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320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09.18 09:00
조회
39
추천
0
글자
12쪽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3)

DUMMY

서울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의 18층. 지어진 이후 처음으로 이 집에서 음식 냄새라는 것이 풍겼다.


“오...”


첸의 탄식 같은 작은 반응이 웃고 있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았고.


“이게 한국의 아침밥 인가요?”


왠지 한국에 대해서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화란의 반응은 의외였다.


“잘 먹겠습니다!”


무엇보다 잘 먹겠다고 말해놓고는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 것 같은 모습으로 멈춰 있는 이 쌍둥이를 보자니 지혁은 가슴 한편이 텁텁하게 미여왔다.


“어서 먹어.”

“그... 어른들이 먼저 드셔야.”


승주의 대답에 첸과 화란은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지혁을 바라봤다.


“먼저 드시면 됩니다.”

“잘 먹겠습니다~”

“...”


첸과 화란이 첫입을 먹자 그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쌍둥이들도 젓가락을 들었다. 조금은 메뉴선정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필이면 오늘, 어린 시절 먹었던 가장 맛있었던 밥상이 떠올랐다. 따라할 생각은 없었지만 차리고 보니 그때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계란을 입혀 구운 고급 소시지, 도톰하게 말린 계란말이, 쌍둥이들이 좋아할까싶어 만든 소시지 야채 볶음과 순두부찌개.


순두부찌개가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이 집에는 김치가 없었다. 아마 물건을 사둔 사람도 이집에 사는 사람들이 재료들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를 위해 냉장고를 열 때마다 지혁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진짜 맛있어요!”


얼굴이 상기된 승우가 외치듯이 말했다. 옆에서 승주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맛있으면 많이 먹어.”


지혁은 속에서 울렁거리는 감각과 함께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자신에게 꿈이 있다고 한다면 이런 것이리라.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자신이 한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


막연하게 앞으로 어떻게 할까 생각했던 지혁은 문득 그려진 미래의 모습이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아련하게 느껴졌다.


‘지혁아. 맛있어?’

‘오늘은 백점을 맞아왔네. 선생님도 칭찬하시더라.’

‘많이 먹어. 오늘은 지혁이를 위한 날이야.’


그 밥상이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밥상인걸 봐서는 자신은 이후 백점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백점을 받아도 상을 줄 정도로 어머니의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데 대표님은 왜 안 드세요?”


밥그릇을 뚫을 기세로 먹고 있던 승주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서 지혁을 바라봤다. 그런 지혁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창피한 듯 했다.


“너희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

“...”


승주는 지혁의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하듯 말없이 음식물을 씹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먹던 일에 집중했다.


지혁은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봤다. 만약에 자신의 어머니가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면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했을까?


아주 만약에...


어제 캐롤라인 사제에게 들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지혁아. 몬스터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세계가 온다면 너는 뭘 할 거니?”


여전히 지저분하게 서류가 쌓여있는 사무실에 마련된 소파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 캐롤라인 사제는 대답할 시간 같은 것은 얼마든 기다려 줄 수 있다는 듯이 로운이 내어준 김이 나는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애초에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했다.


“음... 글쎄요. 원래 계획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요리사가 되거나... 가게를 차리거나... 음. 연구를 하거나?”


사실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탑이 이 세계에 나타난 지 벌써 3년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와서 탑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이전의 세계에서 탑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것처럼 느껴졌다.


“별다른 계획이 없구나.”


잔을 천천히 내려둔 그녀가 차분한 눈길로 지혁을 바라봤다. 이전에도 느꼈던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감각은 나쁜 짓을 들킬까봐 초조하게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의 불안감 같은 것이었다.


“그... 사실 아직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그렇구나.”


캐롤라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혁은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는 것만도 벅찼다. 그런 상황에서 평화로운 먼 미래를 가끔 생각해 보기는 해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혁뿐이었는지 사무실 안쪽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로운이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옆에서 석이 로운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런데 그건 왜요?”

“내가 신내림을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아... 네.”

“천기누설이야.”


