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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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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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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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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62화

DUMMY

“자······. 잠깐!”


헌병 지휘관들은 일제히 손을 처들었다. 사격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부하들 중 누구도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눈 앞에서 총소리가 나더니 부천경찰서 보안과장이란 경부가 목에 구멍이 뚫렸다. 뭔가 잘못되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이 사태를 막지 않으면 일파만파로······.


그러나 그 이후 둘은 더 생각할 수 없었다. 총성이 울리고 보안과장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 순간, 순사 몇이 우발적으로 사격을 개시해버리고 만 것이다.


타타탕!


둘의 급소에 총알이 들이 밝혔다. 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피를 쏟아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보안과장의 사망, 그리고 저 앞에서 경찰의 총에 맞은 두 대위의 사망은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다.


“에라이, 씨! 쏴버리자!”


누군가 외친 순간, 경찰의 사격이 통제 없이 시작되었다. 주재소가 헌병에게 습격당했다는 혼란스러운 보고, 이미 개성역에서 총격전이 오갔다는 일, 총기로 잔뜩 무장하고 길을 못비켜주는 헌병, 그리고 이로 인한 대치로 말미암은 긴장감이 총성이 한번 울리며 겉잡을 수 없이 터져나왔다.


“군바리 새끼들 다 죽여!”


사격통제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극도로 흥분된 분위기는 간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격중지 명령을 내리는게 정상인 보안과의 각 과장들과 주재소장들부터 눈이 뒤집힌 채 앞장서서 브라우닝 권총을 갈겨댔다. 유혈사태가 벌어진다면 어찌 해결해야 하냐는 걱정을 내심 하고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눈에서 피를 보자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게다가 이미 상대 장교도 죽어버렸다. 사태를 여기서 막기보다는 이럴 바에야 아예 터트려버리자는 자포자기의 심정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총알이 오가는 이상 이제 헌병은 더 이상 폐하의 군대가 아니었다. 이유 없이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적에 불과했다.


눈 앞의 헌병 병력은 경찰들은 아리사카 소총을 견착하고 황색 군복을 입은 헌병들에게 마구잡이로 쏴댔다. 경기도 평야의 한적한 시골마을은 순식간에 총성으로 가득해졌다.


수십 발의 총탄이 일제발사되었다. 욕지기를 퍼부으며 사격하려던 모터사이클 사이드카의 경기관총 사수들이 몸에 구멍이 뚫린 채 피를 뿜었다. 정기적으로 사격훈련을 받아온 순사들은 경기관총 사수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헌병대 트럭을 향해 사격대상을 바꾼다.


“이 미친 짭새 새끼들!”


순간 기습적인 사격을 얻어맞은 헌병들이었지만, 그들의 무장과 화력은 앉아서 당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비록 순식간에 현장지휘관을 상실한 그들이었지만, 각 분견대장과 고참 하사관들의 지휘 아래 긴급히 하차하거나 트럭에 탄 채로 사격을 가한다. 평소에 경찰을 짭새라고 얕잡아보고 그들보다 아래에 있다고 여겨 온 헌병이었다. 그런 경찰에게 선제공격을 당했다는 것은, 이 사태가 대화로 어찌 할 문제가 아니게 되었음을 뜻했다. 집단 흥분상태에 빠진 헌병에게 지휘관부터 일개 병사까지 머릿속에서 나오는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였다. 적 섬멸이었다.


저 망할 짭새들을 다 쓸어버리자!


헌병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차한 헌병들은 짐칸에서 쏴대는 아군의 엄호 아래 길 양옆의 밭으로 뛰어내렸다. 농민들이 힘들게 작물을 무참하게 짓밟은 헌병들이 급하게 엎드리려던 와중에 경찰의 사격을 받았다.


그때 선두 트럭 짐칸에서 작고 시꺼먼 무언가가 휙 날아들었다. 그게 뭔지 알아본 경찰간부 한명이 고성을 지른다.


“수류탄! 엄폐하라!”


콰쾅! 그의 고함 뒤에 바로 폭음이 터져나왔다. 갑작스런 폭발에 산개할 시간도 없이 파편에 당해 무참한 꼴이 된 경찰이 여럿이었다. 폭발의 충격에 경찰이 잠시 정신을 못차리는 사이 , 헌병이 양 옆으로 빠르게 갈라져 산개해 사격을 퍼붓는다.


