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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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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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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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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화

DUMMY

모두의 눈을 사로잡은 동아일보 호외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상해29일발 전통지급보] 본일 오전 11시 반 신공원에서 천장절 축하실 "국가" 합창 중 돌연 식대상의 중광 공사와 백천 군사령관 등을 목표하고 수류탄을 던진 자가 있었다. 백천 대장은 안면에, 중광 공사는 부상한 곳이 어디인지 불명하나 혼도(昏倒)하에 공히 중상을 입고 식장은 대혼란에 함(陷)하였다.-


“백천 사령관이라면 상하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고, 중광 공사라면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가 아닙니까?”


민호가 입을 딱 벌린 채 내뱉은 말이었다. 두 이름은 그가 기억하는 일본 주요인사 인명록에 있는 자였다.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은 올해 1월 상하이 사변에서 일본군을 총지휘해 상하이 전체를 손에 넣은 자였고, 시게미쓰 마모루는 주중 일본공사로서 중국에 주재하는 일본 외교관들의 우두머리자 일본 정부의 대리인으로 중화민국에 외교적 압박을 직접 가하는 자로 알고 있었다.


“이건···... 엄청난 일인데?”


재호가 무심코 뒷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는다.


“히로히토 놈의 생일축하 행사에 폭탄이 날아들어? 적의 주요인사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쇼와 천황을 인간의 모습으로 하계에 내려온 신인 현인신으로 받드는 일본제국이다. 그 현인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그리고 상하이의 군사적 점령이라는 업적을 세우고 중화민국에 굴욕을 준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참석한 자리에, 그들을 노린 폭탄이 날아들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파장일 일으킬 지 순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천 지부장이 그때 눈썹을 까닥인다. 직감적으로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백범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게 이거로군.”


지부장이 부인을 바라본다.


“맞소?”


“정확히 짐작하셨네요.”


에이코가 고개를 끄덕인다. 일이 계획대로 돌아갔을 때 보이는 만족감이 눈에 빛난다.


“백범 선생님과 이번 일에 자원한 윤봉길 동지는 현인신의 생일선물로 아주 대단한 걸 보내기로 계획했지요. 도쿄에서 열리는 그 어떤 불꽃놀이보다 더 성대한 불꽃을요. 애석하게도 올해 1월 이봉창 동지의 선물은 히로히토 씨를 다카마가하라(高天原, 일본 신토에서 말하는 신의 세계)로 보내 주진 못했지만, 오늘의 생일선물은 그 졸개들 여럿은 거기로 보내게 될 거에요. 이런. 다카마가하라가 아니라 더 어두운 데 가게 될려나요?”


그러며 나온 쿡쿡거리는 웃음이 신랄하게 감돈다.


“이야······. 이러면······.”


명수가 말을 잇지 못한다.


“놈들에게 한방 먹인 거냐? 우리가?”


종팔이 믿을 수 없어서 눈을 꿈적꿈적한다.


“해냈다! 진짜 크게 해냈다!”


대석만이 흥분해 목소리를 높인다.


정우는 이 사건이 가지는 의미에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현인신의 생일축하 행사에 불이 일어났다. 적의 고관들이 천황을 찬양하고 만수무강을 비는 축사가 폭음 속에 삼켜졌다. 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날이, 현인신이 이 땅에 황공하게도 내려온 날로 조명되어야 할 날이, 이제는 다르게 기억될 터였다.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이 화려한 불꽃을 일으킨 날로.


정우는 기억한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처단한 이후 적의 주요인사들을 살해하려는 시도는 수 차례나 있음을. 그러나 성공한 일보다 성공하지 못한 일이 더 아프게 다가왔음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은 노인단의 강우규가 부임 첫날부터 사살을 꾀했다. 의열단의 김익상이 대담무쌍하게도 폭탄을 가지고 총독부 건물로 들어가 폭발을 안겨주려 했었다. 순시선을 타고 압록강을 시찰 중에는 참의부가 맹렬히 그가 탄 배에 총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강우규도, 김익상도, 그리고 참의부 사람들도 모두 실패했다.


하라 다카시 내각의 초청으로 방일한 당시 외무차관 여운형이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할 때 조선민족 2천만을 쓸어벌이지 못할 것 같냐고 협박한 육군대신 다나카 기이치는 김익상과 오성륜의 총을 피하고 그와 악수한 애꿏은 영국 여인만 죽었었다.


