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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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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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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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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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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협객이 된 기분이야.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지난달까지도 미완성 상태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류지호 부부의 방문을 계기로 말끔하게 단장했다.


“평상시에 찾는 사람이 없었나 보군요?”

“예.”


아디스아바바시가 예산을 들여 한국전참전기념비와 회관을 관리해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체사상탑이 오랜 시간 방치된 것처럼.

그나마 아펜초 베르 공원 내부는 시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원을 조금만 벗어나면 관리가 되지 않아 상당히 지저분했다.


“방문객 현황은 어때요?”

“6.25 기념일, 에티오피아 한국전쟁참전일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거의 방문객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주변은 어때요? 치안이 불안하거나 하진 않아요?”

“근처는 평범한 서민동네입니다. 바로 옆에 나이지리아 대사관이 있습니다.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과도 가깝습니다.”

“다울이나 가온재단에서 이 공원에 뭔가를 새롭게 만들게 된다면 절차와 시간이 오래 걸립니까?”

“어떤 걸 만들 것인가에 따라 다릅니다.”

“이곳에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위한 복지회관을 만듭시다.”

“저... 의장님.... 꼬레아 사파르에 이미 센터가 운영 중에 있습니다.”

“참전용사 분들과 그 후손 전부가 가난하게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들 모두가 꼬레아 빌리지에만 모여 삽니까?”

“참전용사회의 재정운용과 관련해 부정이 의심되는 것과 별개로 일부 참전용사분들은 나름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고 계십니다.”

“지방에 흩어져 있는 참전용사 후손도 있을 테고.”

“예. 지방에 사시다 돌아가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곳을 한국전쟁 참전용사 지원과 관련된 거점으로 만들어 봅시다. 춘천시고 후원회고 다 집어치우고. 소통창구를 다울재단으로 일원화하는 것으로 정리해 보세요.”

“예? 한국의 후원단체들까지 배제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가장 큰 후원단체 회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600여 명 남짓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년 이후 회원 수가 반의 반 토막 날 겁니다. 후원에 의지해서 예산이 널뛰기 하는 것보다 꾸준히 안정되게 지원되는 것이 좋잖아요. 후원 했답시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듣는 것도 고역일 텐데.”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부와 후원까지 꽁꽁 얼려버린다.

국내 기부금도 줄어드는 판에 멀리 에티오피아까지 후원금을 보내주는 사람이 줄지 않을 리 없다.

재작년 기념탑 기공식에서 춘천시 시장이 이곳 기념비가 장차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헛소리를 들었다.

류지호는 얼굴이 얼마나 뜨거워지던지.


“용사분들과 인사 나누시죠.”

“가 봅시다.”


류지호는 행사에 참석한 참전용사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노병들은 위풍당당하게 거수경례를 하다가도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에티오피아 한국전쟁참전용사협의회는 1993년 조직되었다.

1996년에는 한국에서 에티오피아 한국전쟁참전용사 후원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후원회장은 연극계의 대모 송숙이 맡고 있다.

그와 함께 국가보훈처, 한국국제협력단(KOICA), 춘천시, 화천군, 몇 개 NGO 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류지호는 90년대부터 다울재단을 통해 세계 각지의 참전용사들을 살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신임회장으로 추대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류지호가 신임 용사협의회 회장과 인사를 나눴다.


“처음 보는 임원들이 많지요?”

“최근에 교체된 모양이네요.”

“5월에 총회를 통해 30명 정도의 임원진이 쇄신됐어요.”


무려 15년 동안 회장을 맡아오던 이가 물러났다.


“내부 사정이 좀 있었지만.... 우리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살아있는 동안 해야 될 일들이 많이 있어서······.”


신임 회장이 말끝을 흐렸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가 없을 수 없다.

특히 돈과 관련해서는 수시로 터지게 마련이다.

한 사람 체제로 오랜 시간 조직이 운영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한 번 쯤 쇄신이 필요하긴 했지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류지호가 화제를 돌렸다.


