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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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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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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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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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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사랑의 열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방제복을 착용하기 있기에 못 알아 볼 줄 알았는데, 간혹 류지호를 알아본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류지호는 시민들과 어울려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며 기름때 제거에 힘썼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고.

자원봉사를 위해 태안에 내려온 사람들의 사연도 제 각각이었다.

여기저기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대부분은 눈이 따가울 정도의 악취 때문에 눈물을 찔끔거린 것이지만.

기름유출 사고를 낸 오성중공업에 대한 원망의 소리가 튀어 나오기도 했다.

여태껏 사과 한마디도 없는 인간들.

오성중공업과 그들의 모그룹에 대해 욕을 하며 자원봉사자들이 돌에 낀 기름때를 닦고 또 닦았다.

저만치서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오후 작업을 마무리했다.

기름 제거 작업을 할 때는 모두들 두 눈만 내놓고 방제복에 몸을 파묻고 있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는데, 방제복을 벗자 낯익은 일행들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 이후 20일 가량 동안 태안 바닷가의 방제작업에 투입된 사람은 모두 60만2천여 명.

태안군민 6만7천여 명의 9배에 가까운 규모다.

순수 자원봉사자는 42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절반가량은 사전연락도 없이 현장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올해 연말에 새로운 유행이 하나 생겼다.

연말 송년회 대신 태안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사상 최악의 해양오염 사고를 극복하려는 국민적 성원이 흔치 않은 풍속도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태안으로 자원봉사 다녀간 인원이 최종적으로 123만여 명을 기록하게 된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김재욱이 매우 낯이 익은 탑차를 발견했다.


“아네모네 밥차 아냐?”


만리포 해수욕장 주차장 쪽에 다섯 대의 밥차가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무료급식과 음료수 케이터링 봉사를 하고 있다.


“이모!”


아네모네 푸드의 정옥순 명예회장이 류지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게 누구야? 아이구~ 우리 의장님 아니야?”


아네모네 & 컴퍼니의 뿌리는 인천의 술집 마담 출신들이 창업한 회사다.

류지호가 상당한 자금을 대긴 했지만, 지금의 성세로 키운 것은 온전히 그녀들이다.

특히 영화현장 밥차 사업을 창업한 정옥순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수십 대를 운영하는 케이터링 서비스 업체로 성장시켰다.

현재는 아네모네 & 컴퍼니의 푸드 사업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아네모네 & 컴퍼니 외식사업 부문은 국내 30여 개 외식기업 가운데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 시기 한국 외식업계 순위는 6,000억 매출을 기록하는 파리크라상이 1위, 뒤를 이어 BS 푸드빌(4,900억), BR코리아(2,600억), 광성(3,000억), SR코리아(2,200억), 아네모네(1,910억), 제네시스BGQ(1,660억), Siren코리아(1,400억) 순이다.


“다른 이모들은 다 은퇴 준비하시는데 아직도 현장 다니시는 거예요?”


여덟 명의 창업자들은 회사경영에서 물러나 산하 청소년재단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내년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는 이들만 따로 채연지 부부가 있는 에티오피아로 넘어갈 예정이다.


“이모 저와 이야기 좀 해요.”


케이터링을 직원들에게 맡긴 정옥순이 류지호를 따라나섰다.


“오늘까지만 하세요.”

“아까 낮에 왔는데, 벌써 가라고?”

“커피 음료 케이터링 빼고, 나머지는 철수시키세요.”

“괜찮아. 여유 차를 끌고 온 거야.”

“아네모네 영업에 지장 줄까봐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

“기름 유출 사고로 태안 전 지역이 어렵지 않겠어요?”

“.....?”

“태안과 상관없는 서해안산 수산물까지도 거의 안 팔린대요. 수산물뿐만 아니라, 육지의 농산물도 꺼리는 분위기라고 들었어요.”


서해안산 해산물이 안전하다는 발표를 해도 소비자들은 지역 산물을 꺼려하는 분위기다.


