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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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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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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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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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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1966년 꼬레아 빌리지 안에 처음 초등학교가 개교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사업의 일환으로 총 3만 달러를 들여 1972년 교사 1개 동을 1974년에는 교사 2개 동을 건립하여 기증했다.

최근에는 총 80만 달러를 들여 교사를 개축하고 각종 교육 기자재와 학용품을 전달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꼬레아 빌리지 안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없었다.

2000년에 들어와 각각 무앙가(Mwanga:빛), 투마이니(Tumaini:희망)라는 이름의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개교했다.

메하리 코레아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설립한 학교다.

연면적 1,200평에 중학교동 24개 학급, 고등학교동 21개 학급을 수용하는 현대식 건물을 지어 컴퓨터와 TV세트, 과학 실험용 자재도 공급해 줬다.

에티오피아 전체로 따져도 손꼽히는 최신식 학교다.

두 학교의 학생 수는 모두 합해 2,500여 명.

교사는 한국인 5명을 포함해 90여 명에 이른다.

에티오피아는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별도 교과서 없이 교사·교수의 재량으로 가르치는 게 보통이다.

헌데 이곳에서는 교과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아디스아바바 교육청에서까지 이곳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할 정도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유치원생과 부녀자들을 상대로 영어교육이 진행된다.

JHO Foundation은 미국의 빈민가 청소년 센터를 15여 년 운영한 노하우가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Ji Ho School이란 이름의 학교를 세우고 있고.

원조나 자원봉사 개념이 아니다.

해당 국가에 정식으로 허가를 얻은 사학법인이다.


“참전용사분들의 자녀들은 공산 치하를 겪으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꼬레아 빌리지에 고등학교까지 운영되면서 손자 세대는 교육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습니다.”


비정기적으로 봉사단체가 와서 봉사를 하고 떠나는 시스템이 아니다.

JHO Africa Foundation이 운영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태권!

태권도!


고등학생들이 류지호 부부를 환영하는 의미로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원조 한류는 태권도다.


아리 아리랑~


중학생들은 리코더 연주를 들려주었다.

태권도 품세와 아리랑 연주는 많이 어설펐다.

정성만큼은 갸륵했다.


“애들아, 새치기 하지 말고.”


태권도복을 입은 학생들이 류지호 앞에 길게 줄을 섰다.


“한국촌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저녁마다 회관 공터에 모여 태권도 연습을 해. 항상 하는 말이 한국에 가서 검정 띠를 따는 것이 소원이래.”


학생들의 알록달록 한 띠에 사인을 해주는 류지호에게 채연지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아프리카 최빈국인 에티오피아엔 태권도 클럽이 50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수련생이 2만 5천 명에 달할 정도다.

육상, 축구 다음으로 에티오피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태권도다.


“태권도가 저희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좋습니다. 마스터.”


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은 참전용사 후손이다.

한국말도 꽤 잘했다.


“겨루기 시합 하는데 돈이 안 들고, 육상처럼 맨몸으로 메달에 도전하기 적합한 운동이죠.”


미국의 흑인 빈민가 아이들에게 힙합과 농구가 있다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육상과 축구다.

거기에 태권도 사범 역시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직업이다.


“탁구도 많이 한다면서?”

“중국인들 사업장에서 많이들 합니다. 학교에 장비지원도 많이 하고.”

“한국의 국기원도 갔다 왔다고?”

“예!”


몇 년 전 한국 국기원에 다녀왔던 경험을 두 삶이 돌아가서 열심히 늘어놨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현지 태권도인들은 류지호에게 꼬박꼬박 ‘master’란 호칭을 썼다.

류지호가 국기원이 인정한 정식 사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프리카에서 스승인 홍 관장의 흔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류지호에겐 사형벌 되는 이들이었다.

아프리카에서 태권도를 전파하는데 인생을 바치고 있다.

대통령 경호책임자 중에서 한국인과 인연이 깊은 이들도 많았고.


“할아버지 덕분에 한국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게 돼 너무 좋아요.”


올해 23살이 된 아디스아바바 대학생은 다울재단의 장학생에 선발되어 내년에 한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아디스아바바 대학에 재학 중인 참전용사 후손 몇 명이 류지호를 찾아왔다.


“보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어른들은 한국전쟁참전용사협의회를 통해 권익신장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 같이 젊은 사람들은 자원봉사 외에 특별히 할 것이 없습니다.”


류지호는 계속해보라는 듯 말을 자르지 않았다.


“참전용사 후손들이 모여 단체를 하나 새로 꾸려서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젊은 사람들이 50명 정도 모였습니다.”