캐롤라인의 시선이 슬쩍 서류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했다. 두 사내는 서류를 보는 척 하고 있었지만 모든 신경이 지혁과 캐롤라인의 대화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듣는 사람이 많을수록 안 좋겠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렇게 말을 끄세요.”

“일단 이런 일을 벌인 작자들이 너희를 주시하고 있어.”

“일을 벌인 사람들이요?”

“아니. 사람은 이런 일을 벌일 수 없지. 이건 아주 전능한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조용히 말하는 캐롤라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지혁은 그것이 그녀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그녀가 모시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또한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만 지켜봤을 뿐이란다. 너를 선택한 신을 믿지 마렴.”

“그게 무슨...”


능력자 중에서는 자신에게 능력을 준 자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런 면에서 지혁은 흔하지 않은 경우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 꼬마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이름조차 모르기는 하지. 신에게 이름이 의미가 있나?’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던 지혁을 캐롤라인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딴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여유롭네. 너는 그 신으로 인해서 목숨을 잃게 될 거야.”

“네...? 언제요?”

“그건 네가 하기에 따라 달라. 잘하면 오래 살 거고. 미련하면 단명하겠지.”

“...”

“이전에 말했었지? 장수하고 싶으면 최대한 탑을 오르는 일에서 멀어지라고.”


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이 한 문장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무엇 때문에? 문장은 의문이 되었고, 해답 없는 미로를 헤맸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캐롤라인은 잠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고는 흘러나오는 말을 막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뭘요?”

“... 아. 그리고. 네가 찾는 그 여자애.”

“여자애요?”

“어. 내가 한 번 봤던 그 애.”


캐롤라인이 보고 지혁이 찾는 여자라면 한 명 뿐이다.


“소원이요?”

“그래. 걔. 아직 살아는 있대.”


소원이 살아있다?


지혁은 캐롤라인의 말을 듣고 물음표가 떠오르는 자신에게 놀랐다.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사제의 말 중에서 유일하게 이해한 말에 지혁이 테이블을 치며 상체를 내밀고 캐롤라인에게 물었다.


“진짜요? 어디에요?”

“...”


그런 모습을 게슴츠레하게 보던 캐롤라인은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 일단... 그건 탑과는 별개의 일이야. 아니... 탑의 일이지만 탑의 일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탑의 일이지만 탑의 일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말 그대로야... 정확히는 지하의 탑과 관련이 있다고 하네.”


지하의 탑. 지혁은 이전에 나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과거 탑에서 실종되었던 사람 하나가 정신을 차린 뒤에 말했다는 ‘지하로 향하는 탑’.


“그래. 능력자들은 비슷한 능력인 것도 같으면서 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어. 알고 있니?”

“아... 뭐. 조금은요.”

“모르는 것 같은데. 예를 들면 그거야. 나는 막혀 있는 에너지를 찾아내는데 특화되어 있어. 오늘 네가 만날 그 아이. 그 아이는 교감능력이 뛰어나.”


캐롤라인은 목을 축이듯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조건이 제한적이야. 팀원으로 데리고 있을 거면 그 능력을 백분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 그게...”


말을 잇던 캐롤라인의 얼굴에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기분탓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짧은 찰나의 순간.


“너에게도 좋을 거야.”

“네...”


사실 지혁은 그녀가 말하는 아이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오늘 만나게 될 아이? 새로운 팀원에 대한 점괘인가?


“아무튼 그렇게 모두가 비슷한 듯하지만 조금씩 다르지. 그리고 네가 찾는 그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야. 인간의 기준에선 조금 더 특별하지.”

“인간의 기준에서 특별하다고요?”


소원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소중한 친구였지만 능력자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압도적인 치유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다른 부가적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팀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충분했을 뿐이었지 큰 팀에서는 모집 면접조차 볼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이었다.


“평소에는 능력이 보잘 것 없었지?”

“아... 네.”

“사람이 낸 상처에는 의미가 없어.”


지혁은 슬슬 캐롤라인과의 대화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은 있는 것 같은데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흠.”


그런 지혁의 마음을 이해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캐롤라인이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신이 낸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지.”


