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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275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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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5)

DUMMY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난 네가 좋았어. 로운.”


마치 남의 이야기를 전해주듯이 차분하게 말하며 차를 마시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요.


“난... 남잔데?”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성별은 중요하지 않아.”

“그렇지만... 너 남자 좋아해?”

“아니?”


옆에서 누나가 숨이 넘어가라 웃었어요. 두드리고 있는 탁상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죠.


“그럼...?”

“여자앤줄 알았어.”


어쩜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던 걸까요...


“아직도 좋아한다며?”

“나는 로아도 좋아. 로운도 좋고.”

“아...”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첸은 저만 보면 그런 소리를 해요.


“어젯밤에 보름달이 떴어. 네 생각이 나더라고. 그런데 그건 잘못된 말이야. 네가 그 어떤 달보다 고고하고 아름다우니까.”


“그대의 오늘이 그대의 일생 중에서 가장 찬란해.”


뭐 이런 소리들을 해요. 너무 많아서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마 반쯤은 놀리는 마음이 큰 것 같은데... 저는 그런 거 정말... 못 견디는 성격이니까요.


+++


로운은 괜한 말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야기 하다 보니 옛 이야기에 심취해서 자신도 모르게 묻지도 않은 것 까지 이야기 하고 말았다.


그게 흥미로웠던 건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은 차도 마시지 않고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네 사람은.


“석 씨는 언제 왔어요?”

“장례식장 얘기할 때부터.”

“어후... 첸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네...”

“첸씨가 알면 이야기를 한 로운 씨가 아니라 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겠지만 말이야.”


지혁의 말에 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장례식장에서 했다는 얘기는 아직도 몰라요?”


승주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 비해서 얼굴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 그거 나중에 어쩌다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누나도 들었대서 물어봤는데.”


로운은 입안에서 단어를 굴리듯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죽음이 내 발목을 잡고 이 세상에서 끌어내더라도 너만큼은 지켜낼게. 였다고.”

“그게 무슨 소리에요?”

“... 인애단의 보스가 자신이 가장 사랑한 여자한테 했다는 고백이었다고...”


로운의 말에 승주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을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 가라앉아 있던 그늘이 한 순간에 개며 귀까지 빨개졌다.


“너희 누나 왜 저러니.”

“누나가 로맨스 소설을 좋아해요.”

“로맨스... 로맨스. 그렇구나. 로맨스.”


승우의 대답에 지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첸이 저를 잘 챙겨주기도 하고, 저도 좋은 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오해가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니까 부담스러워요.”


수줍게 말하는 로운의 옆에서 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재미있게 들은 것인지 흡족한 얼굴이었다.


물론 그 차이가 입꼬리가 아주 살짝 조금 올라갔을 뿐이라서 알아채는 이는 없었다.


“그나저나 지혁 씨는 회사까지 무슨 일이에요? 어제도 왔잖아요.”

“아. 별건 아니고.”


지혁이 옆에 앉은 승주의 눈치를 살폈다. 승주와 승우가 나란히 앉아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다만 승주는 단호하게, 승우는 조심스럽게 저었다.


“그래도 도움을 받는 게 좋지 않아?”

“... 그렇긴 한데... 폐가 될 테니까요.”


일을 진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있지만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더더욱.


“무슨 일인데 그래요?”


로운이 궁금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어차피 로운도 알고 있잖아.”


쌍둥이의 가정사에 대해 자신에게 이야기 해준 사람이 로운이었다. 당시의 로운의 태도로 봐서는 두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해줄 기세였다.


“혹시 집을 구해줄 수 있을까?”

“집이요?”


표정은 한껏 놀란 표정을 짓고 있지만 목소리는 어느 때와 다름없는 것을 봐서는 로운 또한 대충 용건을 예상하는 듯싶었다.


“음...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말이죠.”

“역시!”


이변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에서는 임시거처라는 곳을 지정해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관리했다.


언제 어디서라도 마법진이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자가를 포기하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예전보다 집을 사는 과정이 복잡해졌다.


마법진이 생겨도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집을 사거나, 건물을 임대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토지에 대한 관리가 관리소 관할로 넘어갔다.


즉 단순히 돈만 많다고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돈과 인맥, 개인이 가진 사회적 위치까지 모두 포함해야 했다. 관리소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살도록 두었다.


“그런데...”


하지만 로운은 말끝을 이었다. 또다시 허공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대표님. 로운 대표님은 왜 저러시는 거예요? 아까도 그러시던데...”


그런 모습이 낯설었던 승주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지혁에게 귓속말로 물어왔다.


“생각하는 거야.”


그런 그녀에게 똑같이 귓속말로 답해주었다. 대답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승주였다.


“뭐. 곧 알게 되실 일이니까 말씀드릴게요.”


생각이 끝난 듯 한 로운이 세 사람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석도 한 번 바라봤다.


“석 씨도 들어주세요. 그리고 어디에도 말씀하시진 마세요.”

“무슨 일이냐.”

“그...”


로운은 아직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금방 다시 열렸다.


“지금 관리소에서는 셸터를 준비 중이에요.”

“셸터요?”

“방공호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죠?”

“네.”

“아니... 셸터를 왜...?”


지상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지만 지하로 들어갈 정도는 아니지 않나?


