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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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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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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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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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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Bridal Mask!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아주 잘하셨어, 아주! 내가 아주 속이 다 시원해!”


WaW 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전하영이 십년 체증이 내려간 듯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류지호가 <박중환 쇼>에서 ‘돌직구’ 발언을 한 것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가온그룹 차원에서 제 아무리 불법 다운로드와 전쟁을 선포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데 그룹 총수가 공식적으로 의지를 드러내면 차원이 다르다.

비록 시청률이 그다지 높은 프로그램은 아닐지라도 방영만 되면 단숨에 기사화가 될 것이다.

뉴스는 인터넷에서 재생산 될 것이고, 사회 전 분야에서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물론 단순 경고로 그치면 효과가 없다.

가온그룹은 오너가 방향을 정하면 불도저처럼 사납게 돌진하는 습성이 있는 기업이다.

지금까지 오너의 혜안이 틀려본 적이 없기에.


‘사실 감독님이 그런 짓 하려고 아직 총수 자리 내려놓지 않는 거니까.’


어떤 권력 혹은 대중들의 눈치를 보지 앓고 할 말을 할 수 있는 명성.

부당한 힘으로부터 그룹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영향력.

류지호가 가온그룹에 대해 손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이유다.


“7월에 트라이-스텔라의 <다이하드 4.0>을 미국보다 두 주나 늦게 개봉했고, 20세기 PARKs는 <판타스틱4>를 미국보다 딱 일주일 늦게 한국에서 개봉했는데. 글쎄, 그 일주일을 못 참고 수십 만 건의 불법 다운로드가 이루어진 거예요.”


그로인해 한국 흥행에 직격탄을 맞았다.


“영화 자체 파괴력이 전작들에는 미치진 못했어도 이름값만으로 첫 주와 둘째 주 어느 정도 관객몰이를 할 수 있었는데.... 그 빌어먹을 복돌이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이하드4.0>은 한국에서 340만 명의 관객이 들었다.

손해는 보지 않았다.


“직배사의 아시아 담당자들이 치를 떨더라구요.”


왜 아니겠는가.

DVD를 포함한 부가시장에서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극장개봉 영화까지 일명 ‘캠버전’의 무차별적인 유포로 흥행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로인해 전 세계 동시개봉은 이제 선택이 아니다.

불법 복제물 범람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D-Cinema가 좀 더 빨리 보급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업계가 다 함께 노력하고 있어요.”


류지호와 전하영 부사장, 김윤희 작가 세 사람은 매니지먼트 CHAN이 제공한 프리미엄 밴 익스프레스에 타고 있다.

밴은 쉬지 않고 부천으로 향하고 있다.


“GH 지분 인수는 잘 마무리 되었어요?”

“말도 마세요. 미스터 할리우드가 GH 오락집단유한공사 대주주가 되었다는 뉴스가 나가자, 주가가 엄청 뛰었대요.”

“몇 달 안 가서 예년 수준으로 떨어지겠죠.”


김윤희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왜 요?”

“미국 금융시장이 심상치 않거든.”

“진짜로 IMF 오는 거예요?”

“모르지.”

“리틀 버펫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오리지널 버펫이 알겠지.”


잠시 김윤희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류지호가 다시 전하영에게 물었다.


“홍콩 영화계 반발은요?”

“별 다른 반발은 없나 봐요. 본토 자본에 넘어가지 않은 걸 의아해 하는 분위기도 좀 있고. WaW가 GH를 인수할 능력이 되는지 의구심을 가진 사람도 있고... 뭐 그런 것 같더라고요.”

“새로운 CEO는 내가 결정할 거니까. 일단은 부사장 체제로 운영하라고 전해줘요.”

“벌써 정해 뒀어요?”

“미국에서 데려올 겁니다. 마침 소닉-콜롬비아스 픽처스에서 독립하려는 중국계 프로듀서가 있는데. 제법 유능해요.”

“미국시민권자면, 중국 본토에 인맥이 없지 않을까요?”

“리자싱 회장이 본토 네트워크를 만들어주기로 했어요.”

“청쿵그룹의 그 리자싱 회장이요?”

