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장 - 사천당가 (2)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제 40 장 - 사천당가 (2)>
데엥-. 데엥-. 데엥-.
신형의 목소리가 청성파의 정문을 때리는 것과 동시에, 안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지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가!”
쪽빛의 장포를 입은 청년들과 중년인들 수십 명이 문 밖으로 나서며 외쳤다.
세 번의 종소리는 문지기가 생사의 위기에 처할 때 내는 것이다.
문지기 역시 청성파의 문도. 사제의 목숨이 위험하다는데 뛰쳐나오지 않을 사형은 없었다.
“어, 어어…. 그게….”
그러나 정작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던 문지기는 어안이 벙벙한 채 사형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백호에게만 신경 쓰느라 그 옆의 커다란 도마뱀은 신경 쓰지 못했다.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곳에서 거대한 내공이 짓쳐들어왔으니, 무공이 일천한 그로서는 혼이 쑥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제. 무슨…. 헉! 백호?”
아직 백호와의 거리는 여유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의 기준이다.
경공을 사용할 수 있는 도사들도, 인간의 몇 배는 빠른 호랑이에게도 그 거리는 그다지 긴 것이 아니다.
저 멀리 강아지만하게 보이는 백호를 발견하자마자, 도사들은 검을 곧추세우고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 사제(二 師弟)들은 뒤로 물러나라.”
이대 제자들인 청년들은 아직 호랑이를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1대1 상황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였지만, 어찌되었든 그들보다는 일대 제자들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위험이 적을 것이다.
“저, 사형.”
문지기는 조심스레 중년인을 불렀다.
“사제. 뒤로 물러서게.”
문지기는 이대 제자들 중에서도 무공이 약한 축에 속했다. 당연히 뒤로 물려야 했지만, 그는 중년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조금 전 그 목소리는 백호가 낸 것이 아니고, 그 옆의 도마뱀이 낸 것입니다.”
“……하?”
평상심을 중요시하는 도사, 그 중에서도 상위의 무공으로 항상 마음을 단련하는 중년인이었지만, 사제의 말을 듣는 순간 침착함이 흔들리며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청성파의 인물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형은 현재 백호에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아저씨. 심호흡을 해 봐요. 자. 스읍-. 후우-. 어서요.”
백호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언제든지 바닥을 치고 나갈 자세가 되어 있었다.
“크르릉-.”
“아저씨. 내 말 듣고 있습니까?”
내공을 담아 소리를 쳤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백호는 이미 여러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혹은 도망쳤거나.
현재 백호의 눈에는 저들이 생사대적으로 보이고 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임에도, 강박관념이라는 놈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크르-.”
백호는 신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 역시도 머리로는 저들이 적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슴이 보내는 강한 경고와 함께, 저들의 모습 위로 오래 전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무 갑자기 바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오늘은 이쯤에서 다시 산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신형은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물었지만, 백호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은 겪어야 할 일.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백호라고 늘 인간들을 두려워하며 살고 싶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신형을 따라 온 것은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예상치 못했던 희망은 백호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준비 부족으로 인해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천천히, 조금씩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괜찮다. 아직은.”
“혹시, 신룡촌의 신룡 님이 아니신지요.”
어느새 다가온 청성파의 중년 무인이 조심스레 신형과 백호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용케 알아 보셨군요.”
“원시천존. 신룡 님을 뵈니 삼생의 영광이옵니다. 조금 전 고함을 지르신 분이라 들었기에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헌데…. 저 호랑이는….”
“아, 백호입니다. 저와 같은 신수지요.”
“아아!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장문인에게 기별을 넣었으니 곧 나올 겁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럴 필요 까지는….”
“이미 사제를 보냈으니 곧 나올 것입니다.”
“별 수 없군요.”
대화를 나누는 신형과 중년인을 보며 백호는 신기한 듯 두 눈을 깜빡거렸다. 물론 여전히 긴장한 상태였지만.
“원시천존. 신룡 님을 뵙사옵니다.”
경공을 사용해 날아온 청성파의 장문인은 도착하자마자 여러 손동작을 하며 신형에게 인사했다. 화산파의 손동작과는 다른 것이, 문파별로 제각각 의미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룡입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청성파의 장문인 송주겸이라 합니다. 청성파의 오신 것을 환영하옵니다. 헌데, 저 호랑이는 신룡 님께서 데리고 다니시는 겁니까?”
“백호입니다. 저와 같은 신수입니다.”
“허억! 이런 무례를! 송구합니다. 백호 님.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허리를 굽힌 송주겸의 정중한 사과에 백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두 눈만 꿈뻑대고 있었다.
“백호는 산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모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시군요. 청성파에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사천에 올 일이 있어, 신룡촌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혹여 폐가 되지 않는다면 하루 머물다 가도 될런지요.”
