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8 09:05
연재수 :
903 회
조회수 :
3,847,709
추천수 :
118,985
글자수 :
10,001,832

작성
24.01.11 09:05
조회
1,774
추천
99
글자
25쪽

만인의 연인!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최소원은 2004년에 모 건설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아파트 분양광고 모델 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사생활 관리를 잘못해서 기업 이미지를 훼손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손해배상 청구금은 무려 30억 원.

연예인들은 광고계약을 체결할 때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손해배상 조항을 반드시 넣는다.

실제 그 같은 약정에 의해 광고주에게 손해배상을 해 준 사례도 있다.

헌데 최소원의 경우는 문제가 제법 복잡했다.

가정폭력이라는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사회적 명예가 실추된 사람.

- 사생활 관리를 못한 사람.


이 시기 한국사회에서 이혼녀에 대한 낙인이다.

건설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주홍글씨 소송‘이라 규정한 변호사와 시민단체들이 무료변호에 나서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1심과 2심이 각각 선고가 달라 최종심에서 판가름이 날 상황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아니야, 괜찮아요.”

“건설사 엿먹여주고, 그 건을 가지고 장난질 친 기자와 언론사에 역으로 명예훼손 소송도 걸 수 있는데도요?”

“언론사는 건드리는 거 아냐.”

“그거야 힘없는 일반 연예인이나 그렇죠.”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백원일보 사주 일가가 LA와 하와이 호텔리조트, 골프장 사업과 관련해 미국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막대한 금액의 벌금을 물었던 사건에 누가 개입되어 있는지.

정치권력까지 좌지우지 한다는 3대 언론사 사주들도 못 건드리는 인물이 자신 앞에서 얼음을 ‘아그작’ 씹어 먹고 있는 류지호라는 사실을.

MBS 사장실을 프리패스로 출입이 가능한 최소원이 그런 내막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계속 MBS와 의리 지키면서 소속사 없이 활동하려고요?”


류지호는 최소원이 뭔가 대답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매니지먼트 CHAN으로 옮길 생각 없어요?”

“......”

“솔직히 말해서 MBS가 누님을 보호해주던가요? 송PD나 김PD같은 쓰레기도 누님에 대해 온갖... 그 작자들도 같은 패거리라면서요?”

“감독님, 우리 캐스팅 때문에 미팅하는 거 아니었어?”

“주목적이 영화 캐스팅이고, 그 만큼이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누님을 매니지먼트 CHAN으로 모시는 겁니다.”


없던 소속사가 생기는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최소원이 매니지먼트 CHAN의 식구가 된다면 가온그룹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소속사 들어가기 싫어. 그냥 지금이 편해.”


소속사 없이 개인적으로 일 봐주는 직원 몇 명을 고용해서 활동하고 있다.

남들 다 하는 1인 기획사도 아니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MBS의 드라마만 전속 연기자처럼 출연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우스갯소리로 MBS가 최소원의 소속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연이 조금 웃겼다.

최소원은 MBS와 10년 동안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맺었다.

암묵적이다.

계약서를 쓴 것도 없다.

언제든지 깨도 상관없는 약속이었다.

그럼에도 최소원은 고집스럽게 의리를 지켰다.

그 10년이 지난지도 몇 해 됐다.

다른 방송국 드라마 혹은 영화에 출연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일 할 때만 외출하고, 계속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지내려고요?”

“감독님! 너무 나갔어. 그만 해.”


실제 이혼소송 기간 최소원은 만신창이 상태가 되어 대중으로부터 숨었다.

그랬다가 2005년 <장밋빛 인생>으로 복귀해 보란 듯이 최고시청률 41%를 찍었다.

올해 역시 일일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복귀하며 재기를 알렸다.

최소원이 슬럼프와 고난을 이겨내고, 잘 나가면 잘 나갈수록.

이유 없이 미워하는 세력들은 더욱 악랄해 진다.

