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스간 16
오리하의 뒤에서 나타난 사람은 로지나였다. 여전히 조금 순진해보이는 표정으로 이곳에 오리하가 있는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는 모습이였다. 그녀는 이곳 카페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는 듯, 카페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비어있는 작은 쓰레기통이 2개가 쥐어져 있었다.
오리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나지막하게 미소지었다.
" 오랜만이에요. 로지나 풀문. 그때 이후로는 처음보네요. "
오리하의 미소에 로지나 역시 미소지었다. 하지만 둘의 사이에는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미묘하다랄것까진 아니지만 둘은 그저 타인이였다. 서로가 쿄우를 알고 있는, 즉 친구의 친구라는 친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타인처럼 대하기도 복잡미묘한 관계라는거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또 다른 관계가 있긴 했다.
" 아. 네. 그런데 갑자기 달늑대에는 무슨 일로 오신거에요? "
로지나는 그 곰같은 특유의 표정으로 오리하에게 물었다. 오리하의 미소가 곧 눈웃음으로 바뀌었고 카페의 문잡이를 잡고서는 말했다.
" 당신도 들어서 나쁠 건 없겠죠.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요. 이렇게 카페 입구에서 이야기하는건 보기 좋지 않으니까요. "
딸랑걸리는 종소리와 함께 카페의 문이 열렸고 오리하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 로지나가 들어왔고 로지나는 바로 들고 있던 휴지통을 있던 자리에 되돌려 놓고는 카운터로 돌아가서 손에 끼고 있던 비닐장갑을 벗어 버렸다.
오리하는 들어오자마자 쿄우를 찾기 시작했다. 같이 카페에 왔지만 쿄우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오리하는 로지나의 등장으로 그를 바로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쿄우는 창가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뭔가 깊히 생각에 빠진 모양이였다.
하지만 곧 그의 사려깊은 생각은 금세 부서져 내렸다. 오리하가 로지나와 함께 그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애초에 쿄우는 로지나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가 놀라고 있던 부분은 바로 오리하가 로지나와 함께 오고 있다는 것이였다. 기우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 자. 로지나 풀문. 당신이 쿄우의 옆에 앉아요. 난 반대편에 앉을테니까. "
그렇게 말하고는 오리하는 로지나를 쿄우의 옆으로 밀어넣어 앉히고는 자신은 반대편으로 가서 앉았다. 갑작스러운 오리하의 친근해보일려고 하는 행동에 로지나는 당황하며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 주문을 받아야.. "
" 괜찮아요. 여기 점장님~. "
로지나의 말을 단칼에 끊으며 오리하는 손을 들어올려 카운터에 있는 점장에게 손을 흔들었다. 카운터에 있던 점장은 곧 주위에 있어야할 로지나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자신을 호출한 손님의 탁자에 함께 앉아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 메뉴판을 들고는 오리하에게 다가왔다.
점장은 꽤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였다. 오리하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를때부터, 꽤나 먼 거리였지만 그녀의 옷깃에 붙어있는 표식을 보고 그녀의 직함을 알아본 것이다. 그들에게로 도착한 점장은 곧 메뉴판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 주문하시겠습니까? "
오리하는 메뉴판을 들고서는 즐거운듯이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쿄우와 로지나 역시 자신이 마실 음료를 주문했고 점장은 금방 자리를 떠났다.
" 자 그럼 뭘 어떻게 말해줘야 날 믿어줄까나? 쿄우는? "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턱에 괴며 오리하는 말했다. 조금은 들뜬 목소리에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로지나는 조금이나마 경계를 하고 있던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쿄우는 달랐다.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오리하를 바라보고 있었고 곧 그런 쿄우의 모습을 알아챈 로지나는 곁눈질로 쿄우의 표정을 살피고는 시선을 돌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 지금부터 너가 하는 모든 일을 나에게 보고해. "
쿄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리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로지나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갈피도 못잡는 모양이였다.
" 그래. 못할 거 없지. "
오리하는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아무런 저항도 없이 승낙을 했기 때문일까. 쿄우는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였다. 그러더니 다시 말했다.
" 거기에 나와 같은 팀이 되줘야겠어. "
이번에는 입꼬리가 아닌 눈썹이 갑작스럽게 올라갔다. 조금은 놀란듯 오리하는 고개를 갸웃이며 말했다.
" 진심이야? "
" 내가 언제 허투루 말한 적이 있었나? "
" 하긴. 하지만 정말로 괜찮겠어? 내가 하는 일은 결코 너가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닐꺼야. "
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들에게로 음료가 놓여있는 쟁반을 든 점장이 다가왔다. 오리하에게는 쵸코라떼를, 쿄우에게는 블랙을, 로지나에게는 오렌지쥬스를 각각 내려놓고는 그들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 날 시험이라도 해 보겠다는거야? "
" 아니. 말 그대로의 의미야. 내가 앞으로 하는 일들은 너가 이제껏 해왔던 표면적인 일이 아니라는 거야. 단순하게 임무의 목표만을 완수하는 그런 일이 아니야. "
작은 스푼으로 쵸코라떼의 윗크림부분을 살짝 푸고는 입속으로 넣고는 맛있게 음미하며 오리하는 자신의 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오리하를 보고 있었다. 누구와는 다르게 오리하는 그런 쿄우를 알고 있었다. 오리하는 다시 한입 더 먹고는 말했다.