“이런 경사가! 얼마든지 머무셔도 좋습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안으로 드시지요.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접 안내할 생각인지 송주겸은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며 신형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곧장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새 수많은 도사들이 몰려나와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신룡이 왔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청성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형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허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다시 안내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백호는 여전히 온 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
“정말 괜찮으신 게 맞습니까?”
“괜찮다.”
“안 괜찮아 보입니다.”
지금 백호의 모습은 마치 살얼음을 애써 웃으며 걷는 모습 같았다.
“장문인이 모시고 오라…. 히익!”
송주겸은 급히 숙소와 식사, 그리고 오늘 저녁에 할 행사들을 급히 준비해야 했기에 삼대 제자 한 명을 신형에게 보냈다.
신룡을 직접 안내한다는 것에 들뜬 삼대 제자의 나이는 고작해야 열하나.
아이는 백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잔뜩 긴장한 백호의 몸은 근육들이 꿈틀대고 있었고, 눈에서는 시퍼런 안광이 잡아먹을 듯 빛나고 있었다.
신수라는 것을 머리로 알아도, 인간인 이상 본능적으로 겁에 질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도 어린 아이이니 더더욱.
“흐아-!”
백호는 아이의 비명 소리에 덩달아 놀랐다.
“크허어어엉!”
요상한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뛴 백호는, 무의식중에 도력을 일으켰다.
“헉?”
“어어어?”
그러자 도사들의 무기가 하나 둘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설 속의 이기어검이 이러할까.
백이 넘는 무기가 허공에서 넘실거리며 춤을 추는 것은 일견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거력은 무엇이라도 찢어발길 듯 날카로웠다.
“이건! 아저씨?”
“크아앙!”
이윽고 공중에 떠오른 검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제정신이 돌아왔…, 아냐! 씨팔!’
검은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검 날이 사람들에게로 향한 채.
“신력사용. 저 무기 방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검들이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속도는 눈 깜빡할 사이였고, 신형은 반사적으로 신력을 사용했다. 본능적이었지만, 최고의 판단이었다.
퉁-. 퉁-.
사람들로 향하던 검들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에 튕긴 듯 낮은 소리를 내며 다시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아저씨! 갑자기 왜 그래요! 정신 차려요!”
신형은 백호를 향해 소리쳤지만, 백호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검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신력사용! 백호 능력 무력화!”
신형이 다시 한 번 신력을 사용하자, 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쨍그랑.
어떤 검은 반으로 쪼개지며 요란하게 떨어지고, 어떤 검들은 땅에 그대로 푸욱 박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허공에 떠 있는 검을 보고 물러났기에 다행이지, 하마터면 큰 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아저씨! 백호 아저씨!”
“크릉!”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백호의 안 좋은 기억을 건드린 것이 틀림없다.
신형은 즉시 백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백호 역시 신형이 돌진해 올 것을 알았는지, 신형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허억!”
진로를 예측하고 휘두른 앞발에 고스란히 몸을 가져다 댄 신형은, 나가떨어지며 몇 바퀴를 구르고 겨우 멈췄다.
“크. 미친.”
신형은 싸움의 경험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완벽하게 맞은 경우는 없었다.
여태까지는 막대한 내공을 이용해 싸움의 우위를 점했었지만, 이처럼 내공의 우위를 점칠 수 없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제정신으로 돌리는 방법이….’
시선을 백호에게로 고정한 채 머리를 굴리던 신형은, 결국 한 가지 방법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모른다.
현재 신력은 백호의 도력을 막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상황. 신력이 고갈되기 전에 백호를 기절시키고, 신력 사용을 멈춰야 한다.
‘갑자기 미쳐가지고는! 내 이래서 산에 있으라고 했잖아!’
백호에게 직접 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내뱉으며, 신형은 다시 한 번 돌진했다.
이번에도 역시 백호의 팔이 빠르게 들렸다 내려갔다.
‘지금!’
푸숫, 숫, 수숫, 뜩. 뜨득.
“쿠어어어어!”
신형은 목도리 도마뱀이다. 그리고 목도리의 뼈는 암기처럼 발사가 된다.
자신의 행동을 읽고 앞발을 휘두른다면, 자신 역시 그 앞발의 위치를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신형의 예상은 적중했다.
여덟 개의 뼈바늘이 백호의 손에 파고들었고, 백호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지금!’
그 빈 틈을 이용해, 신형은 온 힘을 다해 돌진했다.
경공에 꼬리의 반동까지 이용한, 일격에 모든 내공을 실었다.
백호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형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빠각. 빠득.
그렇게 튀어나간 신형의 머리가 백호의 턱에 부딪히며 소름 돋는 소리를 냈다.
쿵.
‘으으. 살았나?’
백호가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신형은 사상자가 있는지부터 살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늘과 내일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