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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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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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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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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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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The King of Reggae, 밥 말리(Bob Marley)!


두 말이 필요가 없는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거장이다.

이 슈퍼스타는 아프리카에서 매우 인기가 많다.

특히 케냐와 에티오피아에서 인기는 밥 말리 본인의 고향 못지않다.

에티오피아와 밥 말리의 인연이 꽤나 깊은 편이다.

그가 사망하기 7달 전에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대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기도 했고,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자메이카 방문 12주년 기념공원에서 앙숙과 같았던 정치지도자 두 명과 삼자 악수를 나누는 유명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woe yoy yoy, woe yoy yoy yoy.... 암 저스 바팔로우 소울좌아~”


최근 완성한 트리트먼트를 읽어 내려가며 류지호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In the heart of America Stolen from Africa, brought to America Said he was fighting on arrival Fighting for survival~”


밥 말리의 노래 중 ‘Buffalo Soldier’다.

미육군 제10기병연대 소속 군인들의 별명이었다. 남북전쟁 당시에 북군의 제54매사추세츠 지원병 안의 흑인부대를 운용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노예해방이 이뤄져 자유인이 되었지만, 흑인들로만 새롭게 부대가 편성되어 인디언 전쟁에 동원되기도 했다.

‘Buffalo Soldier’란 별명은 당시 인디언들이 붙인 것이다.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가 버팔로의 곱슬곱슬한 어깨 털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류지호가 이 노래에 대해 특별한 감흥을 갖게 된 것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막 소유하게 됐을 즈음이었다.

<영광의 깃발>이란 영화가 막 제작되던 때였다.

남북전쟁 당시 흑인 부대였던 54연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당시 감독이었던 에디 즈워크로부터 관련 이야기에 대해 꽤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영광의 깃발>은 흥행으로는 재미를 못 봤다.

다만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나름 성과를 거둔 작품이었다.

그 영화를 인연으로 에디 즈워크 감독에게 삼봉백화점 붕괴를 암시하는 할리우드 재난영화 <Collapse>의 연출을 맡기게 됐다.

아와사 리조트에서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당시의 기억이 한 올 한 올 살아나기도 했다.

암튼, 밥 말리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아메리카 원주민을 쫒아내는 전쟁에 동원되고, 미국-스페인 전쟁, 미국-필리핀 전쟁에도 동원되었는가 하면,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해 이탈리아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후, 심지어 한국전쟁까지 참전한 뒤 해체된 버팔로 부대에 관한 애환을 가사에 담았다.

미국에 끌려와 노예로 살다가 미국을 위해 싸우게 된 흑인들의 아이러니를 가사에 잘 녹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 마! 아무도 안 볼 거야.”


트라이-스텔라의 모리스 메타보이 사장이 드물게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흑인보병전투부대 ‘버팔로 부대원’들의 영화 각본을 류지호가 내밀었을 때였다.


“전쟁영화에서 백인이 아닌 주인공은 절대 안 돼!”


당시에 모리스 메타보이를 비롯해 모든 임원들이 반대했다.


“할리우드가 몰라서 흑인부대를 영화로 만들지 않는 줄 알아? 고예산이 들어가는 전쟁영화에 흑인 주인공을 내세우면 제작비 절반도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야.”


이제는 그들이 왜 기를 쓰고 반대했는지 알게 됐다.


‘천하의 댄헤이스 워싱턴을 데려다가 찍어도 망하겠지.’


중저예산으로 오스카를 노린다면 모를까.

그것도 작품상은 쉽지 않다.

암튼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서 인종통합이 중시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됐다.

그에 따라서 특정 인종으로만 편성된 부대는 해체되었다.

현재는 미국 어떤 군대에도 인종별로 분리된 부대는 없다.


“<생명의 항해>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UN 연합군을 다뤄보고 싶은데... 쉽지 않네.”


류지호가 풀리지 않는 숙제를 받아든 학생처럼 리조트 주위를 서성거렸다.

보다 못한 레오나가 나섰다.