“늘 누가 도와주기만을 앉아서 기다릴 줄 알았는데, 안에서부터 변화하려는 시도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청년들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단체를 만들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든, 메하리 코레아가 도울 거야. 너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듯, 반대로 베풀 줄 아는 것을 배운 것 같아 난 무척 기쁘다.”


채연지 부부는 장학생들에게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시켰다.

꼬레아 빌리지의 청소년들도 결코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방학 때면 함민수와 함께 오지마을을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류지호가 함민수에게 물었다.


“얼추 굵직한 인프라 지원사업이 마무리됐다고 해도 여전히 두 분만으로 힘에 붙이지 않겠어요?”

“한국에서 안사람 동생들이 오기로 했네.”

“이모들이요?”

“이제 회사에서 자신들이 할 일도 없고, 창업 멤버라고 월급 꼬박꼬박 받아가는 것도 눈치 보인다고 하더군.”

“편안한 노후를 즐기시지들... 고생을 사서하시겠다고.”

“젊어서 방종하며 살았으니까 늘그막에라도 의미를 찾는 것이지 않겠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한 번 건달은 영원한 건달일 줄 알았다.

함민수와 건달 동생들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마치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사실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함민수라는 사람의 건달시절의 기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 성격과 능력이 에티오피아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면서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뿐이다.


- 협객이 된 기분이야.


사람들은 함민수의 바뀐 자존감을 느끼게 되면서 변했다고 인지하게 된다.

결국 사람이 변하냐 안 햐냐는 관점에서 온다.

내 관점을 달리하면 상대방이 변한 걸 발견할 수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변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변하면 다른 이도 변화 시킬 수 있다.


❉ ❉ ❉


아디스아바바에서 공식일정을 마무리한 류지호 부부는 티그라이주의 과거 소금 교역의 중심인 메켈레(Mekele)에 도착했다.

전반적으로 도시가 깨끗했다.

곳곳에서 건설붐이라도 일고 있는 것 같았다.

경호책임자 겸 수행원 노릇을 하고 있는 모우알리가 설명했다.


“계획도시입니다. 이 나라 주도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보시면 됩니다.”

“외국인들이 많아 살아?”

“그렇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권력을 쥐고 있는 지도층 부족의 중심지입니다. 현총리 부족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메켈레에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부자들의 이주도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수도였지, 아마?”

“맞습니다.”


류지호 일행은 메켈레의 Ghion Hotel 체인에 짐을 풀었다.


다음날.


사막의 Royce-Rolls라고 불리는 레인지로버스 8대가 호텔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고, 류지호 일행이 사막 투어 차림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Jenny...”


다른 차량에 탑승하려던 제니퍼 허드슨이 달려왔다.


텅텅.


류지호가 레인지로버스의 보닛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물었다.


“혹시 가온 쪽에서 들어온 소식 없어요?”

“최근 두 가지 이슈에 대한 보고서가 있어요.”

“내 차에 타세요.”


제니퍼 허드슨이 반사적으로 레오나를 돌아봤다.

레오나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나킬 사막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류지호는 관심 사안에 대한 대략적인 보고를 들었다.

오너의 지시로 가온그룹은 전기차 사업 진출을 모색 중이다.

접근방식은 전통적인 제조업종 진출이 아니다.

자율주행 전기차를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의 한 부분으로 상정하고 진행하고 있다.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이 가능해 지면 무선소프트업데이트(OTA)는 기본으로 OTA를 통해 화상회의는 물론 자동차가 스마트폰의 역할을 대체하는 혁신을 궁리 중이다.

즉 이동수단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구상이다.

JHO와 가온이 전개하고 있는 영화, TV, 게임, 코믹스 같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스마트폰을 엄어 자율주행 전기차에서 똑같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위성인터넷 사업 진출까지 장기목표로 설정했다.

암튼.


“한국의 신진지프 모터스 M&A는 중국측과 계속해서 물밑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고, 한국정부와도 어느 정도 교감을 마친 상태라고 해요. 또한 인도의 자동차 회사와 접촉하고 있는 헨리 모터 컴퍼니는 터무니없는 가격 때문에 망설이고 있고, 가온그룹이 제시하게 될 금액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라고 해요.”

“인도 회사가 얼마를 불렀기에....?”

“30억 달러 미만이라는 정보가 있어요.”

“헨리 모터스가 두 자동차 브랜드를 얼마에 인수했죠?”


제니퍼 허드슨이 PDA를 조작해 관련 내용을 찾아 읊기 시작했다.


