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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4,958
추천수 :
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0.12.29 20:00
조회
60
추천
3
글자
11쪽

20화

DUMMY

"그럼 성녀님. 슬슬 마을에도 한 번 내려가 보시겠습니까? 그레이스 부부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게 좋겠네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안젤라는 인사성 좋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교인들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받으며 교회 밖으로 나왔다.


"후...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긴장했네요."


안젤라는 살짝 땀에 젖은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며 말했고, 지금까지 입을 꾹 닫고 있던 루시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선행을 하고자 한다면 감사 정도는 들을 줄 알아야지. 뭐, 달라붙어오는 거머리들을 떼어내는 게 더 중요하긴 하지만."

"거머리요?"

"그래.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에는 선행을 선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놈들이 아주 많거든. 좋은 마음으로 한 일에도 트집을 잡으며 물어뜯으려는 놈들이나 단물만 빨아먹고 날라버리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지."

"그런 건가요."

"그래. 넌 그런 경험 없냐?"


안젤라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생각해보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제법 있네요. 그 사람들이 거머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지만요."

"앞으로는 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힘을 가진 이상 이상한 트집을 잡는 놈들이야 줄겠다만 그만큼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찰거머리들이 늘어날 테니까."

"잘 모르겠네요."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사실이 익숙하지 않은 안젤라였기에 자신에게 누군가가 빌붙는다는 사실을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냐. 뭐, 상황이 닥치면 알게 되겠지."


교회와 마을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고, 그들은 금방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금의 하늘이라는 기현상이 발생했음에도 마을의 풍경은 어제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어제보다는 왠지 좀 부산스러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소란스러운 감이 있었다. 하긴 이런 기현상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입방아에 오르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지만 말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해지네요."

"..."


루시퍼는 뭔가 불만인지 뚱한 표정을 지었고, 안젤라는 옅은 미소로 흐뭇하게 마을의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 헬퍼트가 말했던 병원이 어디 있는지 살폈다.


"아! 저기인 것 같아요."

"나도 봤다."


붉은 십자가 그려진 팻말이 달린 건물을 찾은 안젤라와 루시퍼는 나무문을 열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고, 마침 복도에서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던 헬퍼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우. 왔냐? 금방 왔네?"

"네. 세리아씨는 좀 괜찮으세요?"

"정신은 어떻게 차렸는데...기억이 좀 혼란스러운 것 같아. 의사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는 하는데 걱정되네."


그야말로 걱정스럽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듯한 표정과 태도에 안젤라는 어떻게든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괘, 괜찮을 거예요! 그...지금 퍼져있는 신성력 때문에 웬만한 부상은 다 낫고 지병 같은 것도 치료되고 있대요."

"그, 그래? 그건 다행이군!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마나 탈수증 때문에 슬슬 빌빌댈 시간인데 활력이 넘치는군. 이것도 그 신성력 덕분인가?"


헬퍼트가 어깨를 붕붕 돌리며 조금은 나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출산 예정일도 다 돼서 말이지. 그 괴물자식한테 들어가 있었던 게 안 좋게 작용하지는 않겠지...?"


또다시 불안한 표정이 되어버리는 헬퍼트.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에 루시퍼가 끼어들었다.


"만에 하나 그 괴물의 마기가 네 아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쳤더라도 이놈이 터뜨린 신성력에 싹 다 정화되었을 거다. 최상급 악마도 간신히 소멸되지 않고 버틴 게 고작인데 고작 개조된 사이클롭스 따위의 마기가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오, 오오오...놈팡이는 박식하군. 고마워."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불안한 것인지 헬퍼트는 자꾸만 정신 사납게 복도를 서성거렸고, 루시퍼가 짜증을 터뜨리려는 찰나에 안젤라가 입을 열었다.


"그...세리아씨는 저희를 기억하지 못하겠죠?"

"그런 모양이야. 정확히 언제 그 악마 새끼랑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너희들이 오기 한참 전부터 바뀌었다는 거지. 지금 찾아가 봤자 더 혼란스러워 할 것 같으니 미안하지만 조금 안정이 된 뒤에 와 주면 고맙겠어."

"네. 알겠어요."

"미안해. 은인에게 대접을 해 드려야 하는데 아내가 걱정이라..."


이 와중에도 병실을 힐끔거리는 헬퍼트에게 안젤라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저흰 괜찮으니 세리아씨를 잘 살펴주세요. 이럴 때 남편이 옆에 없으면 힘들 것 같아요."

"그, 그렇겠지? 이 빚은 다음에 꼭 갚을게!"


헬퍼트는 그렇게 말하며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가 안정을 취해야 된다는 의사의 말에 시무룩해져서는 다시 복도를 서성거리기 시작했고, 그 광경에 안젤라는 그저 한번 웃어보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제 할 일은 다 끝났냐?"

"심문관님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겠고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좀 쉬도록 하지. 피곤해 죽겠군."


그 말대로 차림새는 어느 정도 깔끔하게 정돈한 루시퍼였지만 눈 밑이 검게 죽어있었고 안색도 해쓱한 것이 다시 병원에라도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몰골이었다.


"네, 네에...배려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배려? 니가? 나를? 웃기는 소리하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방은 미리 잡아 뒀으니까."