“28년간의 군 생활을 대령으로 마감하셨잖아요. 그동안 받은 훈장이 많겠어요.”

“24개입니다. 기장이나 기념메달은 빼 놓고도 그 정도지요.”

“전투원분들 중에서 얼마나 생존해 계십니까?”

“407명이 생존해 있어요. 그 중 상당수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극빈자’들이지요. 몸은 늙고, 가족들의 일자리는 없고, 정부는 가난해서 챙겨줄 형편이 못되고···, 남의 나라를 돕겠다고 피 흘려 싸우고 와서는 한국을 도왔다고 쫓겨 다니며 피해 살아야하고···, 그러다 돈을 벌어야하는 청·장년 시절을 다 보낸 셈이지요. 나는 어떻게 하든 이들을 돕는 일로 여생을 바치려고 해요. 이것이 참전용사회장의 역할일 것입니다.”

“다울재단이 도울 겁니다. 부디 뜻하는 바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좀 불행하고 살기가 힘들어 한다 해도 한국과 우리는 50년 이상 된 혈맹이잖아요? 참전용사들이 살날이 많아야 5년 전후일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우리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끊임없이 참전용사회를 위해 애를 써 주는 미스터 류와 한국의 재단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이 늘 함께 하기를....!”

“염치없는 부탁을 드린다면, 현재 한 교회 지하창고에 전사자의 관 122개가 반세기가 넘도록 방치돼 있어요.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묘지를 조성하는데 우리의 힘이 부족합니다. 면목 없지만 힘닿는 데 까지 도와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확인해보고 즉각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임 용사회 회장이 당장에 눈시울을 붉혔다.

노인네가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류지호가 얼른 자리를 옮겼다.

주아디스아바바 한국대사관 측이 참전용사들과 내빈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류지호는 개인적으로 준비한 백 원짜리 동전과 만 원짜리 한국 지폐를 참전용사 노병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눠주며 한분 한분께 거수경례를 했다.


“동전에는 불패의 해군 제독 이순신 장군이, 지폐에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에 한 분이신 세종대왕의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참전용사들 모두 영어를 잘한다.

그럼에도 통역이 암하릭어로 바꿔 설명했다.

에티오피아를 존중하는 것이다.

다울재단은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참전용사들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 삼단 우산세트를 선물로 전달했다.

우기에 수시로 비가 내리는 날씨를 감안한 기념 선물이다.

한국과 에티오피아 국기가 새겨져 있다.

이웃에게 자랑하라고 준비했다.


다음 날.


Ghion Hotel 야외 잔디밭에서 단체결혼식이 열렸다.

그 동안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아가던 참전용사 후손 스무 쌍을 선발해 가온웨딩 에티오피아 지사와 다울재단이 무료결혼식을 열어 주었다.

웃음꽃이 만발해도 모자랄 판이다.

헌데 눈물바다가 되었다.

다행히 피로연 파티에서는 언제 울었냐는 듯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축하하고 즐겼다.

레오나가 류지호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보기 좋지?”

“응.”


새삼 웨딩사업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류지호다.

웨딩스튜디오를 시작한 이래로 어려운 처지의 예비부부들에게 무료 결혼식과 기념앨범을 제작해주곤 있었지만, 해외에서까지 이어질 것이란 생각은 못했었다.


“더 많은 나라들에서도 확대하라고 해야겠어.”


다울 재단은 터키, 필리핀, 콜롬비아에 한국전 참전용사회관 설립을 후원했다.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복지회관 건립사업을 확대하기로 마음먹었다.

해외봉사는 열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

몇 사람 몸만 가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다.

돈이 필요하다.

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물을 주기 위해서는 지하수를 뚫을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하고, 우기에 물을 받아 놓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어 주려면 댐을 만들 각종 공구와 장비가 필요한 법이다.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주고,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모기장을 주려면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 전에 비행기 티켓을 사는 것부터 돈이 든다.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에티오피아에 공적개발원조(ODA)를 많이 하는 국가다.