의열단의 김지섭은 다이쇼 천황을 처단하기 위해 천황궁 앞 니주바시에 폭탄을 던졌으나 결국 죽어가는 다이쇼를 볼 수 없었다.


한인애국단이 만면의 준비를 했음에도 실패하고 만 우가키 가즈시게 현임 총독 암살 실패는 지금 생각해도 뼈속까지 느낀 원통함이 채 사라지지 않았다.


쇼와 천황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친왕이 대만에서 조명하의 칼침을 맞은 결과 일어난 병으로 죽은 건 환호할 일이었지만, 너무나도 희귀한 일이기에 기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던 지난 시기를 되돌아 볼때, 이 성공은 임시정부 내외에서 일어난 이전까지의 실패를 모두 딛고 일어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오히려 그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우 뿐만 아니라 다들 실감이 나지 않아서, 환호도 만세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제수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네!”


장카이셴 대인이었다.


“오늘 천황 생일이랍시고 하는 행사에 임시정부 사람이 폭탄을 던진다고 말일세! 그 말을 듣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네! 시라카와가 누군가? 상하이의 정복자라고 거들먹거리던 놈이 아닌가! 놈들이 다른 데도 아닌 상하이에서 그런 거창한 행사를 한다는 건 제놈들이 거길 손에 넣었다고 자축할 속셈이 있던 게 뻔한 일인데, 그 행사장에 폭탄이 날아들었단 말일세! 조선 사람의 폭탄이!”


장 대인의 얼굴이 흥분감에 젖어든다.


“우리 중국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볼 지는 자네들도 다 알지 않겠는가? 작년 7월에 있었던 일들? 그 이전에 있었던 배화(排華) 폭동들? 그것들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게 되버릴 걸세!”


그리고 나온 마지막 한 마디는, 현실을 믿지 못해 발산되지 못한 감정을 한 방에 터트렸다.


“중국의 원수를 조선이 대신 갚아 주었단 말일세!”


정우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입에서 환호를 담고 말았다. 평소에 항상 진중하려고 노력하던 모습과는 상반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1931년 7월의 만보산 사건과 뒤이은 중국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사태는 크게는 조선인과 중국인 사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화민국 정부 사이에, 작게는 한인애국단 경성지부와 옥룡회 사이에 놓인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도움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조선인 폭도들이 중국인 가게를 공격하고 끔찍한 린치를 가한 사태에서, 임시정부는 몸을 바짝 낮추고 이 모든 게 일본의 음모라고 주장해야 했다. 조선에서 일어난 사태에 들끓는 중국인들에게는 지극히 궁색하게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때는 변했다. 정우나 다른 형제들은 그해 7월 이후 인천에 올 때마다 받은 빵즈 놈이라는 혐오감이 가득한 시선을 견뎌야 했다. 그 시선은 올해 1월 이봉창의 의거로 누그러졌다. 그렇다면 이번 상하이에서 일어난 폭탄투척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만보산 사건으로 받은 경멸어린 시선이 얼마나 바뀔 것인가?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 중국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될 때의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감각에 감정을 소비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마음 속에 내려앉은 거대한 돌이 치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빈 자리에 더할 나위 없는 상쾌함이 스치고 지나간다.


주리는 만보산 사건과 이후의 화교배척 폭동에 대해 들어서 알고만 있는 정도라 정우 등이 옥룡회와의 관계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체감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고 시원하게 웃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묻어가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입으로 “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는 터였다.


여기에 또다른 말이 장 대인의 입에서 나온다.


“오늘 저녁은 아주 화려할 걸세! 자네의 송별연에 더해 오늘의 거사를 축하하는 것도 더불어, 저번에 여기 왔던던 루 총영사가 또 올걸세. 현제를 보러!”


“루춘팡 총영사 말입니까? 총영사가 저를 보러 온다고요?”


“그렇다네! 루 총영사가 내게 전화로 말했는데, 글쎄 쑹쯔원 재무부장이 현제에게 감사장을 보냈다지 뭔가! 총영사가 그걸 직접 전달하러 오겠다고 하네! 현제 덕에 살았다고 말일세!”


“세상에, 그게 사실입니까!”


제자들은 더더욱 환호한다. 쑹쯔원은 중화민국의 재무부장일 뿐만 아니라 장제스 군사위원장의 처남이기도 하다. 그런 거물이 경성 주재 중화민국 총영사를 통해 그들의 스승에게 감사장을 보낸다는 것이다. 언제나 스승이 높아지기를 고대하던 제자들로서는 단연 환호작약할 일이다.