하루치 숙박비는 날려버렸지만 루시퍼는 그런 것에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어제 잡아 뒀었던 녹색 지붕의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어서 옵쇼~"


여관 홀의 테이블을 닦고 있던 주인장이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인사말을 던졌다.


"숙박 연장이다. 어제 못 묵었으니 일단 후불로 처리해주면 고맙겠군. 정말 죽을 정도로 피곤해서."

"에? 설마 당신들..."


루시퍼의 말에 주인장이 드디어 이쪽을 돌아보았고, 안젤라와 루시퍼의 얼굴을 확인한 주인장이 호들갑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으허어억!"

"뭔데? 왜 그래?"

"서서서성녀님!"


주인장의 말에 루시퍼의 표정이 팍 찌푸려졌고, 안젤라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질문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야! 거기선 부정해야지!"

"앗! 그, 그러네요."

"역시 성녀님이셨군요! 세에상에! 성녀님이 설마 내 가게에 묵을 줄이야!"


주인장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고, 당황한 안젤라는 허둥대며 말했다.


"그, 그건 둘째 치고 정말 어떻게 아신 거예요?"

"어떻게냐니...옆집 리차드씨한테 들었는뎁쇼? 키 큰 흑발 남자랑 같이 다니는 금발 아가씨가 성녀님이고 성녀님이 저희 마을을 구하셨다고요."

"리차드는 누구야 또."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지만 인상착의까지 퍼진 것을 보니 제법 자세한 내용까지 소문이 난 듯 했다.


"하아...골치 아프군."


카타리나의 입은 어떻게 막아 두었지만 루시퍼는 헬퍼트의 입까지는 미처 막지 못했고, 헬퍼트는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시시콜콜한 사족까지 모조리 붙여서 다 떠벌렸고, 의사는 우편배달부 찰리 씨에게, 찰리 씨는 푸줏간 아저씨 리차드에게, 그리고 리차드는 이 여관 주인장에게 소문을 전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마을이 안젤라의 소문을 듣게 된 것이었다.


"시골 마을의 소문 퍼지는 속도. 무섭네요."

"정말로 그렇군. 이건 거의 마법의 경지 같은데."

"일단 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마누라아! 이리 나와봐! 성녀님이 우리 가게에 오셨다고!"


루시퍼는 지금이라도 입단속을 시키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말을 꺼냈지만 이미 주인장은 주방으로 달려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중이었다.


"미쳐버리겠군."

"악마님. 이제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관 아주머니에게 정보가 들어간 이상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하아, 이젠 몰라. 난 잔다."


루시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고, 안젤라는 주인장 내외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눈을 깜빡였다.


"어, 어쩌죠..."


-----


한편, 세바스는 잠시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추스르고는 일단 맬리스 마을의 교회로 돌아왔다.


"아, 심문관님. 돌아오셨군요."

"네. 수녀님. 면목 없습니다만 악마는 놓쳤습니다."

"어쩔 수 없죠. 성녀님께서 먼저 다녀가셔서 상황은 들었어요."

"그렇습니까."

"네. 괜찮으시다면 심문관님의 이야기도 들려주시겠어요?"


도망친 아스모데우스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것은 세바스였기에 그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


하지만 세바스는 침묵했고, 카타리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문관님? 왜 그러시나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가 듣고 싶으시다고요?"

"심문관님께서 마지막으로 악마와 조우하셨으니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만."

"...악마는, 놓쳤습니다. 그 검은 옷. 상당히 민첩하더군요."

"그런, 가요. 유감이군요."


어째서인지 세바스는 거짓을 고했고, 카타리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수고하셨어요. 심문관님. 마을을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감사 인사를 들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세바스의 표정은 괴로워 보이기까지 했으니, 카타리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딘가 부상이라도 입으신 건가요?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요."

"아닙니다. 더 볼일이 없으시다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네, 네. 살펴가세요. 당신의 앞길을 신께서 보우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세바스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바로 교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여전히 황금빛으로 물들어있었지만, 신성력이 처음 폭발했을 때보다는 조금 옅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우선은 가문으로 돌아가야겠군."


본디 주교에게 보고를 올리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이었겠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아이리스에 대한 일로 가득 차 있었다.


듣자하니 안젤라와 루시퍼도 수도로 향한다고 했으니 최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동행하여 마차라도 타고 가는 것이 최선일 터였다.


"일단 그 둘을 찾아야겠군."


세바스는 중얼거리며 마을로 향했다.


-----


"아...피곤해."


지상계에 내려온 이후로, 수면이라는 극히 비효율적인 회복 수단을 처음으로 시도해본 루시퍼가 짜증을 내며 중얼거렸다.


"회복을 하고 싶어도 회복할 마력이 어디에도 없으니 빨리 이 마을을 뜨던지 해야지 원."


본래 루시퍼는 자연의 마나를 흡수해 상처나 피로 등을 회복시키는 수단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자연의 마나가 모두 신성력으로 대체된 이후에는 그 수단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는 현재 보통 인간과 회복 속도가 동일했다.


그런데 바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버렸으니 짜증이 날 만도 했다.


"대체 뭔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워?"


루시퍼는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고, 바깥 풍경에 잠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맬리스 마을 에피소드가 슬슬 끝나가는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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