그런 이들의 악랄함 때문에 이전 삶에서 아까운 목숨들을 많이 잃어야 했다.


“류 감독은 어떻게 버텨?”


무엇이냐고 되물을 필요가 없다.


“안 버텨요.”

“그럼 포기해, 그냥?”

“쓰레기 버리는 데를 쓰레기통이라고 해요.”

“......?”

“내가 누님보다 안티나 해이러가 훨씬 많을 걸요? 미국의 안티들은 Hate speech 정도로 안 끝나요. 툭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전화 걸고 소포 보내고.... 한국에도 나와 관련한 안티 카페가 두 개인가 있었어요. 그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다 찰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리고 쓰레기가 다 찼다고 생각될 때 확 불태워버렸지요.”


후우.

최소원이 기어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다고 그 사람들이 멈출까?”

“그래서 적당히 하면 안 되죠. 안티카페 회원이라는 이들 전원이 한 번이라도 조사받으러 경찰서에 나가거나 법정에서 증언을 하도록 만들어서 그들이 누군지 신상정보를 다 퍼트렸어요.”

“그래도 돼?”

“안 되죠 원래는.”


인간적으로 매우 가혹한 처사다.

당연히 법적으로 신상정보를 함부로 공개되어서도 안 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잖아요. 난 아무 것도 안했어요. 법적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걸었을 뿐. 류지호 안티카페 회원이란 이유로. 우연히. 누군가의 카메라에 얼굴이 찍히고 사는 곳도 유출되고 그것이 또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고. 우연히요.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팬클럽이 있어요. 거기서 확대재생산이 되었나보죠 뭐. 온 세상에 신상이 탈탈 까발려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일이 있었대요.”


자기들이 한 짓은 생각 못하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란다.

잔인하단다.


“언론은 그게 안 되잖아?”

“검사였나 고위관료였나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언론사 사주들에게 충고를 했나 봐요.”

“.....!”

“그랬대요. 류지호가 망하든지 신문사가 망하든지. 끝까지 한 번 가시겠냐고.”

“자기는 오성 회장님보다 더 잘났으니깐.”

“내가 대단한 것보다는. 강대강이 붙으면 약점이 많은 놈이 무조건 무릎 꿇게 되어 있어요.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은 약점을 알고 있을 뿐이에요.”


장문식팀이 활동 할 때는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누군가의 약점을 수집했다.

지금은 방식을 많이 바꿨다.

그럼에도 가온와 JHO의 네트워크를 통해 온갖 정보들이 수집되고 있다.

검찰 캐비닛이 무섭다고들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주요 대기업 비서실과 홍보실에 쌓여 있는 정보가 더 무섭다.

검찰은 범죄 정보만 가지고 있다.

재벌들은 누군가의 취향, 성격, 취미, 가족 관계 등 인물 자체에 대한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다.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검찰보다 훨씬 다양하다.


“루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어.”

“누님 혼자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한다고 하는 것이 실효성이 없어요.”


울타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철창만 없을 뿐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아. 근거 없는 루머는 그 사람에서 끝나는 게 아니야. 자식들, 그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사람들이 연예인을 너무 막 대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슬퍼.”

“.....”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더 비우고 더 몸을 낮추라고 하니 내가 어디까지 자존심을 버려야 할까.”

“.....”

“행복했던 시절, 그 행복이 당연하다며 오만했던 시절이 지금은 너무도 그리워질 지경이야. 이 고통은 아무도 몰라. 그냥 최소원이 누렸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놓고 싶을 정도로 너무도 아파 미치겠어.”

“매니지먼트 CHAN으로 오시라니까.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신다니까요.”


류지호가 모 광고의 대사를 흉내 냈다.

기분이 한 없이 가라앉았던 최소원이 실소를 흘렸다.


풋!


류지호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누님, 돈 좀 있어요?”


제비족이 하는 멘트 같았다.


