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장 - 사천당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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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장 - 사천당가 (6)>
그런 둘의 시선을 느낀 신형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커험.”
“왜 그러는 것이지? 옛 말에 이르기를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들지만 기쁨은 함께 할수록 더 커진다 하지 않았던가. 나에게도 알려 주었으면 좋겠군.”
“신형 님,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오랜만에 보네요. 그런 모습은.”
못 볼 꼴을 보였다는 생각에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기쁜 마음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연림과 홍화는 지금까지 신형이 저지른 별별 실수를 옆에서 거의 다 지켜봤으니 거기서 하나 더 늘어나봤자 그게 그거다.
“인벤토리를 늘리다 보니까 말이지…….”
신형은 ‘임무 물품 보관함’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자신이 왜 이렇게 기뻐하고 있는 것인지 둘에게 설명해 주었다.
“호오.”
“어머! 굉장하네요.”
“확실히 이건 여러모로 유용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신형은 계속해서 인벤토리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만 두기도 그렇고….’
이미 100칸을 넘게 늘려놨으니, 이대로 확장을 계속해서 아예 213칸을 만드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번 더 확장을 반복한 결과, 220칸의 인벤토리가 만들어졌다. 사용된 신력은 총 52,500.
‘최소한 손해는 아니다.’
종합적으로 따져본 결과, 신형은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실 어마어마하게 큰 이득을 본 것이지만, 어쨌든 순식간에 5만이 넘는 신력을 썼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인벤토리 확장과 확인 등이 마무리 되자. 신형은 주연림, 홍화와 함께 군령초가 보관되어 있는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군령초를 전부 인벤토리에 넣고 돌아가려 했을 때, 하인 한 명이 다급하게 신형을 찾았다.
“여기 계셨습니까. 신룡 님, 사영 님께서 찾으십니다.”
원래는 직책인 촌장이라 불러야 하지만, 신룡 앞에서 직책을 부르는 것은 책임자가 둘이 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하인들은 항상 사영을 이름으로 지칭했다.
“사영이?”
“흠. 급한 일인가?”
“급한 일이 아니라면 직접 오라고 해.”
주연림과 홍화는 하인의 말이 불만스러운지 혀를 차며 말했지만, 하인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저 둘은 언제든 자신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려버릴 수 있는 존재이니 만큼, 아무리 일이라 해도 그들이 인상을 쓰게 되는 언행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신형이 있는 한 자신은 안전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에 자신의 소임을 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하인의 판단은 정확했다.
“예. 급한 일이니 최대한 빨리 와주시길 바란다 하였습니다.”
“가지.”
신형은 뾰루퉁해 하는 둘을 달래고 하인을 따라 사영의 집무실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사영은 신형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사영의 옆에는 처음 보는 염소수염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신형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지례를 하며 인사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신룡 님을 뵙게 되어 삼생의 영광이옵니다.”
이런 닭살 돋는 인사는 상당히 오랜만이었기에, 신형은 쓴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청성파에서도, 관청에서도 이 정도의 인사는 하지 않았다.
물론 오체투지와 무릎을 꿇은 포권지례 중 어느 것이 더 공경을 표하는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형에게 있어서는 절이 오히려 포권지례보다 더 익숙한 감이 있었으니까.
“일어나도록.”
신형의 말에 염소수염 사내는 조심스럽게 일어난 채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났다.
고개를 들지 않고 바닥을 쳐다보는 것이, 황궁 예법에 익숙한 자 같아 보였다.
“누구지?”
신형은 사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가의 전서를 가져온 자입니다.”
“응?”
신형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당가를 향할 준비가 끝나는데다, 현재 당가는 적이라고 봐야 했다.
하필 이럴 때에 당가의 전서라니.
신룡촌의 정보가 적들에게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신형은 위화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첩자에 대한 가능성은 아예 머릿속에서 떠올리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력으로 첩자가 없다는 확답을 들었기에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당가에서 어쩐 일이지?”
그러나 주연림은 정보가 새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시기가 지나치게 공교롭다는 것이 의심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였다.
“천세! 천세! 천천세! 공주 마마를 뵈옵니다.”
“인사는 되었으니 대답이나 하라. 당가에서 어쩐 일이냐 하였느니.”
“송구하오나, 당가 가주의 전서를 가져왔사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당가의 인물은 신형을 힐끔 쳐다보았다. 전서는 신형에게로 보내지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읽어 봐.”
“예.”
당가 가주의 전서를 읽어나갈 때마다, 신형은 움찔거리기 시작했고, 주연림은 조용히 주먹을 쥐었으며, 홍화는 몸 주변에서 불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꿀꺽.
신형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왜 자신이 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 속에서도 침만 삼킬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어쩐지 여기서는 입을 열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흐응-.”
“쯧.”
홍화는 마치 고양이처럼 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주연림은 연신 혀를 찼다.
전서를 가져온 당가의 사람 역시 냉랭하게 얼어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인지, 읽어나갈수록 말소리가 점점 작아졌었다.
