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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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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3.09.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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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초련(4)

DUMMY

"우와!"


첸과 로아의 비밀기지에 도착한 로운은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커다란 나무 위에 나무판자를 얹어 만들어낸 엉성한 오두막이었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그럴 듯한 비밀기지였다.


구석에 가지런하게 놓인 도복과 쌍절곤과 목도를 비롯한 물건들이 두 사람이 여기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서쪽을 향해 뚫려 있는 커다란 창이었다. 오두막을 품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의 잎이 창의 위쪽 햇살을 가려주고 있었고 넓은 들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청량했다.


"여기 진짜 좋다 누나!"

"그렇지?"


신난 로운이 반짝이는 눈을 하고 로아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첸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술에 취한 아버지를 피해 침대 밑에 숨죽여 누워있을 때도 이보다 크고 빠르게 뛰지는 않았다.


"로아. '누나'가 무슨 뜻이야?"

"여자 형제를 말하는 말이야."

"그렇구나... 누나."


로아의 설명에 첸은 발음을 되새겼다. 로아를 만나고 조금씩 한국어를 배우고 있던 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고 싶었다. 로운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고 싶었다. 그런 첸의 소망은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가 한국어를 배워서가 아닌, 로운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여기서 주로 뭘 해?"


로운의 질문에 첸이 로아를 바라봤다. 언어라는 장벽 때문에 첫눈에 반한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렇게 답답할 수 없었다.


"주로 여기서 뭘 하냐고 물었어."


첸에게 중국어로 답을 해준 로아는 로운을 바라봤다.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해. 하루 종일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내려가서 마음껏 뛰어다니기도 해. 첸과 무술 수련을 하기도 하고. 한국에 있을 너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도 해. 여기선 우린 모든 할 수 있어!"


조금 흥분한 듯 말하는 로아의 말에 로운도 기분 좋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오랜 기억 속에도 누나는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로운은 누나가 좋았다. 그


그런 누나가 이 먼 타지에서 자신을 생각했다는 것이 좋았고, 집에서는 위축되어 눈치만 보던 누나가 자유롭게 무언가를 하며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누나. 행복해보여. 정말 다행이야."

"응. 내가 사랑하는 동생, 내 소중한 친구가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은 정말 이 지구상의 누구보다도 행복해!"


첸은 로아의 그런 표정을 처음 봤다. 항상 말괄량이 같은 모습이나 대련에서 졌을 때 분해하는 표정은 많이 봤지만 저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곧잘 웃는 그녀의 웃음은 자유를 찾은 사람의 해방감이었지만 무언가로 가득 찬 행복한 만족감은 아니었다.


지금의 로아는 꽤나 행복해 보였다.


첸의 시선이 로운을 향했다. 동생이 있었더라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서로 기댈 곳이 있었다면 자신도 그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것인지 로운이 고개를 돌려 첸을 바라봤다. 로운이 방긋 웃었다. 첸은 그저 굳은 표정으로 웃는 얼굴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내 동생 보면서 그렇게 무서운 표정 하지마!"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로아가 장난스럽게 다가와 손가락 두개로 첸의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꺄하하하. 웃는 거 이상해."


어색하게 웃는 첸의 모습이 웃겼는지 로아는 바닥을 뒹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누나와 달리 로운은 조용히 하지만 방금전보다 활짝 웃었다.


그 순간 첸은 다짐했다. 자신이 로운의 곁에 있는 한 항상 웃자. 저 미소를 계속 볼 수 있다면 이런 표정 따위는 언제라도 지을 수 있었다.


"아. 심심해. 물고기 잡으러 갈래?"


바닥을 뒹굴며 웃던 로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녀를 모르는 누군가가 봤더라면 당황하며 혹시 정서가 불안정한 거 아니냐며 걱정했을 모습이었지만 로운도, 첸도 그런 로아의 모습이 익숙했다.


종잡을 수 없는 그녀였지만 두 사람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로아였으니까. 그거면 충분했다.


아지트 주변은 로아의 말 그대로 완벽했다. 졸리면 잘 수 있는 부드러운 풀로 덮인 들판이 있었고, 오두막이 있는 나무의 뒤쪽으로는 넓고 커다란 숲이 있었다.


두 사람은 배가 고프면 숲에 들어가 열매를 따먹거나 물고기를 잡아 구워먹었다고 했다.


"누나 완전 원시인 같아!"

"뭐? 원시인이라니 그게 뭐야. 차라리 자연인이라고 해줘."

"자연인? 좋아! 자연인같아!"


한참을 뛰어놀다가 계곡에 나란히 앉아 시원하게 흘러가는 물에 발을 담고 있는 자매의 모습을 첸은 말없이 바라봤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이 피어났다. 물론 그것을 정의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굳이 말한다면 행복이 아닐까?


"첸 형."

"응?"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첸이라는 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첸 형은 좋겠다. 항상 누나랑 놀 수 있어서."

"..."


이 귀여운 아이가 뭐라 말하는 것일까.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로운의 얼굴에 내려앉은 것이 아쉬움으로 가장한 슬픔이란건 알 수 있었다.