“달링, 오랜만에 술 한 잔 하자.”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까지 술을 마시지 않기로 맥과 약속했어.”

“아마 맥은 지금쯤 미국에서 신나게 술을 마시고 있을 걸?”

“....!”

“맥주는 술이 아니잖아.”

“언제부터?”

“오늘부터!”


레오나가 류지호의 등을 떠밀며 호텔의 아프리칸 재즈 빌리지(African Jazz Village)로 데리고 갔다.

에티오-재즈(Ethio-jazz)의 대부 물라투 아스타크케(Mulatu Astatke)가 설립한 바다.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재즈 음악가 물라투 아스타크케는 에티오피아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에티오-재즈(Ethio-jazz)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가온그룹 호텔 사업부가 인수하기 전부터 Ghion Hotel 4개 지점마다 아프리칸 재즈 빌리지를 만들어 매일 저녁 젊은 재즈 음악가들의 공연을 개최하는 것은 물론, 가끔 그 자신이 직접 공연에 참여하기도 한다.

류지호와 레오나는 그가 얼마나 유명한 재즈 아티스트인지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최근까지도 세계 음악계에서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사실 물라투 아스타크케가 세계적으로 유명해 진 것은 영화 <Broken Flowers>의 사운드트랙에 세 곡이 수록되면서부터다.

남미와 북미 재즈의 전통과 에티오피아 전통 악기 및 그 선율이 어우러진 곡조는 블루스적 감성마저 엿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티오피아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서정적인 발라드 느낌까지 곁들여 재즈 팬들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레오나가 주문한 칵테일이 나오자 얼른 입을 축이고는 물었다.


“말해 봐. 뭐가 문제야? 스토리가 막혔어?”

“<생명의 항해>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군대를 묘사하고 싶은데, 고증 상으로 쉽지가 않아.”

“꼬레아 빌리지의 할아버지들 에피소드를 넣으면 되지 않을까?”

“강뉴부대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주로 동부전선에서 싸웠고, 내가 다루려는 흥남철수는 1년도 전에 더 북쪽전선에서 벌어진 일이야.”


에티오피아에서 파견된 강뉴부대는 미군의 보병대대를 대체해 화천에 배치되었다.

배치 3일 만에 중공군과 교전을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 후로도 금화지구 철의 삼각지(철원, 김화, 평강을 잇는 철원 평야를 두고 남북으로 갈라진 곳) 전투를 비롯해 펀치볼 전투 등 총 253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다.

터키여단과 함께 불패의 부대로 명성을 떨쳤다.

그렇게 강뉴부대는 1951년 6월부터 1954년 4월까지 활동했다.

반면에 흥남철수 작전은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6일까지 흥남에서 미군 10군단과 대한민국육군 1군단 그리고 피란민 10만여 명이 철수한 작전이다.

역사적인 시간상 두 에피소드를 섞을 수 없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것도 아니고, 약간의 픽션은 괜찮지 않을까?”

“어느 정도까지는. 너무 엉터리면 곤란해.”

“할리우드 영화의 고증은 엉망진창이던데, 너무 유난스러워 달링은....”

“불과 50여 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야. 자료도 많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응. 3년 전인가에 메러디스 빅토리호라는 선박이 단일 배로 1만 4천명이라는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것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지. 흥남철수 작전에서 피난민 수송을 주도했던 배야.”


잠시 동안 류지호가 흥남철수 작전을 레오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철수 작전.

무려 193척의 선박이 동원됐다.

흥남까지 후퇴하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흥남부터는 거의 피해 없이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 삶에서 중국은 흠남철수 전의 장진호 전투를 미군을 상대로 대승한 전투라며 영화까지 제작해 대대적으로 선전했었다.

참고로 장진호 영화는 크게 흥행했지만 이후 만들어진 소위 애국영화들은 줄줄이 망했다.

서구 중심의 세계사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탈출 작전에 ‘됭케르크 작전’이다.

9일 동안 약 33만 명이 철수했다.