천 지부장의 얼굴에는 제자들의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스쳐 지나간다.


“전 그저 정보만 전달했을 뿐입니다. 그런 감사장까지 받을 정도의 업적을 세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에 부인이 거침없이 딴죽을 건다.


“괜히 겸손 떨지 말고 그냥 받으시우! 훈장도 아니고 감사장 받는데 뭘 그리 정색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소. 받으려면 더 공을 세운 사람이 받아야지.”


“으이구, 얘들아. 너희 사부님이 이렇게 벽창호다!”


에이코는 남편의 태도에 투덜거리면서도, 사뭇 진지하게 태도를 바꾼다.


“여하튼 기쁜 건 기쁜 거지만, 앞으로가 더더욱 중요해질 게다. 선생님이 너희들 작업 시작하기 전에 보낸 전문 기억 하지? 프랑스 조계당국이 우리를 앞으로 보호해 주기 힘들 거라고. 이번 거사로 놈들이 두 눈에 쌍심지를 불태울 거다. 프랑스 당국에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압력을 넣겠지. 너희들도 알잖니? 프랑스 외무부가 느끼는 부담감이 임계치를 넘어서면 우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거.”


정우는 의거의 대성공 소식에 들뜬 감정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다른 형제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현인신의 생일을 모독당한 일본 정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임시정부가 프랑스 조계에 정착한 이래 계속해서 ‘범죄자’들을 인도하라고 성화였던 일본이었지만 그래도 끄덕도 안하던 프랑스였다. 일본 영사관 경찰들이 수색하겠다고 프랑스 조계지 입경을 요청하면 언제나 먼저 임시정부에 통보하던 조계당국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임시정부가 프랑스 조계당국에서 원하는 대일 첩보에 도움이 되는 존재라 하여도, 일본이라는 엄연히 현존하는 동아시아 열강의 격노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었다.


프랑스 경찰이 임시정부 청사와 요인들의 보호를 포기하는 즉시, 일본 영사관 경찰과 헌병에서 파견된 특무들은 물론이고 인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기용된 밀정들이 우르르 투입될 것이 뻔하였다. 신성한 천장절을 망쳐버린 불령선인들을 끌고오기 위해.


“상하이 돌아가는 대로 선생님들 옆에 딱 붙어 있어야 해. 너희들 여기 오기 전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질 거니. 앞으로 수도 없이 밀정노릇 하며 접근하는 놈들의 목을 메달······.”


이때 에이코는 말을 멈추었다. 하마터면 바로 옆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딸아이의 교육에 절대 좋지 않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한 것이었다.


“예전에 했던 작업들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할 게다. 각오들 단단히 해 두어야 한다. 알겠니?”


그 말에 다시금 분위기는 무겁고 진지해진다. 그들의 삶은 13살 이후로 투쟁의 연속이었지만, 이제는 더 강도높은 투쟁의 길로 들어서는 게 예정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주리의 얼굴은 다른 의미로 굳어지고 말았다. 호외의 다른 기사 때문이었다.


-범인은 체포

중광 공사 가장 중상

[상해 29일발 전통지급보] 백천 사령관과 중광 공사 외 야촌(野村), 촌정(村井)의 양 사령관, 천단(川端) 민국회장도 부상하였다 수류탄은 백천, 중광 양씨의 중간에 떨어져 중광 공사가 가장 중상을 당하였다. 범인혐의자는 군중에게 습격되어 헌병대에 인도되었다. -


이 호외보도 대로라면 윤봉길 동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체포된 것인가? 주리는 이 보도가 오보이길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오보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음을 직감했다. 정우에게 배우기로는 사람이 손으로 폭탄을 던지려면 아무리 온 힘을 다해 던져도 20미터 남짓만 날아간다고 하였다. 그런 근거리에서 뭔가를 던지려고 동작을 취한다면, 그것도 행사장에 사람들이 빼곡히 모인 곳에서 그러려면 대번에 눈에 띌 것이 뻔하였다. 행사장을 경비하는 헌병에게 바로 잡히지 않는게 이상할 터였다.


그렇다면 윤봉길 동지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헌병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요식적인 재판 후에 사형장으로 끌려갈 것도 다 고려한 채 거사를 일으켰다는 말이 된다.


윤봉길 동지의 목숨을 건 거사가 성공했음이 기쁘면서도, 그가 현생의 삶을 불사르면서까지 거사에 나서게 되었음을 느끼자 말못할 텁텁한 감정이 밀려옴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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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258화 +10 21.01.18 381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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