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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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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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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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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1.01.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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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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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30화

DUMMY

"아야야..."


다행히 안젤라는 다친 곳은 없어 보였고, 안젤라는 엘레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어머, 무사하신 모양이네요. 저흰 무사하지 못하지만."


마치 무사하지 못하기를 바라기라도 한 것 같은 어조로 말하는 미리엘. 안젤라는 그런 미리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제 실수로 옷이 더러워져 버렸네요."


가타부타 할 것도 없이 바로 사과를 하는 안젤라의 태도는 예상치 못했는지 미리엘은 살짝 멍한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다시 깔보는 표정을 잡고는 말했다.


"흐, 흥. 아주 잘 알고 있군요?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지실 생각이죠?"

"다음에 제게 맡겨주신다면 아주 깨끗하게 세탁해서 돌려드릴..."

"어머머! 지금 저더러 오물이 묻었던 옷을 다시 입으라고 하는 거예요? 기가 막히는군요!"


사실 귀족 가문의 사람들도 옷에 뭐가 묻었다고 옷을 버리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안젤라를 무지몽매한 평민이라고 여기고 있는 미리엘은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또 그 말은 저더러 오물이 묻은 더러운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수업을 들으란 거죠? 하! 아주 치욕적이네요!"

"그런 의도는 없었..."

"어쩜 세상에 이럴 수가! 평민이 귀족가의 자제분을 이렇게 모욕하다니! 바깥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평민은 여기가 학교라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네요."


미리엘 패거리는 아주 작정을 했는지 안젤라가 뭐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안젤라를 몰아붙였고, 한동안 재잘거리던 미리엘 패거리의 입이 닫히자 안젤라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해 드리기를 바라시는 건가요?"

"아, 안젤라! 그러면 안 돼! 애초에 안젤라가 넘어진 건...!"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정황에 엘레나가 항의를 하려 했지만 안젤라는 엘레나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이게 미리엘 패거리의 자작극이라고 주장이라고 했다가는 이제는 사람을 염치도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려 한다고 난리를 피울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후훗. 평민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요? 하긴, 그런 능력이라도 없으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요?"


원래의 계획은 당황하는 안젤라에게 이것저것 더 많은 덤터기를 씌울 계획이었지만 미리엘은 이정도로 만족하고 슬슬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저희의 조건은 아주 간단해요. 저희의 더럽혀진 옷을 전부 배상해주시는 거죠."


당연히 평민인 안젤라로서는 고가의 드레스의 값을 물어낼 수 없기에 말이 되지를 않는 조건이었다. 안젤라가 입을 열려는 순간 미리엘이 이어 말했다.


"그걸 못하시겠다면...후훗. 오늘 하루 동안 저희의 시종 노릇을 해 주셔야겠어요."


-----


"미리엘 아가씨. 여기 부탁하신 홍차에요."

"후훗. 고마워요."


미리엘은 메이드복 차림의 안젤라가 따라주는 홍차를 우아하게 홀짝였다. 홍차의 깊은 향을 음미하며 씁쓸한 맛을 충분히 즐긴 미리엘은 찻잔을 그릇에 달그락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 이게 아니잖아요!"


이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테이블 쾅 소리가 나게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일이 생기기 전부터 사전에 준비해둔 것인지 안젤라의 메이드복을 챙겨올 때 같이 옷을 가져왔기에 미리엘과 그 추종자들의 옷도 깔끔한 새것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뭔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신가요. 아가씨?"

"아, 아니. 그야 대접은 생각보다 훌륭했지만...다, 당신 접대가 너무 익숙한 거 아닌가요? 내가 원한 그림은 이런 게 아니란 말이에욧!"


미리엘이 상상한 그림은 오늘 하루 동안 안젤라가 종노릇을 한다는 것에 굴욕감에 몸서리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안젤라는 마을에 있을 때 아가씨 생활에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촌장의 딸에게 시달렸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이번에는 진짜로 고급 찻잎을 쓴다는 것 외에는 평소의 생활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섬김 받는 입장에서 기초 교양이 있는 만큼 미리엘의 대접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근본이 나쁜 아이로는 보이지가 않네요.'