“청쿵이 GH의 2대 주주잖아요. 회사를 살리자는데 강 건너 불구경할 순 없겠죠.”


유리천장(Glass ceiling).

일반적으로 성별에 따른 차별을 의미한다.

사회 혹은 조직 내에서 일정 직위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지금에 와서는 학력·인종·지연에 따른 차별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여성 공무원에 대한 차별은 ‘대리석천장’(marble ceiling), 할리우드 내 여성 감독과 배우에 대한 차별은 ‘셀룰로이드천장’(celluloid ceiling)이라 부르는 것처럼.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겪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대나무천장’(bamboo ceiling)이라 부른다.

암튼 류지호가 새로운 GH 오락집단유한공사 CEO로 낙점한 프로듀서 육호랑(Mark Luk Ho-Leung)은 USC를 졸업한 홍콩 출신 미국시민권자다.

최근까지 소닉-콜롬비아스 픽처스 제작영화에서 제작파트 일을 했었고, 독립프로덕션을 설립하려고 준비 중에 류지호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할리우드 대나무천장을 뚫을 수 있겠냐고.


“고민하지 말고. 그냥 즐겨.”


류지호가 해 준 조언이었다.

헛된 희망은 고문과 다르지 않기에 류지호는 주변사람들에게 헛된 기대를 심어주지 않는다.

어쨌든 할리우드 주류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들은 뻔해서, 서로 모르려야 모를 수도 없지만 특히나 류지호는 아시아계 네트워크의 정점이다.

많은 이들이 따르고 또 의지하는 존재다.


“저희 자회사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면서요?”

“중국 비즈니스는 앞으로 GH를 통해서 진행될 겁니다.”


...음.

전하영이 아쉽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WaW 영화중에서 중국판으로 리메이크 할 프로젝트는 앞으로 GH를 통해 제작하고 배급에도 관여하게 되는 방향으로 갈 거예요.”

“멀티플렉스도 독립적으로 운영해요?”

“중국 대륙은 Golden Village로 진출하는 것으로 준비 중일 겁니다. 중국 엔터 산업에 외국계 기업이 자리 잡기가 정말 힘들어요. 홍콩기업은 여러 면에서 외국기업보다 진입장벽이 낮지요.”

“BS가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다던데. 우린 조금 복잡한 방식으로 진출하게 되네요.”


GH 오락집단유한공사의 대주주가 되고 경영권을 가져오게 됨으로써 가온그룹의 극장사업이 조금은 복잡해졌다.

본래도 G.O.M International 아래 수많은 브랜드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왔는데, 이번에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 점포를 가진 Golden Village 브랜드까지 산하로 편입될 예정이다. 이 브랜드로 중국 대륙과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에 진출할 계획이다.

동남아시아 화교권은 그들에게 매우 익숙한 GH 오락집단유한공사 브랜드를 앞세워 공략하기로 했다.

게다가 WaW 엔터테인먼트가 중국 공산당의 검열에 굴복해 영화를 제작하는 모양새보다 홍콩 영화사를 통해 불명예를 뒤집어쓰는 편이 정체성 면에서도 좋았다.

그래서 자회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대주주와 경영권만 행사하기로 했다.


“언젠가 모든 브랜드들이 통합되는 날이 오겠죠.”

“그러면 WaW Golden Bear Enter가 되는 건가....?”

“Bear는 뭡니까?”

“곰이잖아요. 쥐, 오, 엠.”


말이 나온 김에... 이전 삶에서 구루 온라인이라는 곳에서 미디어 재생 소프트웨어이자 인터넷TV서비스를 하던 브랜드가 GOM이었다.

90년대 초반에 이미 가온이 GOM 브랜드를 선점했기에 팝업폴더라는 P2P 웹하드업체 그래픽테크는 이 브랜드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현재 그들은 ‘The Online Movie Player’라는 뜻의 ‘톰(TOM)’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픽테크는 나우콤과 함께 회원 간 음란물 및 불법동영상 공유 문제로 가온그룹으로부터 줄기차게 소송을 당하며 시달렸다.

오성전자 기획실 출신의 팝업폴더 창업자는 가온그룹의 집요한 언론플레이와 소송으로 정상적인 사업을 펼칠 수 없을 정도로 시달렸다.

