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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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열린 창문의 틀에 앉은 채로 그 푸른 빛의 눈으로 쿄우를 노려 봤다.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눈썹이 치켜 올라간 그녀의 표정은 평소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그 푸른....아니 하늘색에 가까운 그 눈빛이 마치 주위의 공간을 모두 얼려버리듯 방안에는 안개가 깔리고 있었다.
막 방문을 열고 들어온 쿄우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 역시 표정이 역변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안함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의심이 가득 차있었다.
" 에우리야인건가. "
" 정답이야. "
"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
" 너한테는 이런 모습이 생소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아샤가 잠들때면 언제나 이랬거든. "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표정에 쿄우는 순간 뭔가 떠오른 모양인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그때, 아샤의 상태를 정확하게 듣지 못했지. 너라면 아샤의 상태가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
에우리야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잠깐, 딴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냉기가 눈으로 보일정도의 안개속에서 냉기결정이 마치 인간의 실루엣으로 나타나며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거라면 말해줘도 좋아. 그 역시 이 세계의 구조를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
" 언니가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
곧 에우리야는 창문틀에서 내려오더니 가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쿄우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멈춰서서는 그를 똑바로 올려보며
" 너는 아샤의 상태가 어떤 것 같아? "
" 그걸 물어보고 싶었다만. "
" 아니 그걸 물어보는게 아니고, 어디까지 알고 있냐고. 처음부터 다 말해주면 힘들잖아. "
쿄우는 잠깐 생각하더니
" 그녀가 자카스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 하지만 그가 이끌던 집단, 판데모니엄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진실 또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정도가 한계다. "
" 많이도 알아냈네. 아샤랑 이야기좀 많이 했나봐? "
" 애초에 너는 아샤와 함께 행동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아샤의 행동을 모를수는 없을텐데. "
" 아 그게 좀 문제가 생겨서. "
" 문제? "
에우리야는 곧 멋쩍은 표정을 짓고선
" 사실 그녀가 여전히 자카스를 기억하고 있는건 다 우리때문이거든. "
" 당장 자세하게 설명해라. "
" 아샤가 자카스한테 쓰러지고 난 후에 결국엔 세계가 리인스톨됐잖아? 그러면 아샤는 기억을 잃을 수 밖에 없단 말이야. "
"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는거지? "
" 우리한테는 아주 큰 문제지. 우리가 뭐 때문에 얘한테 붙어있는데. "
쿄우는 대답하지 않고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 이거는 너도 모를테니까, 말해줄게. 우리들은 사실 크로노스와 계약했었거든, 아니 정확하게 내 언니인 에우리케가 크로노스와 계약했어. 원래 언니는 그의 몸을 취하려고 했거든? 근데 뭐 어떻게 하다보니까 비혼주의자였던 크로노스가 결혼을 했네? 거기다 그와 언니의 마력을 이어받은 아이가 태어났네? 애초에 크로노스는 자신의 딸이 강해지길 바랬거든. 그와 언니의 마력만으로도 충분히 강했을테지만 너도 알다싶이 크로노스가 살던 세상이 얼마나 위험했어. 그래서 아샤한테 나를 붙였던 거야. "
" 그래서 그게 아샤의 기억이 지워지는게 너희들한테 무슨 문제가 된다는거지? "
" 아..... "
순간 에우리야는 괜한 설명을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 사실 이게 말이야. 아샤가 기억을 잃어 버리면 안되거든. 왜냐면 그 아샤가 각성해서 나와의 소통이 가능하게 된 계기가 그....자카스덕분이라서 말이야. 자카스와의 기억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사건 또한 그녀의 머리속에서 사라지게 될테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애쓴게 다 헛짓이 된단말이야. 어떻게 만들어낸 우리에게 딱 맞는 존재인데 포기할 수 없지. "
" 그러니까 결국엔 너희들의 욕심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거군. "
" 그래도 아까 말했다싶이 기억이 군데군데 빈곳이 생길 수 밖에 없으니까 사실 그녀와의 연결이 되어있지만 그녀는 자각하지 못해.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를 볼 수는 없는 상황이야. 그것뿐이야. "
" 해맑은 표정으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
" 그래도 우리덕분에 아샤가 죽지 않을 수 있었다구. 물론 자카스, 걔가 죽지 않을정도로만 놔두긴 했는데, 그렇다고 아샤가 리인스톨전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 우리가 살린게 맞아. "
에우리야의 말을 듣고서는 쿄우는 두 눈을 질근 감으면서 말했다.
" 차라리 다 잊었다면, 아샤는 더 편했겠지. 너희들덕분에 그녀는 시한폭탄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
" 무슨 소리야. 오히려 아샤가 자카스에 대해서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거야. "
" 이 세계의...아니 창조주의 마력이 될 수 있는 가능성말이냐? "
에우리야는 곧바로 대답한 쿄우의 대답에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오?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야? "
" 너희들은 그것만이 중요하나? 그녀가 느낄 기억공백으로 인한 불안감과 공허감 그리고 기시감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그리고 종국에 그녀가 모든 걸 알게 되었을때 느낄 배신감이 얼마나 그녀를 망가트릴지! "
"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 또한 추락신이야. 비록 마검이라는 물건에 봉인되어 있는 신세라서 세계가 리인스톨될때 천상으로 올라가지 못했지. 하지만 아샤 썬소로우가 창조주의 마력만 되어준다면 우리는 올라갈 수 있어. 우리에겐 오직 그것만이 목적이야. "
쿄우의 감정섞인 호소에 에우리케는 칼같이 대답했다. 쿄우는 그런 둘을 번갈아 보고서는 치가 떨린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뒤돌아서서는 말했다.