아디스아바바 시민들은 국제공항도 만들어주고, 도로로 새로 깔아주고 시내 곳곳에 고층빌딩 공사도 해줘서 중국에게 고맙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 반대급부로 오가덴 지역에 유전을 중국이 개발하고, 구리 광산도 중국기업에 주었고, 티나 호수 근처에 대규모 농장도 허가해 줬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식자층이 그런 친중국 행보에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일상에서는 직원을 노예처럼 부리는 중국인 사장들에 대해서도 원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메하리 그룹과 미스터 할리우드에 대해 욕하는 에티오피아 사람은 찾아 볼 수 없다.

적어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는.

메하리(mehali)는 암하릭어로 가운데 혹은 중심을 의미한다.

가온그룹 상호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된 현지인들이 가온그룹에게 메하리라 부른다.


- 르레다흐 으찰랄로?


아디스아바바의 꼬레아 메하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도와 드릴까요’라는 현지 말이다.

꼬레아 메하리들은 코레아 사파르(빌리지)의 빈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도 지어주고, 학교도 지어주고, 한국으로 유학도 보내주고, 회사도 만들어서 참전용사 후손들과 빌리지 주민을 많이 채용해 주고, 심지어 중국인 사장들보다 월급도 많이 준다.

최신 소방차도 두 대나 아디스아바바 시에 기증해주었다.

빈민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도 매주 열고 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보기에 꼬레아 메하리들과 그들의 보스는 에티오피아에서 빼앗아가는 것 하나 없이 에티오피아에 베풀기만 하는 천사들이다.


- 서양 국가들은 도움을 주면서 리모컨 버튼을 누르듯 우리 조종하려 한다. 중국은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도 우리의 방식을 내버려둔다. 꼬레아 메하리들은 우리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먹고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다.

국영 방송에서는 툭하면 꼬레아 메하리들이 미담이 소개된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류지호의 할리우드에서의 활약상이 무용담처럼 포장된다.

에티오피아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잡지들에서도 미스터 할리우드이자 메하리 그룹의 주인인 류지호를 띠워주는 기사가 심심찮게 실린다.


- 아프리카의 젊은층은 과거의 수렁에 빠져 있는 ‘하마세대’와 달리 인터넷과 모바일에 익숙한 발 빠른 ‘치타세대’다. 치타세대는 아프리카를 변모시킬 주역이다.


가나 출신의 비제이 마하잔의 저서 <아프리카 라이징>에서 아프리카 신세대를 정의한 말이 ‘치타세대’다.

부모인 ‘하마세대’는 식민지 강물 속에서 하품만 했다.

그들은 기아와 빈곤, 내전, 질병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자녀 세대는 다르다.

휴대전화, 인터넷으로 대륙 바깥세계와 소통하며 아프리카의 미래를 생각한다.

해외로 유학을 떠난 영민한 청년들이 고국의 친구들과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탐색하는 젊은층이 ‘치타세대’라 불린다.

아프리카 전체 인구 10억 명 가운데 15~24세가 2억 명이다.

이들이 일굴 아프리카는 더 이상 절망의 대륙이 아닐지 모른다.

그런 치타세대에게 미스터 할리우드이자 꼬레아 메하리의 대장은 선망의 대상이다.

최고의 롤모델이다.

아프리카만 한정해서 특히 케냐와 나이지리아에서 류지호의 인기가 상당하다.

세 번째로 인기가 많은 국가가 에티오피아다.


- No time to be left behind!


뒤쳐져 있을 시간이 없다.

아프리카는 상황과 여건이 힘들어도 밀고 나가야 한다.

류지호가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 학생과 교수들 앞에서 강조한 말이다.

또한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육이 모든 발전의 열쇠이니까.

물론 굶어죽으면 소용없지만.


