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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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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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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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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화

DUMMY

기타무라 헤이스케 소좌는 생각했다. 불령선인들은 멍청한 놈들이 결코 아니다. 영원히 소련 총영사관에 숨어 있을 순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정동을, 더 나아가 경성을 빠져나가 추적을 피해 잠적해야 한다. 잠적한 후에 행선지는 가정부의 본거지인 상하이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육로를 통해 소련 국경을 넘으려 하려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것은 경성을 빠져나간 뒤의 일이다.


그런데 소련 총영사관 부지 주위로 한겹, 정동 주위로 또 한겹의 포위망이 형성되어 있다. 사실상 빠져나가는 건 분명 불가능이다. 그런데도 소좌는 석연찮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경찰이 이놈들 수사에 애먹은 건 한심해서뿐만이 아니라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계속해서 경찰을 가지고 논 저 놈들이 뭔가 생각치도 못한 수단을 통해, 어느새인가 정동 밖으로 나와서 유유히 경성을 빠져나갈 방책을 이미 마련했지 않았을까?


과도한 걱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좌는 최소한의 대비책이라도 마련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성 외곽 도로 일대를 죄다 봉쇄하고 차단하여 놈들이 정동을 빠져나가더라도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했다. 현재까지 소련 총영사관에 틀어박혀 있는 게 유력한 10명도 안되는 놈들 잡으려고 이 대도시의 모든 교통을 죄다 정지해야 한다고 구장하면, 헌병사령관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윗사람들도 다 말도 안된다고 할 게 뻔했다. 300여명 병력의 제6헌병대에는 그럴 인력도 없었다.


그러나 저들이 빠져나가는 사태를 대비한 추격대 편성은 가능했다. 제6헌병대에는 용의자 추적을 위한 모터사이클 분대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헌병대의 모터사이클 분대들의 지원도 충분히 가능했다. 여기에 더불어 이와타 헌병사령관은 제20사단 사령부와 협의, 사단 소속 기병 제28연대의 지원도 받아왔다. 기병 제28연대 소속 기병 중대들은 제6헌병대와 공조, 경성 외곽 일대에서 분대 단위로 분산되어 순찰과 차장을 하며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사전에 구축한 전신 통신망을 통해 급보를 보내 적 포착지점으로 기동하기로 되었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소규모의 적을 추적해 끝장내기에는 적절한 기동부대들이 곳곳에 분산된 채 돌아다니다가 비상시 한 지점에 집중되는 계획이었다.


한인애국단 경성지부 대원들을 포착한 이 헌병대 모터사이클도 외곽지역 순찰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천장절 새벽부터 이게 뭔 짓이냐고 투덜대던 운전수인 오장과 사이드카에 탄 경기관총 사수인 상등병은 물류창고 부지도 한 바퀴 돌다가, 한 트럭에서 다른 트럭으로 짐꾸러미나 트렁크 비슷한 걸 옮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그냥 창고 노무자는 아닌 것 같은 데다가, 왜 이 트럭에서 저 트럭으로 짐을 옮기고 있는지 영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검문을 시도하였다. 혹시 모르니 경기관총은 겨누고.


오장이 방풍고글을 벗어올리고 다가갔다.


“여기 직원인가?”


오장이 본 사람은, 그들 중 우두머리임이 짐작되는 중년 남자였다. 연배도 그랬고 상당히 험상궂게 생긴 게 딱 두목 격으로 보였다.


천 지부장은 눈살을 약간 찌푸린 이외에는 당황한 기색이 거의 없다.


“그렇습니다.”


“왜 짐을 옮겨싣고 있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위에서 지시가 있었습니다.”


천 지부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술술 얘기한다. 그의 제자들도 긴장한 기색을 보였지만, 특별히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나오는 긴장감이라기 보다는 그저 경기관총 총구가 눈 앞에 있다는 데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처럼 보였다.


“뭔 지시?”


“원래 저 트럭은 행선지가 대전이고 이 트럭은 행선지가 수원인데, 수원 갈 화물을 대전 갈 트럭에 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빼내서 싣고 있습니다.”


“아, 그런가?”