병 주고 약도 주고.

만신창이가 된 그래픽테크에 가온그룹이 인수 제안을 했다.

본래대로라면 BS그룹 계열에 지분을 넘기는 역사였지만, 이번에는 가온그룹에 지분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스펙트럼 엔터테인먼트는 한국형 OTT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그래픽테크 25%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미디어 재생과 관련한 기술을 확보할 수가 있게 됐다.

사실 가온그룹이 마음먹고 회사를 잡아먹으려고 하면, 손쉽게 얻을 수가 있다.

그래픽테크가 엄청난 기술력과 고객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불법 다운로드의 온상 중에 하나를 통제 하에 둘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여담으로 스펙트럼에서 OTT사업을 이끌던 이태경은 그래픽테크의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기로 했다.

추후 인터넷 TV서비스와 미디어 플레이어 서비스를 제외하고, 엔터테인먼트 포털 사이트 톰팝과 게임 브랜드 ‘까비오’는 스펙트럼 엔터테인먼트 자회사로 통합할 예정이다.

기존 경영진은 그 같은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지만.


“근데, 그래픽테크의 톰TV 브랜드를 GOM텔레비전으로 바꾸기로 했다면서요?”


전하영의 물음을 김윤희가 받아 다시 물었다.


“그럼 톰플레이어도 앞으로 곰플레어어가 되는 건가?”


류지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이러다 멜로디온 같은 음악플랫폼도 만드는 것 아니야? 가온이 다 해먹네, 아주.”

“부사장님, 이미 지호 오빠는 다 해먹고 있어요. 유니벌스뮤직그룹 오너에, MacIntosh 대주주에, SpottyTracks라고 요새 외국에서 핫한 뮤직플랫폼도 감독님 거예요. 이미 다 해먹고 있다구요. 우리 의장님이.”

“감독, 의장, 보스, 오라버니, 오빠 중 하나로 통일 좀 해. 정신 사나워.”

“뭐가 마음에 드는데요?”

“감독.”

“그럼, 보스로 통합!”

“왜 감독이 아니고 보스인데?”

“그게 어딘지 폼 나는 것 같아서.... PaymateMafia의 진짜 빅보스 류지호.”

“그래, 니 마음대로 하세요.”

“넵! 보스!”


다음 달에는 1인 미디어플랫폼 W플레이어가 코스닥 상장사에 흡수·통합되면서 우회 상장에 성공한다.

스펙트럼 엔터테인먼트가 W플레이어까지 인수합병하려고 했었다.

류지호가 막았다.

TOMTV의 대주주가 되었기 때문에 비슷한 플랫폼에 욕심낼 필요도 없고, W플레이어는 향후 여러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회사 이미지 보호 차원에서 또 OTT 서비스 집중을 위해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파주출판단지에 조성된다는 영상산업단지는 그냥 내버려둬요?”

“제휴영화사들이 파주로 옮겨 간대요?”


WaW 엔터테인먼트의 제휴 영화사들은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와 20여 분 거리의 합정을 중심으로 주로 마포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제휴영화사들이 여주종합촬영소의 가온타운으로 옮겨 가면 몰라도 파주로 갈 이유가 없다.


“아니요.”


그럼 뭐가 문제냐는 듯 류지호가 전하영을 쳐다봤다.


“충무로 한 15개 영화사 정도가 파주로 옮길까 고민 중이라네요.”

“그렇군요.”


파주출판단지는 2004년 1단계 부지 26만 4천여 평이 개발돼, 출판 158개 업체와 인쇄 54개 업체 등 226개 업체가 입주한 국내 최대 출판단지다.

이미 1단계 개발 단계에서 영상관련 업체 유치를 위해 영화계와 논의를 진행했는데, 크게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만 7천여 평 규모를 추가로 개발하는 2단계 사업에 영화사와 영상업체에 우선 분양을 계획하고 있다.


“그쪽에 드라마 세트장도 짓고 있어서 우리 스튜디오 고객 다 빼앗기면 어떻게 해요?”

“뺏기면 뺏기는 거죠. 뭘 어떻게 해요?”

