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선 14
그의 두 눈은 떨리고 있었다.
눈 앞에 있지 않아야 할 존재가 떡하니 있으니 주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순간 멈춘 호흡과 긴장해 딱딱해진 목근육 그리고 식은땀이 온 몸을 흐르기 시작했다.
회의실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세실리아스였다.
그리고 그 뒤로 태오와 유미를 제외한 모두가 모르는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명찰에는 정조준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바이나볼크의 요원복이 아닌 다른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유미와 태오를 번갈아 보며 미소와 함께 윙크를 날렸다.
유미는 그런 그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하지만 태오는 달랐다. 바로 유미를 바라봤지만 역시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세실은 단상 앞에 서고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 모두들 오랜만이네. "
그녀는 회의실 안을 쭉 돌아봤다.
고개 숙이고는 힘없이 축 늘어진 김유미와 그런 유미를 안타깝게보는 알렉스 그리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태오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두 소꿉친구가 보였다.
그것을 다 확인하자 세실은 단상 위에 놓았던 서류를 분류하면서 말했다.
" 일단은 먼저 소개부터 하도록 할게. 나와 함께 들어오신 분은 이제 우리와 함께 할 정조준 보좌관님이다. 보좌관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
" 세실리아스. 님은 안 붙여도 된다고 했잖아. 나이차이도 별로 안나는데 편하게 불러줘도 돼. "
" 거절하겠습니다. "
" 싸늘하네. 얼음계열 능력자들은 다 이런 성격인가....크로노스 대장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어쨌든 반갑다. 특수부대 요원들. 나는 수장 직속 특무대 리데르 출신 정조준이라고 한다. 이번에 보좌관이라는 직책으로 바이나볼크와 함께 됐으니 잘 부탁한다. "
그의 자기소개가 끝났지만 회의실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해서 인지 알렉스가 먼저 박수를 쳤고 이내 다른 요원들도 박수쳤다. 그래도 분위기는 여전히 복잡미묘했지만 세실은 이내 분류하던 서류작업이 끝난 모양인지 책상에 앉아있는 요원들에게 다가가 배부하면서 말했다.
" 너희들도 에반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거야. 다 사실이고 그로 인해서 에반은 자택근신처분을 받았어. 몇일정도는 밖으로 나오지 못할 테니까 이번 임무에서는 그는 따라오지 못할 거야. "
그녀는 이야기하며 다시 단상으로 돌아갔고 단산 위를 두 손으로 꽉 잡으면서 말했다.
" 그 임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준 서류에 적혀 있어. 일단 간단한 설명부터 할테니까 지금은 나에게 집중해줘. 에반이 일으킨 행동때문에 바이나볼크에 약간 비상이 걸렸다고 해야할 것 같아. 앞으로 한동안은 전투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임무는 없다고 생각해도 좋아. "
세실의 말에 모두들 생각 외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요원들을 한번 쭉 돌아보며 눈을 맞췄다.
" 질문은 없어? 그럼 계속한다. 그래서 이번 임무는 간단한 거야. 얼마전에 세계정부에서 큰 행사가 열려. 그곳에 달늑대의 귀빈으로써 참여하는 것. 더 자세한 내용은 서류를 확인해줘. "
" 근데 여기 유인물에 결투를 걸어올 수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알렉스가 서류를 읽던 도중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 말 그대로의 의미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정부의 군인들은 매번 달늑대를 초대하는 행사때 시비를 건단 말이지. 왜 그러는지는 나도 정확하게 모르지만 아직 자기들은 죽지 않았다는 걸 대내외로 알리고 싶은 것 아니겠어? "
" 근데 세실리아스 대장은 안 가시는 겁니까? "
" 응. 나는 이번 임무에서 제외됐어. 저번에 한번 가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 나 대신 츠루기노미 요원이 같이 갈테니까. "
쿄우의 이름이 나오자 유미는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태오는 오히려 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렇다면 특무대 요원님은 무엇때문에 바이나볼크로 오게 된 겁니까? "
태오의 질문에 조준은 슬쩍 고개를 돌려 세실을 쳐다봤다. 그녀 역시 정조준을 바라보고 있었고 조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실이 태오를 바라보고 말했다.
" 저번 임무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어. 아무리 단순한 조사 임무라고 하지만 서로를 잘 몰랐고 그래서 문제가 많았지. 아무리 심사숙고해서 모은 뛰어난 특수부대요원이지만 급조된 부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어. 그래서 일단 서로 익숙해질 시간을 가질 생각이야. 당분간 전투임무는 없을 테니 저번의 팀 그대로에 2팀에만 정조준 보좌관님이 들어가는걸로. "
그녀의 대답에도 태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못했다. 오히려 조준의 표정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 그럼 마지막으로 유미. "
세실은 마지막으로 유미를 바라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네. 대장님. "
그에 비해 유미는 별로 힘이 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 에반에게는 접근금지처분도 내려져 있으니까 찾아가면 안돼. 알았지? "
유미는 예상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축 늘어뜨릴 뿐이었다.
