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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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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2,818

작성
20.12.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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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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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2화

DUMMY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대접해 드리다보니 이 지경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의자를 디디고 거대한 냄비에 대고 국자를 휘젓고 있는 안젤라였다.


"그럴 때는 쳐냈어야지. 미련하게 그걸 다 받아주고 있냐."

"그, 그치만..."

"그치만이고 뭐고 이건 니가 자초한 일이야. 알아서 해결하라고."


피곤해서 그런 것인지 유난히 틱틱대는 루시퍼였다.


"저길 다시 지나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군. 난 여기서 쉰다."

"네, 네..."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고는 벽에 기대에 눈을 감았고, 안젤라는 잠시 그런 루시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국자로 냄비를 휘젓기 시작했다.


"...그런데 냄새는 확실히 좋군."


잠시 가만히 있던 루시퍼가 중얼거렸고, 안젤라는 반가운 기색으로 말했다.


"드실래요?"

"그래. 맛이라도 한 번 보지."


안젤라는 묘하게 들뜬 표정으로 백숙을 그릇에 담아 스푼과 함께 루시퍼에게 건넸고, 루시퍼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릇을 받고 농담을 던졌다.


"진짜 신성력 같은 건 안 넣은 게 맞겠지?"

"우...악마님까지 왜 그러세요. 전 그렇게 재주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훗. 혹시 아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성력이 담겨 버렸을지도?"

"그, 그런 걸까요...?"

"넌 그걸 또 믿냐. 이 순진한 놈아."


루시퍼는 씨익 웃으며 백숙을 입에 넣었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제법인데?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 느낌이 좋아. 이쪽 요리는 아닌 것 같고 동양 쪽에 기원을 둔 요리인가."

"동양이요?"

"동쪽 불귀의 바다 건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대륙의 이름이다. 이쪽 대륙이랑은 제법 분위기가 다르지."

"부, 불귀의 바다...고든 아저씨는 정말 이런 요리를 어떻게 알아 오신 걸까요?"


인간의 힘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건널 수 없다고 전해지는 바다이기에 불귀의 바다라는 이름이 붙었건만 고든 아저씨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안젤라였다.


안젤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루시퍼는 기품 있는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쉴 새 없이 스푼을 움직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루시퍼의 그릇은 바닥을 보였다.


"흠. 동양 쪽의 요리도 제법 괜찮군. 언제 한 번 다시 그쪽에 강림할 일이 생기면 좋겠는데."

"저도 한 번 가보고 싶네요. 동양."

"지금 인간의 수준으로는 불귀의 바다의 파수꾼을 해치운다는 건 무리다. 건너가려면 복잡하기 짝이 없는 편법을 사용해야 하는데...그건 니가 쓰긴 힘든 방법이다. 포기해."

"그런가요. 아쉽네요."


안젤라는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방금 전까지는 존재조차 몰랐던 곳이었으므로 금방 아쉬움을 떨쳐냈다.


"다 됐다."


거대한 냄비에 담긴 백숙이 딱 좋게 익었고, 안젤라는 낑낑거리며 냄비를 들어올렸다.


"읏차..."


그 때, 안젤라가 디디고 있던 작은 의자의 한쪽 다리가 안젤라와 거대한 냄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버렸고, 안젤라는 몸이 크게 뒤로 휘청였다.


"꺄, 꺄악!"


거대한 냄비에 담긴 펄펄 끓는 백숙을 그대로 뒤집어쓰게 될 안젤라였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야. 괜찮냐?"

"아, 악마님."


다행히도 루시퍼가 안젤라를 뒤에서 안다시피 하는 자세로 냄비의 손잡이를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힘도 없는 애가 왜 이 큰 냄비를 혼자 들려는 거냐? 밖에 아무나 불러서 도와 달라고 하면 되잖아?"


빈말로도 자기한테 도와달라고 하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 루시퍼였지만, 안젤라는 그런 사소한 사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와 이만큼 가까이 접촉해본 안젤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너 보기보다 힘 좋다? 제법 묵직한데 이걸 혼자서 들고."