흥남철수 작전은 10만 명의 민간인 피난민까지 함께 구해내는 기적을 일구어낸 세계 전쟁사에서 기념비적인 철수 작전 가운데 하나다.

작전이 종료되어 마지막 수송선인 온양호와 호위 전투함이 흥남을 떠난 날짜는 하필 12월 24일, 즉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세계 전쟁사에서 흔히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하면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지역에서 실제 있었던 암묵적인 정전을 떠올린다.

한국인에겐 섭섭한 일이지만, 한국전쟁이 세계사적으로 잊힌 전쟁이기에 받을 수밖에 없는 홀대다.

이전 삶에서 19대 대통령이 흥남철수 당시 미군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피난민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한국전쟁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다시금 조명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는 학교에서 됭케르크 연합군 탈출 작전은 배웠어도 흥남철수 작전은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전쟁사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탈출 작전으로 나치 독일 멸망 직전에 동프로이센 등지에서 벌어졌던 한니발 작전(Operation Hannibal)을 꼽는다.

이와 비견되는 규모의 작전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됭케르크 철수작전이다.

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네덜란드 5개국 병력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작전인 다이나모 작전을 서양사람들은 가장 먼저 떠올린다.

물론 다이나모 작전이 흥남철수 작전보다 훨씬 많은 이들을 구했다.

다만 흥남철수는 됭케르크 철수작전과 달리 장비와 물자들도 적군에 넘기지 않고 대부분 성공적으로 철수시켰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


“SF영화는 어떻게 하려고?”

“글쎄 말이야.”


본래 류지호의 계획은 1년 푹 쉬면서 <스타크래프트> 실사영화를 준비하려고 했다.

새롭게 업그레이드 될 예정인 Eye-MAX 3D 시스템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한동안 <아바타>가 전 세계 영화판을 뒤흔들어 놓을 터.

뭘 해도 그 영화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일단 허리케인은 피하고 볼 일.

그래서 끄집어 낸 프로젝트가 한국전쟁사에서 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흥남철수였다.

한국식 ‘국뽕‘을 담을 것인지.

전쟁을 냉정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묘사할 것인지.

그것이 고민이었다.

중요한 기획포인트는 패배한 장진호 전투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반전(反戰)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왜 하필 패배한 전투인데?”

“영웅주의가 개입될 여지가 없으니까.”


비겁한 포장이라는 비난도 각오할 생각이다.

장진호 전투의 패배를 피난민 구출로 물타기 하는 것 아니냐는.


“Eye-MAX가 개발한 6K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할 생각인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어.”

“한국의 영화사 제작해?”

“JHO Pictures가. 1억 달러가 넘는 영화는 한국에서 무리야.”


때문에 ‘미국만세‘가 일정부분 묻을 수밖에 없다.


‘흥남철수 영화를 찍는다고 놀란이 <됭케르크>를 안 찍진 않겠지?’


<덩케르크>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로 성공이 어렵다는 전쟁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흥행 대성공을 일군 영화였다.

비록 아카데미 같은 미국의 주요 영화상에서 기술상 부분밖에 수상하지 못했지만,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만약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를 류지호가 준비했다면, 아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팩션이란 조미료를 꽤나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다루는 부분에서 그럴 수 없었다.

매우 조심스러웠다.

할리우드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매우 희귀하다.

수십 년 전 모 종교단체가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영화를 제작한 이후로 류지호가 기획 중인 <생명의 항해>가 한국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첫 할리우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잘 만들어지고 또 흥행에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해야 추후에도 한국전쟁이 할리우드 주류에서 기획이 되고 제작될 터.

류지호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국에서는 망해도 상관없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무조건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

할리우드 투자·제작자들에게 한국전쟁 소재도 통한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에.


“강뉴부대와 주인공이 잠깐 스쳐지나가도 안 돼?”

“.....음“


마음만 먹으면 못 넣을 것도 없다.