“혹시 공생이니 상생이니 하는 개똥철학.....?”

“현명한 지주는 농부의 씨앗까지 빼앗지 않는다고 했어요. 농부들의 것을 다 빼앗아 버리면 나중에 누가 농사를 지을 수 있겠어요? 곳간에 쌀가마니를 쌓아두고 있으면 쥐들이 먹고 좀만 쓸지 않겠어요? 남은 쌀들을 일꾼들에게 나눠주면 더 건강한 컨디션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러면 다음 추수 때 소출이 조금이라도 늘겠죠.”


김윤희가 잘 걸렸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드디어 영화인들을 농부로 보고 본인을 지주로 여기고 있단 걸 인정하시네!” “노예로 생각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야?”


류지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뿐.

두 사람이 뭐라 떠들든 관심을 접었다.


✻ ✻ ✻


류지호 일행이 부천시 상동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에 도착했다.

<고바우 영감> 등 한국의 만화가 113인의 만화 원화 및 희귀만화 359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 직원이 류지호를 안내하며 물었다.


“<각시탈>은 고영수 감독님이 연출하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감독님으로 바뀌었어요?”

“아닙니다. 나는 제작비만 댑니다.”

“아~ 그러셨구나. 감독님이 제작을 하시는구나.”


허 화백의 만화 원작들이 실사화 되어서 흥행까지 연달아 성공했다.

영화 흥행으로 원작 만화책 수요도 늘었다.

실사화가 되지 않은 다른 원작 만화 원본에 대한 열람 신청도 늘었다.

한국만화박물관에는 허 화백의 <각시탈> 원본(원화가 아닌)을 소장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원본 전부를 소장하고 있지 않았다.

일부 남아 있는 <각시탈>의 원본은 희귀 자료다.

따라서 자료 열람신청을 해야만 볼 수 있다.

류지호는 만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74년 <각시탈> 원본을 보며 정말 아쉬웠다.


“원본이 백퍼센트 남아있지 않다는 게 참 뼈아프네요.”


<각시탈>은 허 화백의 첫 출세작이었다.

70년대 초반은 허 화백이 힘겨운 문화생 생활을 마치고 막 만화가로 데뷔했을 때다.

당시로서는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린 만화가 바로 <각시탈>이었다.

당시로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유의 전통적 한국정서에 기반 한 탄탄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는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충분히 통할만 했다.


‘그러니 고영수 감독이 <비트>의 판권을 살 때 함께 사려고 했지.’


허 화백은 다른 원작의 영화화권리를 선뜻 내주지 않고 있다.

사실 <각시탈>의 스토리를 완전하게 알 수 있는 세 권의 만화책 완본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허 화백조차 원화와 출판본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광고를 대대적으로 벌여야겠어요.”

“어떤 광고요?”

“온전하게 남아있는 <각시탈>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사례하겠다는 광고요.”

“오리지널?”

“당연하죠.”


<각시탈>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 <무쇠탈>, <색시탈>, <무적탈> 등 아류가 범람했다.

심지어 허 화백이 도서잡지 윤리위원회에 불려가도 했다.


- <각시탈> 때문에 만화시장이 혼탁해지고 있으니 <각시탈>을 그만 그리시오.


그 같은 어처구니없는 강압도 받았다고 한다.

너도 나도 <각시탈> 류의 짝퉁 만화를 날림 출판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법적인 분쟁이 빈번하자 소위 윤리위원회라는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허 화백은 그에 굴하지 않고 결국 <각시탈>을 완결했고.

여담으로 류지호는 대대적으로 신문광고를 내게 된다.

가온그룹 계열 사업장에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각시탈> 만화책 현상금을 건다.

무려 1억 원을 걸게 된다.

한 달 안에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온전한 1974년 판 세권의 <각시탈> 초판본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최신 스캐너로 한 장 한 장 이미지 파일로 만들게 된다.

또한 허 화백의 양해를 구해 그의 작업실을 완전히 뒤집어엎듯 샅샅이 수색하게 된다.

끝내 창고에서 <각시탈>의 원화를 발견하게 된다.

이전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집요함을 선보이게 된다.