“1989년에 Swallow Motors를 25억 달러, 2000년에 LandRovers를 27억 달러에 인수했어요.”

“헨리의 수모네.”


50억 달러를 넘게 주고 산 회사의 인수금액을 반값으로 후려치는 제안을 듣는 처지가 미국 자동차 업체의 자존심 헨리 모터 컴퍼니의 굴욕이 아닐 수 없다.

류지호가 처음부터 재규어 모델로 유명한 영국의 대표 자동차 업체 Swallow Motors와 파란만장한 기업 역사를 가지고 있는 LandRovers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두 친구의 신혼여행차 영국을 방문했을 때 그쪽에서 먼저 인수제안을 해왔다.

마침 한국의 (주)신진지프 모터스로는 글로벌 경쟁력이 약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세계적인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를 함께 묶을 수 있다면 글로벌 마케팅에서 시간과 돈을 아낄 수도 있다는 계산이 섰다.

최근 미국은 주택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 한 곳이 파산하면서 불길한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8만 달러 이상의 고급 차량인 재규어와 레인지로버스 판매가 극도로 부진을 겪으면서 헨리 모터 컴퍼니는 지난 2년 간 손실이 무려 153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경영난이 지속되면서 몇 개 브랜드를 매각키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된 산하 기업이 PAG에 속한 Swallow Motors와 LandRovers다.


“가온그룹 최고경영진이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물어봐 줘요.”

“예. 보스.”


글로벌 인지도가 있는 자동차 기업 두 개를 인수하는데 30억 달러면 매우 저렴한 것이다.

한국의 (주)신진지프 모터스는 5~6억 달러면 뒤집어 쓸 테고.

무명의 기업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는데 기존 고급차 브랜드를 등에 업고 가는 것은 아주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이전 삶에서 헨리 모터 컴퍼니는 2007~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레만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존폐의 기로에 설 만큼 대위기에 몰렸다.

좀 더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었던 Swallow Motors와 LandRovers를 인도의 자동차그룹에 헐값에 매각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때가 Swallow Motors 인수 적기가 되는 이유는 그 동안의 부진을 씻고 턴어라운드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수석 디자이너 이안 칼런의 진두지휘로 탄생한 콘셉트카 ‘C-XF’를 토대로 재규어 모델 디자인을 전면적으로 뜯어 고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안 칼런의 디자인은 Swallow Motors의 재규어 부활의 시발점이다.

이전 삶에서 그 과실을 인도의 자동차그룹이 받았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난데없이 한국의 대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었기에.

만약 인수를 하게 된다면, 두 자동차 브랜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풍‘은 일절 손대지 않을 생각이다.

마치 PISA 브랜드의 경영방침처럼.

따라서 디자인센터, 연구개발부서, 주요 공장을 영국에 그대로 유지토록 할 계획이다.

다만 전기차 연구개발 및 생산만 새만금에 조성되는 시설에서 하게 될 테지만.


부우웅.


다나킬 사막으로 가는 길에 오지마을에도 들르고, 유목민들도 만나고, 소금광부 마을도 들르는 등 서두르지 않았다.

호위를 해줄 무장군인들이 합류하자, 곧바로 소금평원으로 향했다.

소금평원에 압도당하거나 감동을 받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레오나의 성화로 열심히 포즈를 취할 뿐.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이라니까.

모우알리가 아이스박스에 담겨있던 맥주를 꺼내왔다.


“보스! 시원할 때 드십시오!”


카 오디오에서는 밥 말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그늘에서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소금평원 저 멀리서 당나귀와 낙타로 구성된 소금행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금행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자, 하루 일정이 끝났다.

일반 관광객들은 소금광부 마을에서 나무로 만든 침대에서 비박을 하거나 개인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었다.


“오랜만에 노숙을 다 해보네...”


류지호 일행도 여행자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열악한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다.

밥 말리의 노래를 자장가 삼아서.


✻ ✻ ✻


다음 도시는 2005년 아프리카 연합이 선정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살기 좋고 개발 가치가 있는 도시’ 2위로 선정된 바흐 다르(Bahir Dar)라는 곳이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자동차로 9시간 거리의 도시로, 각종 정부기관이 모여 있는 암하라주의 주도다.

류지호 일행은 제주도 두 배 크기의 타나 호수를 구경하고, 블루나일 폭포도 구경하고, 랄라벨라의 있는 암굴교회도 구경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와서 처음으로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3시간 거리에 중국인들이 조성한 농장이 있습니다. 한 번 둘러보시겠습니까?”

“관광지 위주로 다니자고.”

“예.”