“1960년대 초반 꼬레아의 국민소득은 아프리카보다도 적은 79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을 나온 지 불과 50여년 만에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해냈지요. 자원 하나 없는 꼬레아는 50년이 걸렸습니다. 자원이 있는 여러분은 그 절반으로 압축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뒤쳐져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특별강연은 마치 팬클럽 사인회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학생이고 교수고 마치 연예인 보듯 하며 강연을 들었다.

류지호는 자신의 경험과 후회들을 진솔하게 엮어 아프리카 청년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이후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녀석이 에티오피아에서도 인기가 많은 줄 몰랐습니다. 배런은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쯤 캘리포니아 어디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배런의 여자 친구는 노코멘트. 사실 나도 잘 모릅니다.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줘야 하니까요.”


세계적인 청춘스타 배런 렌포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학생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 교육에 집중 투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인재 양성이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꼬레아는 세계 최고를 다투는 교육열 덕분에 단기간 내에 OECD에 가입하는 경제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국전쟁 전우인 에티오피아에 가장 좋은 보은이 인재양성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질의응답이 막바지에 이르자, 한 학생이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질문했다.


- 나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입니다. 나도 꼬레아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대학생들의 한국 유학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주한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까다로운 신원 보증서를 요구한다.

신원보증인은 반드시 한국인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대학이 토플 성적을 요구한다.

현지 학생들이 응시료가 비싼 토플 성적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한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내게 묻는 것보다 메하리 센터를 찾아가서 상담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내가 알기로 메하리들이 보증을 해주는 것으로 압니다. 에티오피아가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나라임을 한국 대학이 감안할 수 있도록 그들과 논의를 해보겠습니다.”


객석에서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짝짝짝!


지금까지 한국전참전용사 후손들 외에는 한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에티오피아 학생이 없었다.

에티오피아 최고 대학인 아디스아바바 국립대 학생 중에 수재들은 영국으로 주로 유학을 갔다.

가온그룹과 다울재단의 노력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아졌고,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오는 유학생들로 인해 한국대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좋은 대학을 놔두고 왜 미국에서 공부를 했냐는 질문도 있다.


“할리우드 최고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때문에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떠났고, 운이 좋게도 영화과로 유명한 UCLA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 할리우드 최고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제 기준이 좀 높아서 실현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 기준이 얼마나 높으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아프리카 대륙에 10억 명이 살고 있지요? 그 중 오분의 일의 사람 숫자만큼 내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겁니다.”

- 에티오피아에는 극장이 없습니다!

- 우리도 멀티플렉스에서 미스터 할리우드의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 케냐에서 위성방송 사업을 한다고 하던데. 우리도 텔레비전으로 <CSI>를 보고 싶습니다!


여기저기서 원하는 것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서 여러분도 인터넷으로 트라이-스텔라와 WaW가 제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됩니다. 1~2년만 기다리면 됩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을 마치고 류지호가 연단에서 내려왔다.

사인을 받으려고 몰려드는 학생들로 인해 류지호는 강연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 ❉ ❉


아디스아바바에는 세계 유일의 한국인이 조성하지 않은 코리아타운이 있다.

바로 코리아 빌리지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꼬레아 사파르(Korea Sefer)라고 불린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황실 근위대였던 강뉴부대가 한국전쟁에 파병되기 전 영국 교관에게 실전훈련을 받았던 장소였다.

에티오피아 용사들이 귀국한 후에 정착할 수 있도록 셀라시에 황제가 특별히 하사한 땅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에티오피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땅은 몰수되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강뉴부대원과 가족들은 공산정권에 의해 모진 핍박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가뭄까지 휘몰아쳤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최악·최대의 빈민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사연을 가진 에티오피아의 한국촌은 90년대 중반 한국의 다큐멘터리팀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후로 후원회도 조직되고, 한국의 대형 교회에서 의류 컨테이너 3개를 기증하면서 한국촌의 도로 보수공사에 10만 달러를 지원하고, 춘천시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후원이 이어졌다.

