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장 - 깊어지는 음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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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 장 - 깊어지는 음모 (4)>
정형은 의아해하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기본적으로 표물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어떤 일 때문인지 말씀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지간하면 신형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정형이지만,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 일은 표국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일이니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밀봉된 표물을 마음대로 개봉한다는 것은, 표국에서 언제든지 물건을 바꿔치기 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 일이 단 한 번이라도 발생한다면, 표국은 그날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 으음.”
신형도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을이 신형 자신은 느끼지 못한 무언가의 낌새를 느낀 것 같기에 의문을 가진 것 뿐.
자연히 무어라 확신을 할 수가 없었으니 이유를 댈 수도 없다.
“신룡 님의 명이시라면 개봉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만….”
정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신형이 확실히 열라고 말한다면 언제든지 열 용의가 있다. 국주도 그에 동의할 것이고, 그 일이 알려진다 해도 신용에 금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형이 우물쭈물하며 확신하지 못하니 오히려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별 일이 아니라면 열지 않는 것이 낫다. 게다가 공주에게 가는 표물이니 중간에 수많은 검사를 거칠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이었다.
“아냐, 별 일 아니겠지.”
신형은 이내 고개를 젓고 넘어가려 했다.
“안 돼! 아빠! 이거 새까만 거라니까?”
그러나 아을의 격렬한 반대에 다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알았다. 알았어.”
정형을 곤란하게 할 수도 없으니, 신형은 신력을 사용해 표물의 내용물을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당분간 탈피는 하지 않기로 생각했으니 신력도 적당히 사용해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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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력사용>
표물 내용물 확인
사용신력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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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신력이 50소모되었습니다.
내용물 : 시루액(屍淚液)이 포함된 천화분(千花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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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액? 이거 어째 어감이 좋지 않은데.”
시체의 눈물. 딱 봐도 불안한 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름이다.
“시루액? 방금 시루액이라 말씀하셨습니까?”
“그래. 저 안에 들어있는 것이 ‘시루액이 포함된 천화분’이라는군.”
“저, 정말이십니까?”
정형은 신형의 말을 신봉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믿고 있었지만, 그런 정형조차도 내용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재차 반문을 할 정도로 경악을 하고 있었다.
“독인가?”
시루액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신형은 독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정형의 말에 놀라고 말았다.
“일종의 미혼약입니다. 섭혼술을 사용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과거 마교에서 애용하던 약입니다. 워낙 악명 높았던 약이라 정마대전 때 제조법까지 전부 폐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허, 그런 것도 있나.”
섭혼술은 일종의 발전된 최면술로, 피시전자가 시전자의 말에 무조건 따르게 만드는 술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약품을 먹여 이지를 상실하거나 정신을 잃게 만든 후, 다른 기억이나 목적을 심는 방식으로 활용이 되어왔다.
신형이 알던 섭혼술은 눈빛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이지를 제압하는 그런 것이었지만, 이 곳에서의 섭혼술은 조금 달랐다.
“이제는 섭혼술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림공적으로 쫓길 지경인데…. 맙소사! 공주님!”
“헉!”
신형과 정형은 동시에 기함을 토했다.
“나중에 다시 오겠다!”
신형은 재빨리 뛰쳐나갔다.
“모두 경계 태세를 취하라! 당분간 표물의 운송은 없다! 서기를 포함한 실무자들은 즉시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표물의 배송지와 배송자를 확실하게 다시 파악하라!”
정형은 신형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이것으로 당분간 매난표국 신룡촌 지부들은 전부 표행이 금지되겠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였다.
쾅-.
어찌나 급했던지, 제어가 되지 않는 내공을 아낌없이 퍼부으며 부운산보를 운용하여 달려갔다.
내공의 소모가 만만치 않았지만, 신형은 개의치 않고 관청을 향해 달렸다.
도중에 담벼락 두어 개를 부수었지만, 천만다행으로 행인은 없었기에 인명사고는 나지 않았다.
“주연림! 연림! 어디 있나!”
신형은 관청에 들어서자마자 소리쳤다.
누군가 주연림을 노린다는 것 자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형과 정형이 이렇게 놀란 이유는, 시루액이 섭혼술에 사용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섭혼술을 사용할만한 인물이 주연림의 아주 가까운 곳에 항시 대기하고 있단 소리다.
“신룡 님?”
사영이 신형의 외침을 듣고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이렇게 신형의 고함을 칠 때마다 문제가 생겼으니 지레 겁먹는 것도 당연하긴 하지만, 이번 일은 고함을 칠 정도의 문제가 맞았다.
“사영! 연림은 어디 있지?”
“공주님 말씀이십니까? 그야 당연히….”
‘처소에 계십니다’라는 사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형의 모습이 사라졌다.
“오라버니?”
“어머, 신형 님?”
과격하게 문을 뚫어버리고 들어오는 신형을 보며 주연림과 홍화는 깜짝 놀랐다.
“후우. 괜찮나?”
“무슨 일인가.”
주연림은 침착하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시죠?”
홍화는 주연림과 다르게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도력을 주변으로 퍼뜨려 경계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큰일이 터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화장품. 그러니까, 천화분? 그거 쓰고 있어?”
“천화분? 그거야 매달 들여오고 있다만. 대체 무슨 일이지?”
그러나 신형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혹시나 싶어 신력을 사용하여 주연림의 상태를 살폈다.
“후우. 다행이다. 아직은 괜찮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신형은 현재 발생한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아! 그게!”
홍화는 무언가 짐작가는 것이 있는 모양인지 탄성을 냈다.
“짐작가는 것이 있나?”
“예.”
홍화는 지금까지 천화분에 포함된 독성을 정화해왔다는 말을 했다.