"로아. 동생이 뭐라고 하는 거야?"

"부럽대. 나랑 놀 수 있어서. 로운과 떨어져 지낸 지 좀 됐으니까. 그런 집에서..."


로아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멈췄다.


"혼자 지내야 할 테니까. 아버지가 놀아주실 리도 없고, 어머니는 로운을 사랑하시지만 열성적이신 분은 아니니까."

"그렇구나."


자신은 애초부터 형제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로운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타인의 감정은 어렵다. 스스로의 감정에도 둔한 첸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관찰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공감은 할 수 없었다.


"로운. 물고기 잡는 거 알려줄까?"


자리에서 일어난 첸이 로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물었다. 로운의 시선이 로아를 향했다.


"물고기 잡는 거 알려준대."

"좋아!"


누나의 대답에 금방 얼굴이 밝아진 로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아직 물에 잠겨있는 발이 미끄러졌다.


"아악!"


로운의 비명소리가 다 이어지기도 전에 첸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한 팔로 안아든 아이는 가벼웠지만 비어있던 품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의 첫 번째 기도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리라. 필요이상의 피를 보내기 위해 운동하는 심장 덕분에 첸의 몸이 뜨거워졌다.


귓불부터 아이를 잡고 있는 손끝까지.


"첸. 너 귀가 빨개. 괜찮아?"


옆에서 쿡쿡거리는 로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정말 간절하게 빌었거늘 신은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괜찮아?"

"아. 응! 고마워."


서툴게 한국어로 물어보는 첸에게 로운은 서툰 중국어로 답했다.


"로운 조심해! 여기서 넘어졌다가는 바로 뇌진탕이다?"

"으. 누나 끔찍한 소리 하지마."


로아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소름끼친다는 듯이 몸을 떠는 로운이 일어나자 첸은 팔 한 쪽을 잃은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졌다.


'아무리 로아의 동생이라고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아이인데...'


당시의 첸은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운명의 사랑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런 감정은 그가 살아온 생에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욕심내지 말자. 평소처럼. 욕심내지 말자.'


속으로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자신이 탐내는 것들은 모두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그러니 애정은 하되 탐내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


오두막에서 노을이 지는 것까지 보고 싶다는 로운의 고집에 결국 세 사람은 해가 다 진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로운은 로아의 등에 업힌 채로 곤히 잠들었다.


"참 귀엽지."

"그러게."

"얘가 어릴 때부터 나만 따랐거든. 집안에 어디 기댈 곳 하나 없었으니까 당연한가."

"..."

"내가 이 애만큼은 지켜줘야지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아버지가 중국으로 유학을 가라고 했을 때도 군말 없이 왔어."

"... 그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강해지면 로운을 괴롭히는 애들을 처리할 수 있잖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사람하나 담굴 것 같다."

"쿡쿡. 그럴 리가."


로아는 첸과 있는 시간이 편했다. 낯선 타지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이기도 했지만 그가 괜한 것을 묻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도 그의 앞에 서면 모두 털어두게 되었다. 실처럼 엉켜있던 답답한 감정들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런 그에게라도 로운이 남자아이라는 것을 먼저 말할 생각은 없었다. 첫사랑에 빠진 것 같은 첸의 풋풋한 얼굴은 꽤 희귀한 모습이었기에 조금 더 구경하고 싶었다.


로운이 남자인 이상 그의 오해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 전까지 충분히 구경해둬야 하지 않겠나.


"다 왔다. 그런데 너 괜찮아? 혼나지 않겠어?"

"뭐 별 일인가."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로아는 씁쓸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내가 가서 잘 설명하면 덜 혼나지 않을까?"

"괜한 소리. 너까지 다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판자로 만든 집 안에서는 TV 소리와 함께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아이는 집 앞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도착하자마자 가만히 있던 기척이 움직여 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잘 가. 가는 거 보고 들어갈게."

"으음..."


로아가 대답을 끝내기도 전에 문 앞에 있던 인기척이 거칠게 바뀌며 문을 열었다. 저러다가 정말로 판잣집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드는 로아였다.


"뭐하다 이제 들어와!"


술에 취한 듯 꼬이는 발음에도 타고난 우렁찬 발성은 숨길 수 없는 듯 천둥 같은 소리가 내리쳤다.


"..."


첸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하는 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두 배는 될 법한 큰 키에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듬직한 체격. 도화지마냥 팔에 새긴 수많은 문신들.


그의 아버지는 과거 영월에서 일했었다. 높은 자리는 아니고 가장 말단보다 조금 위에서 힘쓰는 일을 했다고 들었다.


그랬던 그가 보스의 여자를 건드리는 바람에 조직에서 쫓겨났다. 무모한 건지 멍청한 건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술병을 든 남자의 손이 높이 올라갔다.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인 남자였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술병을 보며 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피하고 반격을 했겠지만 쉽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밀려오는 고통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게 남자의 화를 가라앉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첸은 생각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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