“매주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을 찾는다고 해요. 그들이 태안지역의 식당에서 한 끼라도 식사를 한다면 지역 경제도 살리지 않을까요? 보답으로 지역 식당들이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저렴하면서 풍성한 밥상을 차려주면 좋겠죠.”


태안지역의 식당들이 서해안산 해산물로 풍성한 밥상을 차리고,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봉사자들은 종일 봉사하면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으면 서로 윈윈이다.

고된 노동 후에 먹는 무료급식소의 밥도 꿀맛일 테지만.

지역에서 소비를 해주는 것도 봉사가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이면 배가 고프기 마련이다.

간식으로 때우는 방법도 있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을 수도 있겠지만, 지역경제를 살려준다는 생각으로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에 있는 식당을 이용해주고, 식당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스페셜식단을 메뉴로 내어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자가용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형버스나 봉고차를 이용해서 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 단체손님들이 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면 침체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생각을 못 했네... 역시 우리 의장은 생각하는 게 남달라.”

“혹시 모르니까. 철수하시기 전에 태안군청 관계자와 만나보세요. 그 사람들 지금 정신이 없어서 미처 그런 부분까지 생각을 못할 겁니다.”

“알겠어.”

“비서실장하고 같이 가세요.”


혹시나 정옥순을 밥차 아줌마라고 군청 공무원들이 홀대할까봐 비서실장과 함께 가도록 조치했다.


“정치 하게?”

“어때? 내 생각이 그럴싸 하쥬~”


암튼 정옥순과 헤어저 류지호 일행이 미리 예약해 둔 펜션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 길에 태안 지역에 자원봉사 온 종교기관이나 단체들을 꽤나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관광버스들을 보니 유난히 교회차량이 많았다.

지나치는 사람마다 인사가 ‘좋은 일 하십니다’였다.

대부분의 종교단체들은 여름과 겨울 수련회를 갖는다.

이번 겨울에 서해안의 작은 섬들로 장소를 정하면 어떨까.

류지호는 생각난 김에 래리 킴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말연시에 태안에서 그룹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걸 검토해 줘요.”


태안에서 자원봉사활동도 하고.

저녁에는 환경이라는 주제로 콘퍼런스를 열고.

류지호가 제안한 그룹의 미래비전 중에 하나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


펜션으로 향하는 길에 젊은 자원봉사자들 무리가 숙소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숙박업소가 밀집해 있는 지역임에도 대부분의 숙박업소의 간판불이 다 꺼졌다.

방이 다 찼다는 뜻이다.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생긴 특수다.

좋은 일이다.

문제는.


“방 하나에 5만원? 보통은 얼마인데?”


류지호의 물음에 황재정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3만 5천에서 4만 원.”

“만원 올려 받는 게 그렇게 심한 바가지는 아니진 않나....?”

“자원봉사하러 온 사람한테 할 짓이냐? 바가지가?”


숙박료가 비싸도 9시가 넘으면 방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른다.

황재정이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빈방이 없을 정도로 영업특수를 누리고 있다면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숙박료를 평소요금을 받든지, 한 20% 정도 할인해서 10%는 군에서 지원하고, 10%는 업소가 부담한다면 이곳에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과 마음으로 하나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나중에 바다가 정상화되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겠냐? 그놈에 한탕주의가 문제야, 문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펜션 주인들이 자원봉사자에 한해서 무료로 방을 내주기도 했다.

민박집에서도 공짜로 자원봉사자들을 재워주고 있고.


“오오~ 장관이네.”


숙소 앞에 펼쳐진 바다는 말 그래도 아름다웠다.

늘 그래왔듯이 시간이 되면 노을이 지게 마련.

기름 유출과는 상관없이 온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구름 띠에 가려진 면이 없진 않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운 노을이다.

한편으로 예전에 보았던 바다의 노을과는 감회가 많이 달랐다.

방금 전까지 바닷가에서 기름때를 닦다 왔으니까.


“.....”


어른들이 복잡한 감정을 담아 노을을 보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추위도 잊은 채 신나게 뛰놀았다.

오인방의 각자 식구들이 저마다 음식을 싸가지고 왔다.