<각시탈> 외에도 원고들과 드로잉 노트들이 엄청나게 발굴(?) 되는데, 무려 15만 장의 원화와 5천여 장의 드로잉 그리고 1천 권 이상의 작품 원고를 찾아낸다.

독립출판사 한 곳에서 허 화백의 원화를 가지고 복간을 하겠다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류지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성공한 덕후‘다.

그의 덕질 스케일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

MSM의 고전영화 필름 라이브러리가 탐이 나 수십억 원을 들여 인수·합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비록 MSM의 필름 라이브러리가 개인 소장은 아니라지만.


❉ ❉ ❉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날이다.

류지호는 급하게 두 명을 차례로 만났다.

첫 번째 만난 사람은 고영수 감독이다.

그는 <영어완전정복>의 흥행실패 후 절치부심 중이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합작 프로젝트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바로 버터플라이 픽처스에서 준비하고 있는 홍콩영화 <독비도> 한국영화 리메이크다.

샤오브라더스가 1967년에 제작한 전설의 무술배우 왕우가 주연한 바로 그 영화다.

그 외 시간은 한예종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


“진짜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거예요. <각시탈>... 할 거에요 말거에요?”


고영수 감독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이 없었다.


“.....”


꽤 오랜 시간 동안 <각시탈>을 제작하기 위해 투자사를 노크했었다.

게다가 영화권리도 확보하지 못했고.

WaW 엔터테인먼트(류지호)가 가로챘기 때문이다.

충무로 영세 영화제작사는 블록버스터 투자받기가 쉽지 않았다.

4대 메이저에서도 70억 예산을 부담스러워 했다.

한국판 슈퍼히어로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도 주저하는 점이다.

그런데 류지호가 제작하겠단다.

‘류 감독이 하겠다면 게임은 끝났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고영수 감독은 선뜻 류지호의 손을 잡지 못했다.

망설였다.

자신의 생각과 류지호의 기획에서 좁히지 못하는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No 와이어, No 컴퓨터 그래픽, No 스펙터클.


고영수 감독이 표방하고 있는 <각시탈>의 기획방향이다.

액션 안무에서도 한국식 ‘개싸움’이라는 날 것 액션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반면에 류지호는 건 액션, 카체이스, 격투 등 현시점에서 한국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영화에 담자는 생각이다.


“감독님, 오해하지 마세요.”

“.....”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따라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에요.”

“.....”

“감독님이 좋아하는 실제 싸움처럼 보이는 개싸움 스타일을 베이스로 해요. 다만... 거기에 아크로바틱한 액션을 결합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

“히어로 무비로 가고 싶다면서요?”

“그렇다고 자네가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아이언피스트> 같은 방식은 아닌 것 같아.”

“홍콩에서 <엽문>이란 영화가 제작되고 있어요. ParaMax가 투자하고 세계 배급을 맡아요. 감독님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의 이강토는 실존인물인 엽문 노사를 이길 수 없어요.”

“브루스 리의 스승이라서?”

“웡자웨이 감독도 찍고 있고. 얀쯔단이 주인공과 무술감독을 겸임하면서 내년 3월에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도 있고. <각시탈>은 아무리 빨리 준비한다고 해도 여름 안에 크랭크 인 못할 걸요?”

“시나리오와 액션 콘셉트 모두 나와 있어. 야외 세트는 중국에서 로케이션 하면 되고.”


류지호가 보기에 고영수 감독은 <무사>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WaW의 프랜차이즈 시리즈 <풍운아> 어땠어요?”

“볼만 했지. 내가 생각할 때 9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교과서 같은 영화야.”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가 마구 분출하는 한국영화의 액션 시퀀스. 유럽 애들이 아주 환장해요. 그건 그것대로 살리자는 말이에요. <정무문>에서 브루스 리가 카리스마 넘치면서 깔끔한 액션 시퀀스를 보여줬다면, <각시탈>의 1대 100 액션 시퀀스는 한국식 개싸움을 보여줘요. 처절하고 날 것 그대로.”