점심시간 이후에, 수업 시간 동안 미리엘을 따라다니며 그녀를 관찰한 결과, 자신의 파벌에 속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차별이 좀 심하기는 해도 악하다고 판단될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악하다기보다는 그저 철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귀한 가문에서 오냐오냐 모셔진 결과 아직 인간적인 성장을 완전히 끝내지 못한 듯 했다.


'그래도 아침의 그건 심했어요.'


그래도 안젤라의 기준에서 학우 한 명을 골라 따돌리는 것은 용서하기 힘든 일에 속했기에 해결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안젤라였다.


"하아...왠지 지치네요. 이젠 뭔가 아무래도 좋아졌어요."

"차를 좀 더 따라드릴까요?"

"아뇨. 됐어요. 다음 수업이 마지막이니 하교 후에 저희 집에서 다과회를 열 예정이니 그 준비를 해주면 고맙겠군요."


처음에는 안젤라가 뭔가 실수라도 하지 않나 싶어서 이것저것 시키면서도 전전긍긍하며 안젤라를 지켜봤던 미리엘이었지만 뭘 시켜도 척척 해내는 모습에 이제는 아예 숙련된 시종을 대하듯이 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놀랍게도 촌장의 딸은 시골 촌구석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모를 다과들까지 마련해 동네 여자아이들을 모아 다과회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비록 그 끝은 아이들이 차는 마시지 않고 과자만 허겁지겁 집어먹었기에 촌장의 딸이 울상이 되는 안쓰러운 결말로 끝났지만, 그렇기에 안젤라는 무려 다과회의 준비물 또한 숙지하고 있었다.


"...당신 대체 못하는 게 뭔가요? 다재다능한 것에도 정도가 있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안젤라를 바라보는 미리엘에게 안젤라는 그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다음 수업의 책을 챙기기 위해 자리를 떴다.


"펴, 평민들은 다 저런 건가요? 당황스럽네요."


미리엘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남아있던 약간의 홍차를 홀짝였다.


안젤라가 이동하며 복도의 코너를 돌자, 벽 뒤에 숨어있던 엘레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엘레나양? 거기서 뭐 하시는 건가요?"

"앗, 안젤라양! 무사해? 미리엘이 너무 심하게 괴롭히지는 않았어?"


엘레나는 호들갑을 떨며 안젤라가 어디 다친 데는 없나 안젤라의 온 몸을 더듬었고, 안젤라는 쑥쓰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런 거 없어요 엘레나양. 꺗. 가, 간지러워요."

"미, 미안! 내가 또 너무 호들갑을..."


자신이 무례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엘레나가 안젤라에게서 떨어졌고, 그래도 걱정스러운지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시종 노릇이라니...어쩜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게 심한 짓을! 아, 안젤라! 혹시 뭐라도 당한 게 있으면 전부 말해줘! 교칙은 전부 외우고 있으니 뭐라도 걸리는 게 있으면 바로 찔러버릴게!"


300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단 직속의 엘 레지덴티에 학교는 그 긴 역사의 길이만큼이나 교칙이 적혀있는 책 역시 두툼했고, 그걸 전부 외웠다는 엄청난 말을 은근슬쩍 흘리는 엘레나였지만 안젤라는 유감스럽게도 그 사실을 몰랐기에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눈치 채지 못했다.


"생각보다 할 만 해요. 시종 노릇. 그리고 이 옷 생각보다 잘 어울리지 않아요?"


확실히 원래 입고 있던 옷보다는 좋아 보이고, 또 비싸 보이는 메이드 복을 입은 채 안젤라는 한 바퀴 빙글 돌았고, 엘레나와 지나가던 남학생들은 그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화, 확실히 귀엽...긴 한데!"


근처의 남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히, 힘들지 않아? 그리고 자존심도..."