중국인들은 농장에서 자급자족을 하기 때문에 도시로 잘 나오지 않는단다.

류지호가 알 바는 아니다.

에티오피아의 관광지를 돌아다니 보니 어느덧 9월이 되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페로 지방으로 넘어왔다.

에티오피아는 세계 6번째의 커피 생산국이다.

아프리카 대륙 기준으로만 보면 최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주요 생산지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명칭이 낯설지 않다.

Addis Ababa, Harar, Sidamo, Yirgacheffe, Djimma/Limu, Tepi, Kaffa 등.

주요 산지의 명칭이 곧 대표적인 커피의 브랜드다.

(주)아네모네 커피농장을 구경하는 류지호와 레오나 곁에 커피농장 운영책임자 로베라가 찰싹 붙어서 침을 튀겨 가며 열심히 설명을 늘어놨다.

꽤나 수다스러운 스타일이지만 내버려 두었다.

따로 묻지 않아도 알아서 설명하고 있기에.


“'에티오피아의 축복'으로 유명한 하라(Harrar, 또는 Mocha Harrar)는 해발 3,000m 이상에서 건식법으로 가공되며, 와인의 신맛과 과실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부지역에서는 습식법으로 가공하는 시다모(Sidamo), 짐마(Djimmah), 리무(Limmu), 이르가체페(Yirgacheffe)가 있습니다. 이 중 이르가체페(Yirgacheffe)는 부드러운 신맛, 과실향, 꽃향기 등으로 에티오피아 커피 중 가장 세련된 커피, '커피의 귀부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Kaffa의 경우, 글로벌 커피브랜드 Siren에 커피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지이기도 했다.

외국인 최초로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농장 허가를 얻은 나라가 한국이다.

(주)아네모네의 에티오피아 법인의 커피 농장이 바로 페로 지방에 있다.


“아네모네 아디스아바바는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되는 9개 브랜드 커피콩을 모아 한국에 수출하는 업무를 주로 해왔습니다. 정부로부터 커피 재배 허가를 받은 후로 직접 커피콩을 생산하고 있죠.”

“재배면적이 얼마나 되죠?”

“300헥타르에 75만 그루의 커피나무를 재배 중입니다.”


평수로 환원하면 대략 91만 평이다.

여의도 면적보다 크다.


“한해 약 3,000톤의 커피콩을 수확하고 있습니다.”

“원두 그대로 한국으로 갑니까?”

“여기서 수확한 커피콩을 꼬레아 빌리지 공장에서 로스팅합니다. 소량이지만 미국과 유럽연합 등에도 수출되고 있고, 새로운 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로베라는 틈틈이 주머니에서 컨닝 페이퍼를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류지호를 수행하며 커피농장의 다양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며칠을 준비했다.

작은 실수라도 있어선 안 되었기에.


“수출대행과 생산, 유통까지 모두 더해 연매출은 대략 2,000만 비르에 달합니다.”


한화로 환산해 대략 8억 원이다.

교사 월급이 10만 원 선이니 꽤나 규모 있는 매출이다.

(주)아네모네 커피농장은 1999년 발족한 에티오피아의 커피조합 오로미아 커피농민 협동조합의 정회원이다.

유기농 재배와 공정무역(FLO)의 국제인증도 받았다.


“오로미아 커피농민 협동조합은 에티오피아의 35개 지역 커피조합이 모두 속해있는 단체입니다. 몇 년 전 커피 상표권 등록 분쟁이 있을 때 시정부와 함께 미국의 거대 커피기업 Siren에 맞서 끝까지 투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2000년 초부터 30여 개국에 상표권 등록을 시도했다.

캐나다에선 9개 커피의 상표권을 모두 획득했고, EU에선 하라르와 이르가체페를, 미국에서는 이르가체페의 상표권을 각각 따냈다.

상표권 등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 세계 커피 매장의 대명사가 된 Siren이 에티오피아 커피의 상표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년 간 에티오피아와 Siren이 상표권을 두고 분쟁을 벌였다.

영국의 국제구호기구인 옥스팜이 지원에 나섰다.

(주)아네모네가 암암리에 에티오피아를 지원했다.

Siren은 별도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조건으로 브랜드 라이선스를 인정했다.

대신 에티오피아의 커피 재배농부들에게 투자하고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네.”

“Siren이 상표권을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과 일본 같은 국가들도 따를 수밖에 없게 됐으니까요.”


사실 한국과는 크게 상관없는 상표권 분쟁이다.