" 좋아. 이걸로 전달사항은 끝. 혹시 정조준 보좌관님한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도록 해. "
세실은 그 말만을 남기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저기 유.. "
알렉스는 유미를 부르려고 했지만 유미는 세실이 나가자마자 바로 나가버렸고 알렉스는 언제나 그랬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태오는 예주와 설하를 밖으로 먼저 내보냈다. 둘은 정조준에게 꽤나 관심이 있어 보이는 눈치였지만 태오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태오는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를 어떻게 밖으로 내보내야하나라고 고민하던 도중 알렉스가 말했다.
" 정조준 보좌관님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신거죠? "
조준은 생각외의 질문에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회사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지. 달늑대의 인사배치에 그만한 이유가 있나? "
" 달늑대가 회사의 명령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개인의 자유 또한 챙겨주는 편입니다. 그것이 임무의 선택권이든, 외부로 전출이든간에요. 물론 자신의 실적이 낮다면 회사의 명령을 따라야하는게 맞겠지만 특무대에 들어갈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가진 요원이시라면 신출인 그것도 첫 임무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특수부대로의 전출을 명령만으로 왔다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
" 알렉스는 생각이 많은 아이구나. "
조준은 슬쩍 곁눈질로 태오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못 느낄 태오도 아니었고 알렉스 또한 그랬다.
조준의 시선을 따라 알렉스의 눈이 태오에게로 이동했고 알렉스는 이내 고개를 갸웃이며 말했다.
" 태오씨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
" 그냥 아는 사이라서 그런거야. 왜? 같은 한국인의 피가 몸에 흐르고 있잖아? "
조준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알렉스를 놀리려고 하는 듯, 유도하려는 듯이 보였지만 오히려 알렉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 아...그런거였군요. 태오씨의 지인인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억측을 한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
" 어?! 어.. 그래. 이해해주니 고맙네. "
예상치 못한 알렉스의 반응에 오히려 조준은 당황했고 예의바르게 인사까지하고 회의실을 나가는 알렉스를 바라보며 조준은 말했다.
" 예리한 건지....일부로 모르는 척 하는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저 아이는. 현자의 교육의 탓일까? 이태오군? "
" 대체 뭐 하러 다시 나타난 거야. 계약의 건이라면... "
" 잠깐 기다려. "
조준은 태오의 말을 막고는 이내 가벼운 손짓으로 자신의 마력을 방 주위로 날렸다.
" 이제 됐어. 누가 들으면 안되잖아?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계약때문에 찾아온 건 아니니까 말이야. "
" 그렇다면 어째서? "
"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그게 생각보다 잘 안됐다고만 말해두지. "
" 그럼 앞으로 내 태도는.... "
" 그냥 단순한 지인정도로만 해도 좋아. 나도 볼일만 끝나면 곧바로 돌아갈 생각이니까. "
조준은 다시 한번 손짓으로 자신의 마력을 거둬 들였다.
" 그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이태오 요원. "
조준도 그런 그를 회의실에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이태오는 고개를 숙였다.
후회하고 있는 듯 보였다.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이내 다시 힘을 풀었다. 회의실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회의실의 뒷문으로 나갔던 예주와 설하가 들어오며 태오의 상태를 살폈지만 태오는 한동안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
에반은 생각하고 있었다.
'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지? '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병원을 습격해 랑요원들을 만나러 간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품행점수가 깎이면 될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만큼 점수는 넉넉했고 문제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화를 내고 있었다.
화는 자신의 것이었고,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점점 버틸 수 없게 되었다.
그 화살은 점점 다른 자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 분명 자신이 치료할 수 있다고 했으면서! '
그녀가 엄청난 마법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녀와 함께 다니는 그 또한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도.
라이니오스가 에반을 만날 때마다 해줬던 말이다. 그 둘은 어떻게 해서든 행복해져야만 한다고.
그때 당시에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째서라는 물음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둘을 처음 볼 때 생소했다. 본 적도 없었고 그 둘의 이름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과거의 기록에도 그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들이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도 아니었다.
의문이 들었다.
그들이 대체 뭐길래. 그런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거지?
각 국장들도 모두 그들에게 예우와 존경을 표시하고선 그 이유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그럴 자격이 있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고 그것이 더 에반을 지금 고통스럽게 했다.
쾅.
에반은 바닥을 내려쳤다.
꽤나 힘이 들어간 그 일격으로 바닥에는 균열이 생겼다.
집밖에서 감시라도 하고 있던 모양인지 바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손에는 이미 장전 완료된 총이 쥐어져 있었고 에반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표정이 일그러져졌다.
들어온 요원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에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에반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속삭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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