가장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하는 곳은 다울재단이다.

특히 채연지 부부가 아디스아바바로 옮겨오면서 지원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가온그룹 지사도 설립되고, 류지호의 외삼촌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가온재단도 지부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 아디스아바바 꼬레아 빌리지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여건은 열악했지만, 에티오피아 최악·최대 빈민촌이란 오명에서 서서히 벗어나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형님!”


현지인 남녀노소 모두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함민수를 부르는 호칭이다.

이곳에서 그의 이름이 ‘형님‘이 된지 오래다.

한국에서 따라온 함민수의 건달 동생들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걸 따라하다 보니 모두가 입에 붙었단다.

류지호가 5층 높이의 메하리 복지센터 옥상 난간에 서서 함민수에게 물었다.


“채 사장님과 별관에서 지내신다고요?”

“커피농장에 가 있지 않는 날은 별관에서 지내는 편이네.”

“Ghion에서 지내세요.”

“됐네. 여기 복지센터 별관이 게스트하우스를 겸하고 있어서 한국에서 봉사하러 오는 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 식당에서 비빔밥도 해먹고, 교민들도 만나고. 외롭지 않게 살고 있다네.”


류지호가 툴툴거렸다.


“잠시 외국에 나가 있으라고 했지, 나가서 고생하라고 했습니까? 내가 귀양 보낸 것처럼 되어 버렸잖아요?”


장난이었다.

한때 인천에서 유명했던 조폭 두목 함민수.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다.

지금도 데면데면한 것은 여전했다.

함민수가 에티오피아에 와서 지내는 모습은 어떤 선교사 못지않았다.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어떤 전국구 조폭 두목과 달리 모범적인 말년을 보내고 있다.


“하하. 귀양살이라니! 나와 집사람은 사업을 하고 있는 거라네. 덕분에 아네모네 커피프랜차이즈는 최상품의 에티오피아 커피를 납품 받지 않나?”

“재단직원도 늘고 자원봉사자도 많잖아요. 나이를 생각하셔야지....”

“자네 부친도 왕성하게 봉사하러 다니는데, 보다 젊은 내가 뒷짐이나 지고 거들먹거려서야 쓰겠나?”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빌리지에 모두 몇 명이나 거주하고 있어요?”

“정확하게는 아무도 몰라. 대략 3만~4만 명 사이로 추정하고 있지.”

“참전용사와 가족들은요?”

“이곳에 생존해 계신 참전용사는 320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6,000명 안팎이야. 파악하기로 407명의 참전용사분들이 살아계신데, 이곳에 살지 않는 분들은 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네.”

“모두 연락 가능한 상태고요?”

“파악된 생존자 분들은 주거 도시와 위치까지 파악해 놓고 있을 거네.”

“후원 상황은 어때요?”

“참전용사 대부분은 고령에 몸이 불편한 양반들이 많아서. 살아봐야 4~5년밖에 더 살기 어렵기 때문에 가족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네.”

“보고 받기로는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던데, 아니었어요?”

“일단 정부에서 연금으로 120바르(6만원)를 받고 있고, 분기별로 한국의 후원회에서 각 가정마다 60달러 정도 돌아간다네. 메하리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참전용사 후손 2,000명에게 월 30달러를 지원하고 있지.”

“한국 돈으로 10만 원이면 어느 정도 수준이에요?”

“여기 초등학교 교사 월급이 9만원이네.”

“그렇게 많이 주면 자립의지를 키워줄 수 없잖아요.”

“아프리카에서 선생이라는 직업이 그렇게 대우를 받지 못해. 교사를 하느니 차라리 막노동을 하는 게 돈을 더 잘 벌지. 아디스아바바에서 택시나 버스기사를 하면 한 달에 우리 돈으로 한 30만 원 벌 수 있을 걸.”

“....음.”

