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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296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09.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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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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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2)

DUMMY

“당신에게 우리는 모르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냥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그저 평범한 능력자거든요. 능력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특별하지 않은 능력을 가진 능력자는 없으니까요.”


지혁은 보이지 않는 끈적거리는 촉수가 자신을 쥐어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자신을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탐색하기 위해서 피부에 들러붙었다.


“그만해.”


지혁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화란의 손을 낚아 챈 남자 덕분에 숨을 내쉬면서 그간 산소를 공급받지 못했던 폐가 고통스럽게 새로운 숨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혹시 모르잖아.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


화란의 말에 첸의 시선이 조용히 지혁을 향했다.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첸의 표정이 이전에는 본 적 없이 싸늘했다.


“나랑 일할 땐. 돌발 행동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어머. 무서워.”


장난스럽게 대답하고 있는 화란이었지만 그 안에 흐르는 긴장감이 지혁의 피부를 타고 흘렀다. 당장이라도 쌍둥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쎄쎄쎄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성인 남녀 셋이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분위기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왜. 로운의 동료라서 그래?”


침묵을 깬 화란의 마지막 말에 첸은 한숨을 쉬고는 중국어를 내뱉었다.


지혁은 그것이 첸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자리를 피하라는 신호.


“그. 저는 피곤해서 이만. 주무세요!”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 지혁은 불이 켜져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방문 너머에서 낮게 가라앉은 중국어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들었던 중국어 중에서 가장 차분하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그 언어가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안 지혁이었다.


+++


짹짹-


만화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에 깬 승주는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어서 아침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침부터 맞을 지도 몰랐다.


“뭔가 없나...”


어쩐지 오늘 냉장고는 조금 크게 느껴졌다.


“어라...”


순간 승주는 생각했다.


‘우리 방에 냉장고가 있던가?’


그녀 나이 19세. 기억이 있기 무렵부터 집안일을 해왔고, 매일 아침 일어나 가족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을 십년 넘게 해오던 버릇은 거처에서 살게 된 이후에도 튀어나오고는 했다.


“하...”


승주는 그런 스스로가 싫었지만 잠결에 몸에 밴 습관은 어쩔 수 없었다.


냉장고에 기대 주저앉은 승주는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항상 일어나면 아버지의 자는 뒷모습이 보였던 좁은 거처가 아닌 살면서 처음 본 고급 오피스텔의 내부는 텔레비전에서나 봤을 법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이런 곳에서 잔건가. 승주는 어제 있었던 일들이 믿기지 않았고.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그리고 동생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밤을 보냈다는 것이 그저 낯설게만 느껴졌다.


거실에 있는 큰 창으로 이제 막 해가 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포근한 색감에 승주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일어났어요? 거기서 뭐해요.”


얼마나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던가. 뜨고 있던 태양은 완전히 떠서 아침을 밝히고 있었고, 바닥에 앉아 있었던 탓에 발도 엉덩이도 차게 식어 있었다.


그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승주는 알아채지 못했다.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의 목소리에 놀란 승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려고 하는 첸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는 물을 꺼내 마셨다. 곱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만 봤던 승주에게 조금은 부스스하지만 아침 햇살에 비쳐 부드럽게 반짝이는 긴 머리카락은 아름답게만 보였다.


“... ?”


그래서 그랬을까. 자신도 모르게 첸의 머리카락 끝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물을 마시다 말고 머리카락이 당겨지는 감각에 아이를 내려다본 첸은 그저 모른 척 남은 물을 마셨다.


“그... 아침을 차려드리려고 했는데.”


머리카락을 만지며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아직도 잠이 덜 깬 듯이 몽롱했다. 아이가 잠결에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판단한 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밥은 괜찮아요.”


아마 아이에게는 모처럼 평화로운 아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즐겨도 되지 않을까. 첸은 승주를 안아 들고 승우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가 침대에 내려 주었다.


방이 많은데도 승주는 승우와 함께 잤다. 그렇다면 일어났을 때 옆에 승우가 없으면 불안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내려두고 혹시라도 소리가 날까 조용히 방문을 닫은 첸 앞에 지혁이 서 있었다.


“어... 안녕히 주무셨어요?”

“...”


어제 자신에게 납치를 했냐고 물었던 남자였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이 자는 방에서 나오는 자신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게다가 뭔가를 하다가 들킨 것 같은 표정의 저 얼굴을 봐라. 무언가 단단히 오해를 산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부엌바닥에서 자고 있길래...”

“아... 네...”


여전히 못 믿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조금의 경계심도 담겨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면 그건 그의 착각일까.


그가 혹여라도 로운에게 자신에 대해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말없이 고민하고 있던 첸의 머릿속과는 달리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아. 네.”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 첸이었지만 무심코 대답을 했다.


아침 7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있는 시간. 첸과 지혁은 김이 나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첸은 생각했다. 자신이 왜 이 이른 시간에 잘 모르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서 평소라면 마시지도 않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걸까.