“LA, 벨에어라고. 우리 부부가 사는 동네로 이사 오실라우? 살만해요. 단지 내로 외부인 출입도 못하고. 사립학교도 좋아요. 이웃들도 친절하고. 한국 기자들은 절대 못 따라와요.”


벨에어에 무조건 수 백억 짜리 메가 맨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잠원동 고급 빌라 정도 가격대의 주택도 많다.

류지호가 거주하는 주택이 유난스러운 것이다.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고. 한국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살 순 없어. 그리고 도망치는 거 같잖아.”

“일 년에 한 작품씩 하면 최대 반년 정도 일하는 거잖아요. 일 할 때만 한국 들어왔다가 끝나면 미국으로 가서 아이들과 지내면 되지 않을까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한국의 일이 끊길 걸.”

“내가 모터 하나 달아드릴 게.”

“모터? 무슨 모터?”

“앞으로 쉬지 않고 일하실 수 있게 해주는 모터.”

“감독님이 무슨 재주로?”

“시나리오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내 책상에 이 만큼 쌓여있어요. 다솜미디어의 신규 드라마도 매년 다섯 편씩 새로 런칭하고 있고.”

“내가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잖아. 나 생각보다 까다로워.”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들이미는 거죠.”

“나한테 왜 그래?”

“누님이 내 연인이었으니까요.”

“아우... 느끼해.”


최소원이 질색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낄낄대던 류지호가 정색하며 말했다.


“만인의 연인. 그 말이 대답이 되지 않을까요?”


최소원은 어린 나이에 고생을 좀 해보고 연예계에서도 닳고 닳았다.

상대가 나쁜 마음을 먹었는지 진심인지 구별해 낼 수 있다.

그거 믿다가 된통 당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최소원이 생각하는 것처럼 류지호는 그녀의 빅팬이다.

이번 삶은 동료라는 생각이 좀 더 강했지만, 팬심은 어디 가지 않았다.

게다가 최소원은 한국 영화·방송계가 오래 안고 가야할 훌륭한 배우다.

비극적인 가정사를 빼고 후배 여배우들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줄 수 있다.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그녀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소 무리다 싶을 정도로 들이댔다.


“WaW에서 준 책은 잘 봤어.”


할리우드에서 버티지 못하고 충무로로 복귀한 이명수 감독의 차기작이다.

워킹타이틀 <1936 조선>으로 명명된 모던레이디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대극이다.


“오늘 급하게 보자고 한 건 류 감독님이 출국한다고 해서야.”


한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쳤기에 미국으로 돌아가긴 해야 했다.


“이번에 대본 읽고 나서 김향은 선생님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았어.”

“출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

“응. 또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전화상으로 물어보긴 좀 그랬어....”

“잘했어요.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안 아프게 살살.”

“아휴~ 언제적 유머냐?”


하하.


“암튼. 내년에 MBS와 오랜만에 미니시리즈 한 편 할 것 같아. 또 OBC에서 나보고 개국에 맞춰 토크쇼를 해보자고 해. 그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토크쇼?”

“시청률이 안 나오면 몇 달 하고 내리겠지 뭐.”


류지호가 기억을 더듬어봤다.

인천의 지역민방이 재개국하면서 런칭한 토크쇼가 있었던 것 같았다.

류지호의 신포고 선배 개그맨이 보조MC로 참여했던 것도 같고.


“미니시리즈는 상반기에 끝날 테고, 토크쇼는 첫 방이 언제래요?”

“3월.”

“혹시 미국 로케이션 때문에 그래요?”

“시나리오 보니까 적어도 한 달은 외국에 나가 있어야겠던데?”

“프랑스하고 미국 두 곳에서 4주 정도 로케이션을 해야 하지 싶어요.”

“9월 이후까지 기다려 줄 순 없어?”

“안돼요! 9월 이후는!”


류지호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누님이 WaW와 계약을 하고 나면 내가 직접 OBC와 조율해볼 게요.”

“난 가께모찌(겹치기 출연)는 안 해.”

