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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4,953
추천수 :
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0.12.21 20:00
조회
66
추천
4
글자
12쪽

12화

DUMMY

산의 초입을 지나자 산길의 풍경은 급속도로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함정에 빠져 죽은 마물들이 온갖 방식으로 처참하게 나자빠져 있었는데, 이 광경에는 제법 험한 꼴을 많이 보아온 세바스조차 속이 거북해질 정도였으니 안젤라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었다.


"심한 풍경이네요..."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밖에는 안 드는데, 자세히 보면 지들끼리 뜯어먹은 흔적도 있거든?"

"별로 자세히 보고 싶지는 않네요."


안젤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 말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만 보면서 걷기 시작했고, 세바스는 그 말이 신경이 쓰여 마물의 시체들을 살펴보니 확실히 이빨 자국 같은 것들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이놈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일 뿐이야. 거기다가 악성에 물들기까지 했으니 인간에게는 해악 그 자체겠지."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마물을 길들이려는 시도는 제법 많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거 우리도 길을 잘못 들면 저 시체들 같이 꼴이 될지도 모르겠군. 야. 깡통. 길안내 똑바로 하라고."


세바스가 카타리나에게 받은 쪽지를 들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했고, 세바스는 당연하게도 깡통이라는 말에 발끈하며 말했다.


"깡통이라니, 죽고 싶나 악마놈?"

"지는 악마놈이라고 부르면서 나는 안 된다니 내로남불이 따로 없군. 신을 믿는다는 놈이 그러면 쓰나?"

"으그극..."


말빨로는 루시퍼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세바스였기에 루시퍼는 시종일관 세바스를 몰아붙였다.


"깡통이 맘에 안 든다면 꼰대, 도끼남, 떡대라는 후보도 있는데 뭐가 마음에 드냐?"

"네놈...!"

"그만해 주세요. 루시퍼씨."


거의 폭발하기 직전인 세바스를 구원한 것은 안젤라였다. 하긴 그녀 성격에 이런 다툼을 그냥 두고 볼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심문관님도 루시퍼 씨를 험하게 부르시는 것을 그만둬 준다면 좋겠네요. 루시퍼씨도 아마 그걸로 납득하실 거예요."

"으음...고려하지."


루시퍼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고, 세바스는 표정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한동안 그들은 말없이 걸었고, 세바스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이, 악마놈."

"이 새끼 이거 아직 정신 못 차렸네. 그 후보들 중에 뭐가 좋..."

"꼰대로 하지."

"..."


죽어도 악마를 높여 부르기는 싫다는 세바스의 굳은 의지에 순간 천하의 루시퍼도 할 말을 잃었고, 안젤라도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하아...벌써부터 피곤한 기분이에요."

"동감이다."


상상 이상의 고지식함에 루시퍼는 혀를 내둘렀고, 이런 사소한 말다툼을 계속하던 그들은 어느새 산꼭대기의 오두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그럼 바로 들어가 보실까."


루시퍼는 주저 없이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응? 드디어 지원이 도착했나."


오두막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병색이 완연한 기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한명의 여자였다. 그녀는 타오르는 듯한 적발에 펑퍼짐한 바지에 검은 군화를 신고 상반신에는 가슴에 붕대만 감아놓고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남자의 오른쪽 팔에 뭔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투명한 물주머니 같은 것이 기둥에 걸려 매달려있었고 거기에 연결된 관 같은 것이 물주머니에 든 액체를 남자의 팔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교단의 이단심문관. 세바스 도미니크라 합니다. 악마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파견 나왔습니다."

"아아...교단 쪽에서 오신 건가. 아주 늦지는 않아서 다행이군."


말투로 보아 눈앞의 여자가 성별이 바뀌어 버렸다는 남편 쪽인 듯 했고,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이내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뭐라도 내오고 싶기는 한데...지금은 좀 힘들겠군. 미안해."

"저기, 아내 분께서는 무사하신 건가요?"

"뭐야 이 꼬맹인. 이봐, 심문관 나으리. 싸우는데 이런 꼬마를 데리고 와도 괜찮은 거요?"


여자는 찌푸린 표정으로 안젤라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세바스에게 물었고, 세바스가 대답했다.


"이래보여도 전력에는 제법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 출몰한 악마의 힘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벅찬지라."

"아아, 어린애가 죽는 걸 보는 건 영 찜찜한데...그냥 우리 둘이서 어떻게 안 되겠나?"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는 당장 일어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제대로 싸울 수는 있나?"


웬일로 가만히 있던 루시퍼가 말했다.


"지금은 좀 힘들지만, 앞으로 몇 분 정도면 움직일 수 있다. 거치적거리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근데 댁은 또 누구요?"


남자의 팔에 매달린 관의 정체는 불확실했지만 남자의 건강 상태와 뭔가 관련이 있는 듯 했다.


"나? 그냥 구경꾼인데."

"그럼 여긴 왜 왔는데?"

"뭔가 재밌어 보여서."

"당장 내 집에서 나가!"

"하하하하. 물론 농담이야. 이래봬도 저 애 보호자로 있는 거라."


카타리나에게 소개한 것과 비슷한 컨셉으로 밀고 나가기로 결정한 루시퍼였다.


"초면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놈팡이로군."

"그건 그렇고, 보아하니 지금은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인 듯한데. 당신 아내는 어디 있는 거지?"


확실히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의 몸 상태라면 아내가 손님맞이를 하는 것이 정상일 터였다.


"아?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고 왔나 보구만."

"아내 분께서 나오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어. 그래. 내가 이 오두막에서 꼼짝도 못하고 망할 악마새끼들을 막아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여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거기 심문관 나으리. 미안하지만 부축 좀 해주겠어?"

"그러죠."


세바스는 그렇게 말하며 여자를 부축했다.