“저 나름 커피 잘 내려요. 마셔보세요.”


물론 커피의 맛은 원두가 좌지우지 하지만 나름 커피 능력자가 아니던가. 게다가 이 집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이 고급 제품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생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이 집이 더 기이하게 느껴졌다. 집이라기보다는 케이스, 사람을 그저 잠시 담아두는 케이스처럼 느껴졌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첸은 조심스럽게 잔을 들었다. 은은한 커피향이 먼저 느껴졌고, 이후 따뜻한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오며 코로 맡았던 냄새와 일치했다.


“향이 좋네요.”

“그렇죠?”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 있는 원두는 지혁도 거의 실물로 본 적이 없는 아주 비싼 고급 원두였다. 커피를 내리면서도 혹시라도 원두의 맛을 해치진 않을까 하며 걱정스럽게 내렸다.


첸은 상대가 무언가 물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혁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은은한 커피 향만 서늘한 아침 공기에 퍼져 집안을 채웠다.


“뭐야... 커피 마셔? 지난밤은 편안하셨나요?”


눈을 비비며 나온 화란이 첸에게 말을 걸다가 지혁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이제 막 깨어났지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미모는 변하지 않은 화란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집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외모가 합쳐져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그건 지혁만의 생각이었다. 그 모습을 수 없이 본 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뭐 덕분에... 편안했습니다.”

“후후. 어쩐지 편안하게 못 주무셨단 뜻 같네요.”


입을 가리며 작게 웃으며 화란은 지혁의 옆자리 의자를 꺼내 앉았다.


“이 커피 내가 좀 마신다?”

“...”


자연스럽게 첸의 앞에 있던 커피를 가져다가 마시는 모습이 하루 이틀 뺏어 먹은 게 아닌 듯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지에 대해서 입이 근질근질한 지혁이었지만 본인이 남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카페인 중독이었던 지혁은 능력이 생긴 이후에는 커피를 만드는 능력이라는 명분하에 절제 없이 커피를 마시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햐. 여기 있던 원두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단 말이야? 항상 먼지만 쌓이게 둬서 몰랐네요.”


환하게 웃는 그녀였지만 지혁은 할 말이 정말 많았다. 원두 아깝게 먼지 받침대로 쓰고 있질 않나. 밤새 중국어로 싸워놓고는 이제 와서는 잘 잤냐고 묻질 않나.


하지만 지혁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전에 첸이 싸우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첸과 같은 조직의 사람이라면 이 여자 또한 강하겠지.


“으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승주와 승우가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여유로워 보이는 두 사람과 다르게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던 지혁은 두 사람의 등장이 반가웠다.


그런 지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오던 승우는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흠칫하며 승주의 뒤로 숨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을 생각하면 흔하지 않은 관경이었다.


“어릴 땐 아침을 잘 챙겨먹어야 하는데. 어쩌지. 여기에는 마땅히 먹을 게 없는데.”


화란이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마시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밥은 나가서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이 시간에 여는 가게가 있어요?”

“없나?”


정말 놀랐다는 듯이 매력적이게 내려온 눈꼬리를 더욱 내리며 크게 눈을 뜬 화란이 첸을 바라봤다.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첸이 중국어로 답했다.


“그래? 하긴... 그 동네는 밤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알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지혁이었다.


“그러면 장을 봐서!”

“지금 시간이면 마트도 안 열걸.”


조금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내뱉는 첸의 말에 화란의 시선이 천천히 그를 향했다. 노골적으로 삐져나온 입술과 째려보는 시선이 자신이 삐지기 전이라는 것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전에 봤던 아름다운 모습과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떠올랐다. 그때에 비하니 지금의 모습이 훨씬 친숙했다.


“그래도 냉장고에 뭔가는 있겠죠.”

“있을까요? 냉장고를 열어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이런 좋은 집에, 좋은 냉장고를 쓰면서도 밥을 해 먹지 않다니. 아니 이 사람들 뭔가를 먹고 다니기는 하는 걸까?


타지에 와서 밥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것 같은 두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지는 지혁이었다.


“계란 같은 거라도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별 기대 없이 냉장고를 연 지혁은 어이가 없었다. 생활의 흔적이 없는 집에서 이렇게 신선한 식재료들을 썩히고 있는 것은 환경 파괴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냉장고를 확인한 뒤, 부엌을 조금 뒤지자 뜯지도 않은 쌀 포대가 나왔다.


‘정말 뭐하는 사람들이야.’


지혁이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두 사람을 바라봤지만 첸과 화란은 그새 새로운 차를 내려 마시고 있었다.


“그럼 제가 뭐라도 만들어 드릴게요. 재워주신 답례라고 하기에는 뭐 하지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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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1) 23.09.13 45 0 11쪽
90 초련(5) 23.09.11 4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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