" 내가 하는 일은 정말 더러운 일이 될꺼야. 난 달늑대가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 되게 할꺼라구. 그걸 위해서 외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간에 아버지의 적은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전부다 없앨거야. 넌 그걸 견뎌낼 수 있겠어? "
" 당연히.... "
쿄우는 곧바로 대답했다. 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오리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쿄우는 이를 악물었다. 커피를 들고 있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잔속에 있던 커피조차 떨리지 않을정도로 미세한 떨림. 하지만 그것은 곧 멈췄고 그걸 확인한 오리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 견딜 수 있어? "
" 할 수 있어. "
나지막한 목소리로 쿄우가 대답했다. 오리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음료의 윗부분에 있던 크림을 모두 다 먹은 후였다. 단것을 먹어 만족한 것이였는지, 쿄우의 대답에 그런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녀의 표정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 그래. 아버지에게는 내가 잘 말해놓을테니까. 같은 팀이 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거야. 앞으로 얼마나 너가 잘 버틸지 기대가 되는걸? "
쿄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엄청난 피곤함을 느끼는 모양인지 깊은 한숨과 함께 의자 옆, 한켠에 세워둔 사인검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 이걸로 끝이지? 난 이만 돌아가봐야겠어. "
" 아니. 아직 안 끝났어. 자리에 앉아. "
오리하는 금세 쿄우에게 다시 명령했다. 그는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녀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표정이 한 껏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둘을 바라보며 로지나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못한채 들고 있던 물을 마시고 있을 뿐이였다.
" 뭐가 더 남은거지? "
" 여기에 온 이유가 더 있다는거지. "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페의 출입구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렸고 그곳으로부터 2군단장인 아이언버그와 부관인 권준혁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유도라도 한듯 오리하의 말과 함께 등장한 그들을 확인한 쿄우는 금세 다시 한번 피곤함과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언버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치 주위에 위험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자리를 찾는 사람과도 유사해 보였다. 아이언버그의 눈길이 카페의 모든 것을 훑고 지나갔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는듯 그는 곧 권준혁과 함께 카페의 한 자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앉은 자리는 바로 쿄우와 오리하가 앉아있는 곧의 옆자리였다. 오리하의 뒤에 아이언버그가 앉았고 그 반대편쪽으로 권준혁이 앉았다. 쿄우는 그 모습을 놀란채로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자리의 배치상, 권준혁이 자리에 도착해 앉을때 쿄우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권준혁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쿄우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행동했기 때문이였다.
쿄우는 오리하를 바라봤다.
" 또...무슨 짓을 꾸미려고 하는거야. "
" 어머 벌써부터 이렇게 못 참으면 어떡해? 아까는 견딘다고 하지 않았어? "
쿄우의 말에 오리하는 그를 놀렸다. 이것은 그를 막는 방법이기도 했다. 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마. 다 설명해줄꺼야. 지금 달늑대의 내부상황에 대해 아는게 있어? "
이번에도 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때 이후로 한동안 폐인같은 생활에 빠졌고 복귀하자마자 가장 위험한 임무에 배정되고나서 임무완료 후 근신처분을 당한거다. 그런것을 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 지금 달늑대의 내부는 매우 혼란스러워. 일단 이사회라는 듣도보도 못한 단체가 생겨났어. 거기다 우리 뒤에 앉아있는 2군단과 4군단의 상태가 이상해. 이들 모두를 제거할꺼야. 일단은 우리 뒤에 있는 2군단을 먼저 손보려고 해. "
" 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제거한다고? "
" 응. "
" 그건 말이 안돼. 아무리 그래도... "
쿄우는 받아들일 수 없던 모양이였다. 오리하의 말대로 그는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 쿄우. 말이 돼고 안돼고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의 목적은 달늑대가 다가올 재앙에 가장 강력한 인간군집으로 만드는거야. 지금 이사회나 2,4군단의 행동은 달늑대의 전력을 깎아내리는 행위야. 지양되어야해. 그래서 가장 자연스럽게 2군단을 제거할 방법이 있어. "
그녀의 말에 머리가 아픈듯 그는 한동안 한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음에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곧 2군단에 대한 말이 나오자 급히 고개를 들고서 말했다.
" 설마 2군단을 모조리 다 죽이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
" 물론 저기 앉아있는 아이언버그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초창기이기때문에 시간은 넉넉한 편이야. 그들 모두를 제거하는 편이 반란의 싹을 자르는데 더 효과적이겠지. "
오리하는 말끝을 흐리면서 뒷자리에 앉아있는 권준혁을 흘겨봤다. 마치 쿄우에게 보란듯이 말이다.
" 일단은 아이언버그에게 접촉해 그를 협박할꺼야. 죽고 싶지 않으면 내 말을 들어라고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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