“알아요. 일단 WaW와 계약부터 하시고. MBS 미니시리즈 촬영 잘 마치시고. 그러고 나서 다음 스케줄 조정해 봐요.”

“혹시 명수 감독님 연락처 알아?”

“알죠.”

“지금 전화 해볼 수 있어?”

“그러죠.”


류지호가 휴대폰을 꺼내 이명수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류 감독. 소원이 만난 건 잘 됐나?

“지금 만나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감독님, 나 좀 바꿔줘 봐.”


류지호가 휴대폰을 최소원에게 건넸다.


“감독니임~”

- 엉. 잘 지냈냐?

“네. 지금 어디에요?”

- 사무실.

“소주 한 잔 할래요? 류 감독님하고 같이?”

- 이야기 잘 됐나 보네?

“나야 명수 감독님하고 오랜만에 하면 좋지. 근데 봄에 미니 하나 찍고 버라이어티도 하나 해야 돼.”

- 괜찮아. 하고 와.

“기다려 줄 수 있어요?”

- 류 감독하고 일하면 프리프로덕션을 빡세게 해야 돼. 어설프게 준비하고 촬영 들어가면 아주 혼쭐이 나. 계약해도 곧바로 슛 못 들어가니까. 다 하고 와.

“류지호 감독님은 자유방임주의라고 들었는데, 감독을 들들 볶나봐?”

- 최종 개봉판 편집을 류 감독이 결정해. 암튼 류 감독이 프로듀서이자 제작자니까 개봉판 결정하는 게 맞는 거고. 암튼.... 그래서. 김향은 선생 영화 같이 한다 이거지?

“내가 언제 출연 결정 뒤집은 적 있어요?”

- 뒤집은 적은 없지만. 앞으로 영화는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번 대본은 꼭 해보고 싶어요. 근데 감독님은 미국에서 영화 하시지 왜 다시 돌아왔대?”

- 숨 막혀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해, 거기서는.

“충무로에서는 되구요?”

- 그 이야기는 소주 마시면서 해. 어디로 가면 될까?

“택시 타고 잠원동으로 오세요.”

- 잠원동? 오케이!


이명수 감독과 합류하기 전까지 류지호는 최소원은 <1936 조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으로 매니지먼트 CHAN으로 영입하기 위해 애썼다.

지금이 아니면 그녀를 영영 자신의 영역 안으로 못 데려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소원은 20여 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활동을 쉰 해가 없을 정도로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다.

하지만 몸은 약한 편이다.

겉으로는 똑순이 이미지가 있지만, 연예인의 삶 속에서 건강을 유지하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흡연과 음주도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었고.

TV 드라마를 마친 후엔 반드시 병원에 입원했다.

톱스타의 삶을 살고 있지만, 스트레스가 기본값인 연예인 생활은 인기가 없든 많든 공평하다.

공인이라는 미명하게 허위사실유포가 무분별하게 자행되어도 별달리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

슈퍼스타는 더욱 운신의 폭이 좁다.

게다가 최소원은 데뷔 후 한 순간도 톱스타가 아닌 삶을 산 적이 없다.

그에 대한 모함과 억지는 늘 대중매체의 단골 메뉴였다.

그것이 애증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됐어도 숱한 위기와 고통 속에서 20년을 버텨왔다.

스트레스는 가뜩이나 연약한 건강문제까지 영향을 미쳤다.

악성 댓글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 불면증, 이혼 상처, 부부폭력, 우울증, 자살자 경험 등 현재 그녀의 상태는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의 종합선물세트다.

그럼에도 자신을 향해 악성 댓글을 쓰는 사람까지도 이해하고 품으려 애쓰는 최소원이다.

외모와 달리 강한 성격, 강한 의지력을 지녔기에.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막다른 벼랑으로 계속해서 내몰고 있다.

강한 의지와 강한 정신력을 가진 그녀로서도 벼랑 끝에 서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누님, 아직도 굿네이버스 친선대사 활동해요?”