한국의 원두커피 대부분은 남미와 동남아산이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산 커피 원두는 아네모네 프랜차이즈와 몇몇 공정무역 커피 매장에서만 수입하고 있다.

한국의 대형 커피프랜차이즈들은 주로 남미산을 수입했다.


“어차피 농산물에 대한 생산 지역 브랜드화가 추세입니다. 커피도 예외는 아닙니다.”


레오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파커가 커피에는 관여하진 않지만, 커피콩의 절대 물량이 미국 선물시장에서 거래가 되는 것으로 알아. 그 시장을 주무르는 게 Siren을 비롯한 글로벌 커피 브랜드들이고. 그들은 절대 가격 변동을 원치 않아. 수 천 수 만 개의 커피농장들에게 저가경쟁을 시키지.”


로베라가 맞장구를 쳤다.


“사모님 말씀이 맞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커피콩 값이 거의 그대로인 이유입니다.”

“그 사이 그들이 파는 커피 음료는 값이 엄청나게 뛰었지만.”

“글로벌 커피 기업들이 커피콩을 말도 안 되게 싸게 사서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가격을 크게 올리고 있어요. 커피 농민들이 모여 회사를 차리거나 협동조합을 좀 더 구체적인 형태로 꾸려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커피콩을 직접 가공해 판매하는 것 답이 될 수 있겠어. 아네모네처럼.”


공정무역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종의 시장개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선의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부작용도 있다.

‘공정‘이 붙어있다고 해서 절대 선(善)은 아니다.


“커피만 놓고 보면 소비자가 확인할 수 없는 공정무역 로고나 인증이 난립하고 있어. 내가 알기로 국제적이고 범정부적인 구속력 있는 인증단체가 없기도 하고.”


레오나의 말에 류지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베라...”

“네! 보스!”

“아내와 조용히 농장을 둘러보고 싶은데.”

“아! 그럼 저는 마을에 먼저 가 있겠습니다.”


류지호는 로베라에게 작별인사 없이 (주)아네모네가 운영하는 커피농장을 떠났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종착지인 아와사(Hawassa)로 향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약 5시간 떨어진 휴양도시다.

아프리카의 도시치고는 도로나 인프라가 제법 깨끗하고 정갈했다.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도 몇 곳 있었다.

수행원 중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하던 일행이 간만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레오나가 수행원들과 관광을 다니는 사이 류지호는 온종일 리조트에 틀어박혔다.

멍을 때리다가도, 문득 노트북을 펼쳐 자판을 열심히 두드렸다.

아와사 리조트에 머물며 3일 간 신들린 듯 자판을 두드린 끝에.

뚝딱 한 편의 트리트먼트가 완성됐다.


작가의말

날씨가 조금 풀렸다고 방심하지 마시고 감기 조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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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3 24.01.22 1,771 90 25쪽
750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4 24.01.20 1,804 90 22쪽
749 사랑의 열매. (5) +6 24.01.19 1,786 83 23쪽
748 사랑의 열매. (4) +7 24.01.18 1,726 88 26쪽
747 사랑의 열매. (3) +3 24.01.17 1,704 88 26쪽
746 사랑의 열매. (2) +8 24.01.16 1,765 93 24쪽
745 사랑의 열매. (1) +5 24.01.15 1,809 86 24쪽
744 뭐라도 해야만 돼! (2) +7 24.01.13 1,793 95 29쪽
743 뭐라도 해야만 돼! (1) +6 24.01.12 1,772 91 28쪽
742 만인의 연인! (2) +7 24.01.11 1,773 99 25쪽
741 만인의 연인! (1) +5 24.01.10 1,828 85 25쪽
740 Bridal Mask! +3 24.01.09 1,777 92 23쪽
739 World Promotion. (4) +4 24.01.08 1,793 88 29쪽
738 World Promotion. (3) +3 24.01.06 1,792 94 27쪽
737 World Promotion. (2) +8 24.01.05 1,785 90 26쪽
736 World Promotion. (1) +7 24.01.04 1,877 95 23쪽
735 Mr. 할리우드는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7 24.01.03 1,863 94 22쪽
734 공짜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10 24.01.02 1,836 95 25쪽
733 The Wall Street Journal. +12 24.01.01 1,847 100 27쪽
732 몰락한 동양의 할리우드, 그런데.... +16 23.12.30 1,892 95 21쪽
731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2) +3 23.12.30 1,583 87 23쪽
730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1) +5 23.12.29 1,720 98 30쪽
729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3) +3 23.12.29 1,637 82 26쪽
728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2) +9 23.12.28 1,741 90 23쪽
»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1) +4 23.12.28 1,607 76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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