한 마디씩 천천히 내뱉는 모습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쉽게 말해서 영혼에 새겨진 상처 말이야. 이 이상은 더 말할 수 없어. 너 생각 많잖아. 스스로 생각해 봐.”


캐롤라인은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며 특유의 높은 톤의 목소리로 손바닥을 저어 보이며 말했다.


“오늘은 이쯤하자. 너무 피곤하다.”


그녀의 말과 함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튼. 곰곰이 생각해봐.”

“네...”


워낙 들은 이야기가 많은 터라 곰곰이 생각했다가는 한 동안은 생각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거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거 말이야.”

“아...”


지혁은 그제야 가장 처음 캐롤라인이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몬스터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세계가 온다면 무얼 할 건가.


“네. 그것도 열심히 생각해 볼게요.”

“그래그래.”


대화의 끝을 알리듯 이전에 봤던 높은 텐션의 모습으로 돌아온 캐롤라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응! 로아! 우리 밥 먹자~!”


캐롤라인이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조용히 서류를 보고 있는 척하던 두 남자가 지혁의 양 옆으로 와 앉았다.


“지혁씨! 무슨 얘기 했어요?”

“못 들었어요?”

“캐롤라인 사제님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제어하는 능력이 뛰어나시거든요. 아무래도 저희가 못 듣게 막으신 것 같아요.”


로운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게 방금 전 그녀가 말했던 에너지를 찾아내는 능력과 관련이 있는 걸까?


“아...”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하려던 지혁이 입을 다물었다.


‘천기누설이야.’


캐롤라인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도.’


이전에도 팀원에게 말하지 않았던 탓에 소원을 잃었다. 미혜와의 사이도 최근에서야 다시 회복되고 있는 상태였고, 소원은 여전히 그들의 곁에 없었다.


“... 말 하면 안 되는 거냐?”


지혁의 또 다른 옆에 앉아 있던 석이 물었다.


지혁은 생각했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팀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도 확실하게 정리해서 말할 수 없었고, 캐롤라인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잘... 모르겠어요.”


긴 고민 끝에 지혁이 내뱉은 대답이었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7 검은 옷의 사람들(2) 23.09.27 32 0 11쪽
96 검은 옷의 사람들(1) 23.09.25 38 0 12쪽
95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5) 23.09.22 40 0 12쪽
94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4) 23.09.20 45 0 11쪽
»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3) 23.09.18 40 0 12쪽
92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2) 23.09.15 46 0 11쪽
91 꿈은 막 내린 커피 향 처럼(1) 23.09.13 46 0 11쪽
90 초련(5) 23.09.11 45 0 14쪽
89 초련(4) 23.09.08 50 0 11쪽
88 초련(3) 23.09.06 55 0 10쪽
87 초련(2) 23.09.04 61 0 11쪽
86 초련(1) 23.09.01 54 0 12쪽
85 무임승차 프리 티켓(7) 23.08.31 53 0 12쪽
84 무임승차 프리 티켓(6) 23.08.30 50 0 11쪽
83 무임승차 프리 티켓(5) 23.08.28 53 0 13쪽
82 무임승차 프리 티켓(4) 23.08.25 52 0 14쪽
81 무임승차 프리 티켓(3) 23.08.23 55 0 12쪽
80 무임승차 프리 티켓(2) 23.08.21 57 0 14쪽
79 무임승차 프리 티켓(1) 23.08.18 53 0 13쪽
78 주문하시겠습니까(6) 23.08.16 57 0 13쪽
77 주문하시겠습니까(5) 23.08.14 60 0 12쪽
76 주문하시겠습니까(4) 23.08.11 59 1 14쪽
75 주문하시겠습니까(3) 23.08.09 56 1 12쪽
74 주문하시겠습니까(2) 23.08.07 59 1 12쪽
73 주문하시겠습니까(1) 23.08.04 64 1 12쪽
72 신입(6) 23.08.02 57 1 13쪽
71 신입(5) 23.07.31 55 1 14쪽
70 신입(4) +1 23.07.28 59 1 11쪽
69 신입(3) 23.07.26 60 0 11쪽
68 신입(2) 23.07.24 67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