“미 10군단이 부산으로 철수한 뒤에 재편 기간을 갖았거든. 부산에서 전선으로 향하는 강뉴부대와 주인공 부대가 어떻게든 엮이는 걸 넣을 순 있겠지만. 그 마저도 실제 역사에서 4달이라는 시차가 있었던 것 같은데... 확인해 봐야 될 것 같아.”

“한국인들도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에 대해 많이들 알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강뉴부대 어르신들이 더 고마운 게 뭐냐면.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곧바로 본국으로 귀환하지 않으셨다는 거야.”

“공산정권 때문에?”

“한국전쟁 직후에는 아직 에티오피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이었고.”

“그럼 뭣 때문에?”

“전쟁터에서 본 고아들이 눈에 밟히셨나봐. 보육원을 세워 몇 년 직접 운영을 하셨대. 남한의 피해복구도 지원하셨고.”


일부 부대원은 월급을 털어 전쟁고아들의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다.

1965년까지 휴전선 경비 임무를 위해 일부 병력이 대한민국에 남아있기도 했다.

다울재단은 지난 90년대부터 강뉴부대와 인연이 깊은 보화보육원에 후원을 하고 있다.


“타이타닉호처럼 배가 하나도 남아 있질 않겠네?”

“안타까운 것이 그거야. 1만4천여 명의 피란민을 수송하며 흥남철수 작전의 기적을 일궈낸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2004년에 기네스북에도 올랐지만. 이미 93년에 고철용으로 중국에 판매되었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더라고.”

“안타깝네.”

“대신에 샌 페드로항에 다른 배가 하나 정박되어 있어. 레인 비토리호라고.”

“그거 사면 되겠다!”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민간이 매입을 할 수가 없대. 개인적으로 보존기금에 돈을 보태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아.”

“그럼 타이타닉호처럼 새로 만들어야 해?”

“아마도....?”

“타이타닉호처럼 나중에 테마파크에 가져다 놓으면 좋지 않을까?”

“흥행해야겠지.”


영화 <타이타닉>에서 사용된 실물 재현 선박은 롱비치항에 정박 중이다.

보관료만 매년 상당한 금액이 들어가고 있다.

곧 텍사스주로 이동해 테마파크 Tri-Stellar Worlds Sea 구역에 가져다 놓을 예정이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한 번 한국전쟁 타임라인을 확인해 봐야겠어.”


류지호의 비서들이 전 세계에 남아있는 한국전쟁 관련 다큐멘터리 필름을 모조리 구해왔다.

그것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일이다.


❉ ❉ ❉


류지호 부부가 아디스아바바로 복귀했다.

사방팔방에서 초대장이 들어왔다.

초대받은 곳마다 ‘우호증진 기여’ ‘사회공헌’ ‘선량함의 표상’ 등 각종 명목으로 감사장과 표창장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에티오피아에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인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 방문을 맞이했다.

아디스아바바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공공기관 출입 시 몸수색을 한다.

반정부단체의 테러 때문이다.

류지호 부부에게는 요식적인 몸수색만 했다.

그 외에 수행원들은 매우 철저하게 몸수색을 받아야 했다.


“어서 오세요. 류 의장.”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 총장실에서 노년의 한국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류지호 역시 한국말로 인사를 받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총장님.”


에티오피아 최초의 한국인 대학 총장 김호규다.

전서울대학 공과대학 학장 김호규는 다울재단과 에티오피아 교육부의 삼고초려로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 총장으로 모셔온 인물이다.

사연은 이랬다.

채연지 부부는 류지호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오죽하면 에티오피아 교육부 장관이 채연지에게 한국의 서울대나 카이스트 출신의 총장 후보를 추천해 줄 것을 청하기도 했을까.

채연지는 (주)아네모네를 경영하며 맺은 인맥들을 통해 김호규 전 서울대 학장을 소개받았다.

다울재단의 류아라와 함께 삼고초려 끝에 에티오피아로 모셔올 수 있었다.


“지낼 만 하세요?”

“괜찮습니다. 연구실과 학회만 오가며 삶을 정리할 줄 알았는데, 말년에 봉사할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교수나 학장 몇 분 더 모셔 온다면서요?”