누구네는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겨울배추를 준비해 왔고, 또 누구네는 김장김치를 가져오고, 또 다른 누구네는 과일을 준비해 왔고, 멸치 볶음이며, 나물이며, 국거리, 밥 등 나눠먹을 수 있게 푸짐하게 준비해 왔다.

김준우가 지역 현지 할머니에게서 구입했다는 생굴까지 밥상에 올라왔다.

기름 유출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지역에서 올라온 생굴이었다.

찝찝할 법도 하건만, 모두들 군소리 없이 생굴을 먹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태안군청에 다녀온 비서실장이 짧은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일명 ‘오성중공업 예인선-허베이호 충돌 기름유출 사고’ 피해 상황 및 향후 과제에 관한 설명이었다.


“이번 기름 유출 사고에는 풀어내야 할 몇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사고 당시 항만당국과 예인선 그리고 부선 간에 왜 교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는데 왜 오성중공업 예인선을 무리하게 경남 거제로 끌고 가려 했는지, 왜 선박 소유주는 소환하여 조사하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항해일지를 조작하려 했는지....”

“9시 뉴스에서도 별 이야기가 없더라?”


YNTV과 일부 진보계열 신문을 제외하고, 오성중공업의 예인선이 낸 사고라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당연한 거 아냐?”


김재욱이 짐짓 아는 체를 했다.


“잘못 입 놀리면 밥줄 끊기는데 불경하게 ‘오성’ 두 글자를 입에 올릴 수 있겠냐?”


고우찬이 말을 보탰다.


“재판 시작되어 봐라. 제일신문이 주동해서 오성그룹 변호하기 바쁠 걸? 사건 자체까지 은폐하려고 애쓰겠지.”


실제 오성중공업 측은 사고가 난지 보름이 지났음에도 사과는 고사하고 잘나간다는 국내의 해양사고 전문변호사들을 죄다 끌어 모았다.


“다들 지방방송 꺼봐. 김 실장, 그래서 현지까지 밝혀진 피해현황이 어떻게 됩니까?”


김우영 비서실장이 알아온 대략적인 예상 피해 규모, 허술한 국가방제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덧붙여 이사회의장 산하 전략기획실에서 제안하는 개선사항도 전했다.


“기획실에서는 좀 더 효과적인 방제작업을 위해서는 피해 지역을 마을 단위로 나눠 지속적이고도 집중적인 봉사활동이 필요함을 제안했습니다.”


굳이 국가적 시스템까지도 연구할 필요가 있냐고 할 수 있다.

언제 오성중공업이 저지른 사고가 가온그룹에게도 찾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관련 대책들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의장님.”

“말해 봐요.”

“가온그룹 자회사와 계열사에 많은 봉사단체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사내 방송으로 봉사를 격려하는 것까진 괜찮지만, 그룹 차원에서 동원하진 맙시다.”

“약간의 인센티브를 제시한다면 더 많은 직원들이 태안 봉사에 참여하지 않을까 합니다.”

“....인센티브?”

“직원 휴가비로 매년 30만원을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태안에서 봉사활동을 한 직원에 한해서 10만원을 더 지원하는 겁니다.”

“내수진작까지 감안해서 20만원은 상품권으로 합시다.”

“예!”


태안군청에 장비지원하는 것만큼 가온 직원들 봉사활동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상치 못한 규모의 지출이 늘어나게 되었지만, 류지호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들이 몰려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태안군수, 충·북도 도지사, 해사부 장관 등 고위공무원들이 펜션으로 찾아왔다.

기자들까지 데리고 와서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에 찍히고 싶으면 연예인을 할 것이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뭐 하러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직업에서 일을 하는 것인지.

보다 못한 류아라가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와 한 소리했다.


“오빠 웃어. 너무 싫어하는 티 낸다. 스마일~”


매우 귀찮았지만 류지호는 참기로 했다.

태안에 가족과 함께 내려와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재벌들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터.

뭐라도 하는 시늉을 하게 되어 있다.

안 그러면 류지호와 비교되면서 두고두고 욕이란 욕은 죄다 들어먹을 테니까.

오성중공업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다.

