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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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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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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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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에게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프리카 방문 초반에 지나쳐왔던 나라 대사들이 섭섭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탄자니아, 케냐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그 밖의 국가는 자원봉사만 하고 스쳐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제 조국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는 엄청난 자원이 있습니다. 없는 자원이 없을 정도이지요. 하지만 단 한 가지 아프리카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기술입니다. 천연 자원을 산업으로 이끌 수 있는 동력이 되는 테크놀로지의 도입과 개발이 부족합니다.”


아프리카 대사들의 말은 거의 천편일률이었다.

자원이 엄청 많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투자를 좀 해 달라.


“이번에 위성TV 사업을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펼쳐볼까 합니다.”

“최근 00지방에서 희귀광물 매장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의 대사들은 방송이나 인터넷 부분 이야기만 나오면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은 방송과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위성방송으로 서양 뉴스를 접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국민들이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면 곤란해지는 것은 지배층이니까.

당장 JHO/DirecTV가 전 대륙을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빨라야 7년 안에 대륙 절반의 국가에 진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UN협약에 따라 2015년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이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에티오피아에게 있어 롤모델 입니다. 충분한 자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적 자원과 기도의 힘으로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도의 힘이요?”


MCM병원 원장을 포함해 선교사들이 말끝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역사를 들먹였다.

과학과 종교적 관점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과거 회귀를 경험한 류지호는 명백히 사기꾼의 헛소리다.

특히 개신교들이 사이비종교도 아니고, 미신을 믿는 것도 아니며, 엄연히 수백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쫒아 다니며 기어코 자신들이 믿는 교회 종파로 개종하려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에티오피아 내에서는 정교회, 이슬람교, 개신교 사이가 좋았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기어코 개신교를 전파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모습이 종교가 없는 류지호 입장에서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류지호.”


30세 전후의 잘생긴 에티오피아 청년이 인사를 건넸다.

그것도 한국식으로 성을 앞에 붙여서.


“떼냐 이스뜰린. 아토...”

“아브이 아머드 알리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아토 아브이.”

“저야 말로 영광입니다. 아토 지호. 편하게 아비라고 부르십시오.”

“아비는 교수로 재직 중입니까?”

“아닙니다. Ethio Telecom과 Ethiopian Television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두 곳에서 동시에?”

“사외 이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두 권이나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팬은 세상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영국 그리니치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는데, 그 당시 미스터 할리우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주가 되었을 때였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내 인생에 잘 한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맨유 인수가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아디스아바바 꼬레아 빌리지에서 당신의 인기는 제나위 총리보다 높지요.”


칭찬이야 들으면 들을수록 좋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다.

게다가 제나위 총리와 비교되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가 질투라도 한다면 곤란해지니까.


“과거 한국전쟁에 근위대를 보내준 셀라시에 황제는 외국으로 젊은 인재들을 많이 보내 세상을 배우고 오라고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 개인적으로 더 많은 아디스아바바 대학의 학생들이 한국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에티오피아의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를 바랍니다. 보는 것이 곧 믿음으로 이어지는 법이니까요.”

“동의합니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을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긍정적인 영항을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례로 서울대 같은 유수의 한국 대학들에 가면 아토 지호의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석사 과정의 에티오피아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연간 10여 명 정도 수준이다.


“국가장학생들은 주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압니다. 굳이 한국이 아니더라도 세계로 젊은이들을 많이 내보내 마음대로 공부하고 세계 시장을 둘러볼 수 있는 개방성이 필요합니다. 교육투자는 국가발전의 초석이 될 겁니다.”

“한국의 축적되고 발전된 기술이 에티오피아의 절실합니다. 우선 한국의 놀라운 경제 발전과 이를 가능케 한 인프라 구축의 경험을 가까이서 배우는 것이 매우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원은 있으나 인프라를 구축함에 있어 인력, 교육, 기술이 부족합니다. 이에 한국인들의 경험과 두뇌가 필요합니다.”

“한국과 에티오피아가 차자 발전적 교류를 늘려가지 않겠습니까?”

“오성, 금성 등의 발전된 한국의 전자 및 IT 산업이 에티오피아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한국인들의 여러 활발한 투자활동이 에티오피아에서 늘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우수한 기술 전수가 에티오피아와 한국 양국 간의 교류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에티오피아는 많은 한국인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조인트벤처를 통해 상생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마치 정부 관료처럼 구구절절 말했다.