“쉽지가 않군요.”

“정 안되면 안식년을 맞는 교수들 잘 설득해 봐야죠. UCLA 동문들도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나도 계속 애써 볼 테니까. 류 의장 쪽에서도 좀 부탁 합니다.”


에티오피아 국립 아디스아바바 대학은 에티오피아 최고 명문 대학이다.

7개 단과대(26개 학과)에 2만 여명의 학생과 1천여 명의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1천여 명의 교수 가운데 박사 학위 소지자가 50명뿐이다.

김호규 총장은 교수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교수 능력향상 프로그램을 구상중인데,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와 연계해 서울대 교수들이 아디스아바바 대학에 자문을 해주고 강의도 맡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지 교수를 선발해 서울대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류지호 역시 미국의 UCLA 등 UC계열 대학들까지 끌어들여 에티오피아에 교수를 파견해주거나 교육봉사를 와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제대로 에티오피아 대학 교육에 지원하려면 지식 공유와 인력 교육 등을 아우르는 토탈 패키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요. 체계적인 지원을 하려면 아무래도 한국정부가 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걱정 마세요. 다울재단이 한국에서 에티오피아 자문그룹을 꾸렸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총장님도 다 아시는 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오! 그런가요? 그 자문그룹은 몇 명이나 된다고 하던가요?”

“일단 서울대와 카이스트 단과대 학장, 산업연구원장 등 여섯 분으로 구성해서 곧 에티오피아 측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내년 안에 중장기 로드맵을 세울 예정이라고 하네요. 아마 정년퇴임한 한국의 교수 몇 분도 교육봉사 차원에서 에티오피아로 오시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비용은 가온그룹이 부담하기로 했다.

실무는 다울재단의 해외 공적개발 원조(ODA)팀에서 책임지며 국내 유수의 대학과 정부까지 이 프로그램에 끌어들일 예정이다.

해외 대학의 학장, 연구소장 등을 맡거나 국가 경제의 틀을 컨설팅하는 일은 그동안 선진국들이 주로 해온 분야다.

경제 원조, 인적 봉사 등에 이어 새로운 공적개발원조 분야에 한국이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온그룹은 경제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고.


“한국형 ODA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과 과학기술 전수로 방향성을 상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선진국처럼 막대한 차관을 지원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다울재단 측과 상의해보세요. 웬만한 건 총장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고맙습니다. 류 의장의 호의는 내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긴요. 모두가 잘되자고 하는 일인데.”


김호규 총장은 아디스아바바 대학교 행정을 한국처럼 바꿨다.

교수에게 연구와 교육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학생들에게는 이론보다 실험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산업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한편 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와 포스텍의 도움을 받아 재료공학과도 신설할 예정이다.


“벌써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일어나시죠.”


김호규 총장이 류지호를 안내해 캠퍼스로 나갔다.

에티오피아는 대학이 13개밖에 없다.

고등교육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

94년 이전에는 전국에 대학이 여섯 곳밖에 없었다.

그러니 ‘산학연 협력 연구단지’ 개념이 있을 턱이 없다.

김호규 총장은 부임하자마자 에티오피아의 학계, 산업계, 연구계가 공동으로 연구할 시설과 공간을 만들자며 연구공원을 제안했다.

에티오피아 정부와 대학 측은 김호규 총장의 제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 가운데 하나라고 설득하자 그제야 이해한 에티오피아 정부가 캠퍼스 내에 연구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전격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부족한 부분은 가온그룹 아디스아바바 지부가 책임졌다.

연구단지의 재원만 대학 전체 예산의 7%가 될 정도로 대형 프로젝트였다.

마침내 연구단지 개소식이 열리게 되어 류지호 부부가 참석하게 됐다.

에티오피아 역사상 최초이기에 정관계의 유력자와 각국 대사들 수십 명이 참석했다.

류지호 부부는 에티오피아 대통령 내외와 독재자 멜레스 제나위 총리와도 인사했다.

