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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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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281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08.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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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문하시겠습니까(3)

DUMMY

“저기요!”


미혜는 말릴 틈도 없이 고서우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녀석은 만화 속 한 장면처럼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붉은 꽃잎을 날려주었더라면 순정만화의 한 장면 같지 않았을까.


‘예쁘고 참한 남학생에게 당돌하게 덤비는 당찬 여학생’ 이라는 느낌으로. 물론 현실은 남학생인지도 여학생인지도 모르고 참함과는 거리가 먼 상대에 당돌하게 덤빈다기에는 너무나 강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말이다.


“어? 당신은.”


고서우는 잠시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기억났다는 듯이 주먹을 쥔 오른손을 활짝 핀 왼손에 내리 쳤다.


“어제 봤던 분이군요! 무슨 일이시죠?”

“...”


되묻는 고서우를 노려보며 미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싫다고는 했지만 싫다고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싫으니 탑에 오르지도 말고, 얼쩡거리지도 말라고 할 건가.


“...?”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혜의 표정을 살피던 고서우의 시선이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나를 향했다.


“아. 선배!”


활짝 웃으며 미혜를 살짝 밀치고 지나온 녀석이 가벼운 걸음으로 내 앞에 섰다.


“잘 지냈어요? 요즘 통 못 봤네요.”

“그런...가.”


나는 눈을 굴리며 꽤나 살벌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고 있는 미혜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뗐는데. 아니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안 했지만 그런 척 했는데 이제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다니.


그나저나 이 녀석 나한테 화났던 거 아니었나?


“저번에는 미안했어요.”

“네? 뭐가요?”

“음...”


나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볼을 긁적이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자 씨익 웃으며 까치발을 서서 얼굴을 들이미는 녀석. 얼굴이 가까워지자 묘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금방이라도 달콤함이 느껴질 것 같은 짙은 단내를 지닌 향이었다.


“저도 죄송했어요.”

“아니...나도 뭐... 잘 한 건 없고...”


우리는 서로 죄송하다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한 여자.


바로 우리의 미혜씨였다.


“뭐예요? 이 분위기?”


의미심장 표정을 지으며 나와 고서우를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야?”


드디어 미친 듯하다. 미혜의 눈썹이 얄밉게 올라갔다.


“에이. 아니에요. 저희는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에요. 제가 동아리로 오라고 설득하고 있어요.”


그런 설득 받은 적 없다.


“아. 왠지 학교 이름 들었을 때 들은 것 같더라니 아저씨랑 같은 학교였구나.”

“아저씨요?”


이번에는 고서우의 얼굴에 짙은 혐오감이 깔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왜 그런 표정으로 바라봐요?”

“미성년자랑도 아는 사이에요?”

“예?”


이 사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발끈하는 이가 있었다.


“미성년자라뇨! 저도 20살이거든요!”

“그거나. 그거나. 선배님 그렇게 안 봤는데...”


뭐. 뭐. 왜 말을 하다 마는데. 할 말이 있으면 확실하고 명확하게 끝까지 다 하라고.


“하. 무슨 소리에요. 아저씨는 정말 아.저.씨 일 뿐이라고.”


미혜는 한 글자 씩. 혹시라도 생길 오해에 대비하기라도 하듯이 또박또박 말했다. 그만. 그만해 이것들아. 슬...프니까. 그만하라고. 내가 연애도 못하고 막... 나이만 많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같잖아...


“그만해... 너희 계속 그럴 거면 둘 다 두고 갈 거야.”

“앗. 저는 가던 길이 있지만 여기서 아는 얼굴을 만나서 반가우니 따라갈래요.”

“두고 갈 거라니까 무슨 소리에요.”

“선배님이야 말로 무슨 소리에요. 제가 가는 건데 선배님이 무슨 권한으로 막겠어요.”


싱긋 웃어 보이며 맞는 말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다.


“아무튼... 저는 일 할 거니까. 정말 방해하지 말아요.”

“일이요?”

“네... 이전에 하던 시장 조사를 마저 하려고요.”

“시장 조사...?”


내 말을 따라하며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기억났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저번에 하던 거! 그거 아직 안 끝났어요? 선배님도 해야 하는 일 미루는 타입인가 보다. 그러면 나중에 너무 힘들어요. 오늘은 꼭 끝내고 가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이 녀석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가는 내 기운만 빨리고 지는 기분만 들 게 안 봐도 뻔했기 때문에 미소 짓듯이 작게 험한 말을 하고는 뒤돌았다.


이전에 운동장이었다고 하지만 탑이 생기면서 주변에 무너진 건물의 파편이나 지각 변동이라도 일어난 건지 튀어나와 있는 보도블럭 등으로 인해 작더라도 건물을 세우는 일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고작해야 공중화장실이나 몇 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 좋은 수가 없을까.’


처음에는 탑 주변으로 장사를 하겠지만 이후에는 다른 곳으로도 영역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뭔가 생각이 날 것 같은데 생각이 집중되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들 때문에.


“잠깐만... 조용히 해봐.”


나는 옆에서 투닥거리며 걷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하고는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이 많은 탓에 두 사람이 조용히 하는 것으로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왜 그래요?”