"뭣, 체온이 이렇게나 높다니? 당신 어떻게 쓰러지지 않고 있는 거지?"


세바스가 여자의 몸과 접촉하자 여자의 몸이 엄청나게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세바스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최근에 무리를 좀 했거든, 반칙 같은 수단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라 지원을 요청한 거야. 아. 일어서니까 어지럽구만. 저쪽 방으로 가지. 거기에 세리아가 있다."


여자의 아내는 세리아라는 이름인 듯 했다.


여자를 부축한 세바스를 따라 안젤라와 루시퍼가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그들은 침대에 앉아 있는 만삭의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이것 때문이었군."

"뭔가 알아내신 게 있나요?"


루시퍼는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눈치를 챈 듯 했고, 안젤라는 루시퍼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모르겠냐? 넌 저 상태에서 성별이 바뀌어버리면 안에 있는 애가 어떻게 될 것 같냐?"

"아..."


쉽게 상상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좋지 않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보아하니 출산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모양인데, 그래서 도망도 치지 못하고 여기 남아 있었던 것 같군."

"그렇군요."


루시퍼의 말에 안젤라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인가요?"

"어. 교단 쪽에서 지원이 온 모양이야. 이쪽은 세바스 도미니크 이단심문관이고, 어...저 둘은 아직 이름도 못 물어봤군. 경황이 없어서."

"루시퍼다."

"안젤라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루시퍼는 대쪽같이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이름만 대충 말했고, 안젤라는 여느 때처럼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세리아 그레이스라고 합니다. 이런 몸이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난 헬퍼트 그레이스다. 앞으로 신세 좀 지지."


그들이 통성명을 끝냄과 동시에 어딘가에서 구르릉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것 참. 제대로 쉴 시간도 안 주는군. 아. 이제 부축은 됐어."


헬퍼트가 그렇게 말하며 세바스에게서 떨어졌고, 세바스는 한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괴물들을 막아온 것 같기는 한데. 당신은 어떻게 싸우는 거지?"

"음. 내 경우엔 신체 능력보다는 장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몸으로 변하고서도 크게 약해지지는 않았다는 거지. 실제로 보는 편이 빠를 거요. 따라 오시죠. 다녀올게. 세리아. 몸 잘 추스르고."


헬퍼트는 그렇게 말하며 세리아의 볼에 입맞춤을 한번 하고는 밖으로 나와, 오두막 뒤편의 창고로 향했다.


자물쇠는 이미 열려 있었고, 이것저것 공구들이 매달려있는 창고 안에서 헬퍼트는 매끈한 재질의 검은색 직육면체의 상자 같은 것을 질질 끌고 나왔는데 상자는 거의 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거대했다.


"이게 뭔가요? 관?"

"이게 내 장비다. 전역할 때 훔쳐온...아니, 잠깐 빌려온 도구지."


다들 미심쩍은 눈으로 헬퍼트를 쳐다봤지만 헬퍼트는 가볍게 무시하고는 상자를 질질 끌면서 오두막 앞의 공터로 향했다.


"저~기 보이는구만."


헬퍼트의 말대로 어두운 와중에도 저 멀리서 둥둥 떠 있는 눈알 모양의 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알 괴물은 정말 쓸데없이 거대한 눈동자를 뒤룩거리며 왜 존재하는지 모를 촉수들을 흐느적거리며 천천히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혹시 저 괴물의 주인으로 보이는 악마를 본 적은 없나?"

"아? 몰라. 저 커다란 놈만 어떻게 쫓아 보내면 마물 새끼들도 물러나는 눈치던데. 그러고 보니 악마 같은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생겼냐?"


헬퍼트는 아스모데우스를 직접 본 적은 없는 듯 했고, 루시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흠,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다라, 내가 그년이라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이보쇼. 심문관 나으리."

"음? 무슨 일이지?"

"저 커다란 눈깔은 내가 맡을 테니 심문관 나으리는 밑에서 올라오는 마물 새끼들을 처리해 주면 고맙겠어. 이제 슬슬 함정도 바닥났거든."


확실히 올라오는 길에 마물 시체들이 오두막 입구의 근처까지 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남은 함정은 얼마 없어 보였다.


"음. 알겠소."

"거기 놈팡이랑 꼬마 아가씨는 음...그냥 만에 하나 세리아에게 접근하는 놈들이 있으면 그걸 막아 주면 좋겠군."


헬퍼트는 별로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어조로 볼을 긁으며 말했고,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맡겨주세요."

"음..."


루시퍼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듯 한지라 헬퍼트의 말을 제대로 듣기는 한 건지 의문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헬퍼트는 그렇게 말하며 가지고 온 검은 상자를 안간힘을 쓰면서 수직으로 세우기 시작했고, 세바스가 거들어준 뒤에야 검은 상자를 완전히 세울 수 있었다.


"고맙군. 이런 몸이 되고 난 뒤부터 근력이 좀 떨어져서 말이야."

"이게 장비라는 건가?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짐작조차 안 되는군."

"하하. 본론은 내용물이...지!"


헬퍼트는 그렇게 말하며 있는 힘껏 검은 상자를 걷어찼고, 그러자 검은 상자의 앞부분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리며 그 안에 거치되어 있던 온갖 형태의 쇳덩어리들이 지면과 수평하게 정렬되어 집기 좋은 형태가 되었다.


검은 상자 안에 빼곡히 차있던 쇳덩어리들의 정체는 공학 도시 마키나의 전쟁병기, 마력 변환 에너지 사출 장치. 통칭 마력사출기라 불리는 것이었고 마키나의 군인들 사이에서는 마총, 혹은 총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것이었다.


"자. 불꽃놀이 시작이다."


작가의말

오늘도 배고픈 하루입니다.

여러분은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드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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