에티오피아의 대통령은 의전과 외교를 책임지고, 모든 실권은 총리에게 있다.

사회주의 정권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제나위 총리는 15년째 에티오피아를 통치하면서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이나 NGO 활동은 불법으로 간주해 탄압하고 있다.

종종 민간인이 재판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생기고 있다.

참고로 에티오피아는 언론인이 가장 많이 외국으로 망명하는 불명예를 안은 국가다.

이번 ‘산학연 협력 연구단지’ 아프리카연합 대사들의 관심과 기대가 뜨거웠다.


“정기적으로 정부 장차관과 산업체 대표들을 모아 관련 심포지엄도 개최하고, 연구 성과들이 산업 현장에 반영되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김호규 총장의 약속이었다.

제나위 총리는 아프리카연합의 대사들에게 성급한 공약을 내세웠다.


“이 나라 최초의 산학협력시설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큽니다. 잘되면 즉각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이 발전 모델을 다른 나라들과도 공유할 생각입니다. 많은 관심 기대합니다.”


실로 오랜만에 에티오피아 정치인들의 체면이 서는 행사다.

게다가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유명인사인 류지호 부부까지 참석했다.

사실 탄자니아와 케냐에서 공식행사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던 류지호 부부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었던 에티오피아에서는 공식일정을 하지 않아 내심 섭섭했던 에티오피아 정관계 인사들이었다.

그랬던 류지호 부부가 에티오피아의 자랑(?) 국립 아디스아바바 대학 산학연 연구공원의 개소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매우 기분이 좋았던 총리가 아프리카 연합 대사들에게 자랑도 할 겸 대대적인 연회를 열었다.


작가의말

2023년도 오늘까지 나흘 남았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많이 늦었습니다. 결초보은님 과분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Bhagavat님 Under85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연참으로 한 해 연재를 잘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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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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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 감독님은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3 24.01.27 1,781 86 25쪽
755 일본이여, 이것이 히어로 영화다! +6 24.01.26 1,753 85 27쪽
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3 24.01.25 1,752 88 24쪽
753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2) +9 24.01.24 1,731 87 26쪽
752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1) +7 24.01.23 1,734 101 26쪽
75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3 24.01.22 1,771 90 25쪽
750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4 24.01.20 1,804 90 22쪽
749 사랑의 열매. (5) +6 24.01.19 1,786 83 23쪽
748 사랑의 열매. (4) +7 24.01.18 1,726 88 26쪽
747 사랑의 열매. (3) +3 24.01.17 1,704 88 26쪽
746 사랑의 열매. (2) +8 24.01.16 1,766 93 24쪽
745 사랑의 열매. (1) +5 24.01.15 1,810 86 24쪽
744 뭐라도 해야만 돼! (2) +7 24.01.13 1,794 95 29쪽
743 뭐라도 해야만 돼! (1) +6 24.01.12 1,772 91 28쪽
742 만인의 연인! (2) +7 24.01.11 1,773 99 25쪽
741 만인의 연인! (1) +5 24.01.10 1,828 85 25쪽
740 Bridal Mask! +3 24.01.09 1,777 92 23쪽
739 World Promotion. (4) +4 24.01.08 1,793 88 29쪽
738 World Promotion. (3) +3 24.01.06 1,793 94 27쪽
737 World Promotion. (2) +8 24.01.05 1,785 90 26쪽
736 World Promotion. (1) +7 24.01.04 1,877 95 23쪽
735 Mr. 할리우드는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7 24.01.03 1,863 94 22쪽
734 공짜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10 24.01.02 1,836 95 25쪽
733 The Wall Street Journal. +12 24.01.01 1,847 100 27쪽
732 몰락한 동양의 할리우드, 그런데.... +16 23.12.30 1,893 95 21쪽
731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2) +3 23.12.30 1,584 87 23쪽
730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1) +5 23.12.29 1,720 98 30쪽
729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3) +3 23.12.29 1,637 82 26쪽
»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2) +9 23.12.28 1,742 90 23쪽
727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1) +4 23.12.28 1,607 76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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