자신과 겨우 여섯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청년이 참으로 똑 부러졌다.

나중에 뭐가 되도 될 녀석이라고 내심 생각하며 류지호에게 다른 인물이 말을 걸었다.


“헤이. 미스터....”


여담으로 아브이 아머드 알리는 이 시기 정보장교였다.

에티오피아 정보네트워크 보안국을 만든 인물이다.

국가가 소유한 여러 정보통신 분야 회사의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젊은 인재였다.

3년 후에는 총선에 도전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10여 년 후.

에티오피아의 총리에도 오르고,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오늘의 인연을 통해 그의 정치이력에 류지호가 암중으로 관여되게 된다.


❉ ❉ ❉


에티오피아를 떠나기 3일 전.

류지호 부부가 총리 관저로 초대받았다.


“북쪽에서 온 코리아의 외교관은 암하릭어가 능숙해 함께 이야기 할 때 암하릭어를 사용하는데, 남쪽의 코리아에서 온 외교관들은 전혀 암하릭어를 사용하지 않더군요.”


총리 말의 뉘앙스가 묘했다.

어딘지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어 또한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이기 때문이겠죠.”

“그렇습니까? 남쪽 코리아 외교관들의 전략일 수도 있고, 정말 암하릭어를 배우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딱히 류지호가 기분이 상할만한 도발은 아니다.

외교관 신분도 아닐 뿐더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분도 아니기에.

한국을 위한 민간외교 행사에 참석한 것도 아니다.

이번 초대는 다국적기업 JHO Company Group의 오너로써 참석한 것이다.

한국 외교관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 해봐야 류지호에게 아무 영향도 없다.


“미스터 류의 기업 사람들 중에는 암하릭어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더군요. 외국에서 호감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류지호가 암하릭어로 감사를 표했다.


“아메세그날레후.”


제나위 총리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총리를 만나러 오기 전 받아본 보고서에서는 총리가 독서광이라 기술되어 있었다.

특히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연구·분석한 책을 열심히 구해 읽는다고 한다.

한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국빈 방문할 때마다 평소 한국 관련 서적을 읽었던 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것이 한국 언론에서 확대 해석 되어 에티오피아가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기사를 쓰기도 했고.


“아프리카 일부 나라들이 대외적으로 막대한 차관과 무상원조를 해주는 중국식 개발모델을 선호하는 것 같지만... 학계와 실무진들 사이에서는 단시일에 빈곤에서 탈출한 경험이 있는 한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

“특히 한국의 농촌개혁 캠페인이 아주 감명이 깊었지요.”

“중국의 개발방식은 확실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화끈한 추진력을 자랑하긴 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눈에 확 들어오는 결과물에 집중하지요.”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 저로서는 한국 방식이 장기적으로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방세계나 중국이나 식민주의 행태는 똑같다고 할 수 있지요.”


제나위 총리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미국 고위관료 앞에서도 똑같이 할 말을 다 했을 터.


“중국식 개발 모델이 에티오피아의 여러 여건과 맞아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가 입장에서 볼 때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류지호 역시 독재자 앞이라고 해서 망설이지 않았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거지요?”

“ODA라는 명분으로 밀려들어오는 중국인 이주 물결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찜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이 자신들 좋은 일만 하려 든다는 걸 우리도 압니다.”

“일자리 문제도 문제이지만.... 어떤 중국인은 현지의 인기 있는 디자인을 무단으로 베껴가서 훨씬 싼 값에 생산해 수출품으로 들여오기도 합니다, 심지어 에티오피아 빈민들의 최후의 보루인 길거리 노점 좌판까지 빼앗을지도 모릅니다.”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데?”


북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들은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자는 5%를 넘지 않고, 50% 이상의 국민은 극빈자로 전락해 있다.

중국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특히 중국인들은 남의 가난은 개의치 않는 기질이 있다.

돈벌이가 된다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발을 뻗는다.

그리고 중국색으로 물들인다.


“기존의 국가들은 원조를 통해 최소한의 자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전파합니다. 하지만 어떤 국가들은 자국 노동자를 데려와 사업을 하기 때문에 기술 전수도, 고용 창출도 되지 않습니다. 입에는 달지만, 지속 가능한 원조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지원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요.”

“제가 지나쳐온 몇몇 국가에서는 일단 사회기반시설을 완공한 뒤 운영 능력이 없는 현지인에게 운영을 떠넘기니 사후 관리가 되지 않을뿐더러 잦은 부채탕감으로 지원을 받은 국가의 책임감을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원조를 통해 해당 국가는 자립이 아닌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인프라 사업은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다.