이는 군대에서도 없지 않은 일이니 납득이 안가는 설명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장은 충분히 정말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물론 주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침을 삼켰다. 갑자기 헌병 모터사이클이 나타나 총부리를 들이대니 위기가 닥쳤다는 실감이 대단했다. 정우의 손을 꼭 잡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주의를 끌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한다.


“뭔 화물을 옮기나?”


“설탕입니다.”


“설탕 맞나? 내가 보기에는 개인이 쓰는 트렁크나 그런 것처럼 보였는데?”


이때 천 지부장이 선뜻 제안 하나를 한다.


“믿기 힘드시다면,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그의 손에 짐칸 입구에 걸쳐진 방수포가 열렸다. 짐칸으로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방수포로 가려진 안쪽은 어두컴컴하기만 하였다. 들어가지 않으면 그 안에 어떤 수상한 게 있는지 알 수 없을 터였다.


오장은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시꺼먼 동굴의 입구가 나타난 것 같았다. 으로 들어갔을 때, 저기서 뭔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솓아올랐다.


“그럴 거 없다. 트럭 안에 있는 거 다 빼서 내 앞에 가져다 놔라. 당장!”


“아, 예. 원하신다면.”


천 지부장은 그렇게 내뱉고는 제자들에게 뭐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오장은 그것도 저지한다.


“너 혼자 들어가라. 나머지는 여기 있어야겠다.”


“예. 그리하지요.”


지부장은 고분고분하게 트럭 안으로 들어갔다. 오장은 저들이 혹시 저기서 우르르 총이라도 들고 나타나는게 아닌가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11년식 경기관총이 이 젊은 조선인 쿨리들을 겨누고 있는 한 감히 수상한 행동은 못할 것이었다. 물론 그도 권총집에서 남부식 권총을 꺼내들고 조심스레 겨누었다. 이게 등 뒤를 겨누는 한 수상한 행동은 못할 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장만의 착각이었다.


천 지부장이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춘지 수 초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텅!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뭔가 파열하는 소리가 부드러운 물체에 둘러싸여서 밖으로 못나가는 느낌의 소리였다. 그 소리보다 먼저 보인 것은, 트럭 안쪽에서 잠깐 보인 주홍색 불빛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1초도 안되어 판단한 오장은 검지손가락에 걸린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러나 그 손가락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의 뇌가 손가락에 신호를 보내기도 전, 이미 관통당해 있었으니까.


삽시간에 또 텅 하는 소리가 일어난 뒤, 오장의 몸뚱아리는 이제 시체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오장보다 1초 먼저 같은 운명의 길을 간 상등병의 몸이 머리에 뚫린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고꾸라졌다. 그의 몸이 사이드카 좌석에 걸쳐졌다.


천 지부장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마우저를 잡고 수건으로 빠르게 감싸고는, 순식간에 두 발을 격발하였다. 첫 발은 제자들에게 경기관총을 겨누는 상등병에게, 그리고 그 다음은 자신에게 권총을 겨누던 오장에게. 그가 동시에 많은 적들을 처리했던 옛 시절처럼, 그의 몸은 원하는 대로 신속하게 동작했다.


“총 챙기고 올라타라.”


천 지부장이 사이드카의 경기관총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총을 겨누던 상등병이 그 자리에서 시체가 되자, 형제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이미 지부장이 나선 이상 이 상황이 빠르게 종료될 거라고 예상하던 터였다.


상등병의 경기관총은 정우가 직접 챙겼다. 상등병이 가지고 있던 11년식의 탄창도 빼놓지 않았다.


“조용하게 가기는 글렀습니다.”


민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천 지부장이 총을 수건으로 감싸사 총성을 최대한 죽이긴 했지만, 이미 인근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가 두 번이나 났음을 들었을 게 뻔하다. 그리고 헌병 두 명의 시체는 숨길 시간도 없었다.


“방법이 없다. 전투를 대비할 수 밖에.”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이미 일이 일어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청년들의 얼굴은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인천으로 간다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미 어그러졌다. 앞으로 남은 것은 총탄이 오고가는 유혈 낭자한 싸움이 될 터였다.


“이렇게 된거, 그냥 다 쓸어버리지! 총탄도 충분하고!”


대석이 올라타서 맥심 기관총을 잡고 화통하게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불안감을 털어내려고 목소리를 높이는 티가 났다.


