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장 - 방랑자들 (1)
<제 41 장 - 방랑자들 (1)>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춘만의 말에 신형은 우선 응접실에서 대기하라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신형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사람들 역시 생각에 잠긴 채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상하단 말이지….”
당가 가주의 전서가 도착한 것이 방금이다.
당보미 본인이 전서를 직접 가져온 것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전서를 먼저 보내놓은 상태에서 대답도 듣지 않고 당보미를 보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흐음.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군.”
주연림이 생각이 정리가 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어?”
“추측이기는 하지만, 황궁에 비춰보면 있을 법한 일이기도 하다.”
주연림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력이 나뉘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지.”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요.”
주연림의 말에 사영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동의했다.
“전쟁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인가?”
신형의 말에 주연림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반만 맞다고 보아야겠지. 양쪽 모두 오라버니와 싸우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당가의 가주 역시 화친을 원하는 전서를 보낸 것일 테고.”
“마교와 손은 놓기 싫고, 권력도 차지하고는 싶지만, 나와는 싸우고 싶지 않다. 그런 말인가?”
“그러하다. 당보미는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쪽이겠지. 설마 나와 홍화가 있는데 오라버니를 마교 쪽으로 끌어들이려 직접 온 것은 아닐 테니.”
“……어쩐지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 머리가 아픈데.”
“후후. 천하의 신룡과 전쟁을 벌이려 하는 것은 주천태와 마교 정도뿐일 것이다.”
주연림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신형은 과분한 칭찬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럼 대충 목적은 짐작이 가니, 부르도록 하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실례잖아?”
“그러도록. 참, 설마 미인계 따위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주연림의 그 말에, 홍화 역시 눈을 번뜩이며 신형의 입을 쳐다보았다.
“걱정 마라.”
‘홍화한테도 안 넘어가는데 무슨’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신형은 응접실로 향했다.
막말로 홍화는 신형의 이상형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이니, 아직 당보미를 보지는 못했지만 홍화보다 미인이 아닌 이상, 자신이 넘어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 확신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신룡 님을 뵙습니다.”
“고개를 드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신룡 권신형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자신의 이름 앞에 신룡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과는 다르지요?”
신형이 의자 위로 껑충 뛰어올라, 앞발을 탁자 위에 턱하니 올려놓으며 말했다.
“……사실 그렇긴 하답니다.”
신형의 모습은 동양의 용 보다는 서양의 드래곤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환상종에 대한 심미안은 비슷했기에, 당보미는 신형의 모습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만나자마자 이렇게 본론을 꺼내는 것은 이곳 기준으로 굉장히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다.
당보미는 순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재빨리 마음을 다잡고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신수라서 인간의 예절을 모르는 거라고 속으로 신형의 변호를 한 것은 덤이다.
“혹시 당가 가주님의 전서를 받으셨는지요.”
‘연림의 예상이 맞은 것 같은데.’
신형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붙잡으며 말했다.
“예. 당 소공녀과의 혼인을 권하시더군요.”
당보미는 전형적인 미녀였다.
이곳 기준으로.
명나라의 미적 기준에서는 전반적으로 작은 여성을 미인으로 쳐준다. 가슴도, 발도, 얼굴도, 키도. 거의 유일하게 예외인 것이 얼굴형으로, 약간 통통한 계란형을 선호한다.
‘차라리 주연림이 낫지.’
외모만 놓고 따졌을 때에는 주연림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다만 신체 조건이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아서, 특정 취향을 가진 일부 사람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여성상으로 꼽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신형은 그 일부의 사람에 속해있지 않았기에, 주연림의 나이가 곧 성인이 됨에도 여전히 범죄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나중에 신력으로 신체를 키우지 않는 한은….’
사실 주연림만한 조건을 가진 여성도 없다.
공주인데다 착하고, 똑똑하고, 예쁘다. 무엇보다도 신형의 단점도 좋아하려 노력해 준다.
신형 자신에게는 과분할 정도다.
“저….”
“아, 미안해요.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신형은 사과하며 재빨리 말했다.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 주연림이 어느 정도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는 반증이다.
“예에.”
“무어라 말씀하셨지요?”
“급진파에 대해서예요. 신룡 님께서 그들을 설득하거나, 무력화시켜 주실 수는 없을까요? 물론 보상은 할 수 있는 한에서 무엇이든 해 드릴게요.”
말이 설득과 무력화지, 그 속에 들어있는 뜻은 겁을 주거나 없애 달라는 소리였다.
“그것은 조금 고민을 해 봐야 할 문제로군요.”
“예. 괜찮으시다면, 여기 관청에 잠시 머물러도 될런지요.”
“그러세요. 따로 지시해 두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관청에서 머무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특혜 같아 보이지만, 사실 관청의 객소는 좋은 편이 아니다.
차라리 밖의 고급 객잔에서 자는 것이 나을 것이지만, 당보미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청에서 묵겠다고 했다.