특히 부실공사가 속출하고 있다.

현지 인력을 숙련된 기술 인력으로 훈련시킨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로지 중국에서 건너온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법정임금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다.

중국 기업 간부들은 뇌물을 써서 현지의 유력자들을 매수한다.

자산 매수와 관련한 부패 규모도 엄청났다.

하지만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모두 바보 멍청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폐해를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문제는 독재자끼리는 통하는 구석이 많다는 점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1당 독재국가다.

부패가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우선시하는 서방국가보다 독재와 부패를 눈감아주는 중국 쪽에 줄을 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편법 원조’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원조 모델... 아니 미스터 류의 재단과 기업이 에티오피아에서 전개하는 원조 방식이라고 봅니다.”

“나는 에티오피아에 딱히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아디스아바바에 발을 디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프리카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을 뿐. 메하리들은 누구도 비난하지도 않고 누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흑인 편도 아니고 백인 편도 아닙니다.”


중립을 선언한 것이 아니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외교적 수사가 섞인 발언이다.

총리 정도라면 능히 알아듣는 표현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가 냉랭하게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그저 서로 할 말을 정리하려는 것 뿐.


“미국인들이 당신과 친구가 되라고 충고했습니다.”


주에티오피아 미국 대사와 총리에게 언질을 해 준 듯싶었다.

그도 아니면 AFRICOM이 따로 총리실에 압력을 넣었던가.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하더니 벌써부터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에티오피아가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싸운 것을 한국인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피를 흘린 것으로 귀국과 한국은 이미 사선을 함께 넘은 전우입니다.”


제나위 총리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지금까지 세 명의 한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했다.

그들도 류지호와 똑같은 말을 했다.

한국인들의 말에 신뢰가 가는 것이 수년 째 한국전참전용사들이 거주하는 빈민촌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탁도 들어주었다.

한국의 대형교회 한 곳이 아디스아바바에 종합병원까지 건립해 준 것이 그의 요청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젊은 억만장자는 그 몇 배를 아디스아바바에 베풀고 있고.

그럼에도 로비를 통해 이권을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커피 상표권 분쟁 당시에 암암리에 도와준 공을 인정해서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커피농사를 허가해 줬다.

아디스아바바 대학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류지호가 진심으로 에티오피아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더 큰 무언가를 바라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적어도 중국의 행태보단 나으니, 총리로서는 가까이 할 이유가 넘쳤다.


“미국은 아프리카의 인프라 개발이라는 거대 사업을 다 떠맡기에는 너무 신경 쓸 것이 많습니다. 사실 그들 국내 사정도 복잡하지요. 미국은 자국의 낙후한 인프라부터 먼저 보수해야할 판입니다.”


제나위 총리가 미국을 대상으로 농담을 던졌다.

에티오피아 대규모 개발 사업에서 가온그룹이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다.

류지호는 모른 척 시침을 뚝 뗐다.


“그렇다고 미국이 에티오피아에서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전히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무상원조를 하는 국가로 알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와의 여전히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고요.”

“친구라.... 그들은 정부군을 훈련시켜주고 정보도 줍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대신 피를 흘려달라고 하지요.”

“저는 기업가입니다. 정치는 잘 모릅니다.”


정치외교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총리를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기업가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탄자니아와 케냐에 투자를 한 것처럼 내 나라에도 투자를 해주길 기대합니다.”

“저는 아프리카의 석유나 천연가스, 다이아몬드, 구리 같은 자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분야를 다룰 기업도 없습니다.”

“모두가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며 접근했지요.”

“다만 아프리카 빈곤퇴치를 위한 농업,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생명과 안전을 위한 보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있습니다. 또한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 대륙의 사람들이 위로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영화, 음악 같은 대중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국대사가 미리 언질을 주었다는 가정 하에 속내를 조금 비췄다.

바로 농업기업의 에티오피아 진출이다.


“....농장을 운영한다면 곤란한 점이 많을 겁니다.”


류지호가 단도직입적으로 요구사항을 말했다.