“혹시 전쟁을 준비중인건가요?”

“아뇨. 아닙니다. 셸터의 개발은 몇 년 전부터 진행되었어요.”

“예?”

“빠르면 이번 주, 아니면 다음 주쯤에 관리소는 셀터에 대해 발표할 거예요.”

“잠깐. 잠깐만요. 몇 년 전부터요?”

“네.”


관리소는 이변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들어졌다. 고작 몇 년 전에 일어난 이변인데 셸터가 계획되고 개발된지 몇 년이라면...


“아니... 탑이 생긴 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맞아요. 설립 이후 지금까지 관리소는 현재 전 국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지하 대피소를 만들고 있었어요.”


말을 끝낸 로운은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전 국민을 수용할 정도의 크기를 몇 년 만에 만들 수 있는 거냐?”


옆에서 석 또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로운의 작은 끄덕임이었다.


“네. 관리소장은 꽤나 엄청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전 국민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었으니까요.”

“백소장 말이냐.”


로운과 석이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있는 동안 지혁은 어딘가 방금 대화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네. 관리소를 만들자고 했던 것도 그 사람이고, 관리소장이 되기 전에는 꽤나 큰 사업을 하던 사업가였죠.”

“꽤나 자세히 알고 있군.”

“그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니까요.”


유명하다며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는 로운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쌍둥이들은 너무 어렸고, 지혁은 본인 살길도 바빴었다.


석 또한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정치나 사회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 관리소장은 왜 셸터를 만든 거예요?”

“글쎄요. 이야기를 안 해주시네요. 다음에 소장님을 만나게 되면 한 번 여쭤봐 주세요. 지혁 씨에게라면 말해줄지도 모르죠.”

“제가 물어본다고 달라질까요.”


능력자 등록을 하지 않은 탓에 서류상으로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로운도 모르는 것을 자신에게 알려줄까. 그런 의문이 드는 지혁이었지만 로운의 표정을 보니 차마 말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씁쓸함과 허망함, 비웃음이 섞인 묘한 얼굴이었다.


“아무튼. 집을 구해드리는 것보다 아예 다른 셸터를 쓸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고마워요. 로운씨.”

“별 말씀을요.”


참 좋은 사람이다. 언제나 자신의 정의를 위해 노력했고,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지혁은 방금 전에 느꼈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깨달았다. 관리소는 현재 전 국민을 수용할 수 있는 셸터를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건국 이래로 최악의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이 상황을. 대비해서.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세요?”

“음. 아마...”


방금 든 의문에 대해서 현재의 상황과 여러 가능성에 대해 정리하던 지혁의 생각을 끊은 것은 로운의 질문이었다.


빠르게 흐르던 생각이 끊긴 반동으로 지혁은 다음 말을 생각할 수 없어 아이들을 바라봤다. 오늘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아이들에게 대신 답을 해달라는 눈빛이었다.


“음... 동물원?”

“동물원?”

“네. 저희는 동물원에 가본 적이 없거든요. 놀이동산에 가보고 싶긴 하지만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요.”

“아직 11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럼 늦은 거죠! 놀이동산은 오픈 전부터 줄 서서 들어가야 한다고요.”


조금 흥분한 듯 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모습이 또래 아이 같은 모습이어서 오히려 좋은 어른들이었다.


“하긴 요즘은 놀이동산도 정해진 인원만 받아서 들어간대요. 오늘 가기는 어렵겠네요.”

“아 그래요?”

“네. 언제 마법진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놀이동산에서 수용 가능한 인원만 받아서 운영하고 있대요.”

“그래가지고 직원들 월급은 챙겨줄 수 있으려나.”

“네. 그래서 폐업하는 곳도 많아요. 아마도 5년. 길어야 5년이고. 그전에 대부분의 놀이동산들은 모두 문을 닫을 거예요.”

“뭔가 슬픈 이야기를 무척 무덤덤하게 말씀하시네요.”

“사실이니까요.”


덤덤하게 말했지만 쓰게 웃는 모습이 그 조차도 마음이 편치는 않은 듯 했다.


“저는 오늘 일정이 있어서 같이는 못 가겠지만 동물원까지는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


“그럼 다들 재밌게 놀다 와요.”


로운은 그 말만을 남기고 차를 타고는 사라졌다.


“마법진이 계속된다면... 이동수단과 관련된 사업이 번창하려나.”

“네?”

“아무것도 아니야. 가볼까? 배는 안 고파?”

“네!”


배가 안 고프다기보다는 동물원이 갈 생각에 신나서 배고픔은 안중인 모습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간식이라도 틈틈이 사서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지혁이었다.


‘그나저나...’


첫 동물원이라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다. 아침에 나올 때만 하더라도 화창하지는 않았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낼 것 같은 짙은 먹구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날씨가 이래도 동물원 가는 건 신나는 모양이네.’


“대표님!!”


들뜬 것 같은 표정의 승우가 매표소 앞에 서서 지혁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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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3) 23.09.18 39 0 12쪽
92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2) 23.09.15 45 0 11쪽
91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1) 23.09.13 45 0 11쪽
90 초련(5) 23.09.11 4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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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초련(2) 23.09.04 60 0 11쪽
86 초련(1) 23.09.01 53 0 12쪽
85 무임승차 프리 티켓(7) 23.08.31 5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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