“그래도 교사는 인기 있는 직업이긴 하네. 젊은 애들이 아프리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

“에티오피아 정부가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 사범대는 어때요?”

“턱없이 부족하지. 전국에 대학이 13갠가 15개인가 밖에 없을 걸세.”

“그래서 의대와 사범대를 만들자고 하신 거군요?”

“4년제 대학 등록금이 평균 3,000바르, 의대의 경우 5,000바르 정도 한다네. 국가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어지간한 에티오피아 고등학생들은 대학진학이 사실상 힘들다고 봐야 하지.”

“참전용사 후손들의 대학진학률은요?”

“최소한의 의식주가 가능해지니 열심히 학교에 나오고 있어. 이곳에서는 아이들도 돈을 벌어야 살수가 있어서 학교에 잘 나오지 않거든. 정부에서 입학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지만 입학을 하고 실제 졸업하는 학생은 절반도 채 되지 않지.”

“모든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어요. 다만 꼬레아 빌리지 아이들이 잘 자라서 희망이 되어 주고 롤모델이 되길 바랄 뿐이죠.”

“여기 아이들의 롤모델은 자네야....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롤모델이 좋겠군. 자네는 롤모델로는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우리 식구들 빼고 에티오피아에 들어와 있는 한국인은 얼마나 되요?”

“코이카 50명, MCM 병원 30명, 경남엔지니어링 직원 50명, NGO 10명, 선교사 30명 정도.... 사업하는 사람도 한 30명 될 걸세.”

“생각보다 많지 않네요?”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이 그렇단 거고, 자원봉사자나 한국의 기업 관계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다네. 기업 관계자들은 주로 시내 호텔에서 묵고 자원봉사자들은 이곳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지.”

“구경 시켜주세요.”

“가 보세.”


함민수가 류지호를 복지센터 곳곳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2023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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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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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일본이여, 이것이 히어로 영화다! +6 24.01.26 1,754 85 27쪽
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3 24.01.25 1,753 88 24쪽
753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2) +9 24.01.24 1,732 87 26쪽
752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1) +7 24.01.23 1,736 101 26쪽
75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3 24.01.22 1,772 90 25쪽
750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4 24.01.20 1,807 90 22쪽
749 사랑의 열매. (5) +6 24.01.19 1,789 83 23쪽
748 사랑의 열매. (4) +7 24.01.18 1,728 88 26쪽
747 사랑의 열매. (3) +3 24.01.17 1,707 88 26쪽
746 사랑의 열매. (2) +8 24.01.16 1,768 93 24쪽
745 사랑의 열매. (1) +5 24.01.15 1,811 86 24쪽
744 뭐라도 해야만 돼! (2) +7 24.01.13 1,795 95 29쪽
743 뭐라도 해야만 돼! (1) +6 24.01.12 1,773 91 28쪽
742 만인의 연인! (2) +7 24.01.11 1,775 99 25쪽
741 만인의 연인! (1) +5 24.01.10 1,830 85 25쪽
740 Bridal Mask! +3 24.01.09 1,779 92 23쪽
739 World Promotion. (4) +4 24.01.08 1,795 88 29쪽
738 World Promotion. (3) +3 24.01.06 1,794 94 27쪽
737 World Promotion. (2) +8 24.01.05 1,786 90 26쪽
736 World Promotion. (1) +7 24.01.04 1,879 95 23쪽
735 Mr. 할리우드는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7 24.01.03 1,865 94 22쪽
734 공짜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10 24.01.02 1,838 95 25쪽
733 The Wall Street Journal. +12 24.01.01 1,849 100 27쪽
732 몰락한 동양의 할리우드, 그런데.... +16 23.12.30 1,895 95 21쪽
731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2) +3 23.12.30 1,585 87 23쪽
730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1) +5 23.12.29 1,722 98 30쪽
729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3) +3 23.12.29 1,639 82 26쪽
728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2) +9 23.12.28 1,743 9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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