" 아샤의 상태는 어떻지? 너희들이 나왔다는거는 단지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일뿐인가? "
" 그녀의 상태는 온전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뭐 기억에 관해서는 너가 말한 시한폭탄 그 자체긴 하지. 그래도 터질 일은 한참 뒤가 될 거야. 이 세계에 자카스 세르파는 없으니까 말이야. "
" 그렇다면 다행이군. 가능하면 내가 이곳에서 볼일을 다 끝날때까지 계속 아샤를 이곳에 묶어둘 수는 없나? "
" 가능하지만 아샤가 오히려 의문을 느낄텐데, 뭐 평소에도 잠을 오래자는 편이니까 깊은 의문만 느끼지 않는다면 문제없을꺼야. "
" 그렇군.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지. 너희들은 혼돈과 연락을 취할 수 있나? "
쿄우의 말에 에우리야와 에우리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쿄우는 곧바로 밖으로 다시 나갈려고 했지만
" 잠깐 기다려. "
" 뭐지? "
" 너도 이 곳을 안나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
" 갑자기 또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거냐. "
" 애초에 우리는 마검에 봉인된 존재라고 했잖아. 다른 추락신과의 연락같은건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주위에 있는 다른 추락신의 존재는 느낄 수 있지. "
" 혼돈이 주위에 있는거냐? "
" 몰라. "
" 그건 또 무슨... "
" 혼돈일수도 있지. 특정지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주위에 다른 추락신이 있어. 그것만은 확실해. 하지만 목적을 모르겠는데, 이곳에 올 이유가 없을텐데. 아 설마 나랑 언니를 잡아갈려고 오는건 아니겠지. 애초에 우리는 회수대상이 아닌데. "
에우리야는 순간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태평스럽게 의문을 떨쳐버렸다. 쿄우는 이내 다시 뒤돌아서서는 에우리야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 너도 이곳에 있으니 알아두는 편이 좋겠지. 혼돈이 이곳을 습격할거다. "
" 뭐? "
" 이곳에 있는 나의 일족들을 4명을 제외하고 다 죽일거야. "
" 대단한 소리를 하는 것치고는 얼굴색이 하나도 안 변하는데? 그러니까 너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니 혈연들 다 죽일려고 온거네? "
" 틀린 말은 아니군. "
" 그걸 납득하고 있는거야? 아니 내가 이런 질문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
" 틀린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일족의 희생은 너무나도 얕았어. 그녀가 말한 세대의 희생에 대한 질문에 나는 명쾌하지 반박하지 못했다. 이 세계의 진리에 그녀의 말은 틀린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
쿄우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 항상 네 모습을 보고 있을때면 생각이 드는데, 말해도 돼? "
" 날 얼마나 봤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해라. "
에우리야는 창문 옆에 있는 침대에 살포시 앉으면서
" 넌 말이야. 뭐랄까. 극단적으로 자기를 제 3자의 입장으로 만들려고 안달이 난 녀석처럼 보여. "
" 그게 무슨 소리지? "
" 아니 방금도 그래. 야 니네 가족들 다 죽는다는데 그걸 납득하고 있는게 안 이상해? 아무리 이 세계의 구조를 알고 있다해도 그렇지. 인간인 니가 그렇게 쉽게 인정하면 어떡해? 아니면 뭐 어렸을때 무슨 트라우마라도 있었어? "
에우리야의 말에 쿄우의 입에 순간 미소가 생겼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고
" 니말대로 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가 정상인이라는 생각이 안 들거든. "
너무나도 쉽게 인정해버린 쿄우를 보며 에우리야는 순간 이상한 데자뷰를 느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느낌만 들었다.
" 그래서 어쩔거야. "
" 난...가야해. 물론 지금 당장 시작할 건 아니지만, 내가 시작을 끊어줘야 되거든. "
" 음...그래. 그러면 뭐 아샤에 대해서라든가 다른거는 더 물어보고 싶은건 없는거지? "
쿄우는 다시 잠깐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곧장 대답했다.
" 이제 더 이상은 없는 것 같군. "
" 그럼 잘가봥. 아 혹시 내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해. 너한테 도움받은게 한 두개가 아니니까 말이야. 물론 아샤 몰래 말해야 해. "
" 기억해두고 있지. 그리고 난 옆방에 있을테니 언제든지....아니 아샤에게 말해야 하니,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올테니 얼른 아샤한테 몸을 넘겨라. "
" 네. 알겠습니다. "
에우리야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곧바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쿄우 역시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로 방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고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에 빠졌다. 에우리야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한 예측에 쿄우는 오히려 실소를 지었다. 자신의 상태따위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게 쓸데없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미도 없고 더 이상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떻게 보면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일이 터졌다.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흔들림이 있긴 했지만 지진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아마 굉음이 폭발하는 소리였기에 지진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 엄청난 굉음에 쿄우는 바로 움직였다. 하지만 쿄우가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바로 아샤의 방문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그녀가 나타나면서 놀란 듯이 말했다.
" 대체 무슨 일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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