루시퍼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 듯한 태도로 말했고, 볼을 빨갛게 물들인 안젤라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손이..."

"앙? 뭐라고? 큰 소리로 말하라고."

"소, 손이 저기, 놓아 주시겠어요?"


냄비의 양 손잡이는 안젤라가 이미 잡고 있었으므로 루시퍼가 냄비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안젤라의 손과 포개는 형태로밖에 잡을 수 없었기에 현재 루시퍼의 손이 안젤라의 손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또 엎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자. 천천히 내려놓자고."

"네, 네에..."


얼굴을 앞으로 하고 있어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알면서도 이러는 것인지 루시퍼는 안젤라의 귓가에 속삭이다시피 말했고, 안젤라는 머리가 익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우선 냄비를 내려놓았다.


안젤라는 빨갛게 익은 얼굴로 냄비를 내려놓자마자 호다닥 루시퍼에게서 멀어졌고, 그 모습을 본 루시퍼는 능글맞게 웃으며 밖을 향해 외쳤다.


"야! 아무나 한 명 들어와서 이거 좀 가지고 나가! 요리는 끝냈으니 니들이 알아서 퍼먹어!"

"오우! 성녀님의 요리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우오오오! 이번엔 내 차례야!"


여관 주인장이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잽싸게 들어와 냄비를 낚아채갔고, 다시 단 둘만 남게 된 안젤라와 루시퍼였다.


'우...진정되지가 않네요. 왜 이런 걸까요.'


화끈거리는 얼굴을 양 손으로 붙잡으며 안젤라는 루시퍼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루시퍼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런 안젤라에게 다가갔다.


"어이쿠. 우리 성녀님께서 왜 이러시나? 어디 아프기라도 하신 건가?"

"서, 성녀 아닌 거 아시면서..."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그건 둘째 치고 얼굴이 붉은데 왜 그러시나?"


시선을 피하는 안젤라에게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을 들이미는 루시퍼였다.


"어이쿠. 설마 어디 사는 무진장 잘생긴 악마님께 새삼 반하기라도 하신 걸까나?"

"누가요? 제가요? 악마님을요? 그럴 리가요."

"야. 그건 내 말버릇인데."

"모, 몰라요. 저리 가세요."


안젤라는 여전히 시선을 피하며 루시퍼를 밀어냈고, 루시퍼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지만 이번에는 여기까지 해두기로 했다.


"라고는 해도 신성력을 분무기마냥 뿜어대는 여자는 이쪽에서 사양이지만 말이지. 훗."

"부, 분무기...푸흡."


황금빛 물을 뿜어내는 분무기의 모습을 상상한 안젤라가 기묘한 광경에 웃음이 터졌고, 놀리려고 한 말이 폭소를 터뜨리는 안젤라의 모습에 루시퍼는 흥이 깨졌는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


반쯤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던 세바스는 그저 마을을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아."


한참을 걸은 후에야 이상한 점을 눈치 챈 세바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지?"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전부 안젤라의 요리를 먹으러 가버렸기 때문에 마을은 유령 마을이 되어버린 듯 했다.


"...조용하니 좋군."


뭔가 의문을 가지기에는 그의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했고, 그는 다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기 시작했다.


잠깐 걷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세바스의 귀에도 들려오기 시작했고, 조금 뒤에 세바스는 기묘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곳은 바로 초록 지붕 여관의 앞거리. 사람들은 아예 그곳에 좌판을 깔아 두고 안젤라의 요리를 먹으며 동네 잔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저기, 이게 무슨 일인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응? 소문 못 들었어? 무려 성녀님이 요리로 사특한 악마의 저주를 정화하고 계신다네!"

"요, 요리 말씀이십니까?"


성녀라는 말에서 안젤라가 또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생뚱맞게 갑자기 웬 요리냐는 생각이 드는 세바스였다.