“응.”

“이번 겨울에 와이프와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 해볼래요?”

“류 감독 와이프? 난 영어는 못해.....”

“와이프가 한국말 잘해요.”

“자기 와이프도 굿네이버스 회원이야?”

“아니요. 내가 돈 대고 있는 자선재단이 아프리카에서 자선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어요.”

“동생들하고 베트남으로 봉사 가기로 하긴 했는데....”

“드라마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다잡는다는 차원에서 한 번 쯤 멀리 떠났다가 와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 남겨 놓고 가기가 좀 그런데....”

“6살, 4살이죠?”

“만으로.”

“전용기 보내줄 테니까 아이들하고 함께 다녀와도 좋고요.”

“....”

“인간에게 받은 상처, 인간으로부터 치유를 받아보세요. 물론 한국에도 불쌍한 처지의 아이들이 많긴 하지만.”

“만약 아프리카에 가게 되면 내가 어떻게 해야 돼.”

“내 비서들이 알아서 준비해 줄 거예요.”

“생각해 볼게.”


이명수 감독이 술자리에 합류했다.


챙.


세 사람이 소주잔을 부딪쳤다.

이명수 감독이 툴툴거렸다.


“배우만 챙기지 말고 감독 좀 챙겨줘.”

“더 어떻게 챙겨줘요? 할리우드에 판 깔아줬더니 걷어차고 오신 분이 누군데!”

“거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런 말 하면 후배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배가 불렀다?”

“복을 제 발로 걷어찼다고 하죠.”


새로운 기획피디들이 충무로에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이명수 감독 연배의 중견감독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시기 왕성하게 활동하는 감독 연령대가 30대 중후반이다.

젊은 프로듀서와 대기업 직원들은 중견감독을 ‘꼰대‘로 치부하곤 한다.

먼저 다가서려고 힘을 빼도 마냥 불편해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꼰대 나이가 되면 또 다른 꼰대들과 친목질을 하게 된다.

결국 연예계가 고인물화되면서 정치질과 친목질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게 된다.

홍콩영화와 일본영화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부터 한국영화계에 그런 양상이 슬슬 보이고 있다.


‘중견감독 스스로도 과거의 명성에만 매몰되어 후배들과의 소통에 소홀한 것도 사실이고.’


해외에서 인정받는 감독들이 자국에서 투자를 받지 못하는 현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감독들이 충무로 주류에서 밀려났다.

대학 강단과 영화 관련 단체나 지자체 영상위 행정가로 자리를 옮겨갔다.

중견감독을 다시 충무로로 불러들일 수 있는 인물은 류지호 뿐이다.

그들의 고집을 꺾어서 타협을 이끌어 내고, 그들 영화가 상업적으로 실패해도 별다른 데미지가 없는 영화인은 류지호가 유일하기에.


“창훈이형 <칠칠거사> 캐스팅은 끝났어?”


배창훈 감독은 조선시대 기행(奇行)화가 ‘최북‘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찬 선배가 최북 역할에 캐스팅 되었다네요.”

“도장은 찍었고?”

“내년 봄에 크랭크인 한다고 들었어요.”

“공 감독도 내년에 영화 찍나?”

“어떤 공 감독이요?‘

“공형진.”

“<마더>라고 김순자 선생 캐스팅 중이래요. 이르면 내년 9월에 크랭크인 들어갈 수 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자네는?”

“몰라요, 아직. 일단 미국에서 뭐 하나 만지작거리곤 있어요.”

“내년에?”

“아시잖아요. 캐스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달렸다는 걸.”

“자네 영화도 그래?”

“나라고 뭐 다르겠어요?”


이명수 감독이 최소원이 따라주는 소주를 받으며 말했다.


“것 봐. 차라리 충무로가 나아. 한국에서 영화하니까 소원이하고도 다시 영화하잖아.”

“감독님. 나도 이제 예전 같지 않아요.”