이 어지러운 총격전 속에서 총탄 하나가 모터사이클의 연료통 부분을 푹 하고 관통한다. 연료가 구멍으로 쑥 새어나오나 싶더니, 콰쾅 굉음과 함께 화려한 불꽃을 사방으로 흩날리며 폭발한다. 폭발은 경찰 쪽에서도 일어난다. 한 용감무쌍한 상등병 한 명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질주하더니 수류탄 하나를 있는 힘껀 던진 것이었다. 그 수류탄은 경찰 차량 한대 속으로 보기 좋게 쏙 들어갔다.


콰콰쾅! 무시무시한 폭발과 함께 화염과 연기가 치솟았다.


바로 위에서 맴돌고 있는 정찰기 관측카메라에 이 장면이 모두 담긴다.


“대체 아래서 뭔 일이 벌어지는 거냐?”


조종사가 폭음을 듣자 기막혀하며 묻는다. 관측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죄다 정신이 나간 것 같습니다.”라고 넋두리를 한다. 헌병과 경찰의 교전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노릇이란 말인가? 지나 간첩단이나 소련 간첩단, 또는 불령선인의 무리가 헌병 또는 경찰로 변장하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두 조직이 이런 말도 안되는 유혈사태를 일으킨단 말인가?


관측수가 눈을 여러 차례 의심하며 확인한 이 광경을 무선전신으로 보고하자,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다시 상세히 보고하라는 답신이 날아왔다. 그럴 만 했다. 이 광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관측수는 본 대로 보고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전신기가 따다닥 하며 모스부호를 종이쪽에 박아넣었다. 상부에서 새로운 전신이 도착했다.


“와, 이거 미치겠네!”


관측수는 전신을 읽고 잠깐 머리를 감싸쥐었다.


“왜 그러냐?”


기장의 물음에 조종사가 울상이 되어 푸념한다.


“우리더러 착륙해서는 당장 사격중지 시키랍니다!”


“뭐? 여기서 어떻게 착륙하라고!”


“아무튼 하랍니다.”


“니미, 씨! 환장하겠네!”


기장은 기가 막혔으나, 상부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입에서 한탄만 나온다. 지상의 부대가 실시간으로 명령을 전달하고 상황을 보고할 수 없는 장비가 전혀 없는 이상,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며 사령부의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존재는 하늘 위의 그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사방이 논과 밭밖에 없고 이륙할 양력을 얻을 만큼의 길게 뻗어 잘 닦인 도로도 없는 이곳에서 착륙할 곳을 찾아보려 하니 그저 한숨만 푹푹 나올 뿐이었다. 그가 조종하는 88식 정찰기는 소형 연락기도 아니고 경폭격기로도 활용하기 위해 제조된 기체라 덩치가 작은 편은 아닌데 저런 땅에서 착륙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심각하게 의문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육군항공대의 군인이고, 명령은 명령이었다.


잘못되면 다 저 아래에서 아군끼리 싸워대는 멍청한 놈들 때문이라고 이를 갈며, 기장은 착륙준비를 시작했다.


이때 관측수는 지상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한 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그들이 원래 추격하고 있던 불령선인의 트럭이 관측카메라에서 벗어나버린 것이었다.


경찰과 헌병 양쪽의 교전이 치열하던 그 시간, 재호는 트럭 엑셀을 힘차게 밟았다. 마을 서쪽 외곽, 헌병이 나올 때는 시야에 보이지 않고 경찰이 신경쓰지 않을 위치에 트럭을 정차시킨 그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헌병과 경찰이 길 한가운데에서 마주칠 그때를.


천 지부장은 경찰이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헌병으로부터 받은 게 없다는 사실에서 발상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었다. 일본 헌병과 경찰이 사이가 좋지 않음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아직까지 그들 손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군경간 정면충돌을 일으켜서, 지상에서 추격해 오는 헌병대의 속도를 늦춰버리고 피해를 발생시키며, 상공에서 맴돌며 영원히 따라올 것 같은 저 정찰기를 그 자리에 멈춰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계획을 실행했다. 주재소를 습격해 경찰들을 제압, 헌병이 주재소를 공격해 교전중이라는 전보를 부천경찰서에 발송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불어 다른 소사파출소와 각 동리 주재소들에 헌병과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전화하게 강요했다. 정말로 교전이 벌어졌다는 현장감을 주기 위해 권총탄 여러 발을 주재소 안에서 사격한 건 물론이었다.