“그게 전부인가?”
“예에.”
주연림은 황궁에서 한 때 빙궁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샀을 정도였던, 냉랭함이 느껴지는 딱딱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주연림은 저런 태도를 지난 7년 동안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었다.
“……오라버니는 어쩔 생각이지?”
“신형 님, 설마…. 아니시겠죠?”
전서의 내용은 딸을 바칠 테니, 당가가 신룡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사천당가에서 하남당가가 되고 싶다는 알 수 없는 말도 함께 적혀 있었지만, 이것은 신형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단 알았으니 물러가 쉬고 있도록. 사영. 저 사람에게 방을 내어 줘.”
“존명.”
사영은 즉시 하인들에게 일러 당가 남성을 숙소로 안내했다.
“으음.”
일단 당보미에 대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주연림이나 홍화에 대한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러했다.
정략결혼이라는 것 자체도 마음에 안 들뿐더러, 한 사람의 인생을 무슨 물건처럼 거래하는 것만 같아 강한 반감이 들었다.
“예쁘냐?”
물론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남자라면 누구나 조건반사처럼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도 하고.
예쁘다면 어떻게 하겠다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순수하게 궁금할 뿐이었지만, 주연림과 홍화가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히 순수할 리가 없었다.
“사천제일미라 합니다.”
사영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가 주연림과 홍화의 매서운 눈빛에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오라버니….”
“신형 님?”
주연림과 홍화가 조심스럽게 신형을 불렀지만, 신형은 그저 짓궂어 보이는 미소만 짓고 있었다.
‘나 참. 차라리 화를 낼 것이지.’
장난을 치면서도,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속이 답답해진다.
이 시대의 여성상은 남성의 앞을 막지 않으며, 질시와 투기를 멀리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고 있다.
차라리 화를 냈다면 신형의 마음도 이렇게 무겁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던 것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이렇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신형 자신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반증.
그 마음이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섰다는 소리다.
‘하아….’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도마뱀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신형 자신은 절대로 도마뱀을 짝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생긴 것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종이 다르지 않나.
“걱정 마. 그 당가 소공녀와 결혼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가 전체야.”
“그, 그렇군.”
“휴우.”
‘아이고. 미치겄네.’
거절한다는 신형의 한 마디에, 지옥과 천국을 오르내린다.
고작 그 몇 마디 말에 저렇게 알기 쉽게 반응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신형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분이 함께 오르내리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확실하게 정리를 해 두어야겠다.’
신형 역시 저 둘이 싫지 않다. 한 명만 정해야 하는 현대적 관점은 일단 넘어가더라도, 인간의 육체였다면 지금쯤 퀘스트 대신 연애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가가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면, 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신형은 사영에게 물었다.
주연림도 이런 일에는 많은 것을 대답할 수 있겠지만, 일단 이 마을의 실무를 맡은 것은 사영이니, 사영에게 가장 먼저 의견을 구해야 했다.
장점을 물어보지 않는 것은, 딱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가가 줄 수 있는 장점은, 신형 역시 가능하다. 몇몇 특수한 경우는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황실이겠지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당가의 예를 들어 다른 가문들까지 온존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리가 나올 겁니다.”
“그건 황궁의 문제 아닌가?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사영은 멋쩍게 웃으며 곁눈질로 주연림을 보았다.
이미 부마취급 당하는 신형이니, 황궁에도 좀 신경을 쓰는 것이 좋을 거라는 무언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징벌의 범위입니다.”
당가는 반란을 실행한 가문.
신형이 명나라와는 행보를 함께 하지 않으려 한다지만, 그들이 행한 일은 신형과 신룡촌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었다.
신형에게야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최소한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만큼의 징벌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범재판소(戰犯裁判所)라도 만들어야겠구만….”
신형의 중얼거림을 들은 사영과 주연림의 눈이 빛났다. 이런 식으로 툭툭 내뱉을 때야말로 신형이 가장 도움이 될 때다.
사실 뭔가 나서서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별 생각없이 던졌던 것들이 지금의 신룡촌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전범재판소에 대해 묻기도 전에, 춘만이 다급하게 들어와 신형에게 군례를 올리며 말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말해.”
최근 춘만은 병오의 일을 돕고 있었다.
마교의 결사대가 남긴 후유증은 작은 편이었지만, 정보 계통의 후유증은 매우 컸다.
병오 혼자서는 빠른 시간에 예전의 세력을 만들기가 힘들었기에 신형은 잠시 춘만에게 병오의 일을 돕도록 지시했다.
“그…. 당가의 소공녀가 왔습니다.”
“뭐?”
“방금 무어라 하였는가!”
“당보미라는 년이 왔다고요? 벌써?”
이럴 거면 뭐하러 전서를 보냈는가 싶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정말, 나랑 안 맞는 여자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여성이었지만, 신형은 당보미가 자신과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강하게 느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늘과 내일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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