"고향에 조금 곤란한 꼬마 아가씨가 있어서 말이죠. 이 일도 하다보면 제법 할 만하답니다?"

"으...그래도 뭔가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해 줘야해? 크, 큰 도움은 되지 못할지도 못하지만..."


실컷 잘 말하다가 혼자 풀이 죽는 엘레나. 안젤라는 오히려 엘레나의 떨어진 자존심을 어떻게 회복시켜 줄 수 없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음, 당장 떠오르는 건 없네요."

"무, 무슨 얘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잠깐 잡담을 나누던 둘은 각자의 책을 챙기기 위해 떨어졌고, 안젤라는 미리엘과 함께 오늘의 마지막 수업인 중급 대륙어 수업의 교실로 들어갔다.


중급 대륙어 수업의 교사는 머리가 살짝 벗겨진 나이가 지긋한 전직 사제였고, 교사는 메이드복 차림으로 당당히 교실에 들어오는 안젤라를 보고 질문했다.


"으음...수업에 시종을 대동해도 된다는 교칙은 없는 걸로 아는데. 설명을 들을 수 있겠나?"

"아. 죄송해요. 전 시종이 아니라 학생인데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옷차림이 이래서...조금 양해를 구할 수 있을까요?"


미리엘의 의도에는 혼자 메이드복 차림인 것에서 수치심을 느껴보라는 것도 있었지만 안젤라는 딱히 수치심 같은 걸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귀여운 옷을 입어서 기쁘다고 생각했기에 역효과였다.


"음...너무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말게나."


미심쩍은 눈으로 안젤라를 바라보던 교사는 그 말을 끝으로 안젤라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업을 시작했다.


-----


아는 글자가 몇 없는 안젤라에게 대륙 공용어 수업은 어쩌면 오늘 하루 중에 가장 유익했던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초급 과정을 건너뛰고 중급 과정부터 시작하게 되어서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혀 문외한인 마력 쪽이나 연금술 보다야 나았다.


"그, 그러고 보니 방과 후에 특별 교습이 있다고 했었는데...다과회 약속을 잡아버렸네요."


오늘 하루 미리엘의 시종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방과 후에도 미리엘의 집까지 따라가기로 했었던 것이다. 참고로 엘레나는 안젤라와 같이 하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약간 시무룩해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표정이 좋지 않은데."


안젤라의 고민이 가득한 표정을 보고 미리엘이 말을 걸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정이라도 든 것은 아니겠다만 일단 눈앞에서 자신의 시종 노릇을 해주는 사람이 고민하고 있으니 물어는 보는 것이 예의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아침에 갈루에 선생님이 저에게 특별 교습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미리엘 아가씨의 다과회와 일정이 겹쳐서...첫날부터 교습을 빠지면 불량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안젤라는 풀이 죽어서 축 늘어졌고, 미리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바보에요? 그거야 다과회를 잠깐 미루면 되잖아요? 무슨 다과회 때문에 수업을 빼먹겠다는 소리를 해요?"

"네?"

"사실 수업 듣기 싫어서 제 핑계를 대려는 건 아니죠? 그런 거라면 사양이에요."


안젤라는 미리엘의 말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안젤라가 온갖 일들을 하면서 본인의 사정을 배려 받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안젤라의 사정이란 언제나 우선순위의 최후미에 놓여 있는 것이었고, 안젤라의 인생은 언제나 남들의 사정에 휘둘리기만 하는 삶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사정을 가장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런 배려를 받게 되는 것은 안젤라에게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왜 멍하니 있어요? 교습 받으러 안 가요?"

"앗. 죄, 죄송해요. 잠깐 멍하니 있었네요."

"흥. 오늘 하루는 제 시종이니 그 행위에 품위를 가지도록 하세요. 괜히 제 명성에 흠집이 간답니다."

"며, 명심할게요."


최악에 가까운 첫인상 때문에 낮았던 미리엘에 대한 호감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잊혀진 루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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