류지호가 알게 뭐란 말인가.

게다가 그 유명한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사건으로 인해 원래도 최악이었던 재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더더욱 좋지 않은 상황이다.

적어도 성금을 듬뿍 기탁하거나, 회사차원에서 자원봉사를 독려라도 해야 한다.


“채비 다 하셨으면 가시죠.”


방제복으로 갈아입은 도지사와 군수가 류지호를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고우찬이 그런 이들을 쫒아버렸다.

경호상의 문제를 들어서.

류지호는 일행과 일요일 오후까지 봉사를 할 예정이었다.

언론과 높으신 양반들의 지나친 관심과 눈치보기로 그럴 수 없게 됐다.

봉사를 일찍 접어야 했다.


“마스크를 한 번도 안 벗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 긴? 우찬이 저 놈을 보고 알았겠지.”

“내가 뭘? 방제복으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돌아다녔어.”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누구 잘못인지를 놓고 오인방이 티격태격했다.


“그룹 차원에서도 80억 원 상당의 방제장비를 지원하기로 했고, 바위와 자갈에 눌어붙어 있는 기름을 닦아내주는 고온·고압수를 분사하는 고압세척기 20대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고압세척기를 쓸 일보다는 수작업이 더 중요했다.

결국 사람이 일일이 닦아내는 수밖에 없다.


“오일펜스를 치고 헬기에서 유처리제를 뿌려 해상방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봤지만, 기름띠와 타르 덩어리로 오염된 충남 태안과 전북 군산 앞바다의 59개 섬에는 방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습니다. 완전히 기름기를 제거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이 직접 제거하는 만큼 인체에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알 수 없잖아요.”

“관련한 연구를 할 의지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기름때나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바다 밑이나 바위틈, 모래사이에 있는 기름때를 제거 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결국 남은 기름 대부분은 인간이 아닌 바다 속의 미생물, 태양에 의한 광분해로 분해되길 기다려야 하겠지요.”


인간의 방법이 아닌 자연의 스스로의 회복이 가장 효과가 좋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그 동안 고통 받는 것은 인간과 바다다.


“주민 보상 문제는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대요?”

“피해보상이 이뤄지려면 피해상황과 규모에 대한 증빙자료가 갖춰져야 하는데, 주민들이 직접 각종 서류 구비와 피해 내용을 증명해야 하는 피해 접수단계부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름유출사고는 지난 95년 여수 앞바다에서 사고를 일으킨 씨프린스호의 기름 유출량보다 2.5배가 많은 1만2,500여 톤을 바다로 쏟아 부었다.

씨프린스호 사고는 피해 조사만 6개월이 걸렸다.

피해 보상에 3년이란 기간이 소요됐다.

태안 앞바다 사고에 대한 보상이 얼마나 오래 걸릴 지 장담하기 쉽지 않다.

류지호는 오성그룹이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하고, 태안주민 사이에서 오성 측 직원들이 파고들어서 이간질을 시키는 등의 공작을 펼쳤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외국의 보험사는 물론이고 영국에 있는 국제기금(IOPC펀드)을 상대로 하는 배상신청으로 결국 국제재판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련된 자료도 주로 영문자료 외에는 없는 상태에다가 적용되는 법규 역시 국내법과 국제협약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법률분쟁이기 때문에 법률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온로펌의 신임 변호사들이 도울 수 있는지 물어봐요.”

“예.”


이런 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우리 언론에서는 외국 사례와 종종 비교한다.

프레스티지호 사고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대응방식은 한국 정부에 많은 걸 시사한다.

스페인 정부는 프레스티지호 침몰사고의 배·보상 과정에서 국민 고통 최소화를 내걸었다.

스페인 정부가 국책은행을 통해 보상금을 선지급하고 IOPC에 대한 보상청구권을 주민으로부터 인수한다는 내용의 특별법을 만들었다.

경험이 부족한 피해주민들을 대신해 IOPC 협상은 정부가 맡았다.

스페인 정부는 IOPC 보상한도액(약 2,739억 원)의 2배가 넘는 6,152억 원을 IOPC에 청구했다.