부천경찰서에서 이 황당한 보고를 믿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총격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기에, 그리고 그 누구도 전신과 전화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기에, 대체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경찰력 파견은 분명 있을 터였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 외곽에 트럭을 정차시킨 채 대기했다. 주재소 순사들을 협박해 옷을 벗게 하여 경찰 제복으로 갈아입은 건 혹시 경찰과 마주쳤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렇게 대기하기를 얼마간,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경찰 차량들을 보고 “오, 진짜 온다!”라고 명수가 말했을 때, 마을을 뚫고 나오는 헌병 병력이 눈에 들어왔다. 헌병은 민가에 가린 시야 때문에 그들이 바로 근처에 있음을 보지 못했다.


저 멀리서 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금방이라도 사격할 자세를 취하고 헌병과 대치하는 게 보였다. 대치가 얼마간 계속되고 저 너머에서 달려온 경찰 트럭들에서 제복순사들이 총을 매고 우르르 내리자, 한번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천 지부장은 이 긴장을 한번에 폭파하기로 결정했다.


“서력 1914년 8월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이 전유럽을 불길 속으로 몰아넣었지.”


그가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오늘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되겠느냐?”


그 질문에 민호가 가장 누구보다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대석이 그걸 보고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한발 늦게 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좋다. 실수 없이 하거라.”


“걱정 마십시오!”


민호가 실실 웃으며 아리사카 소총을 잡아들고 트럭에서 내렸다. 엎드려서 안정적인 사격자세를 취한 민호는 어깨에 개머리판을 단단히 밀착시키고 광대뼈를 총몸에 가져다붙였다. 가늠자 위에 경찰 중 제일 앞에 서서 헌병에게 뭐라 말하는 자의 머리가 올라갔다.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쉬고 대쉬던 그는, 어느 순간 딱 숨을 멈췄다. 방아쇠를 건 오른손 검지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다가, 딱 하고 공이치기가 공이를 때린다.


탕!


사격은 정확했다. 선두의 경찰이 고꾸라지고 총성이 울린 순간, 쌓여왔던 모든 긴장이 한 방에 폭발했다. 흡사 부풀어오를 데로 부풀어오른 풍선에 바늘 끝을 가져다댄 것처럼.


민호는 사격 직후 바로 일어나 트럭 짐칸으로 뛰어올랐다. 그는 헌병과 경찰이 일구어내는 환상적인 개판을 계속 관찰하여 아무나 이기라고 낄낄대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는게 애석할 따름이었다. 민호가 올라타나마자 재호가 엑셀레이터를 꽉 밟으며 다시 도주가 시작되었다.


“이걸로 한 시름 놓겠습니다.”


계속 심각한 표정이었던 명수도 표정을 풀고 유쾌하게 웃는다. 기관총 사격도 닿지 않는 곳에서 맴돌던 정찰기는 저 교전을 관측하느라 바쁠 것이다. 방수포를 걷고 보니 이미 빠르게 교전지역을 벗어나고 있었지만 정찰기는 계속 그 지역 위에서 맴돌더니 갑자기 고도를 낮추며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왜 정찰기가 저런 행동을 취하는지는 그들이 알 턱이 없었지만, 정찰기가 더 이상 그들을 신경쓰지 않고 있다는 건 확실하였다.


“이대로 인천까지 계속 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석이 싱글벙글 웃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천 지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옥룡회를 곤란하게 하면 안된다. 이미 전보를 보냈잖느냐?”


그들이 주재소에서 옥룡회 통신실로 보낸 전보는, 적 항공정찰을 피하기 위해 부천 소사면사무소 소재지 인근 원미산에 트럭을 버리고 숨을 것이니 인력과 차량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일단 위기에서 벗어난 그들이었지만, 천 지부장은 최대한 신중하게, 낮은 산이라도 정찰기의 관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숨은 뒤 옥룡회의 도움을 받아 인천으로 갈 의도였다.


이제 주리는 퍽 안심이 되어 방긋 웃고는 정우 몸에 기대었다. 실로 기상천외한 계략으로 경찰과 헌병의 충돌을 유도한 뒤 이리 유유히 탈출하고 있자니 마음이 안 놓일 래야 안놓일 수 밖에 없었다. 정우도 얼굴에 옅은 웃음을 띄우고 주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또 트럭 안으로 총탄이 날아들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잠깐이나마 찾아온 평화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은, 어제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히로요시의 백부인 나카하라 경무국장에게 적잖이 죄송한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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