“예전 같은지 아닌지 오디션 보면 알겠지.”

“뭐에요? 오디션을 본다구? 나를?”

“인마. 여기 류지호 감독 영화는 대배우도 무조건 오디션 봐야 돼. 어디서 탑스타라고 대충 넘어가려고.”


최소원이 류지호를 향해 물었다.


“그런 거였어? 얄짤 없다는 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 정식으로 오디션을 봐도 좋고. 인터뷰 방식으로 약식 오디션을 봐도 좋고. 오디션은 두 분이 알아서 합의보고 나중에 알려줘요.”

“류지호 감독님도 함께 오디션 봐?”

“내가 총괄프로듀서입니다만?”

“언제?”

“누님이 미니시리즈 쫑 하고나서.”


이후로, 세 사람은 김향은이란 실존인물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잘못된 결혼으로 받은 상처를 비록 연기일뿐이지만 김향은과 김완기 화가의 가난하지만 절절했던 사랑으로 힐링하기를.


“김향은 선생 생전모습이 담긴 다큐와 자료들이 있어요. 보내드릴 게.”

“오랜만에 일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니까, 좋다.”

“CHAN으로 오시라니까. 다온로펌이라고 대한민국 3대 로펌하고 가온이 협력관계에요.”


이명수 감독이 악의 없이 물었다.


“말이 좋아 협력이지 꼬붕이라며?”

“CHAN으로 오시면 누님 괴롭히는 작자들 지옥까지 쫓아가서 다 조져놓을 게요. 아니, 지옥에서 살게 해 줄 수 있어요.”

“고민해 볼 게. 감독님.. 고마워.”


최소원은 2002년~2004년까지 민사상·형사상 피해자였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위법행위의 객관적인 사실관계 전달이 아니라 흥미 위주 가십으로 최소원의 기사를 양산했다.

최소원은 소송과 기레기들의 공격으로 이중의 고통을 받았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게 되면, 한국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그대로 담고 있다.


‘MJ도 그렇지만, 소원 누님도 대중들이 볼 때는 슈퍼스타지만, 이놈에 딴따라판 먹이사슬에서는 철저한 약자라니까.’


LA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류지호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벨에어 집으로 돌아오고 다음날 레오나와 함께 네버랜드를 방문했다.


“컨디션은 어때요?”

“좋아.”


천만다행으로 류지호가 취한 한방양방 통합치료가 마이키 잭슨의 건강 호전에 먹혔던 모양이다.

몰라보게 건강이 좋아졌다.

류지호도 모르게 프로포폴 같은 약을 투약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허리와 무릎 빼고는 전반적으로 좋은 상태를 회복했다.


“월드투어 준비는 잘되고 있고요?”

“응.”


공교롭게도 투어 타이틀이 <This Is It>이다.


“UMG의 기대가 큰 것 같더라고요. 투어 프로모션에 예산을 꽤 많이 잡아놨어요.”


당연한 거다.

1996년 8월 7일~1997년 11월 15일까지 열었던 <HIStory World Tour>는 총 83번 콘서트, 총 450여만 명의 관객,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이제나 저제나 콘서트를 학수고대하는 팬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 천 만 명이다.

월드 투어 티켓 예매를 시작하면 곧바로 매진될 확률이 백퍼센트다.

당연히 <HIStory World Tour>보다 훨씬 많은 수익이 기대된다.

유니벌스뮤직그룹은 <This Is It> 월드투어를 위해 세계 최고의 공연전문업체 및 무대 디자이너와 계약했고, 메이킹 무비와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영화 제작을 위해 IVE Entertainment와 계약했다.

각종 광고 영상과 프로모션 영상물도 함께 제작하기로 했다.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공연기획팀과 주 2회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어. 투어에 참여할 댄서 오디션도 준비 중이고.”

“내년이면 진짜 MJ의 콘서트를 볼 수 있는 거네요.”


그것도 진짜 <This Is It>을.


“기대해도 좋아.”