고영수 감독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런데 <각시탈>은 태권도를 하지도 않고 쿵푸를 하지도 않으며 가라테를 하지도 않아요. 그냥 잡탕 무술에 본능적인 폭력이란 거 잖아요. 설정이. 근데 한 달에 한 번씩 극장에 걸리는 조폭영화에서 또 TV드라마에서 툭하면 보는 게 바로 그 한국식 개싸움 안무잖아요. 진부하지 않아요?”

“새로운 걸 보여준다니까.”


다른 사람은 믿을지 몰라도 류지호는 믿지 않는다.

한국영화 내적으로 뭐 하나 잘되면 그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경향이 무척 강하다.

액션 시퀀스도 마찬가지다.

소위 한국식 ‘개싸움’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자, 너도나도 격투 안무를 그렇게 구성하고 있다.

마치 <본> 시리즈의 쉐이크캠 기법이 10년 넘게 액션 트렌드가 된 것처럼.

한국의 액션 방식이 북미 비디오시장과 영국 등 유럽의 장르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 정도다.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다.

<옹박>이나 <레이드> 같은 영화가 A급이 될 수 없는 것처럼.

WaW 엔터테인먼트는 90년대부터 트라이-스텔라와 ParaMax 배급채널을 통해 북미와 유럽에 한국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들 입장에서 한국영화는 신선한 B급 영화일 뿐.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하는 영화 기획이라는 것이 현실과 많이 달라요. 한국의 영화사 책상에 앉아서 궁리하는 것과 많은 괴리가 있더란 말입니다. 전 세계 태권도인구가 6천만에서 최대 8천만 명이래요. 차라리 할리우드 A급 배우를 출연시켜 태권도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해외에 더 많이 팔아먹을지 몰라요.”


<풍운아>급으로 서사와 미장센, 액션까지 다 잡는다는 전제하에.


“충무로에서 쿵푸영화는 고급이라고 치고 태권도 영화는 쌈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듣고만 있던 고영수 감독이 입을 열었다.


“나는 <각시탈>이 슈퍼히어로물에 가깝다고 보고 있어.”

“가면을 쓰기 때문에?”

“Timely나 AC의 슈퍼히어로가 가면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원죄의 트라우마와 그것을 극복한다는 상징을 담고 있으니까.”


원작만화 속에서 각시탈은 이영(이강토)이 친형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빌미가 된다.


“친형이 활약할 때의 각시탈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청년의 분노와 광기를 표출하는 스위치 같은 것이고, 강토가 각시탈을 물려받게 된 후로는 일본에 부역했던 비겁한 모습과 조선인의 영웅으로 활약하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의 양면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어.”


1974년 <각시탈> 주인공의 이름은 영이었다.

영화화가 된다면 대중들에게 친근한 강토로 바꿀 예정이다.

암튼 친형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죄책감을 가진 이강토는 각시탈을 쓰는 순간부터 미치광이처럼 폭주하게 된다.

실사화의 각시탈은 조선 민족을 위한 싸움보다는 자신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가족에 대한 죄의식의 발현이다.

또한 동물적 광기의 발현 그 이상도 아니다.


“<각시탈>은 굉장히 현대적인 만화에요. 당시에 누가 친일파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생각을 했고, ‘배트맨’ 같은 히어로를 일제강점기 배경에 넣을 생각을 할 수 있었겠어요.”


<각시탈>의 주인공은 1970년대 무렵 만화나 다른 대중문화에서 보던 전형적인 영웅과 달랐다.

안티히어로로서 인간적인 영웅이다.

주인공의 내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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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3 24.01.25 1,753 8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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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1) +7 24.01.23 1,735 101 26쪽
75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3 24.01.22 1,772 90 25쪽
750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4 24.01.20 1,806 90 22쪽
749 사랑의 열매. (5) +6 24.01.19 1,788 83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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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idal Mask! +3 24.01.09 1,779 92 23쪽
739 World Promotion. (4) +4 24.01.08 1,795 88 29쪽
738 World Promotion. (3) +3 24.01.06 1,794 94 27쪽
737 World Promotion. (2) +8 24.01.05 1,786 90 26쪽
736 World Promotion. (1) +7 24.01.04 1,879 95 23쪽
735 Mr. 할리우드는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7 24.01.03 1,865 94 22쪽
734 공짜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10 24.01.02 1,838 95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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