미혜가 무슨 일이냐는 듯이 물어왔다. 미혜의 반응에 옆에 서 있던 고서우의 손이 칼 손잡이를 향했다. 금방이라도 칼을 꺼내 휘두르기라도 할 기세였다. 어딘가 신나 보이기도 하고.


“아직 잘 모르겠어. 잠시만...”


정확히 들리는 게 아니라서 별 일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이 집중되지 않을 정도로 거슬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계속해서 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는 귓가에 손을 모아서 주변의 소리를 들어보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탑에서 부상을 입은 건지 고통에 찬 신음소리, 급하게 뛰어다니는 발걸음 소리, 함께 탑에 오를 파티를 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 섞여 들고 있는 짐승 울음소리 그리고 종이가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 벽이 무너지는 소리.


눈을 뜨고 옆을 보니 미혜와 고서우도 나를 따라서 귓가에 손을 모으고 소리를 듣고 있었다.


“뭐하냐.”

“그냥요. 아저씨가 뭘 듣고 있는 건가 궁금해서요.”

“저도요. 선배님. 뭔가 들려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손을 푼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맞았다는 듯이 눈빛을 교환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아저씨가 들리는 거면 확실히 뭔가 있는 거겠죠?”


미혜가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는 고서우.


“제가 귀가 좀 좋아요.”

“네?”


고서우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맞네! 저번에 방송하던 발소리도 듣고 알았던 거구나!”

“...”

“왜요. 왜 그렇게 봐요.”

“아니에요.”


이 녀석도 어지간히 눈치가 빠르다. 아까 전에 미혜와 고서우의 성격이 상반되어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조금 정정할 필요가 있겠다. 어쩌면 둘은 정말 잘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요?”

“짐승... 소리? 동물 소린가?”

“주변에 산책 나온 개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은 거 아니에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렇게 불안하면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봐요.”


고서우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쉽게 말해서 말했다지 재촉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 녀석은 뭐가 항상 이렇게 신이 나 있는 걸까.


“왜 날 봐요. 저 오늘 시간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미혜 녀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면 먼저 돌아갈래? 나 혼자 알아봐도 되니까.”

“아니에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아저씨는 내가 지켜드려야죠.”

“휘유~ 선배님 인기 많으시네요.”


미혜 녀석.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건가. 하긴 쉽게 가실만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이쪽이야.”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앞장서서 걸었다.


+++


“이쪽이 맞아요?”


탄천을 건너 삼성역 주변까지 오자 의심에 찬 목소리로 고서우가 물었다.


“응. 확실해.”


소리는 점점 커졌고 내 불안함은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동물의 소리가 아니다. 짖거나 울지는 않았지만 격한 숨소리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흥분한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왔다고 해줬으면 좋겠지만 숨소리는 처음보다 더 많아졌다.


“이 주변에 마법진이 생겼다는 뉴스 뜬 거 있어?”

“아뇨. 없어요.”


오는 길에 뉴스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마법진이 생긴다면 이런 소리가 나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 물론 마법진이 생기기도 전에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마법진도 없이... 나타나는 몬스터가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마법진 밖도 안전하지 않다. 임시거처 또한...


파앗-


“읏...”


무언가 끊어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와 같이 들리던 모든 잡음들이 사라졌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이쪽이야.”


나는 높은 고층 건물 옆으로 뛰어갔다. 잡음들이 사라진 덕분에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뚜렷해졌다.


“이쪽에서...”


건물 사이의 골목길을 지나 건물 뒤편으로 오자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찾던 것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눈앞에 나타났다. 노란 실빛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수십 마리에 달하는 사람만한 멧돼지가 철제 갑옷을 입고 대열을 맞춰 서 있었다.


“헐...”

“와!”


나를 뒤따라온 두 사람도 눈앞에 나타난 관경에 입을 가로막았다. 멧돼지들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지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들을 막고 있는 건 아마도 저 노란 실빛들이겠지. 실빛이 사라지는 순간 녀석들은 뛰쳐나갈 것이다. 인간의 냄새를 쫓아. 사람들이 많은...


문득 잠실 운동장이 떠올랐다. 주말을 맞이해서 모여든 인파. 몬스터에게 그만큼 황홀한 곳이 또 있을까.


“아저씨! 저것 봐요!”


미혜의 소리와 함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검은색의 마법진. 저게 왜 저기에...


“다들 준비해. 곧 뛰쳐나올 거야.”


검은 색 마법진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노란 실빛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셋... 둘...”


옆에서 건틀렛을 끼는 소리와 칼을 꺼내 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하나! 온다!”


마치 출발 신호음을 들은 주자마냥 멧돼지들이 우리를 향해 뛰어 왔다. 그리고 나는 뒤로 빠져 주변을 둘러봤다.


“아저씨?”

“나... 무기를 두고 왔어.”


단순히 시장 조사를 하러 나온 거라서 로운이 준 검은 챙겨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혜처럼 맨 손으로 싸울 수도 없는 노릇. 무언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깨끗한 거리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미혜의 주먹이 멧돼지의 투구에 부딪치며 캉-하는 경쾌한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뭐라도... 뭐라도...


“저거면...”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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