"그래! 이름이 뭐시냐, 닭백...뭐시기였는데 그걸 먹으니 세상에 놀라워라! 악마에게 당해서 바뀌어버린 성별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겠나!"

"요리로...말입니까?"


그가 아는 사실은 아스모데우스의 저주는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는 것 뿐이었기에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복장이 특이하구만. 아! 혹시 성녀님과 함께 사특한 악마와 맞서 싸웠다는 이단심문관 나리 아니신가?"

"그, 그렇습니다만."


세바스의 말에 마을 사람이 세바스의 손을 덥석 잡고는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고, 세바스는 쓰게 웃으며 사양하고는 어찌저찌 인파를 뚫고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깥보다 더 심하군. 이곳은."


그야말로 북새통이 따로 없는 광경에 세바스가 혀를 내둘렀고, 마침 밖으로 나오던 루시퍼가 세바스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겍. 꼰대..."


루시퍼가 안젤라처럼 세바스를 부를 리가 없었으므로 그대로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고, 세바스는 관자놀이에 실핏줄을 세우며 간신히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 사정을 설명한 뒤에 주방을 들어올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악마놈."

"내가 뭔 짓이라도 했냐?"


하긴 딱히 무슨 짓을 했다기보다는 보고도 무시한 것이었기에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아. 심문관님. 오셨어요?"


인고의 시간 끝에 안젤라는 마을의 토종닭과 초록 지붕 여관의 요리재료를 거덜내가며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백숙을 대접할 수 있었고, 지금 마지막으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요리라더니, 확실히 좋은 냄새가 나는군."


안젤라의 요리 실력이 출중한 것도 있었겠지만 평소에 금욕적인 생활을 하던 세바스였기에 닭이 풍기는 향기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후훗. 심문관님의 몫도 지금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큰 냄비에 세바스에게 줄 몫과 그레이스 부부의 몫, 그리고 교회 사람들의 몫까지 잊지 않고 준비해둔 안젤라였다.


"...헛."


안젤라의 요리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딱 봐도 좋은 냄새를 풍기는 백숙의 향기에 침을 꼴깍 삼킨 세바스였지만, 마음속에 짐을 진 그로서는 혼자만 마음 편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난 배가 고프지 않, 군요. 제 몫은 됐습니다."

"에에...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걸요?"


마침 타이밍 좋게 어젯밤부터 굶어온 세바스의 위장이 눈치 없게 소리를 울렸고, 세바스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정말로 됐습니다."

"심문관님. 역시 뭔가 고민이 있으신 거군요?"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는 세바스의 모습에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안젤라가 드물게도 강건한 태도로 물었다.


"...아닙니다."

"심문관님은 거짓말은 잘 못 하시는 군요. 표정에 다 드러나요."


안젤라의 말에 세바스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더듬었고, 그 태도에 더욱 확신을 가진 안젤라가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고민을 안고 계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책하시는 태도로는 누구도 기뻐하지 않아요."

"하지만...!"


세바스는 뭔가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꾹 닫아버렸고, 안젤라 역시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그 기분 잘 알아요. 일이 잘 안 풀릴 때, 오해가 생겼을 때,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너무 힘들어서 깊이, 더 깊이 침잠하는 기분에 빠져들 때, 어머니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어요."


안젤라는 씁쓸한 표정에서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밀어올리며 말했다.


"그럴 때일수록 웃으며 기운을 차려야 문제는 더 빨리 해결된다고요. 당장 웃을 수는 없더라도 심문관님, 아니 세바스씨께서 빨리 기운을 차려야 세바스씨의 고민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

"주, 주제넘은 참견이었나요?"


세바스가 침묵하자 안젤라는 당황했지만 세바스는 이내 가볍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뇨. 좋은 조언이 되었습니다. 언제까지고 풀죽어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겠죠."


비록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니 세바스는 마음의 짐과 부담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말

오늘은 올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다사다난한 한 해였지만 내년을 좀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 봅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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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21.01.01 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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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1 20.12.28 6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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