“그러면 하실 말씀은 그게 끝인가요?”
“아뇨. 시간에 여유가 있으시다면 조금 더 말씀을 나누어도 될런지요.”
“예. 그러지요.”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급한 일 또한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야기 도중 당가에 대한 단서가 나올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신형은 문득 군령초에 대한 것이 생각났지만, 그것을 물어봐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실 급진파 역시 당가의 일원이고, 제 가족이랍니다.”
그녀는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신형을 바라보았다.
“…….”
아무말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신형의 모습에, 당보미는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마교와 협력 관계가 되면서부터 무언가 이상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이상한 일이라 하심은?”
“마교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것들이 많았답니다. 피를 먹고 자란 인삼 같은 것들도 요구할 정도였지요.”
“피를 먹고 자란 인삼?”
머리에서 뭔가 떠오를 듯 말 듯하다. 분명히 신형은 그런 것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예. 그 외에도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독이나 약재가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까지 요구했어요. 물론 아무리 급진파라고 해도 그런 정신나간 것들을 챙겨줄 정도는 아니었기에 정중히 거절하긴 했지만요.”
“……확실히 독은 아닌가요?”
“이래 뵈도 당가랍니다. 독의 조종이라고 불리는.”
“실례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조사를 따로 해 보았습니다. 마교의 목적 또한 어느 정도 알아냈답니다.”
확실히 마교의 행보는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단순히 권력이나 영토만을 탐한다 보기에는, 악착같이 신룡촌을 공격하던 점이나, 계속해서 조금씩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다는 점들이 의문을 가지게 했다.
“마교의 목적이 무엇이죠?”
“……죄송합니다.”
당보미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어쩔 수 없지요.”
신형 또한 그런 당보미를 이해했다.
그 정보는 당보미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패일 것이다. 그렇기에 듣고 싶다면, 자신에게 합당한 보상을 달라는 표현을 돌려 말하는 사과였다.
“일단은 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조만간 다시 뵙도록 하지요.”
신형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기다리겠습니다.”
당보미도, 신형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
“어떻게 생각해?”
당보미와의 대화를 마친 후, 사영을 제외한 신형의 인물들 전원이 신형의 방에 모였다.
어지간하면 따로 부르지는 않는 신형이기에, 이번 일을 신형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신력으로 알아볼 수는 없나요?”
홍화가 신형의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가능은 한데, 그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고 싶어서.”
일단 필요 신력량이 너무 많다. 네 자리 수가 들었으니.
고작해야 질문 하나 듣자고 몇 천이나 되는 신력을 넙죽 사용할 정도로 신력이 썩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인벤토리를 늘리며 사용한 양이 만만찮아 신력을 조금 아껴야 할 필요성도 있었고.
게다가 신력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정작 신력이 필요 없는 곳에서도 신력을 사용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릴 수 있다.
“일단 중요한 것은 당가라는 것이다.”
주연림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끊임없이 까닥이는 것은, 머리가 복잡할 때의 버릇이었다.
“오라버니가 마교의 목적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마교가 그 알 수 없는 재료들을 공급하길 원하는 곳이 당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렇지.”
신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연림의 말에 동조했지만, 사영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어떻게 말이지?”
주연림의 눈썹이 순간 꿈틀하고 움직였지만, 사영의 이런 점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게다가 신형이 옆에 있으니 참고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당가는 거절을 했다 들으셨지요?”
“응. 그랬지.”
“이상할 정도의 재료. 천하의 당가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따로 조사를 할 정도입니다.”
“……그게 왜?”
“그렇군!”
신형은 스무고개도 아니고,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다. 이상하기에 뒷조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러나 주연림은 사영의 말에 무언가 깨닫는 것이 있는 듯, 손바닥을 펴 이마를 쳤다.
“그걸 잊고 있었군.”
“왜, 당가가 뭐 어쨌길래.”
“당가가 독의 조종인 것은 알고 있겠지?”
“그거야 유명하니까.”
“독이란 것은 그만큼 많은 실험, 그리고 재료가 필요하지. 아마 대부분의 독초, 약초, 광물은 당가에서 이상할 것이 없었을 거다.”
“그런데?”
신형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주연림은 그런 신형이 답답해 보이는지 가슴을 탕탕 치며 말을 이었다.
“뒷조사를 할 정도면 대부분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고, 독으로 쓰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당가에서는 거절을 했다고 했지.”
“그게 뭐?”
“역시 오라버니는 단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마교라면 거절을 당해도 계속해서 재료의 공급을 요구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거라면, 남은 것은 다른 곳에서 재료를 공급받거나, 이미 모든 재료가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하다.
여전히 그게 뭐 어쨌다는 소리인가 싶다. 마교가 그 재료를 구했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 그러니까 무슨 말인데!”
“거 참! 그러니까 당보미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이미 늦은 정보라는 소리지!”
마교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늘과 내일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의말
혼자우두님 후원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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