IOPC는 산정한 피해 평가액의 30%만 지급하겠다고 했다.

결국 스페인 정부는 국제기금으로부터 1,844억 원을 선지급받는데 성공했다.

IOPC 선지급금과 예산을 토대로 1년7개월 만에 주민 보상을 95% 마무리했다.

또한 피해액을 스페인의 국영보험사가 결정하도록 해 피해 주민들이 청구한 금액을 대부분 수용했다.

스페인 정부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신속하고 합리적인 피해보상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 번 브리핑에서 그랬죠?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재난방제가 없다고.”

“1995년 여수 씨프린스호 사고 후 미국을 본 따서 재난방지시스템을 갖추긴 했습니다.”

“근데 왜 정부가 별로 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죠?”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는 청와대 직속으로 감염병 문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질병관리본부를 만들었다.

이번 기름 유출사고를 계기로 재난방제 기구도 만들어질 터.

문제는 정권이 바뀌었을 때 벌어진다.


‘이 놈에 나라는 전 정부가 한 것은 모두 부정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아니까.’


정의국이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참여정부가 만든 것들을 이전 과거로 원상복구 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위기관리센터다.

이전 삶에서는 이선택이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감염병, 건물 붕괴, 해난사고 등 국민안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 관리했던 매뉴얼 2,622개를 다시 각 부처로 다 흩어버렸다.

참여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산하에 위기관리센터를 만들어 33개 국가위기별로 표준매뉴얼을 만들고, 세부적인 내용을 담은 276개의 실무매뉴얼과 2,400여 개의 행동매뉴얼을 만들어 전통적 안보와 재난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임했다.

그랬던 재난컨트롤타워는 다음 정권에서 각 부처로 떠넘기게 되었고, 청와대는 오로지 안보만 챙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보수정부에서는 재난은 국민안전처가 총괄하며 각 부처가 담당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각종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핑계로 삼았었다.

참여정부라고 잘 한 것이 없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였다.

심지어 유조선의 구멍을 해경이 아닌 민간 어선이 막기까지 했다.

사고 초기에 참여정부가 자랑하는 준비된 매뉴얼대로 행해진 것이 별로 없었다.

오성그룹의 잘못을 은폐하며, 야당과 보수언론이 정부 공격에만 열을 올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문제는 재난은 어떤 정부에서도 찾아올 수 있단 사실이다.

참여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던 자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참여정부보다 훨씬 한심한 작태와 대처 그리고 조치를 취해서 국민들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안겨주었다.

이전 삶에선 분명 그랬다.

이 땅에선 수백 년 전부터 매번 그랬다.

재난을 당했을 때마다.


[국민은 있었지만, 국가는... 없었다.]


❉ ❉ ❉


11월 5일에 시작된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이 해가 바뀌었음에도 좀처럼 타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아예 협상 자체가 결렬된 상태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작가조합원들은 아예 팀을 꾸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작가들을 지지하는 미국배우조합(SAG)은 작가조합이 반대하는 프로그램이나 시상식에 소속 배우들이 참여하지 않을 것을 권장했다.

때문에 1월 중순에 열릴 예정이었던 제6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취소되었다.

기자회견으로 대체되었다.

작가조합을 지지하는 할리우드 스타배우들이 대거 불참선언을 했기에 시상식이 정상적으로 개최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노동자’라면 ‘사측’은 당연히 방송사와 영화사 등의 미디어그룹이다.

사측에서는 AMPTP에 대응을 모두 맡겨둔 채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향후 전망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다만 언론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디어그룹이 거느린 방송과 언론사를 통제해 파업 사실을 아예 알리지 않는 것에 주력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취소로 작가파업이 알려지기 전까지 대부분의 방송에서 관련 소식이 전혀 보도되지 않는 데 다 이유가 있었다.

미디어그룹들이 메이저 방송언론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특이한 행보를 보이는 인물도 있었다.

전 LOG Company 회장이다.

그는 파업에 나선 작가들을 노골적인 표현을 써 가면서 비난했다.