“조금 전 말씀드렸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고. 아디스아바바 대학에 농업관련 학과가 개설되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다울재단과 가온그룹이 한국의 농촌진흥청, 농어촌공사, 농림축산식품부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향후 직업훈련소와 학교를 많이 만들겠습니다. 그것을 운영하려면 가온그룹의 아프리카 지사가 자체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농장도 좋고, 디지털 위성방송도 좋고, 관광서비스 분야도 좋습니다. 뭐든 허가를 해준다면 케냐 못지않은 투자를 에티오피아에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나위 총리는 즉답을 피했다.


“....흠.”


방송과 언론은 총리와 그의 정치세력이 수년 째 통제하고 있는 분야다.

농업의 경우 중국 등 외국인에게 토지를 임대해 준 선례가 있으니 크게 문제는 없다.

관광분야는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고.


“정치적 안정을 기대하신다면, 그것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빈곤문제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배가 부른 사람보다 더욱 예민하고 난폭한 법입니다. 이른 시간 안에 해외식량 원조량을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감히 말씀드립니다.”

“서방 사람들은 우리가 어리석고 몰라서, 그걸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제나위 총리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제나위 총리 입장에서 류지호는 중국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아프리카 편도 아니고 미국 편도 아닌 사람들.

중국인과 류지호가 다른 점은 돈을 미끼로 에티오피아에 함정을 파지 않는다는 것 정도.

당당하게 가져가는 것이 다르다고 할까.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좋은 파트너는 될 수 있을 지도....?’


반면에 류지호 입장에서 에티오피아는 매력적인 투자 국가는 아니다.

불안정한 정치상황, 열악하다 못해 처참한 인프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르지 않으니까.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국 화폐를 달러로 바꾸기 위해서는 당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빡빡한 외화관리로 인해 곤란한 점이 상당하다.

투자를 하면 회수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마치 중국처럼.

그래서 자원으로 가지고 가야 하는데....


‘어차피 아프리카에서 번 돈을 한국이나 미국으로 가져갈 생각은 없긴 하지만...!’


에티오피아에 투자할 바에야 나이지리아나 앙골라에 투자는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두 나라는 아프리카 1위, 2위의 산유국이니까.

인구의 5~6% 정도(800만 여명)로 추산되는 부유층의 구매력은 선진국 이상으로 강력하고.

반면에 에티오피아는 얻을 것이 별로 없다.

류지호 입장에 에티오피아 투자는 기부 혹은 자선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TV를 통해 이곳(르완다)에서 벌어지는 학살 장면을 본다면...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죠?라고 경악하고는, 먹던 저녁 식사를 계속할 겁니다.]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 비참한 현실을 암시하는 동시에 서구권의 무관심을 꼬집은 대사다.

류지호는 루세사바기나(호텔 르완다 실제 인물)처럼 약자를 위해 몸을 던지는 영웅이 아니다.

그 영웅들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전할 수는 있겠지만.


❉ ❉ ❉


에티오피아는 일 년이 13달이다.

그레고리안 역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율리우스 역법을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에티오피아 달력은 한국 같은 나라보다 약 7년이 늦다.

한 달을 30일씩 계산하고 남은 5일 혹은 6일을 또 한 달로 계산하기 때문에 에티오피아에서는 태양이 12개월이 아닌 13개월 뜬다.

이런 독특한 달력 시스템 덕분에 전 세계가 7년 전에 성대하게 치른 밀레니엄 행사를 에티오피아는 2007년 9월 11일에 치르게 됐다.

그것도 본국은 물론이고 해외의 각 대사관들까지도.

9월 11일은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9.11 테러가 벌어진 날이기도 하다.

매년 이날이 되면 미국 본토는 묵념으로 그 날을 추모한다.

단 10만여 명의 미국 거주 에티오피안을 제외하고.

왜냐하면 매년 9월 11일은 그들에겐 축제일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에게 그 날이 새해 첫 날이다.


“은콴 아데라사초!”


한국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같은 에티오피아 새해 인사말이다.


“달링은 새해를 세 번 맞이했어.”

“....?”

“한국에서는 음력 설날도 있잖아.”


류지호는 올 해 세 번의 연말연시와 새해를 맞이한 셈이다.

심지어 두 번의 밀레니엄을 경험한 꼴이다.

과거로 돌아왔으니 세 번의 밀레니엄일 수도 있고.

길고 길었던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그 기간 동안 류지호를 근접에서 수발을 들었던 모우알리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정교회의 최대 축제인 마스칼까지 경험하고 가시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마스칼 광장에서 불꽃놀이도 하고, Ghion Hotel에서 콘서트도 열리는데.....”