정우는 자기 옆에서 잠깐 멍한 표정이 된 주리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주리의 눈은 충격으로 굳어져 있었다. 하필이면 총 맞은 상등병의 시신이 쓰러지며 그 죽은 눈이 주리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쳤던 것이다. 그걸 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존재가, 이렇게 나무토막 쓰러지듯 픽 쓰러져서 아무 빛도 내지 않는 눈을 까뒤집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비록 그들을 위협하던 헌병이라 해도, 사람이 눈 앞에서 죽으며 생명이 사그라드는 모습은 정신을 멍하게 하기 충분했다.


사람이 죽는 이야기는 추리소설 속에서도 보고 다른 청년들에게도 여러 차례 들은 터였다.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 속의 사건으로만 알던 것이 눈 앞에 닥쳐왔다.


내가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야 하나? 오빠가 쏘는 법 가르쳐준 마우저로?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어도, 이게 자신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심장이 떨려왔다.


천 지부장이 주리의 굳어진 표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다 그렇다.”


천 지부장이 차갑게 뇌까렸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으면 주변에 폐가 된다. 너도 알고 있겠지?”


주리는 그 말에 번뜩 정신이 들어 “조심하겠습니다.”라고 빠르게 말한다. 사람 죽는 걸 보고 또 멍해져 있다가 다른 사람들 발목 잡는 건 죽은 사람 눈을 또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보다 더 싫었다.


트럭이 창고 부지를 떠나며 서쪽으로 향하는 신작로로 들어섰다. 말이 신작로지 전혀 포장되지 않아 봄철 건조한 공기 속에서 먼지가 풀풀 날린다. 시야확보를 위해 후방 방수포를 살짝 열고 관측하던 민호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젠장! 놈들 모터사이클 한대가 더 나타났습니다. 아까 있던 창고로 들어갑니다.”


총성음으로 들릴 만할 기이한 소리가 두 번이나 들렸다. 누가 신고하거나 제보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터였다. 아마 새로운 모터사이클의 운전수와 경기관총 사수는 동료들이 사체가 되어 널브러진 걸 보고 기겁하며 상부에 보고하려 허둥지둥 차를 몰 것이다.


“신경쓰지 마라. 사주경계 철저히 하며 놈들이 나타나면 그때 대응한다.”


어차피 시체를 확인하고 달려가는 모터사이클을 처리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저 가까운 곳에 새로운 적이 나타나지 않나 눈을 부릎뜨고 경계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우는 트럭 우측의 방수포를 살짝 걷어 우측방을 바라보았다. 신작로 옆은 논밭이었고 저 멀리 야산이 보였다. 모내기에 열심인 농부들이 아침나절부터 허리를 굽히고 모를 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광경은 지극히 평온했지만, 감상에 젖은 채 바라볼 여유는 없었다.


정우의 눈에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광경이 들어왔다. 트럭 기준으로 8시 방향에서 이쪽을 향해 논밭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형체들이 보였다. 물을 튀기면서 논밭을 마구잡이로 짓밟으며 달려오는 그들은 기병대였다. 그들은 한참 모내기를 하던 농민들은 알아서 피하라는 듯 그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에 놀란 농민들이 황급히 벗어나자, 기병들은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애써 심어놓은 모판을 말발굽으로 무자비하게 밟아놓았다.


기병이 도로를 통해 이동하지 않고 논밭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사람을 칠 위험도 무시하고 이렇게 달려오는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놈들의 추적대상이 된 것이다.


“8시 방향에 적정 출현. 기병입니다.”


천 지부장은 정우의 보고에 나직히 “숫자는?”이라고 묻는다.


“30여기 정도입니다. 1개 소대로 파악됩니다.”


그렇게 보고한 직후, 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6시 방향에도 출현했습니다. 모터사이클입니다.”


“몇대나?”


“3대입니다.”


“1시에서 4시는?”


천 지부장이 좌측을 감시하던 민호에게 묻는다.


“아직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정우는 1개 기병소대로 보이는 기병대의 선두에서 소대장으로 보이는 장교가 손을 흔들고 뭐라 소리치는 걸 보았다. 그들 손에 기병총이 들린 것도.


“유효사거리 내에 접근하는 대로 사격 개시한다.”


천 지부장은 전투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응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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