그것이 몸에 해롭다는 것까지는 짐작했지만, 얼마나 어떻게 해로운 것인지까지는 몰랐기에 그저 여드름이 나는 정도의 독성 정도로 짐작했었다.
무력은 확실히 높았지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홍화는 감각적인 부분에서는 아을보다 떨어졌기에 그것이 그렇게 위험한 물질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쯧. 그러면 꽤 오래 되었다는 소리인데.”
홍화에게 왜 그런 것을 몰랐냐고 닦달할 수는 없다. 오히려 홍화가 있었기에 주연림이 멀쩡한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신형 님께서 이번에 오시기 전부터 그 기운은 꾸준하게 느껴졌어요.”
“으음.”
보나마나 주천태를 위시한 반란 세력이 저지른 일일 확률이 높다.
“신력사용. 주연림 섭혼술 시전 준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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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력사용>
섭혼 시전 대기자 파악
사용신력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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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신력이 100소모되었습니다.
이름 : 차나향
나이 : 18세
성별 : 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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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향? 차나향이 누구지?”
신력이 100이나 소모되었지만, 그것은 신형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로 마음이 다급했다.
차나향에 대한 세부 내용이 주욱 나왔지만, 누구의 사주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차나향? 시녀인가요?”
“모르겠다. 그것은 나오지 않았으니.”
“나도 짐작 가는 바가 없다. 시녀 중에는 없는 이름임이 분명하고.”
주연림은 주변 시녀의 이름 하나하나까지 전부 외우고 있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신형이 이렇게 과민반응이라 보일 정도로 급한 이유는, 섭혼술은 정신에 관여하는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사를 시키는 극독이 아니라면 신력으로 어떻게든 해볼 여지가 있지만, 정신에 대한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미 이수희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 신력파악으로 알아본 결과이니 거의 확실할 것이었다.
“신력사용. 차나향 현재 근황.”
이번에는 30의 신력이 들었다. 알림창에는 ‘암살 준비중’이라는 간결한 단어만 떠 있었다.
“암살? 또야?”
신형은 얼굴을 팍 구겼다. 황제 암살을 막아보겠답시고 했던 개고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놈의 동네는 무슨 허구한 날 암살이야?’
벌써 세 번째다. 황제, 신형, 그리고 주연림. 올 때마다 암살 한 번씩은 겪는 듯한 느낌은 확실히 짜증이 날 법도 하다.
“암살?”
홍화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신형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신력사용. 차나향 상세 근황.”
신력파악조차 하지 않고 바로 신력사용을 해 버릴 정도로 신형은 다급한 감이 있었다.
신력에 상당한 여유가 있었으니 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무려 80이나 소모가 되었다.
하지만 확실히 80의 가치는 충분했다. 알림창에는 차나향이 태어나면서부터 했던 일이 목차 형식으로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상당히 많은 양이라 하나하나 자세하게 볼 수는 없었고, 아래쪽의 일들만 대강 흩어보았다.
“여기 있다. 봉연? 봉연이라는 시녀로 들어왔…. 아니, 포기했네.”
그녀는 얼마 전 시녀의 역할을 그만두고 다른 사람을 암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봉연? 봉연이라 하였는가?”
주연림은 그 이름에 꽤나 놀란 듯했다.
“그래. 시녀로 위장해서 왔었던 모양이네. 후우. 홍화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홍화는 자신도 모르게 주연림을 암살의 위험에서 구했다. 주연림을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것이었으니 암살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본인을 잃는다는 것은 같다.
“허. 허허. 내 그리 아껴주었거늘. 그것이…….”
주연림은 꽤나 충격이었던지 멍하지 중얼거리다, 이내 어금니를 깨물고 이를 갈았다.
“날 속였다 이거지? 하!”
신형을 만나기 전, 주연림은 가시가 가득한 장미와도 같았다. 황제라는 뒷배는 온전한 자신의 편이 아니었고, 그 외에는 전부 적.
당연히 본인의 모습을 감추고 냉철하게 행동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형을 만나고 의지한 것이 생기면서 점점 온화한 모습만이 남았는데, 이번 일이 그녀의 옛 모습을 깨우게 되었다.
“오라버니!”
“으, 응?”
갑자기 주연림의 기세가 바뀌자, 신형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신형으로서는 거의 본 적이 없던 주연림의 적의(敵意)다.
“그 계집, 어디 있지?”
주연림은 계집이란 말을 정말 싫어한다. 남이 하는 것도, 자신이 하는 것도.
그런 계집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주연림은 화가 나 있었다.
“그러니까…. 융중산? 거기에 있네.”
“융중? 호북성 말인가?”
“응.”
“제갈세가인가….”
화가 난 상태에서도 주연림은 사리판단을 잃지 않았다.
시루액을 언제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절강에서 배달된다고는 하지만, 운반되기 전에 넣었는지, 배달 도중에 몰래 넣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차냐향을 추적하면 그것 또한 알게 될 일이니, 주연림은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으로 신형을 바라보았다.
“왜, 왜에?”
최근은 그나마 당황할 일이 적어 얼빵한 모습이 사라졌나 했더니, 주연림의 그 눈빛에는 여전히 예전의 얼빵한 모습이 튀어나왔다.
“제갈세가. 칠대 세가에서 유일하게 반란에 연루되지 않았다. 폐하께서도, 나도 심중은 있지만 증거가 없었지.”
주연림은 차갑게 웃었다.
“이번에는 오라버니가 조금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항상 도움만 받았으니 도와달라면 도와주겠지만….”
‘너 너무 무섭다.’라는 말이 넘어오는 것을 애써 삼켰다.
그리고, ‘제갈세가가 연루된 것은 이미 황제에게 전했다.’라는 말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늘과 내일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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