“더 있다간 정이 들어서 안 돼. 떠나야 할 때 떠나야지.”

“그 동안 정이 들지 않으셨습니까?”

“정이 더 들까봐.”

“언제 또 모실지 모르지만,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보스!”

“내년에 캘리포니아의 콘퍼런스에 참가 안 해?”

“아 참! 그렇겠네요. 내년에 뵙겠습니다.”

“하루 빨리 남아공에서 가족들과 함께 모여서 살길 바란다, 모우알리.”

"감사합니다. 보스!“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할 때와 마찬가지로 떠날 때도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운집했다.

언제 다시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할지 알 수 없는 류지호 부부를 배웅하기 위해서다.

류지호는 아프리카에 남아있을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전용기에 올랐다.


❉ ❉ ❉


캐나다 토론토는 류지호에게 매우 친숙한 도시다.

인접한 미시소가에 Eye-MAX 본사가, 워털루에는 DALLSA Corp. 본사가 소재하고 있고, 토론토 시내에는 G.O.M International 캐나다 헤드쿼터가 있다.

올해 32번째 토론토 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오랜만에 초청된 류지호에 대한 관심이 제법 뜨거웠다.

지난 1996년이었다.

UCLA 재학생 신분으로 제작한 <The Killing Road>가 쟁쟁한 기성 감독들의 영화가 소개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심지어 국제비평가가 주는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장편영화로 처음 국제영화제에 데뷔했는데, 수상의 영광까지 안았던 추억이 있다.

최연소, 영화학도 같은 다양한 화제성과 기록을 남겼다.


- 오랜만에 토론토 영화제를 방문했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친구들 그리고 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입니다.”


올해는 55개국에서 모두 349편의 작품이 초청되었다.

한국영화는 모두 네 편이 초청되어 상영되었다.

<밀양>과 <행복>은 주요 영화제 수상작과 월드 프리미어 작품들로 구성되는 ‘컨템퍼러리 월드 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되었고,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마스터스’ 부문에 <천년학>이,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를 소개하는 ‘비전’ 부문에는 이명수 감독의 <M>이 상영되었다.

류지호의 <Frank Castle>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서 상영이 잡혀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감독의 월드프리미어 성격 영화들이 주로 들어가는 섹션이다.

토론토 영화제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섹션이라고 할 수 있다.

<Frank Castle> 외에도 20편이 초청 상영되고 있다.


- 실험적인 작품이 너무 부족하다.

-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영화들이 유럽 영화제 수상은 자신이 없으니 토론토 영화제를 발판삼아 마케팅 하는 것이 아니냐?


그 같은 지적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럼에도 북미영화시장 진입의 창구로서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당당하게 세계 4대 국제영화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 때문에 할리우드 배급사 관계자들과 영화관계자들이 대거 영화제 기간에게 몰려들고 있다.

덕분에 필름마켓이 크게 성장했다.


“웰컴 투 토론토, 마이 보스.”


장문식이 호텔 현관까지 나와 류지호를 맞이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비교적 한적한 지역의 호텔이다.

1996년부터 JHO Company와 가온그룹 계열 영화사들의 베이스캠프 노릇을 하고 있는 호텔이다.

<풍운아>의 박은상 감독과 인연을 맺은 곳도 이곳이다.

현재는 가온그룹 계열의 호텔&리조트 회사가 인수해 운영 중이다.

밴쿠버의 호텔과 함께 캐나다 두 번째 직영점이다.

류지호 부부는 떠들썩한 환영을 피해 조용히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

류지호는 트라이-스텔라 해외배급 임원으로부터


“이번 영화제 후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Frank Castle>이 꼽히고 있습니다.”

“다크히어로를 의장님께서 어떻게 해석해냈는지 Timely Comics 팬들의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해외배급 임원이 전한 말이었다.

Scotiabank Theatre Toronto.

<The Killing Road>를 상영할 때는 남의 극장이었다.

지금은 G.O.M International 산하 토론토 법인 소유의 극장이다.

참고로 G.O.M International CAN은 사실상 캐나다 멀티플렉스 독과점 기업이다.

캐나다 극장 점유율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작가의말

오리지널을 연재할 때 아프리카 분량을 지적하는 분이 몇 분 계셨습니다. 봉사나 설명을 줄이고 비즈니스와 영화 영감을 얻는 것 위주로 압축을 했다곤 하지만 많이 줄이진 못한 것 같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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