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장 - 방랑자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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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장 - 방랑자들 (4)>
“부, 부군….”
“꿀꺽.”
당보미의 말을 듣자마자, 주연림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고, 홍화는 자신도 모르게 고이는 침을 삼켰다.
“왜들 그러시는지요?”
‘이거, 어쩌면 나에게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당보미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말했다.
주연림과 홍화의 반응을 보니, 당보미의 생각보다는 관계가 진전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부인이라는 단어에 저렇게까지 과민하게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 아무것도 아니니라.”
“부군. 후우. 후우.”
둘은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좋도다. 무엇이 알고 싶은 게냐? 부군에 대한 것을 본 공주가 아니면 누가 알까.”
“하! 첫 번째는 나거든?”
여전히 얼굴이 빨개진 채로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당보미는 눈을 빛냈다.
“호호. 언니들이 아시는 것을 알려주시면 되지 않겠어요? 한 분이 전부 다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없으니까요.”
이대로 싸움을 붙이면, 서로 자신이 신룡에 대해 더욱 잘 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정보를 쏟아낼 터.
당보미는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과연. 허나 거절한다.”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나 주연림과 홍화는 코웃음을 치며 당보미의 말을 거절했다.
“……예?”
“궁금한 것이 있다면, 필요에 따라서 알려줄 의향은 있다. 부, 부, 부군의 일을 부인이 몰라서는 안 될 테니. 그러나 본 공주가 간직하는 비밀을 그대에게 알려줘야 할 이유가 없다.”
“응. 연림 말대로.”
“그…렇사옵니까.”
얼마나 대단한 정보길래 공주와 신수가 저렇게까지 할까 싶어, 당보미는 고개를 숙였다.
“뭐, 대답을 하는 것은 본 공주가 판단할 것이니, 그대는 그저 질문을 하라.”
“예에. 송구합니다. 허면, 신룡 님께서 좋아하는 이상형은 어떠한 여성이온지요?”
일단 그것부터 알아야 앞으로 어떤 식으로 신룡에게 접근해야 할지 계획을 짤 수 있다.
“큰 가슴이다.”
그 대답은 홍화에게서 나왔다.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주연림의 말이 뒤를 이었다.
신형이 들었으면 게거품을 물고 방방 뛰었을 소리였지만, 둘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예?”
그 대답을 들은 당보미는 순간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말대로다. 오라버니는 큰 가슴에 약하더군. 제길.”
일국의 공주가 내뱉기에는 참으로 저렴한 욕설을 내뱉으며, 주연림은 연신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왜 첫 번째인지 알겠나?”
어깨를 으쓱 하며 자신감 넘치게 웃는 홍화였다.
“그, 그렇군요. 그럼 신룡 님께서는….”
그렇게 셋은 신형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영의 계획대로일지, 당보미의 계획대로일지는 모르지만.
***
“알아냈어요!”
“알아냈다!”
이틀 뒤.
주연림과 홍화는 신형의 방으로 들이닥쳤다.
“어? 어어. 수고했어.”
‘얘들이 뭘 잘못 먹었나?’
정보를 얻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흥분을 하면서 뛰어들만한 일인가 하는 생각에 신형은 잠시 당황했다.
“반응이 그게 무언가!”
“맞아요! 우리가 얼마나 애써서 알아온 건데, 기쁘게 맞아주시지는 못할망정!”
“어? 응. 잘했어.”
“이익!”
“자꾸 그러시면 말씀 안 드릴 거예요?”
이것은 서로의 감정에 의한 차이다.
이틀 동안 신형을 부군이라 말하며 대화한 그녀들은, 계속해서 반복되어 사용된 그 단어로 인해 자신들 스스로를 신형의 부인으로 여기는 마음이 강해졌다.
그에 반해 신형은 주연림과 홍화가 그저 조금 신경 쓰이는 여성, 소위 ‘썸’이라 불리는 여성 정도도 되지 않았으니 둘의 반응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 역시 둘이라니까! 해낼 줄 알았어!”
그래도 결국 아쉬운 것은 신형.
누가 봐도 억지로 짜내는 듯한 행동임을 알 수 있었지만, 원래 콩깍지가 씌면 어떤 행동을 해도 예뻐 보이는 법이다.
“후훗.”
“호호호. 그럼 오늘 밤은 간만에 함께 보내도록 하죠?”
“어…. 어. 그러지. 뭐. 그래서, 알아 온 정보가 어떤 건데?”
어차피 함께 자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제는 옆자리에 누워서 뭉클한 그 무엇 속에 묻혀 잔다 해도 그러려니 할 지경이다.
“크흠. 나도 함께 자겠다. 아무튼 동생이 알아본 바로는, 어떠한 절진을 구축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 같다고 했다.”
“절진?”
어째서 동생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절진에 대한 질문이 우선이다.
신형은 절진이란 환각이나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제갈량이 사용했다던 석병팔진이 그러했던 것처럼.
“동생도, 저희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평범한 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재료들을 원했거든요.”
“그 재료가 어떤 것이길래?”
“피를 먹고 자란 인형설삼, 벼락 맞은 대추나무, 생후 3,333일된 여아가 3일 동안 입에 넣고 불린 홍모단(紅毛丹, 람부탄), 그 외에도 희귀한 벌레라던가, 모기의 눈알이라던가, 두꺼비를 말린 등껍질 가루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가봐요.”
신형은 홍화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저번에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어디서 뭔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생각이 날 듯, 안 날 듯 간질간질한 그 느낌에, 신형은 인상을 쓰며 생각에 잠겼다.
‘인형설삼, 대추나무, 홍모단…은 뭔지 모르겠고, 벌레, 눈알, 두꺼비.’
그렇게 모아놓고 보니 냄비에 각종 재료를 넣고 휘저으면서 끓이고 있는 전형적인 중세 마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마법의 솥단지 같은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 본 마녀들은 대부분 긴 매부리코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런 마녀와 마교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적 거리감 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지만, 어쨌든 마교가 찾는다는 물건들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런 이미지였다.
‘마교 애들도 마법을 쓰려나? 어?’
신형은 순간 무언가 퍼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피를 먹고 자란 설삼. 만드라고라?’
삼과 맨드레이크는 엄연히 다른 식물이지만, 왠지 비슷한 구석도 많은 것이 꽤 그럴싸한 추측이라 여겨졌다.
‘절진. 재료. 만드라고라. 연금? 마법?’
신형의 머리가 기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절진을 구축하는 데에 저런 재료가 들어가? 절진은 토목 공사가 필요할 텐데? 그렇다면 절진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런 재료가 필요할 만한 일. 그리고 절진이라 착각할 만한 일. 무엇이 있지?’
“오, 오라버니?”
“신형 님?”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신형을 보며 두 사람이 불렀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주연림과 홍화의 눈이 서로 마주치고, 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무언의 합의를 했다.
“서방님.”
“서, 서, 서방…님.”
물론 신형이 듣지 못하고 있기에 한 말이기는 했지만, 설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더라도 지나치게 작은 목소리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늘과 내일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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