“나는 그동안 멍청한 파업을 수도 없이 봤지만, 이번 파업은 가장 멍청한 파업이다. 작가들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내일의 돈을 위해 오늘의 돈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짓을 3년을 해봐라. 그때가 되면 아마 파업한 사실을 후회하게 될 테니까.”


The Wall Street Journal은 JHO Company Group에 속하게 되었다고 해서 기조가 변한 것이 없다.

약간은 진보에 치우친 중도 성향을 견지했다.

그런데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취소된 직후, 미국 대다수 언론이 뜬금없이 ‘미스터 할리우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Tri-Stella, ParaMax, MSM 등 무려 세 개의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는 미스터 할리우드의 침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는 다른 빅6와 달리 JHO는 온전히 오너의 의지에 따라 작가조합과 협상에 나설 수가 있다. 그런데 Tir-Stella마저 AMPTP에게 협상을 맡기고 방관하고 있는 것은 류지호가 이번 사안에 개입할 뜻이 없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큰 권력에는 그 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 The New York Times.


[미스터 할리우드가 그의 주무대라고 할 수 있는 할리우드를 내팽개치고 고향으로 가버렸다. 그는 ‘비겁하게‘ 이번 사태가 마무리 되고 나서야 복귀할 것으로 관측된다.]

- The Philadelphia Inquirer.


대중들이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는 걸 누구보다 언론이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메이저 스튜디오를 소유한 미디어그룹을 대놓고 옹호할 수도 없고.

작가조합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찾아낸 타깃이 ‘미스터 할리우드’로 불리는 류지호다.

작가조합을 대놓고 비난하는 LOG Company 전 회장을 놔두고 엉뚱한 류지호 비판 기사가 주요 언론에 도배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국 언론이 뭐라고 떠들든 류지호는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에 머물며 충무로를 지켜보았다.

혹시나 미국 작가파업을 보고 한국의 작가들이 단체행동이라도 할까 싶어서.

만약 한국 드라마·영화 작가들이 파업에 돌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미니시리즈가 올스톱할 것이다.

재방송만 주구장창 틀어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드라마 작가들이 피켓을 들고 여의도 한복판에서 시위를 한다면?


‘설마 당장 공권력이 투입돼 작가들을 때려잡는 일은 없겠지. 아무렴, 민주화된 사회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대신 방송사 차원에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또 언론을 활용해 작가들을 공격할 것이다.


[대본 집필 거부는 시청자에 대한 배신행위!]

[한류 열풍, 작가파업으로 타격, 국제적 이미지 실추!]

[드라마 제작 차질, 수백억 손해 추산!]


그 같은 헤드라인이 온 언론을 뒤덮을 것이다.

‘국민경제’ ‘일반 시민의 피해’라는 프레임은 파업을 억누르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전경련은 한국의 보수언론과 손잡고 수십 년 동안 노동자 파업에 그런 프레임을 씌우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공화당 주지사인 아놀드 슈발츠네거는.


“파업 문제는 하루빨리 해결돼야 합니다. 파업을 하면 작가도 힘들지만 제작사 경영자도 힘듭니다. 뿐만 아닙니다. 영화사에 일하는 전기기사, 무대설치기사, 디자이너들이 직장을 잃습니다. 돈을 벌지 못해 주택할부금을 못 내고, 애들 학비를 대지 못하게 됩니다. 파업은 캘리포니아 주의 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옵니다.”


여론을 돌리는 것에 이만한 연설도 없다.

작가들의 주장보다는 반대측의 피해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특히 작가보다 더 약자를 끌어다 그들의 피해를 강조하는 방식은 매우 잘 먹힌다.

미국작가조합이 양보를 하고, 어서 빨리 양측이 합의를 보길 바라는 여론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송 전면 중단’ ‘골든 글로브 시상식 취소’라는 최악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좀처럼 진전될 기미가 없었다.

일단 협상 대상인 AMPTP가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미스터 할리우드라고 불리는 주제에 왜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거냐?”

“지호 류는 미스터 할리우드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언론 기사를 통해 흘러가는 분위기만 보면, 류지호가 미스터 할리우드라는 닉네임을 떼게 생겼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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