우가 보이지 않았다. 그에비해 하채원은 숨을 수 없었다. 숨는다면 권준혁이 그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이였다.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적 두명뿐이였고 하채원은 권준혁에게 다가가서 그의 총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곧 하채원의 표정은 격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왔던 굴에서부터 차례대로 다른 적들이 줄을 지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였다. 그럼에도 하채원은 포기할 수 없었다. 곧바로 그들에게로 돌격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장소를 내주어서는 안됀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공격을 성공적이였지만 그들이 나오는 굴을 막기 위해서 너무나도 접근했고 곧 그들에게 포위당했다. 그녀의 저항은 계속됬다.총소리가 울려퍼지고 적들의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총소리가 멈추는 순간 적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곧 그들을 지휘하는, 처음 목소리를 냈던 자가 말했다.
" 오늘 아주 믿음직스러운 동지를 만날 수 있겠군. "
그리고 곧 권준혁에게로 다가간 그에게 이 동굴을 설명해주던 자가 그를 질질 끌며 자신의 상관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 저쪽에도 있었습니다. 저 여자도 그렇고, 이 남자도 좋은 제물이 되겠습니다. "
" 그래. 생각외로 달늑대는 무능한 조직이였군. 이렇게나 뛰어난 요원들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급해주다니 말이야. "
" 이 둘을 데리고 일단은 귀환하시는게 좋겠습니다. 확실히 마력을 빨리고 있습니다. 같이 따라온 신도중 마력량이 적거나 순도가 낮은 이들은 금방 소멸되고 말겁니다. "
" 너는 어떻게 할 셈이지? "
" 요원이 저 둘뿐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예신도들 몇과 함께 이 동굴을 마저 탐색한 후에 저도 귀환하겠습니다. "
" 그래. 수고해. 우린 돌아간다. "
그 말을 기점으로 적의 대부분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그 모습을 감췄다. 남아있는 이들이 곧 주위를 탐색하기 시작했고 쿄우는 곧 들고 있던 사인검을 꽉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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