매우 드물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마이키 잭슨이다.

유니벌스뮤직그룹에서는 새앨범까지 발매해주길 바랐다.

완벽주의자인 마이키 잭슨은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미 녹음까지 마치고 완성된 곡조차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기시키기 일쑤인 그의 성격상 월드 투어를 위해 급하게 작업을 할 리가 없다.


“디지털 싱글 정도는 감안해 주세요.”

“알겠어.”


류지호가 부탁하면 어지간한 것은 다 들어주는 편이다.

따라서 류지호도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부탁을 하곤 한다.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낸 존재가 잘 한 일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마이키 잭슨을 도운 일이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 장담하는 류지호다.

류지호의 마음 속 영원한 ‘팝의 황제‘는 오로지 마이키 잭슨뿐이다.

그렇듯 영원한 ‘브라운관의 연인’은 최소원이다.

한때 편히 쉬어야 할 사람을 괜히 이승에 붙잡아 놓은 것은 아닌지 고민했던 적도 있다.

자신이 신도 아닌데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까지 어찌 관여한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바꾸려고 노력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그런 속담도 있지 않는가.

중국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속담이라고 한다.


‘Better a live coward than a dead hero.’


서구권에서는 죽은 영웅보다 살아 있는 겁쟁이가 낫다라고 표현하고.

둘 모두가 사는 게 아무리 괴로워도 죽는 것보단 낫다는 말이다.

억울한 것이 있다면 살아서 풀어야지.

죽어서 해결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삶은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다.

한 번 죽어본 류지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벼랑 끝에서 한 발만 뒤로 물러서 보세요.’


이전 삶에서 벼랑 끝에 서 본 류지호의 경험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작가의말

따뜻하고 화목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56 감독님은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3 24.01.27 1,782 86 25쪽
755 일본이여, 이것이 히어로 영화다! +6 24.01.26 1,754 85 27쪽
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3 24.01.25 1,753 88 24쪽
753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2) +9 24.01.24 1,732 87 26쪽
752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1) +7 24.01.23 1,735 101 26쪽
75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3 24.01.22 1,772 90 25쪽
750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4 24.01.20 1,806 90 22쪽
749 사랑의 열매. (5) +6 24.01.19 1,787 83 23쪽
748 사랑의 열매. (4) +7 24.01.18 1,727 88 26쪽
747 사랑의 열매. (3) +3 24.01.17 1,706 88 26쪽
746 사랑의 열매. (2) +8 24.01.16 1,768 93 24쪽
745 사랑의 열매. (1) +5 24.01.15 1,811 86 24쪽
744 뭐라도 해야만 돼! (2) +7 24.01.13 1,795 95 29쪽
743 뭐라도 해야만 돼! (1) +6 24.01.12 1,773 91 28쪽
» 만인의 연인! (2) +7 24.01.11 1,775 99 25쪽
741 만인의 연인! (1) +5 24.01.10 1,830 85 25쪽
740 Bridal Mask! +3 24.01.09 1,778 92 23쪽
739 World Promotion. (4) +4 24.01.08 1,795 88 29쪽
738 World Promotion. (3) +3 24.01.06 1,794 94 27쪽
737 World Promotion. (2) +8 24.01.05 1,786 90 26쪽
736 World Promotion. (1) +7 24.01.04 1,879 95 23쪽
735 Mr. 할리우드는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7 24.01.03 1,864 94 22쪽
734 공짜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10 24.01.02 1,838 95 25쪽
733 The Wall Street Journal. +12 24.01.01 1,848 100 27쪽
732 몰락한 동양의 할리우드, 그런데.... +16 23.12.30 1,895 95 21쪽
731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2) +3 23.12.30 1,585 87 23쪽
730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1) +5 23.12.29 1,721 98 30쪽
729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3) +3 23.12.29 1,639 82 26쪽
728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2) +9 23.12.28 1,743 90 23쪽
727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1) +4 23.12.28 1,608 76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